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18
12. 목동의 도시전설(?)
예성은 종이 가방을 들고 상우 집을 나왔다. 바로 연습을 하러가고 싶었지만 종이 가방의 무게가 마음에 걸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왔다가 무거운 몸으로 돌아가게 됐다.
‘일단 집에 가자.’
예성이 걸음을 옮겨 집에 가자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방문을 열어보니 예린이 밖에 나간 모양이다.
“예린이 요것, 놀러 나갈 거면 설거지 좀 해놓고 나가지.”
예성은 문을 나서려는 순간 챙겨야 할 게 하나 더 생각났다.
‘USB를 챙겨야지. 깜박할 뻔했네.’
다시 길을 나선 예성이 찾아간 곳은 고등학생들의 스트레스 해소장인 코인 노래방이다. 500원에 두곡을 부를 있는 이곳은 주말에 고등학생들이 너무 와 미어터지는 장소다.
혼자와도 좋고 친구들과 와도 좋다. 이해는 한다. 롯데리아나 맥도날드 감자튀김 하나 시켜도 천원이 넘는다. 하지만 남정네들이 감자튀김 하나 놓고 먹고 있을 순 없다.
하지만 이곳은 1000원 이면 4곡 곡당 입력 시간 등을 고려 할 때 5분이면 천원이면 20분을 삼천 원이면 한 시간을 놀 수 있다.
이 얼마나 저렴한 곳이란 말인가? 천원의 행복이라는 것이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이곳이 천원의 행복이며, 파라다이스, 헤븐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이 엄청 좋은 곳은 아니다. 이곳도 확실한 단점이 있었다. 바로······.
“포깁미 거~어~엌~악!!! 레이리 완츄~ 세잉~ 미”
이런 고음 병에 걸려 악을 쓰는 소리가 차단이 되지 않는다. 방은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지만 그냥 말 그대로 방만 나뉘어져 있을 뿐이다.
풍문에 따르면 어느 날 한쪽 방엔 남자가, 그 옆방엔 여자가 놀러 왔다가 혼성 듀엣곡인 “all for you” 를 각자 부르다 어느새 듀엣 곡 파트를 나누어 훌륭하게 소화하고는 사귀게 되었다는 도시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만약 당신이 노래를 좀 부르는가? 그런데 여자가 없나? 그럼 코인 노래방으로 가라. 어쩌면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쯧, 나도 어렸지. 이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고 여기에 날마다 죽치고 있었으니······.’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성아, 입구에서 멍하니 뭐하냐?”
바로 두툼한 뱃살을 가진 50대의 남자. 조형진 사장님이다. 내가 도시전설(?)을 믿고 며칠간 노래방에 죽치자 궁금함을 참지못해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졌다. 그리고 나는 이 사장님을 정말 존경한다. 왜냐? 내가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돈 있는 티를 내지 않는다. 차도 국산으로 타고 다니고 늘 티셔츠나 추리닝 차림이다. 그러면서도 봉사활동도 다닌다고 한다. 늘 간소한 차림으로 다니지만 누구도 사장님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를 대접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사장님을 보며 나는 건물주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꿈도 건물주로 바뀌었다. 반드시 돈을 벌어 건물주가 되고 싶어졌다.
그런 사장님에게 코인 노래방은 사장님의 취미 생활이다. 보통은 매니저가 있다. 그리고 사장님은 매니저를 두고도 여기에 자주 머무른다. 어릴 때 생각이 난다나 뭐라나?
“사장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여전히 성황이네요.”
“그래. 나야 항상 편안하지. 성황이라고 해봐야 얘들 코 묻은 돈이지. 넌 잘 지냈어? 한동안 안보이더라. 오랜만에 왔지?”
“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매일 죽치던 네가 안 보이는데 왜 모를까? 오늘은 웬일이냐?”
“노래방에 뭐 하러 왔겠어요? 사장님께 코 묻은 돈 보태드리려고 왔지요.”
“그래? 잘 됐다. 오늘 간만에 제대로 된 노래를 들을 수 있겠군. 그동안 귀가 썩는 줄 알았다.”
사장님의 말에 예성은 피식 웃었다.
“누가 들으면 음악의 고수인줄 알겠어요.”
“음악을 하는 고수는 아니지만 내가 듣는 고수긴 하지. 노래방을 몇 년을 했다고 생각해? 11년이야.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나는 노래방 11년, 당연히 고수지. 이정도면 아이들 노래들으면 자연히 ‘저의 점수는요’ 하고 바로 통박이 나와.”
“말은 되네요. 말은”
예성은 피식 웃으며 사장님을 봤다.
“하! 이 자식 그냥 맞다고 하면 될 걸. 그런데 손에 쥔 거 USB지? 오늘은 녹음하려고?”
예성이 손에 USB를 쥐고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사장님의 눈에 보인 것이다.
“네.”
그렇다. 이 코인 노래방이라는 것은 무려 녹음이 되는 것이다. 그냥 USB만 꼽고 노래를 부르면 녹음을 해주는 것이다.
“너 녹음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어? 핸드폰 노래방이면 충분하다고 했잖아?”
“그게 그냥 놀기 에는 그렇지만, 사장님, 잠시 귀 좀.”
예성이 사장에게 귀를 가까이 대라는 손짓을 했다.
“그냥 말해. 부끄럽게 남자끼리 뭐하자는 거야?”
“사장님, 기밀이에요. 누가 들을 지도 모르잖아요?”
예성의 말에 사장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귀를 갖다 댔다. 그리고 잠시 후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뭐?”
그 소리에 예성은 덩달아 놀라 목소리가 커졌다.
“사장님, 저 아직 아무 말 안했는데요?”
예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었어. 연속극 보면 아무 말도 안하는데 갑자기 듣는 사람이 놀라잖아? 그 장면이 떠올라 해봤어. 솔직히 내 귀에 누가 속닥거릴 일이 뭐가 있겠어?”
“아, 네.”
예성은 맥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이 아저씨도 살짝 정상에서 벗어 난건가? 아니면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다 이런 정신 상태를 가진 건가? 문득 천국에서 편지를 써 내리는 상우 엄마가 머리에 스쳤다.
“비밀 이야기라 이거지. 좋아. 이런 복잡한 곳에서 비밀 이야기를 들을 순 없지. 나가자.”
사장님은 무작정 내 손을 잡고 끌었다. 하자만 나는 버티고 버텼다.
“에, 그래야 할 만큼 엄청난 이야기가 아닌데요?”
그렇다. 고작 슈스케 이야기다.
“괜찮아. 괜찮아. 이런 건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제가 안 괜찮다고요.”
예성은 사장님의 말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말했다.
“저 여기 줄 서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어차피 한 참 남았네, 알았다. 잠시만, 김양아! 김양아!”
“아씨, 사장님 김양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죠? 쌍팔년도 다방에서 일하던 오봉순이도 아닌데 여기서 김양은 왜 찾아요?”
이 사람은 코인노래방의 매니저인 김 은지, 나이 불명이다. 물어봤다가 맞았던 기억이 있다. 처음부터 여기 매니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 일을 보던 매니저가 연락을 끊고 잠수타자 사장님 일을 돕던 은지 누나가 잠시 한다는 것이 붙박이가 되어버렸다.
“왜 정감 있고 좋잖아. 예성이 알지?”
그제야 은지가 예성을 아는 채 했다.
“어머, 목동역 음악대장 왔어?”
부끄럽지만 예성은 이렇게 불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목동의 가수, 목동역 음악대장이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학교와 여기 코인 노래방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가수를 꿈꾸게 된 것에는 이들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이들은 언제나 내 노래를 칭찬해주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은지누나.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네요.”
“그래? 빨리 알바가 구해져야 하는데.”
“알바 안 구해져요? 많이 지원할 것 같은데?”
“지원만 많으면 뭐하니? 사장님이 다 커트해 버리는데?”
“네가 여기 있으면 충분한데 왜 다른 사람을 써?”
“저 원래 사장님 비서로 있었거든요.”
“비서는 장군이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마.”
“군보가 일하고부터는 사장님이 노니까 하는 말이죠.”
“장군이 잘하니까 노는 거지.”
사장님과 은지 누나의 옥신각신 하는 모습이 예성의 눈에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들은 언제나 별 것 아닌 걸로 다툰다. 그만큼 사이가 돈독한 것이다. 은지누나에게 사장님은 키다리 아저씨와 같았다.
사장님은 고아원에 지원을 하며 방문을 자주 한다. 그런 와중에 고3이었던 은지누나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3인 누나는 자신의 성적표를 들고 무작정 사장님을 찾아왔다고 한다.
전교 1등의 성적표와 전국 상위권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여주며 대학을 보내주면 사장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투자를 부탁한 것이다. 이에 사장님은 어린 아이의 용기와 장래성에 감탄해 대학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은지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의 러브콜을 다 고사하고는 사장님 곁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사장님에게 들었다.
“내가 만일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 때의 나를 때려죽여서라도 말린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
은지 누나는 일에 대해서 슈퍼우먼이지만 느긋한 사장님과는 잘 맞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이 노래방의 매니저가 사라지자 옳다구나 하고 은지누나를 여기에 밀어 넣었다. 여기서 일하기에는 쓸데없이 고학력이지만 사장님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내려와 사장님이 은지누나를 괴롭히면 그동안 당한 한풀이(?)를 하는 것이 일상이다.
가만, 사장님이 38살 때 은지 누나가 찾아왔다고 했으니까, 보자 12년이니 그럼 은지 누나의 나이는 3······.퍽!
“아얏! 왜 때려요 누나?”
“너의 눈빛이 왠지 불손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제가 뭘 어쨌다고요?”
“어서 가봐. 사장님 기다리시잖아.”
은지누나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에 사장님이 손짓하고 있었다. 요즘 자꾸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사장님과 함께 5층으로 올라갔다.
“장군아, 나 왔다. 커피 좀 다오.”
사장님의 말에 다크서클이 볼까지 흘러내릴 것 같은 남자가 일어서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사장님, 저분 일 너무 많이 시키는 것 아니에요?”
“아, 걱정 마. 보는 사람마다 이야기 하는데 일 많이 해서 저런 게 아니야. 밤에 혼자 노느라 저런 거야.”
“아!!”
예성의 입에서 절로 안타까운 탄성이 토해졌다. 예성의 탄성에 장군이라 불린 남자의 몸이 움찔했다.
“사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해하잖아요.”
“아! 그렇지. 미안해. 예성아 내가 말한 것은 남자의 자가발전(?) 놀이를 말한 게 아니야. 그냥 정말 혼자 노는 걸 말한 거야.”
사장의 말에 예성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그게 다른 건가요?”
말하던 사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말하고 보니 차이가 없다야. 하하하!”
“사장님!!”
장군의 애타는 목소리가 울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비밀 이야기라는 게 뭐야?”
“진짜 별 이야기 아닌데······.”
“그래. 뭔데?”
조 사장은 이미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고민을 하느라 노래방 오지 않은 예성, 거기다 녹음을 위한 USB.
노래방 운영경력 11년차, 고아원 봉사활동 22년차, 청소년의 눈빛과 행동만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하는 조 사장이다.
“그러니까요.”
예성은 조심히 말을 꺼내려는데. 이미 모든 것을 알아챈 조사장은 예성의 말을 끊었다. 그러면서 예성의 어깨를 툭툭 치며 대견하지만 또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그래. 말 안 해도 안다. 네가 왜 그리 고민을 했는지, 그리고 왜 조심스레 말을 꺼내려는지. 잘 결정했다. 꿈만 꾸어서는 꿈을 이룰 수 없지. 행동이 있어야해. 알지? 액션, 그리고 무브, 움직여야 뭐가 돼도 되는 거지. 드디어 기획사에 데모를 돌리기로 결정 했나 보구나. 하지만 예성아, 너는 코인 노래방에서 신경 써서 녹음을 해 기획사에 보냈다 하지만 기획사는 이런 싸구려급도 안 되는 노래방음원에 관심을 둘 것 같니? 이런 것 말고······.”
“잠깐, 잠깐만요. 사장님”
아니 왜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 이 모양이냐? 또 천국에서 열심히 편지를 써 내리는 상우엄마가 떠올랐다.
“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놀랐냐? 노래방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 사이잖아.”
“아니 사장님 말하지 않아도 아는 우정이라 말해주셔서 기쁘긴 한데 제가 녹음하는 이유는 정말 제가 들으려고 녹음 하는 겁니다.”
예성의 진지한 표정에 조 사장의 얼굴은 떨떠름하게 변했다.
“응? 정말?”
“네.”
“진짜?”
“진짜라니까요.”
“야! 그럼 그렇다고 빨리 말해야지. 왜 뜸을 들이고 그래?”
“아니 제가 말하려고 하니까 먼저 말씀······.”
예성은 이유를 말하려고 했지만, 조 사장은 이미 삐졌는지 목소리가 낮아졌다.
“됐고, 비밀이야기란 거나 말해.”
“저 슈스케 나가려고요.”
“슈스케. 텔레비전에 하는 그 슈스케?”
“네.”
“그거 끝난 지가 언젠데 그걸 나가?”
“두 달 뒤에 있어요.”
“두 달 뒤에 있다고?”
“네.”
“그래서 너는 거기에 나가기 위해 자신의 녹음을 들으며 단점을 보완한다는 거고?”
“네. 그거죠.”
조 사장은 이야기를 듣다가 예성의 머리를 툭 쳤다.
“에라이, 멍청한 놈.”
“아! 왜요? 머리 때리지 마세요. 머리 나빠져요.”
“헐 목동에 너 아는 사람 중 네 성적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그 성적으로 머리를 논하는 거냐?”
예성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왜 제가 멍청해요?”
“이제 두 달 남았다며? 그럼 8월이란 소린데 지금 네가 녹음하고 네 노래 들으며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냐?”
“자화자찬은 안했는데요?”
“말대답은, 너 슈스케 나간다며? 그럼 지금 이런 거 할 때가 아니잖아. 그지 장군아?”
“그렇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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