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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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를 만나고 난 후 머릿속에서 지휘자가 한 말이 떠나지 않는다.
내가 작은 공연장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관객과 가까이에 서서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무료 때와는 다른 공연을 하기 위해 선생님에게 부탁까지 드렸다.
‘하면 멋질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를 두는 느낌이다.
‘차라리 순서를 변경할까? 저번 콘서트에서 만들었던 별리를 마지막으로 부르고 선생님과의 곡을 오프닝으로 부를까?’
이것도 곤란했다.
공연은 노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래, 무대장치, 연출의 세 박자가 어우러지는 것이다.
이번 공연의 연출은 예전에 결정 난 사항이다. 거기다 피날레로 선생님과의 노래를 마칠 때 꽃가루가 뿌려지는 것까지 다 준비가 된 상황이다.
고민하다 문득 깨달았다. 아! 이놈의 팔랑귀가 또 발동했다는 것을.
‘슈발, 정말 지랄도 풍년이구나. 난 왜 항상 이렇게 누가 뭐라고 그러면 혹하고 마는 거지? 이렇게 줏대가 없어서야.’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오늘만 날이 아니듯, 이번 콘서트는 시작일 뿐이다. 다음 달에 써먹자. 애초에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괜히 했다가 목만 망가질지도 몰라.’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자신을 그렇게 이해시켰다.
“요즘은 공부를 아예 손에서 놓은 거야?”
홍수가 쉬는 시간이 되자 나를 보며 물었다.
홍수가 그렇게 물을 만도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네. 시간이 없어.”
“그거 다 변명인 거 알지?”
홍수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비겁한 변명일 따름이지.”
급식 먹는 연예인이, 나 하나만 있는 게 아니기에 시간이 없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우리 기획사 연습생 중에도 학생들이 많다. 아니 많은 게 아니라 대부분이 학생이다. 거기다 초등학생까지 있다고 한다. 비록 나와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들 같은 경우에는 기획사에 성적표를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
연습생의 경우에는 단축수업을 받는 나와는 다르게 학교수업을 모두 마치고 기획사로 와서 연습한다.
그런 와중에 학교성적을 유지해야 한다. 안 그러면 트레이너에게 집중마크를 당해서 성적을 끌어올려야 비로소 연습을 참가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데뷔하게 됐을 때 학교성적이 좋으면 이미지가 좋고, 데뷔하지 못하더라도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을 해서 빡빡한 연습시간을 쪼개서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트레이너들은 연습생들의 부모나 마찬가지야. 혹독하게 가르치지만, 그들만큼 연습생들을 걱정하는 사람도 없어. 그들 스스로가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인원은 소수라는 것을 잘 알기에 나중을 위해서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본부장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거기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평가점수에도 가산점이 있다고 하니 연습생들로서는 공부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시간이 없다는 내 말은 변명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내 말은 가슴에 손을 얹고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시간이 없는 이유는 잠 때문이다.
나에게 스케줄이 생겼을 때 외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스케줄 적은 연예인이라고 해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고, 운동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항상 그런 일과 속에도 매일 자그마한 변화는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그렇고, 곡을 의논하거나, 작곡할 때도 있다. 그런 와중에도 항상 잠만은 충분히 자려고 노력을 한다. 그렇기에 시간이 없다.
하지만 홍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팔자 늘어졌구나. 신예성’이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게 속 편하다. 더구나 이놈은 중간고사를 친다고 밤샘공부를 할 때, 뭐가 잘못됐는지 눈에 다크서클이 생긴 후 없어지지를 않고 있었다. 이미 시험은 끝났고 성적마저 나온 마당인데 아직 판다 같은 얼굴을 하는 것이다.
아마 잠을 편하게 자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게 고3의 얼굴이지. 이런 놈 앞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면 반 친구들 전체가 들고일어나 나를 밟을지도 몰라.’
이제 고3들의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입시 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떠들썩한 반이었지만, 중간고사를 친 후부터는 절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나도 늘 잠을 잔다.
도움은 되지 못 할지언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고심(?) 끝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친구들은 그런 나를 팔자 좋은 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정말 나 같은 놈이 특례입학으로 대학을 가도 되는 걸까?“
예전에는 당연하게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이 기를 쓰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든다. 친구들이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공부를 해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이들은 여기에서 반이나 될까 모른다.
그런 친구들에게 내가 명문 대학에 가는 것은 어떻게 느껴질까? 그냥 이야기할 때는 부럽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클 것이다.
‘작년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욕먹을 짓이겠구나.’
친구들이야 그러려니 하거나 속으로 구시렁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고3 학생들은 나를 얼마나 헐뜯을 것인가? 그 부모는?
그건 둘째치고, 나 스스로 떳떳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는 거야? 정작 급한 건 콘서트인데,’
콘서트를 생각하니 또 느낌이 다르다. 이들이 중간고사나 모의고사가 시험이라면 나에게는 콘서트가 시험이다. 내가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에 앞으로의 행보가 달라진다.
‘그래. 지금은 하나만 생각하자.’
이런 결심을 하고 회사에 왔는데 장 프로듀서님이 날 찾는다는 이야기에 찾아가니 정규 앨범 이야기를 꺼내신다.
“지금 이 시기에요?”
“그래. 더 미루기는 힘들 것 같다.”
“힘들다고요?”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힘든 게 아니라 시기가 많이 늦춰진다고 봐야지.”
“그런가요?”
“5월이 지나 6월이 오면 곧 7월, 여름이다. 여름은 댄스가 강세인 계절이지. 거기다 기본적으로 여름은 가수들에게 성수기야. 기다렸다는 듯이 여름만 되면 리메이크 앨범과 콜라보 앨범, 거기다 신규앨범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싸우기보다는 미리 내자는 게 회사의 생각이다. 그게 아니라면 10월까지 미루자는 이야기가 있었지.”
“10월이요?”
“그래. 가을은 발라드의 계절이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까. 그래서 빠듯하더라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래요?”
“그래. 이건 회사 생각이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야, 뭐 나오기만 하면 그만이죠. 이미 곡이 어떻게 선곡이 되고, 어떤 노래가 들어가는지 다 알고 있는 마당에 무슨 불만이 있겠어요? 거기다 시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네요. 제가 마케팅하는 분들보다 더 나을게 있을까요?”
이미 정규앨범의 이야기가 작년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 와중에 앨범 재킷도 만들어지고, 이미 홍보가 어떻게 이루어질지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럼 내일 녹음을 하자.”
“네.”
그렇게 콘서트와 녹음을 같이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래 봤자 녹음은 이미 다 끝난 곡이 여러 곡이라 부를 곡은 3곡이면 충분했다.
‘밤하늘’, ‘길을 걷다 보면’, ‘항상 그 자리에’ 이 세곡이다. 앨범은 이 세곡까지 합쳐서 총 12곡이 들어간 앨범이었다. 스카이워커를 필두로 해서 기도, 운명, 필연······. 영원까지. 내가 싱글로 불렀던 노래들이 모두 포함이 되었다.
앨범의 제목은 [생각]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왜 생각이야? 뭔가 의미라도 있어?”
제목을 듣는 이마다 물었다.
하지만 별생각 없이 지었다.
“그냥 영화 보다가 생각나서 만들고, 길 가다 생각나서 만들고, 집에서 누워있다 생각나서 만들고, 공연하다 생각나서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생각이라고 붙였어요.”
다른 이들은 내 말에 그러려니 여겼지만, 본부장님과 장 프로듀서님은 고개를 흔들었다.
“예성아, 정말 생각 없이 지었구나. 어디 가서 그렇게 생각해서 생각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말하지 마. 생각이라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뭔가 있어 보이는데, 생각이라는 제목을 생각을 많이 하고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생각 없이 생각이라는 제목을 지었다고 생각하면, 앨범의 값어치도 떨어진다고 생각할 거야.”
장 프로듀서님의 말에 정신이 멍해졌다.
“도대체 생각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말씀하시는 거예요? 생각을 너무 말씀하셔서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왜 몰라? 예성 학생, 그냥 생각 없이 어디 가서 방금 말 한 것처럼 생각을 그렇게 생각해서 제목을 생각으로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는 소리야.”
본부장님 마저 생각에 대한 생각을 생각이라는 단어의 연타로 태클을 건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해보자는 건가?’
“제 생각이 어때서요? 틀린 말도 아니지요. 그냥 생각나기에 그 생각을 다듬어 곡을 만들었죠. 생각이 많이 나서 그 많은 생각을 다듬으니 곡도 여러 개 나왔어요. 그래서 앨범을 만들 생각을 했겠죠. 그렇게 만들고 나니 제목을 생각해야 했는데 생각해서 만든 앨범이니 생각이라고 이름을 붙였잖아요.”
“제법인데······.”
“이래 봬도 제가 글 쓰는 사람이죠. 작사가 신예성이라고요.”
“그래. 그래도 제목의 의미는 좀 바꾸자. 네가 어린 나이에 세상에 나와 사회와 부딪히며 겪은 사람들의 모습을 노래로 만들었다고 하자.”
“제가 한 이야기랑 뭐가 달라요? 길가가 생각나서 만들고, 공연하다 생각나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랑?
“느낌이 다르잖아. 아! 감수성이 예민해서 나와 같은 세상을 보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내는구나. 생각할 거 아니야.? 어디 누워 있다 생각나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누가 감동을 하겠어?”
“에이, 그냥 물어보셔서 말했지. 설마 남들 앞에서 그렇게 말할까요?”
“응. 넌 하고도 남지.”
“예성 학생은 그러고도 남아.”
장 프로듀서님과 본부장님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아니 저를 어떻게 보시고,”
“방송에서 얻어걸렸다고 말한 거 기억 안 나?”
헉, 설마, 그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다니.
“그거야 웃기려고 그렇게 말한 거죠.”
“그래서 웃겼어?”
“알면서 왜 물어요? 말로 웃기려고 나갔다가 그냥 목소리로 포도주잔 깨는 기인열전만 펼치고 왔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말조심해. 항상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을 해.”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잘해야 걱정 안 하지.”
****
앨범의 발매 날짜가 정해졌다. 6월 8일.
거기다 기획사에서 이번에 돈을 썼는지 메론과 가은차트에 떡하니 커다란 메인 배너를 걸어 놓았다.
본부장님이 말하기로는 발매 날 당일까지 배너가 걸려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오히려 부담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앨범의 테마를 ‘생각’이라고 정한 이유는 따로 있나요?”
여자가 녹음기를 들이밀며 묻는다. 배너와 더불어 이렇게 떡하니 기자도 불러들였다.
“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작년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처음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면서 느꼈던 감정과 여러 매체를 통해 느꼈던 영감을 통해 곡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내가 말을 하자 멀리서 지켜보던 본부장님 슬며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번 앨범도 특별하게 만들어진다고 들었어요.”
“네. 특별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콘서트 실황 앨범과 묶어서 디럭스앨범으로 제작이 됩니다. 물론 따로 구매도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앨범만 발매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작해달라는 팬들의 요구가 들어와서 선주문 형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팬들이요?”
“네. 개인적으로는 지난번 콘서트와 겹치는 곡도 있고, 거기다 이번 앨범에도 들어있는 곡들이 있어서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은데, 듣는 팬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라이브와 음원은 들을 때 느낌이 다르지 않나요? 거기다 신예성 씨가 TV 출연을 잘 안 해서 욕심이 나는 걸 수도 있겠네요.”
“그런가요?”
“그럼 모레 열리는 콘서트가 관건이겠네요. 이미 티켓은 모든 자리가 매진이라고 들었어요.”
“네. 고맙게도 첫날에 매진이 되었습니다.”
“좋으시겠어요?”
“좋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수라는 직업으로 1년을 지냈지만, 아직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려고 하면 떨리면서도 감동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준비한 만큼 잘해서 관객분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네 잘하실 겁니다. 이번 앨범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인터뷰는 끝이 났다.
기자가 떠나자 본부장님이 다가오셨다.
“잘했어.”
“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
“이게 일찍 인가요? 이미 9시가 넘었는데.”
“내일 쉬잖아.”
“그거야 콘서트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푹 쉬어야지. 예성 학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리허설 때만큼만 하자. 그래서 앨범 100만 장 팔아 치우는 거야.”
“또 설레발의 시작이신가요?”
“그럼 80···. 아니 50만 장은 해내야지. 안 그래?”
“적게 해요. 적게. 그래야 기쁨이 크지 않겠어요?”
“그건 아니지, 예성 학생, 목표를 넘어서는 성과보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성과가 더 성취감이 드는 거야. 예성 학생, 우리 잘하자.”
본부장님이 양손으로 내 어깨를 꽉 쥐면서 이야기하신다. 이건 이번에 투자 많이 했으니 손해는 보지 말자는 뉘앙스인가?
“열심히 할게요.”
“그거면 충분해. 이 콘서트는 예성 학생의 시작점이나 마찬가지야.”
“헐, 또 거창하게 시작하시네요. 그럼 이제까지 해온 건 뭔데요?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저 예성 학생의 밑바탕일 뿐이야. 농구에서 슛할 때 명언이 있지. 왼손은 거들뿐. 이제까지 예성 학생이 경험해온 일은 왼손일 뿐이야.”
“농구의 명언이 아니라 농구만화 아니에요?”
“허어, 예성 학생 내가 이 나이에 만화 보게 생겼어? 농구야.”
“아닌 거 같은데? 흠, 그래도 우기신다면 뭐, 그렇다고 치죠. 저 가볼게요.”
“그래. 집에 가서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어.”
“네”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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