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46
141. 바람처럼 왔다가 떠난 사람 >
동생의 몸이 가벼운 증상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다시 김명은을 만났다.
그가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으니 나도 결과를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검사결과를 말해주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걸로 이제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떠난다고요?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리셨나요?”
내 물음에 김명은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제가 예린과 결혼을 했다고 말했죠? 제가 보아온 예린은 지금의 예린이 아니라 30대의 예린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예린을 만나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지금의 만남으로 끝까지 행복할까? 이건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린의 이야기입니다.
30대의 예린은 많은 경험을 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이렇게 옆에 계속 붙어 있으면 그녀에게는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지금의 그녀를 보고 있기 참 힘드네요. 분명 같은 사람인데 저는 예린의 모습에서 항상 저와 결혼했던 30대의 여인상을 찾고 있으니까요. 지금의 예린을 전혀 보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떠나겠다는 말입니까?”
“네. 이대로면 예린이도 제가 자기가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한다고 눈치를 채게 될 겁니다. 예린이는 눈치가 빠르니까요.”
“그건 그렇죠. 그럼 예린이 자랄 때까지 떠나 있겠다는 말입니까?”
“네. 굳이 집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린이가 꼭 저와 함께해야 행복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상황은 제가 겪었던 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성 씨는 가수가 되었고, 그녀는 이제 어머니의 신장을 받지 않아도 되겠죠. 거기다 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면서 다녔던 대학도 이제 그냥 졸업까지 다니게 되겠죠. 어쩌면 제가 알던 그녀는 이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제 동생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어린 예린의 곁에 있기가 힘듭니다. 마치 제가 걸림돌이 되는 것 같으니까요.”
“마치 영화에서나 나오는 사랑해서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아닙니다. 저를 위해서 떠나는 겁니다. 이대로는 저도 예린이도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나중에 예린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그건 그거대로 받아들여야겠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미 제가 겪었던 미래와는 달라졌으니까요.”
“음, 저로서는 당신의 말이 다행스럽게 들립니다. 솔직히 저는 당신이 예린이와 가까워지는 것이 점점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으니까요.”
“제가 마음에 안 드나요?”
“그런 것보다는 연애를 밀고 당기는 게임이라고 했을 때, 지금의 당신은 치트를 쓰고 있는 거니까요. 아닌가요?”
“치트라, 틀린 말은 아니네요. 저는 예린이 싫어할 만한 일은 하지 않고 예린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관심을 끌었으니까요. 애초에 예린이가 저에게 말을 건 이유도 제가 딕스의 노래를 부르고 있어서였으니까요.”
“헐? 노린 겁니까?”
“네. 노렸습니다. 이 나이 때의 그녀는 딕스를 미치도록 좋아했다고 했으니까요.”
“설마, 결혼할 때까지 그랬던 건 아니죠?”
“물론 아닙니다. 예린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딕스를 좋아할 겨를이 없어집니다. 등록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들은 이야기로는 어머니께서 예성 씨를 뒷바라지하느라 동생에게 대학을 포기하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이?”
“네. 그래서 그녀가 사정사정해서 한 학기 등록금을 받고, 나머지는 과외와 아르바이트하면서 스스로 대학을 다녔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잘 실감이 안 나실 겁니다. 지금의 예성 씨는 그때와 전혀 다르니까요.”
실감이 난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우리 집이다. 정말 동생이 맺힌 게 많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곁은 떠나 있으려고 합니다. 지금의 그녀는 제가 아니라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으니까요. 제가 결혼했던 예린이는 고등학교 시절이 끔찍이도 싫었다고 했습니다.
연습생을 하는 오빠 덕에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시달리고, 집에서는 오빠를 챙기느라 자신은 뒷전인 엄마 때문에 집에서 벗어나는 게 자신의 꿈이었다고 했습니다. 한데, 지금의 그녀는 엄마가 졸업하면 내보내려고 해서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갈까 생각 중이라는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그녀는 내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이미 당신이 돌아온 시점에서 변화가 시작된 걸지도 모르죠. 나방이론이라는 영화도 있지 않았나요?”
“나비이론이겠죠.”
“크흠,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런데 떠난다면 다른 나라로 가는 겁니까?”
“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까 합니다.”
“미국이요?”
“네. 게임 연구원이었습니다.”
“게임이요?”
“네. 정확히는 가상현실을 구동하기 위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만들지는 못했지만요.”
“그래서 그걸 다시 연구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네. 하고 싶은 것이 그것밖에 없군요.”
“그런 연구라면 여기 한국에서도 할 수 있지 않나요? 누가 뭐래도 한국은 게임 강국이잖아요?”
“그건 맞지만, 한국은 당장에 돈이 안 되면 투자를 해주지 않으니까요.”
“투자도 받아야 하는 겁니까?”
“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끊임없이 들어와야 하는 연구입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가는 겁니다.”
이 사람과의 대화는 참 힘들다. 얼굴에 표정 변화가 없으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읽어내기가 어렵다 못해 전혀 알 수가 없다.
“돌아오긴 할 겁니까?”
“네. 언젠가는요. 예린이를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서라도 올 겁니다.”
“그런가요? 예린이에게는 이야기하고 가실 거죠?”
“네. 예린이에게는 제가 재활을 받으러 간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그런 김에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남을 거라고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녀에게는 그냥 아는 오빠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저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네요.”
“그렇습니까?”
“네. 저에게는요. 하지만 동생이 좋아만 하면 나중에 미국에 간다고 해도 말리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은 말리겠지만요. 아직 동생은 어리니까요.”
“글쎄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연애에 목숨 거는 타입이 아니니까요. 만약 그녀가 저를 그만큼 좋아했다고 한다면 그렇게 몸을 망가뜨리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가요?”
“네.”
“그래도 괜찮습니까? 저를 처음 보았을 때는 제 동생이 아니면 안 되는 분위기였는데.”
“제가 집착한 것은 예린의 건강과 행복이지. 그녀가 아닙니다. 제가 깨어나고 한순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세상을 보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그녀가 꼭 나와 함께 해야 행복할 건가?
아니지. 나 때문에 불행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없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그녀는 행복한데 내가 끼어들어 그 행복을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을까?”
“흠, 그쪽도 여러모로 복잡한가 보군요.”
“그쪽도? 예성 씨도 복잡한 가 봅니다.”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그냥 제가 당신이었다면 어쩔까 싶어서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점점 당신이 떠난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드네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제 동생에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덕분에 제 동생의 병을 미리 방지한 것은 고맙지만요.”
“맞습니다. 그것도 지금의 그녀가 아니라 미래의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죠. 미래의 일은 미래에 맡기자고요. 저는 이번에 돌아오면서 운명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녀와 제가 함께해서 행복할 인연이면 나중에 다시 함께하게 될 거로 생각합니다. 예성 씨의 필연이라는 노래처럼요.”
“뭐, 그건 두고 봐야죠. 저는 중립을 유지하겠습니다. 방해는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동생이 다른 사람을 만나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네. 방해만 안 해도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당신이 걱정해준 동생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러 온 거니까요.”
“네. 덕분에 저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입니다.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네. 그럼 이만”
김명은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그는 정말 회귀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내가 친구들과 학교에서 읽은 소설에 보면 게임 폐인들이 게임을 하다가 과거로 오게 되는 주인공 소설이 많았다. 그렇게 돌아와서 다시 미친 듯이 게임만 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게임 만들다 감전이라도 되었나?’
꿈이든 회귀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김명은 덕분에 나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는 게 중요하지.
‘그러고 보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고 말을 했지. 어쩌면 그 사람 새 출발 할지도 모르겠네.’
그가 나에게 한 말이 모두 진실인지는 나는 알 수 없다. 그가 게임 연구원이었는지 킬러였는지 내가 어떻게 알까? 그가 말하는 대로 아 그렇구나! 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는 나에게 말한 것과는 다르게 많은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헉, 그러면 슈퍼볼 사러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알려달라고 할까 봐 게임 연구하러 간다고 했을지도 몰라. 아니지. 당첨금으로 인공지능 연구를 할지도.’
이런 잡생각을 하면서 기획사로 돌아오니 연습실에 석태 형이 와 있었다.
“어디 갔다 와?”
“나갔다 온다고 보고 했잖아요?”
“왜 영훈이는 떼놓고 갔어?”
“개인적인 일이라서요.”
“헐, 개인적인 일? 갑자기 무슨 개인적인 일? 네가 언제부터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가려서 했다고? 집에 일 있을 때도 이야기하기만 하면 우리가 다 도와줬잖아?”
“제가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거든요.”
“그래도 도왔지.”
“그건 그렇죠.”
“그런데 갑자기 무슨 사적인 일이야? 혹시 여자라도 만나? 아니 그럴 일은 없지”
“왜 없어요?”
“그냥 없어, 넌 그냥 보면 없어 보여.”
그러면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석태 형이다.
“참 기분 나쁘게 보시네요.”
“그래서 무슨 일인데?”
“개인적인 일이라고 했잖아요.”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런데 무슨 사고 치거나 그런 거 아니지?”
“제가 언제 사고 치는 거 봤어요?”
이 형이 말하는 건 음원 유출했던 그런 사고가 아니라 스캔들을 말하는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지. 사고 안 치던 네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니까 사고 친 거 아닌가 의심이 들잖아.”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데 좀 어때요?”
“뭐가?”
“군보 형이요.”
내 말에 석태 형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왜 웃어요? 남은 심각한데?”
“너 군보 작업실 문 봤어?”
“문이야 보기도 많이 보고 자주 열기도 열었죠.”
“아니, 오늘 말이야.”
“오늘요? 아니요.”
“문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붙여놨더라. 거기다 괄호 열고 북두칠성은 손잡이 잡는 것도 금지’라고 적어놨더라. 크크”
“뭔가요? 그건, 꼬마애도 아니고,”
“그러게. 큭, 열 받았나 봐.”
“곤란하게 됐네요. 제가 괜히 설쳐서 일을 만든 느낌이네요. 군보 형도 문제지만 북두칠성 형들도 기운이 없어 보이던데.”
“신경 쓰지 마. 이건 네가 문제가 아니라······. 아니지 네가 문제가 맞구나. 내부고발자 신예성.”
“헉, 내부고발자라니? 누가요? 제가요?”
“그래. 너, 네가 본부장님에게 편곡 사실을 알렸으니까 본부장님이 군보에게 징계를 내렸지. 군보는 지금쯤 북두칠성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서 네 이름을 적은 인형에 못질하고 있을걸.”
“설마, 헉, 가슴이···.”
내가 가슴을 쥐면서 쇼맨십을 보여줬는데 싸늘한 석태 형의 눈빛이 나를 내려다본다.“
“예성아, 이제 너에게 익숙해지니 네가 어떻게 움직일지 빤하게 보이네.”
“이런, 석태 형 나를 너무 잘 아는군요. 우린 좀 떨어져 지낼 필요가 있어요. 딱···.”
“4주만 떨어지자고?”
“헉,”
“거봐. 빤하다니까. 좀 삼빡한 거 없냐?”
“석태 형, 이러시면 곤란해요. 제가 가수지, 개그맨이 아니거든요? 제 매니저면서 저의 직업을 착각하시는 건가요?”
“네가 자꾸 말장난을 욕심내니까 하는 소리다.”
“요즘은 오히려 석태 형이 더 그런 거 같은데요.”
석태 형에게 말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영훈 형이 들어왔다.
“예성아, 시간 됐다 가자.”
“네. 석태 형도 가나요?”
“아니.”
“그래요? 그럼 같이 나가요.”
“왜?”
“저도 이제 보안에 신경을 쓰려고요.”
“뭐? 그런데 나는 왜?”
“요주의 인물이니까요.”
내 말에 석태 형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내가? 야! 나 이석태야. 네 매니저 이석태!”
“알아요. 하지만, 그닥 신용이 가지 않는 매니저님이죠. 분명 ‘회사의 비밀이니까 너만 알고 있어야 해’라면서 이야기를 꺼내시고는 군보 형이 감봉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줬으니까요. 그런 석태 형이니 또 어디 가서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 해’라면서 제 비밀을 몰래 넘길지 모르니까요.”
“허, 너를 위해 정보를 알려 줬건만, 나를 밀정 취급하는 거냐?”
그런데 이런 석태 형보다 다른 이야기가 나와 석태 형을 놀라게 했다.
“뭐? 군보 형이 감봉을 당해? 얼마나? 아니 기간은?”
“헉!”
“헉!”
서로 놀라면서 석태 형과 나는 눈을 마주쳤다. 눈빛만으로 서로 이야기가 통했다.
‘슈발 망했다.’
영훈 형은 이 이야기를 모른다는 걸 깜빡했다.
“예성아, 이야기 마저 해야지. 나만 알고 있을게. 걱정하지 마.”
영훈 형은 연신 나를 못 믿냐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럴수록 신용이 가지 않았다. 이건 석태 형의 ‘너만 알고 있어야 해’와 동급이었다.
‘큰일 났네. 내일이면 군보 형 감봉당한 사실 회사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겠어.’
“영훈 형, 얼른 일하러 갑시다.”
“예성아, 차에 타면 이야기해주기다. 석태 형 갔다 올게요.”
사무실을 나와 영훈 형이랑 같이 이동을 했다. 내가 지금 가는 곳은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다.
그들은 연습이 바빠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찾아가는 것이다. 솔직히 기분 나쁘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하는 그런 기분이다. 음악 선생님에게 항상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클래식은 프라이드가 굉장히 높다고 그건 성악만 그런 게 아니다.
거기다 그들은 24명이나 되고 나는 혼자니 내가 가기로 했다. 아니면 총 리허설 때 보자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연습실에 도착하니 정말 연습을 하고 있는지 은은한 클래식 선율이 귀에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휘하는 분이 나를 보고는 다시 지휘를 계속했다.
곡이 끝나자 드디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미안해요. 연습을 도중에 관둘 수 없어서요.”
“괜찮습니다. 신예성입니다. 아까 연락드린 대로 연주를 들어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이용식입니다. 기왕 오신 거 같이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미리 맞춰보면 리허설 때 더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죠. 그런데 처음 도입부를 제가 부르는 게 아닌데 상관없겠죠?”
“하연정 소프라노가 부른다고 했죠?”
“네.”
곡에는 변화가 약간 있었다.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 중에 전이 먼저 나오고 기승전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무반주로 음악 선생님이 전에 해당하는 부분을 부르고 연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오케스트라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자 악단 사람들도 눈인사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러고는 지휘자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평소와 다르게 무거운 목소리가 연습실을 울린다. 발성법이 다른 것이다.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배에서부터 끌어올려 지는 소리의 느낌은 가요를 부르면서는 느끼기 힘들다. 기교보다는 감정을 노래하는 가요기에 그렇다.
도입부를 부르니 연주가 시작된다. 거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니 서로가 놀란다. 나는 내 목소리를 감싸듯이 들리는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놀라고, 오케스트라는 악기의 소리에 눌리지 않는 목소리에 놀랐다.
오케스트라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TV에서 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나를 감싸듯이 들려오는 소리로 시작한 연주는 나를 눌러 버릴 듯이 소리가 압박해 온다. 그런 연주에 나는 소리에 눌리지 않게 더 성량을 키웠다.
목소리가 크다고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내 목소리가 악기 소리에 묻혀 전혀 들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니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 싶다.
‘마이크 잡고 노래를 할 거면서 무슨 용을 쓴 거야?’
그런데 지휘자가 연주를 마치고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역시, 신예성 씨, 혹시 공연 때 마이크 없이 해볼 생각 있습니까?”
“네?”
“아! 전 신예성 씨의 연주를 한다고 해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부곡에서 마이크 없이 노래하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완벽한 오페라 창법으로 부르는 모습을 보고는 이 노래도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을 해서 방금처럼 지휘한 겁니다. 어떻습니까?”
그의 말은 나를 생각하게 하였다.
‘그때 노래를 부르고 쓰러졌었는데, 지금은 될까? 리허설이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선생님은? 선생님이야 당연히 가능하겠지. 저번에 맞춰볼 때 여유가 넘치시던데. 나는 가능할까?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내가 한계까지 쥐어 짜본 때는 그때가 처음인데.’
꾸준히 운동은 해왔다. 스케줄이 없는 대신 남는 시간은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보고, 운동하는 일과를 매일 보냈다.
‘그때와 난 달라졌을까? 생각을 잘해야 해. 이건 하루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5일을 해야 하는 공연이야. 하고 퍼지면 나도 망하고, 콘서트도 망하는 거야.’
“일단 생각도 해보고, 하연정 소프라노와 의논도 해볼게요. 저 혼자 부르는 게 아니니까요.”
“네. 그러세요. 요구 사항이 아니라 그냥 이러면 더 좋겠다 싶어서 말하는 겁니다. 방금 들었다시피 마이크를 통하지 않으면 소리는 더 맑으니까요.”
“네. 저도 알아요. 일단 리허설 때 말씀드릴게요.”
“네.”
오케스트라 연습실을 나서며 한숨이 나왔다. 하고는 싶다. 하고는 싶은데, 세상을 살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하아, 마이크 없이···.’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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