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208
203. 내가 영국에 오게 된 것은 어쩌면…. >
[신예성,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공연을 선보이다.]지난 10월 15일 영국 런던에서 알튼존 헌정콘서트가 열렸다. 이 헌정콘서트에는 에드시런과 마론5를 비롯한 세계 유명가수와 그룹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예성이 참여했다.
이번 콘서트의 특별함이라고 한다면 바로 왕실에서 후원하는 콘서트라는 것이다.
그런 콘서트에서 신예성은 클로징을 맡았다. 앨범에 참여했던 가수들에 비해 세계적인 명성이 이제 알려지기 시작한 신예성으로서는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콘서트가 공연이 시작되고 신예성의 무대가 펼쳐지는 순간 사람들은 신예성이 왜 마지막 무대를 꾸미게 된 건지 이해를 했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환상의 무대가 꾸며졌기 때문이다.
신예성은 낯선 영국의 런던에서 자신의 노래 인생 처음으로 홀로그램 공연을 펼쳤다.
신예성이 이번 헌정앨범에 참여하면서 만든 개인 뮤직비디오의 영상에는 두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의 신예성이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
신예성은 바로 이번 영국 런던에서 그 뮤직비디오를 현실에서 재현해 내어 보여준 것이다.
이런 홀로그램 기술은 신예성이 처음으로 보여준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가수들이 이미 죽은 가수들을 홀로그램으로 재생해서 같이 노래를 하거나, 한국의 유명 아이돌들도 홀로그램 콘서트를 펼친 적이 있다.
그렇게 흔하다면 흔한 홀로그램 기술이지만, 신예성의 무대는 특별했다.
바로 시기와 장소, 그리고 의외성이었다.
신예성의 공연에서 그런 홀로그램의 기술이 펼쳐질 줄 참가자 이외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신예성의 인기는 헌정앨범에 참여하고 UK 순위에 오른 만큼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기대한 것은 앨범의 노래와 같이 감미로운 공연이었다.
그런 무대를 기다리다가 보게 된 것은 가상과 현실의 만남이었다. 두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의 신예성이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를 부르는 모습은 런던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적절한 화음과 함께 서로 정상을 향해 달리듯이 고음을 주고받으면서 절정을 향해 치닫는 신예성의 모습에 사람들은 전율했다.
두 명의 신예성이 부르는 노래는 마치 공연장을 넘어 런던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버리겠다는 듯이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런 아름다운 노래를 마치며 신예성이 슬픈 눈빛으로 홀로그램을 건드리자 홀로그램의 신예성이 비눗방울로 분해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그런 마무리에 쥐죽은 듯이 지켜보던 사람들은 커다란 함성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그런 기립박수에 당황할 만도 하련만 신예성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면서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런 후에도 런던 시민들의 기립박수는 한참 이어져 자신들이 받은 감동을 전했다.
고작 5분이 채 안 되는 공연으로 신예성은 관객들을 완전히 홀린 것이다.
만약 신예성의 공연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기를 바란다www.youtwobu.com/12123124]
“다행히 이른 시간에 만들어졌어요.”
기사를 보며 중얼거리자 석태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써먹게 된다면 한국이나 미국일 줄 알았는데,”
석태 형 말처럼 이렇게 빨리 써먹게 될 줄 몰랐다. 아니 이렇게 빨리 만들어질 줄 몰랐다고나 할까? 거기다 알튼존이 흔쾌히 무대를 수정하는 것에 동의를 해준 것도 의외였다.
홀로그램 공연은 내가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부터 계획이 되었고 준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홀로그램 영상이라는 것이 비디오를 찍어 재생하듯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홀로그램이란 ‘완전함’ 혹은 ‘전체’라는 뜻의 ‘holo’와 ‘메시지’, ‘정보’라는 뜻의 ‘gram’이 합쳐진 말이다.
이런 어원을 가진 홀로그램은 홀로그래피를 이용한 입체영상을 만들어 내는 기술인데 내가 이번에 사용한 기술은 엄밀히 말하면 이 홀로그램은 아니다.
이런 홀로그램은 물체나 이펙트등을 만들어 내는 곳에는 써먹을 수 있지만, 사람을 재생해내기에는 아직 기술이 부족했다.
그래서 많이 쓰이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페퍼스 고스트 방식과 또 하나는 프리 포맷이라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기술 모두 포일이라는 투명 필름이 쓰인다.
프리 포맷이라는 기술은 무대에 설치되 포일이라는 필름에 무대 뒤에서 직접 프로젝터로 영상을 쏘는 기술이고, 페퍼스 고스트라는 기술은 무대 천장에 프로젝터를 여러 개를 설치, 무대 아래쪽엔 스크린 그리고 벽에는 미러를 설치해서 무대 천장에서 쏘아진 영상이 반사를 통해 스크린과 미러를 지나 포일에 영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방법이지만, 가격은 만만치가 않다.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 한 개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개가 필요하다.
각각의 프로젝터에서 쏘아지는 영상이 포일에서 합쳐지며 위상차가 생기는데 그런 현상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입체영상으로 인식이 된다. 그런 작업과 무대에 대한 설치 비용만 해도 억이 가뿐히 넘어간다.
하지만 그런 비용에도 불구하고 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 이미 준비를 시작했다.
그저 노래 하나만으로 밀어붙이기에는 세계를 향한 벽은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이 홀로그램이었다.
이미 여러 가수가 써먹고 있는 기술, 특히 일본에서는 이 기술로 사이버 가수를 현실로 소환해서 콘서트를 열고 있기도 하다.
“아담이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가요계를 씹어먹었을 거야.”
홀로그램 이야기를 할 때 태수 형이 했던 말이다.
“아담이란 가수도 있었어요?”
“아담을 몰라?”
태수 형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알아야 하나요?”
“허,”
“태수야. 이놈 태어나지도 않았던 때야. 모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래도 가수잖아. 한국 최초의 사이버 가수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사이버 가수요? 그 일본의 보컬 머시기 같은 건가요?”
“아니 그들보다는 못하지. 시대가 다르잖아?”
“글쎄, 그건 장담 못 하지 않아? 몇 년 전에 아담 부활 콘서트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 뒤로는?”
“몰라.”
“아무튼, 예성아, 아담 정규 2집 가수다.”
“헉, 정말 가수네요. 정규까지 낸 거 보면,”
“아니 그 시대는 싱글이 오히려 귀한 시대였으니까.”
“그런가요? 그래도 2집까지 냈으면 1집이 성공했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했지. 제법 잘 나갔을걸, 그때 국회의원도 막 한국의 미래라니 뭐니 한창 떠들썩했었으니까.”
“그런데 제가 모르는 걸 보면 망했나 보네요.”
“그렇지. 시대가 다르잖아. 너무 시대를 앞서갔었던 거지.”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홀로그램 이야기를 하던 중이잖아요?”
“미안, 추억이 떠올라서 그만.”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본부장님에게 홀로그램 이야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뭐? 홀로그램? 으음~”
“왜 그러세요? 힘들까요?”
“예성 학생, 홀로그램 공연 멋있지?”
“네. 현실과 가상의 만남 죽이지 않아요?”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정말 죽지. 그거 한번 만들려면 억이 넘는 거 알아?”
“헉~ 정말인가요?”
“그래. 나도 지금 삼대 기획사에서 그걸 하고 있으니까, 살펴본 적이 있어. 지금 놀이동산에 가면 K팝 홀로그램 공연장이 있기도 하지. 문제는 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본부장님은 유심히 나를 쳐다보셨다.
“네. 말씀하세요.”
“그렇게 큰돈을 들이고도 마음대로 써먹을 수가 없어.”
“왜요. 그냥 영상을 만들고 프로젝터로 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나름대로 알아본 이야기를 했다.
“에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여러 개의 영상을 합쳐서 하나의 입체영상을 만드는 건 알지?”
“네.”
“그럼 그 입체영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대를 설계해야 한다는 소리야. 그 입체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말이지. 이 말은 뭐냐? 무대를 만들 때마다 비용이 추가된다는 이야기지. 거기다 모든 무대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거기다 그 장소 때문에 무대 공간에 제약이 생기기도 하고, 거기다 전용 장비를 구매해야지.”
“그럼 무리라는 소린가요?”
내가 시무룩하게 말하자 본부장님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 그저 예성 학생의 말처럼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즉 그냥 생색을 내야겠다 생각하셨다는 이야기군요.”
“물론이지. 이건 큰돈이 들어가고 앞으로도 들어가야 하니까. 예성 학생은 하나의 공연을 생각하겠지만, 이 홀로그램 공연이라는 것은 아예 사람이 그 자리에 없어도 될 만큼의 퀄리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야. 실제로 빌보드 유명가수들은 자신들이 콘서트를 할 때 이 홀로그램을 이용해서 미국 각 지역에서 동시에 콘서트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가수들도 종종 있어.”
“그런가요? 본부장님의 생각대로라면 돈을 뿌리는 거네요.”
“그건 아니지. 그 홀로그램 공연장에 입장하는 것에도 돈을 받으니까. 지금 한국의 놀이 공원에 있는 그 홀로그램 공연장에도 입장료가 있지. 그런 거와 마찬가지야. 다만 콘서트 비용보다 쌀 뿐이지. 그렇게 싸지도 않아.”
“저도 그런 일이 가능해질까요? 저는 아이돌 가수도 아닌데, 주로 사용하는 이들이 아이돌이잖아요?”
“그건 차차 생각해봐야지. 내가 말하는 것처럼 이루어지려면 예성 학생이 세계정상에 서야지. 간단한 수요와 공급 법칙이야. 예성 학생은 혼자라 한계가 있잖아. 그런데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예성 학생을 직접 보기를 원해. 그럼 어떡해? 당연히 꿩 대신 닭이라고, 실물 대신 홀로그램이라도 보여줘야지. 안 그래?”
“그런 날이 올까요?”
“글쎄다.”
“실컷 이야기하고는 글쎄라니···. 참”
“일단 영상을 만들어보자. 예성 학생이 원하는 것은 그거니까. 안 그래?”
“네.”
그렇게 해서 촬영을 했다. 하지만 촬영만 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체적으로 보이게 영상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이번에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써먹게 된 것이다.
알튼존은 내가 무대에 홀로그램을 쓰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
그는 이번에 열리는 콘서트가 자신의 콘서트라기보다는 함께 즐기는 무대라는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특수효과를 원해도 무조건 오케이였다.
실제로 공연을 할 때도 자신은 오프닝을 마치고 마치 관객이라도 된 것처럼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
공연을 마치고도 나는 한동안 영국에 머물렀다.
그런 가운데 나는 의외의 인물과 친하게 되었다.
바로 윌리엄 왕자와 그 부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딸과 친하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왔을 때 격하게 반겼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 5살 된 샬럿 공주였다.
“내가 우리 은혜가 예성 학생에게 시집간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예성 학생은 아마도 유아들에게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나 봐.”
“직접 만난 적도 없는데 매력은 무슨 매력이에요?”
“우리 딸이 언제 예성 학생과 만나고 나서 예성 학생 좋다고 했어? 다 방송에서 보고 좋아 한 거지. 이 샬럿 공주도 마찬가질 거야. 예성 학생은 유통령이야.”
“유통령은 또 뭐예요? 전 신 씨인데.”
“그게 아니잖아.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면 초통령이라고 하잖아.”
“설마 유치원생이 좋아하니 유통령이라는 말인가요?”
“아니 유아들이 좋아해서 유통령이야.”
아무튼, 본부장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이 샬럿 공주가 나를 대단히 좋아한다고 했다. 물론 본부장님은 윌리엄 왕자가 해준 말이라고 한다. 내가 정말 더러워서 영어를 배우든가 해야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을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때쯤에 나에게 윌리엄 왕자 내외로부터 식사초대가 왔다. 거북스런 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 집에서 샬럿 공주를 앞에 앉혀놓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물론 윌리엄 왕자의 요청으로서다. 자신의 딸이 내 노래 부르는 목소리를 좋아하니 들려줬으면 좋겠다는 정중한 요청이었다.
“난 영어 노래를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하기 싫어서 이렇게 말한 게 아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이 어린 공주 앞에서 내가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이나 ‘가버린 그녀’를 열창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런 내 말을 본부장님이 전달하자, 윌리엄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아이가 한국말을 알아들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니 편한 노래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엄마도 알고, 동생도 아는 등대지기를 불러줬다.
‘어라 이거 봐라.’
노래를 부르는데 참 신기한 것이 이 어린 공주가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어깨를 좌우로 흔들거리니 이 샬럿 공주도 의식하고 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를 따라 좌우로 흔들흔들했다.
‘귀엽네.’
노래를 마치고 공주를 보고 웃음을 짓는데 윌리엄 왕자가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 노래를 한 곡 더 불러달라는 모양새를 취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잔잔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니 어릴 때 동생이랑 이 노래를 부르면서 놀던 때가 떠오른다. 내 동생도 어렸을 땐 귀여웠는데······. 지금은···. 큼!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잠이 듭니다.~]‘이거 정말 알아듣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눈을 끔뻑끔뻑하더니 정말 엄마의 품에서 잠이 드는 샬럿 공주였다.
그러자 살며시 일어나서 샬럿을 데리고 자리를 뜨는 캐서린이었다.
자리를 뜨는 부인을 보고는 윌리엄이 우리에게 하나의 부탁을 해왔다.
“그러니까, 방금 부른 것 같은 노래를 녹음해줬으면 좋겠다는 건가요?”
“응. 그렇게 말하네. 자기의 딸이 네 노래를 좋아하는데, 방금 불러줬던 노래를 평소에 들려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어.”
나는 본부장님의 말에 그를 쳐다봤다. 본부장님의 말이 맞는지 그는 정말 부탁한다는 얼굴을 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딸바보는 어쩔 수 없음인가?
이런 부탁이 어이없기는 하지만, 딱히 힘든 일도 아니기에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의외로 이런 상황에 무르다. 내가 가족에 의미를 많이 두기에 남들이 가족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어쩌면, 예성 학생이 영국에 오게 된 이유가 이 일 때문인지도 몰라.”
“에이, 그건 아니죠. 아무리 딸바보라도 이런 일까지.”
“어허,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야. 네가 만난 이 샬럿이라는 공주는 영국이 사랑하는 공주야. 무려 25년 만에 태어난 로열 프린세스지. 샬럿 공주의 상표 가치는 누가 말하길 82조에 이른다고 해.”
헐, 그 조막만 한 아가씨가 그렇게 비싼 몸이란 말인가?
“전 얼마나 할까요?”
“지금 이 시점에 묻고 싶어?”
“부러워서 그러죠.”
“이참에 우리 동요앨범 하나 낼까?”
“갑자기 동요는 왜요?”
“방금 보고도 모르겠어? 예성 학생은 유통령으로 거듭날 수 있어.”
“별로 거듭나고 싶지 않거든요.”
그날 내가 윌리엄 왕자의 저택을 방문했던 일은 영국신문에 대서특필이 되었다.
가서 한 일이라곤 꼬맹이에게 자장가 불러준 게 다지만 사람들은 윌리엄과 내가 친한 사이로 오해했다.
그런 후 내가 동요를 녹음해서 보내 주었을 때 일은 더욱 커졌다.
윌리엄 왕자가 자녀를 데리고 외출했을 때 샬럿이 섬 집 아기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눈에 띈 것이다.
“누구 노래지?”
“애송”
샬럿 공주의 말에 윌리엄이 웃으면서 말했다.
“얼마 전에 신예성이라는 가수를 집으로 초대했었는데 그 보답으로 우리 샬럿을 위해 동요를 녹음해서 우리에게 보내 주었다.”
윌리엄은 말하고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웃었다.
“미스터 신, 우리 샬럿이 정말 좋아합니다. 고마워요.”
그 한마디의 위력은 정말 컸다.
“네? 동요앨범 만들자고요? 농담 아니었어요?”
“그때는 농담이지만, 지금은 아니야. 만들자.”
“어휴, 만들어봤자 얼마나 팔린다고?”
“어허, 예성 학생 그건 모르는 거야. 본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아이들이야”
“허, 또 무슨 헛소리를 하시려고 밑밥을 까시는 건가요?”
“헛소리라니, 나도 은혜에게 꼼짝 못 해. 이건 애들 코 묻은 돈을 뺏는 프로젝트가 아니야. 그냥 애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파는 거지. 애들 물건이 어른들 물건보다 비싼 건 알아?”
“그런가요?”
“그래. 그런데 부모들은 서슴없이 지갑을 열지. 왜냐? 내리사랑이잖아? 자기는 못 입고 컸어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
“그게 앨범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허, 모르겠어? 내가 전에 말했지. 이 샬럿이라는 꼬마 아가씨의 상표 가치는 82조라고, 이 아이가 입으면 그게 유행하는 패션이 되고 읽는 동화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야. 그럼 음악은?”
“설마 여기서 플레티넘이 된다는 소리를 하시지는 않겠죠?”
“될지도 몰라. 그리고 안 되면 어때? 동요앨범 하나 있어서 나쁠 게 있어?”
“댁이야 없겠죠.”
“어허, 댁이라니, 나 본부장이야.”
“에휴, 그래서 해요?”
“하자.”
“네.”
“뭐?”
“한다고요?”
“아니 왜?”
“한다고 해도 문젠가요?”
“하기 싫은 티 팍팍 내다가 한다고 그러니까 그러지.”
“그냥 의미가 없지 않나 싶었을 뿐이에요. 선물은 선물일 때가 좋은 거니까요.”
“설마 윌리엄 왕자가 싫어할까 봐 그래?”
“그런 건 아니죠. 대놓고 이름 언급한 것 보면 우리 좋아지라고 그런 것 같은데. 왕자라는 사람이 자신의 한 마디가 얼마나 파장이 큰지 모를까요?”
“그렇지?”
“네. 그러니까 해요.”
“알았어.”
앨범은 이른 시간에 만들어졌다. 동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심이 중요한 노래다. 3단 고음이나 샤우팅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저 순수함만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앨범 재킷도 필요 없다. 그저 대충 회사의 디자인팀에서 하나 뽑아 올리고 앨범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동요는 아이튠을 타고 세계로 뻗어 나갔다.
“허, 미쳤네요.”
“그러게.”
이제 길거리에 나가기도 힘들었다. 서양이 좋은 점이 뭔가? 인기가 있더라도 아시아인을 쉽게 구분하지 못해 긴가민가한 느낌 때문에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한꺼번에 알아보는 것일까? 그만큼 내가 익숙해진 것일까? 그동안 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줄은 몰랐다.
다행히 서양의 팬 문화는 우리 한국처럼 극성스럽지는 않아서 다행이긴 했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예성 학생, 동요 콘서트를 기획해볼까?”
“네?”
이 인간이 진짜···.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인가?
“어린이 뮤지컬도 아니고, 만화도 아닌 데 사람들이 올까요?”
이런 의심스러운 생각으로 자그마한 공연장을 빌려 시도를 해봤다. 표가 총알같이 매진 되었다.
코흘리개 아이들의 위력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했다. 동요로 다시 이슈가 되자 나의 정규 2집 앨범도 판매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성 학생, 7위야.”
“네. 저도 보고 있어요.”
나도 믿기지 않는 눈으로 화면 속의 순위를 보고 있었다. 빌보드 200에 내 앨범이 드디어 마의 10위 벽을 깬 것이다.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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