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51
146. 부창부수의 인간들 >
“예성아, 편지에 뭐라고 썼어?”
“글쎄다. 별로 쓸 말이 없더라. 그저 노래는 계속하고 있나? 이거 하나 달랑 썼다.”
홍수의 물음에 간단하게 대답을 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하도 할 말이 많아 편지지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압축하고, 또 하고 해서 겨우 욱여넣었다.
‘미래의 내가 편지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미래의 그놈 사정이고, 나는 내가 할 일만 하면 되었다.
“나도 쓸 말이 없었어.”
“그래?”
“응.”
홍수의 말도 거짓말이었다.
얼마나 적어 넣었는지 붙여놓은 봉투의 입구가 붙어있지 않고 계속 열리고 있었다.
“그렇게 불안했던 거냐?”
내 말에 홍수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지 뭐.”
“넌 한 마디면 되는 거 아니었나? 야, 기획사 사장은 되었어?”
이놈은 매니저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 그 길의 끝은 기획사 사장이 아니겠는가?
“임마,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무슨 기획사 사장이냐?”
“음, 1인 기획사.”
“미친놈, 1인 기획사는 무슨? 그 나이면 아직 로드로 운전하기도 바쁠 텐데.”
“그런가?”
“그런데 너 이번에 선생님과 같이 공연했더라?”
홍수의 말에 나는 뜨끔했다.
“봤었냐?”
“아니, 기사가 나온 거 보고 알았다. 그리고 네 유투브 채널에도 올라와 있던데, 하연정&신예성 Fantastic Collaboration이라면서 말이야.”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어 유투브 채널에 접속했다.
“허, 언제 이런 게?”
누가 그랬는지는 상상이 간다. 마님 사랑이 바로 나라 사랑이라고 부르짖는 이가 한 명 있지 않은가?
인천 콘서트 영상은 인터넷에 실시간 중계 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로지 음악 선생님과 함께 부른 이 영상만 따로 편집되어 내 채널에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을 영상을 존재하게 만들 힘을 가진 사람이 나섰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 주위에 이런 쓸데없는 곳에 권력을 남용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본부장님이었다.
‘선생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한창 잘나가고 아름다웠던 리즈 시절의 영상도 부끄럽게 여기는 선생님이다. 그런데 지금의 영상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그것도 일반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의 남편이 그런 영상을 만들어서 올렸다고 하면?
‘흠, 자신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 목숨을 건 도박을 하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역시 잡무의 이기호, 도망갈 구멍은 확실히 만들어 놓고 저지른 일이었다.
음악실에서 선생님을 만나니 내게 하시는 말씀에 어이가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 버렸다.
“네? 뭐라고요?”
“왜 놀라? 네가 꼭 올려야 한다고 했다면서? 가장 하이라이트라서 앨범이 나오는 시점에 영상이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부탁을 했다며? 그래서 남편이 어쩔 수 없이 공개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허,”
이 사람이 진짜 하다 하다 이제 이런 일에 나를 팔아넘겼어?
틀린 말은 아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영상이 하이라이트인 것도 맞고, 영상을 본 이들도 좋다고 할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라니.
나한테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거기다 어제 봤을 때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저어~, 선생님, 썩 내키시지 않죠?”
“너도 알다시피 선생님은 이런 게 기록으로 남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아. 예전에 그래서 네 동생이 나에 대한 기록을 찾았을 때 무안했던 거고. 하지만 어쩌겠니? 내 하나뿐인 제자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제자가 꼭 해야만 한다고 했다는데, 내가 조그만 것을 포기하면 제자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는데 어쩌겠니?”
선생님은 이야기하면서 마치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제자에다 악센트를 팍팍 넣으면서 생색을 내신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새삼스레 느끼지만, 본부장님과 많이 닮았다.
공연을 도와주신 건 나도 고맙게 생각한다.
정말 힘든 부탁을 드린 거나 마찬가지기에 그렇다. 선생님이 공연을 도와주신 것은 정말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내 부탁으로 도와주신 거로 생각한다. 예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전성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시작할 때 이후로 공연을 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남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콜로라투라를 향한 끝없는 수련을 포기한 것도 아쉬운데 이제 전성기의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으니 스스로 그만하기를 선택하신 것이다.
그런데 나의 부탁으로 스스로 포기한 무대를 다시 서신 것이니 그만큼 큰 결심을 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하나뿐이자 아끼는 이 제자는 선생님이 그토록 바라는 성공에 대해 회사로부터, 아니 본부장님으로부터 일언반구의 말도 듣지 못한 게 함정이었다.
‘또오~또 팔아넘겼어. 이 사람 정말 안 되겠어. 그냥 자기가 자랑 하고 싶어서, 그저 선생님의 화려한 모습이 보고 싶어서, 그래놓고는 나에게 왜 이런단 말인가? 왜 당당하게, 이 여자가 바로 내 여자다. 내가 자랑하고 싶어서 영상을 올렸다. 왜 이렇게 말을 못 하냐고?’
“휴우, 선생님의 크나큰 결단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 내가 너 아니면 절대 허락 안 했을 거라는 거 알지? 고마워한다니 다행이구나. 내가 배은망덕한 제자를 가르친 게 아니라서.”
‘역시, 부창부수다. 부창부수야. 앞에 한숨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겁니까? 어쩌면 그렇게 본부장님과 똑같이 듣고 싶은 목소리만 골라서 들을 수 있는 건가요?’
선생님은 커피를 마시면서 생색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흠, 오늘따라 커피가 유난히 씁쓸하구나.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나 스스로 했던 결심을 꺾었던 마음이 다시 떠올라 그런 건가? 아! 영상은 안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선생님이 마치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얼른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이럴 때의 선생님은 토끼를 발견한 맹수와 같아서 절대 쉽게 기회를 놓치지 않으신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니면, 아니면 내가 너를 위해, 너 때문에, 너로 인해, 줄줄이 내가 소환될 판이다.
“선생님, 불초 제자 선생님이 내려주신 과분한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이만 물러날까 합니다.”
“그래. 제자야. 이 스승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고 대박 나도록 해라.”
‘크윽. 마지막까지 철저하시군요. 선생님’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이 억울함을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내가 여기에서 제가 안 그랬어요. 선생님! 이 한마디면 한 가정의 평화가 박살이 나겠지. 있는 대로 생색을 낸 선생님은 부끄러움에 폭발하다 못해 집에서 본부장님을 잡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입원할지도 몰라.
거기다 부상이 심해서 발매일까지 병원에 있게 되겠지. 그럼 내 앨범은 공중에 붕 떠버리겠지.
그럼 나는 어쩌지? 선생님을 원망할까? 아니면 본부장님? 아니면 고자질한 나?
‘아, 어렵구나! 어려워. 하고 싶은 말도 함부로 못 하는 이 사회가 어렵다.’
“네. 선생님”
학교를 마치고 회사로 갔다.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다.
아주 사소한 일이다. 이런 사소한 일로 기분이 상하다니.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일에 큰 사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또 다시금 깨닫는다.
“누나, 본부장님 계시죠?”
“그래. 웬일이니? 네가 여기에 다 오고, 본부장님이 오라고 하셨니?”
비서 누나가 뜬금없는 나의 방문에 놀란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본부장님이 부르지 않으면 여기에 올 일이 없다.
주로 본부장님이 내 연습실로 찾아오신다. 심지어 이 비서 누나도 몇 번 왔다 갔다.
다 만남의 광장이 되어버린 연습실 탓이다.
“저 들어가 볼게요.”
“그래.”
비서 누나에게 말하고 문을 열었다.
서류를 열심히 뒤적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설마 설정인가? 밖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니 바쁜 척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정말 확인할 게 많아 보였다. 평소의 나라면 나중에 다시 올까요? 했겠지만 오늘의 나는 물러설 수 없다.
“본부장님, 저 왔어요.”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지금 좀 바쁘니까 나중에 오던가? 용건만 말해줘.”
“제가 오늘 유투브를 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선생님을 만났어요.”
여기까지 말했을 뿐인데, 본부장님은 갑자기 건전지가 다된 로봇처럼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러더니 전화기를 들고, 비서 누나를 찾는다.
“나야. 오늘 출발하는 중국 비행기 좀 예약해줘. 뭐? 시간?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냥 무조건 빠른 거로 예매하면 돼. 뷰티핑크 응원해주러 가려고 해. 그래.”
“서···. 설마, 지금 정말 예약하신 거예요?”
“못 들었어?
“허, 현실도피인가요?”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예상이 가서 그래. 보나 마나 이랬을 거야.”
본부장님은 그러면서 갑자기 1인 2역의 연기를 선보이신다. 역시 쓸데없는 잔재주가 너무 많으신 분이다.
[선생님, 이상해요. 왜 영상이 올라와 있어요? 선생님 싫어하지 않았어요?] [제자야, 하나뿐인 제자를 위해 내가 무엇을 못할까?] [하지만 전 부탁한 적 없는걸요? 저도 지금 봤어요.] [뭣이? 이기호 이 인간을 진짜, 두고 봐. 이기호, 오늘 저녁에 너를 부숴버릴 거야.]“대충 이런 상황이겠지. 어때?”
“헐, 제가 선생님과 만나면 그런 일이 생길 줄 알면서 이런 일을 저지르신 건가요?”
“하아, 예성 학생.”
본부장님은 나를 부르면서 창밖 먼 곳을 보면서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자란 말이지. 질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때가 있어.”
“쓸데없이 멋진 말이긴 한데, 그게 지금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내 외침에 김이 팍 샜다는 듯이 본부장님은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이런 감정이 메마른 학생을 봤나? 예성 학생, 모르겠어? 내가 왜 그랬는지. 다 예성 학생을 위해서야.”
“그 이유는 이미 들었거든요. 그래서 왜 그러셨어요?”
“말했잖아. 예성 학생, 너를 위해 내가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고.”
“허, 그러셨쎄요? 책임은 다 저에게 넘기고요? 제가 오늘 학교에서 너를 위해, 제자를 위해, 하나뿐인 제자를 위해. 이 말을 몇 번이나 들은 줄 아세요?”
“글쎄. 그보다 설마 진실을 말하진 않았겠지?”
“중국으로 도망갈 생각을 하신 분이 무슨 걱정인가요?”
“중국으로 이혼 장이 날라오면 어떡해?”
“그런 새 가슴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르셨을까요?”
“결혼하지 않은 예성 학생은 몰라.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이 아줌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말이지. 남자는 마음이 아파.”
“그래요? 더 사랑스러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거야 집안일에 헌신하는 여자일 때 그렇지. 아마 와이프는 나를 더 사랑스럽게 생각할 거야.”
“허 그런데 왜 이렇게 겁내는 건가요?”
“사랑과 증오는 한 끗 차이거든. 아무튼, 아내가 오랜만에 치장했는데 기록을 남겨야지.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 것 같아? 거기다 자랑도 해야지. 이 여자가 내 여자다. 내 마누라 아직 죽지 않았다.”
“참 별것 없는 일에 목숨을 거시네요,”
내 말에 본부장님은 또 먼 곳을 쳐다보신다.
“예성 학생, 사카모토 료마가 이런 말을 남겼지.”
“또 명언 집인가요?”
내 말에도 꿋꿋하게 할 말을 하는 본부장님이다.
“남자란 말이야. 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큰일을 해낼 수 있다고 했어. 나는 목숨을 걸었어.”
“허, 그 목숨 다행히 이번에는 보존이 될 것 같네요.”
“그~으래?”
“네. 그냥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고 했어요.”
“잘했어. 예성 학생, 이제 와 이야기하지만, 이건 다 예성 학생을 위한 거야. 예성 학생의 다재다능함을 뽐내는 데 있어서 성악가와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가진 것보다 더 나은 게 뭐가 있을까?”
“하아,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설마, 감사 인사받고 싶으신 건 아니시죠?”
“허! 나의 성의를 몰라주는 거야?”
본부장님의 말씀에 나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보자. 선생님의 전화번호가 몇 번에 저장되어 있더라?”
내 말에 화들짝 놀라 내 손을 잡는 본부장님 되시겠다.
“예성 학생, 농담을 다큐로 받으면 어떡해?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게요. 웃기지도 않고, 감동도 없다 보니, 저절로 다큐가 되네요.”
내 말에 본부장님이 나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예성 학생, 내가 예성 학생에게 해로운 일을 하겠어? 내 사심이 티끌만큼 들어가긴 했지만, 이건 예성 학생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어. 두고 보면 알 거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정말 상황이 뭔가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유난스럽게도 선생님과 나의 콜라보 무대 영상에 꼬부랑글자로 쓰인 댓글이 많이 달리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달려들어서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글자야? 알아먹지 못하겠네. 후후, 하지만, 나에게는 구골의 번역기능이 있지.’
읽어 보니 대충 멋지다. 환상적이다.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알려주면 좋겠다. 다른 곡은 없느냐? 이런 내용이다.
거기다 더 의외의 상황은 댓글 중에 선생님을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예성 학생, 연정이가 지금은 아줌마가 되어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지만,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는 메트로폴리탄극장에서 날렸어.”
“거기 유명한 곳인가요?”
“어허, 어떻게 와이프에게 음악을 배웠으면서 메트로폴리탄을 몰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극장 중 하나야.”
“그래요?”
“그래.”
외국인이 선생님을 알아보는 댓글이 달리고 난 후 갑자기 히트 수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앨범 발매일이 다가올 때쯤에는 삼천만의 히트 수를 기록했다.
“봤지? 어때 예성 학생,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설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그럴 리가 없지.’
언제나처럼 말 바꾸기 신공이 등장했을 뿐이다. 애초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기서 태클 걸어봐야 내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다고 치죠.”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니까.”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본부장님은 항상 생각하는 것보다 더 뻔뻔함을 보여주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선생님과 나의 콜라보 영상 뒤에 광고가 붙었다.
앨범 광고였다.
“뒤늦게 이렇게 광고를 붙이는 건 속 보이는 짓 아닌가요?”
“마케팅에 속 보이는 게 어디 있어? 거기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소식을 전해주는 게 어떻게 속 보이는 짓이야?”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댓글 중에도 어디서 음원을 구하냐는 댓글이 있었으니까.
“두고 봐. 예성 학생, 엄청난 태풍이 불어 닥칠 거야. 몸을 단단히 붙들어 매라고.”
“네.”
내 시큰둥한 목소리에 더 열을 내는 본부장님이다.
“허, 리액션이 왜 이래? 예성 학생. 태풍이 올 거라니까.”
“그거 저번에도 써먹었잖아요. 결국에는 많이 팔리긴 했지만, 공백기가 길었죠. 그래서 전 이번에는 기대 안 하렵니다. 그때 한동안 그로기 상태로 지냈거든요.”
“이번에 진짜라니까?”
“네네. 그렇겠죠. 이번에도 아니면, 나중에 진짜일지도 모르고. 전 그냥 제 할 일을 최선을 다해 끝냈으니 하늘의 선택을 기다릴 뿐입니다.”
“어허, 예성 학생, 그거 아니야. 콜럼버스가 이런 말을 했어.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 운명은 하늘이 정해 주는 게 아니야.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야.”
“하아, 그거 이제 그만할 때도 안 됐어요?”
“왜 그래? 내가 예성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이렇게 해주는데.”
“그냥 쓸데없이 멋진 말이잖아요. 좀 그럴듯한 사람이 말해줘야 하는데, 본부장님은 조금 그렇죠.”
“허, 이거 왜 이래? 석태는 내가 이런 말 하면 오~ 본부장님, 평생을 따르겠습니다. 이런 눈빛이야.”
“그 형이야 본부장님이 롤모델이라잖아요? 전 아닙니다. 아니 맞나? 나중에 나이 들어 본부장님은 같은 어른은 되지 말자는 마음이 생기니 그것도 롤모델일까요?”
“예성 학생, 실망이야.”
“네. 저는 예전부터 본부장님께 그러고 있어서 감흥이 없네요.”
“두고 봐. 이번 일로 나에 대한 인식이 완전 바뀔 테니.”
“그런데 본부장님, 이게 잘 된다고 해서 왜 인식이 바뀔까요?”
“잘되면 당연히 나의 선견지명이 빛을······.”
본부장님은 말을 끝맺지 못하셨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철 가면은 아니신 것 같아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나.
날짜는 흘러가고 드디어 D-1인 날이 다가왔다.
누군가는 대박을, 누군가는 중박을, 누군가는 말아먹지만은 말자고 이야기하는 그 날이 온 것이다.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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