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213
208. 끝이 아닌 이야기… 종장 >
끼익.
“헉!”
벌떡
“꺅!”
꽈당.
“무슨 일이니?”
다다다.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자. 문고리를 잡고 넘어진 여인, 국자를 들고 달려온 여인.
“아~씨, 오빠 일어나면 일어났다고 말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 놀래잖아.”
동생이 엉덩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미안, 집이라는 걸 생각 못 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총알이 빗발치는 서양에 있다가 왔잖아? 그래서 소리에 예민해.”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내 입에서는 되지도 않는 헛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연히 동생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얼씨구, 누가 들으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인 줄 알겠어? 군대도 탈락한 것이.”
“아들, 잠을 많이 못 잤겠네.”
“엄마, 저 말을 믿어?”
“딸, 네가 몰라서 그런데 엄마도 미국 갔을 때 얼마나 긴장했는데, 총이 합법인 나라잖아.”
이 여사의 말에 예린은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봤다.
“엄마, 아무리 오랜만에 아들 봤다고 저런 되지도 않는 말 받아주지 마. 오빠는 그런 말에 용기를 얻어서 더 나간다고.”
“티···. 티 나니?”
“어. 오빠 얼른 일어나 밥이나 먹고 다시 자.”
“알았다.”
****
“오빠더러 자라며?”
동생을 쳐다봤다.
“그래. 자. 차 사주고 자면 되지.“
“어휴~”
내 입에서는 당연히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그런 나와 동생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으며 쳐다보신다. 의외로 엄마는 동생에게 차 사주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셨다.
어제 내가 동생이 선물로 차 사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자 엄마는 한마디만 하셨다.
“사줄 거니?”
그 물음에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응. 동생은 부탁할 자격이 있으니까.”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포상이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동생은 그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러니? 그럼 그렇게 해. 엄마가 사준다고 해도 굳이 너에게 선물 받아야 한다고 예린이가 노래를 부르더라.”
“응?”
“응?”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엄마를 보자 엄마도 자기 말이 이상했나 싶어 물음표를 던졌다.
그런 엄마의 뒤에서 동생이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 난 엄마가 안 사준다는 이야기는 안 했어.”
그래. 넌 말로 안 하고, 표정과 행동으로 말했지.
‘이런 독한 년을 보았나?’
“넌 엄마가 사준다고 했는데도 이 지랄이냐?”
“응, 엄마보다는 오빠가 사주는 게 좋아. 내가 타고 다니면서 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고나 할까?”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엄마가 사준 차를 타다가 사고 나면 동생은 오히려 몸의 상처보다 정신에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심적 편안함을 얻는 이유가 이 오빠가 너에게 호구 잡혀서 그런 거냐? 한번 호구는 영원한 호구다. 그러니 호구 관리 차원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거냐? 설마 너······. 밸런타인데이 때 핫블레이크 한 상자 보냈던 이유가 이건 아니겠지?”
내 다그치는 말에 동생은 말이 없다.
“어쩐지. 자투리 초콜릿도 안 주던 네가 뜬금없이 페덱스로 택배비도 안 나오는 핫블레이크를 보냈을 때 눈치채야 했는데. 동생이 보낸 거라면서 자랑했던 내가 병신이다. 진짜.”
내가 한탄을 해도 동생은 말이 없다.
마치 약을 먹었으니 그 약값을 해라는 뉘앙스다.
이런 행동에 예전에는 귀여움을 느꼈겠지만, 이제 동생도 성인이다. 징그럽다.
하지만 어쩌겠나? 하나뿐인 동생인 것을.
“오빠, 괜찮아. 설마 내가 평생 이러겠어. 나도 이제 다 컸어. 조금만 더 도와주면 되는 거야. 내가 결혼할 때까지만.”
“뭐? 평생 너에게 호구 잡혀 살아야 하는 거냐?”
“뭐? 이 미친~”
우리의 모습을 엄마는 따뜻한 눈길로 쳐다보신다.
“아들, 집에 오니 좋다. 이제야 아들이 집에 온 게 실감 나.”
“엄마, 이런 순간에 그런 느낌을 받지 마! 제발.”
****
[행복하······. 니?]오랜만에 집에 돌아와서일까?
편안한 잠을 자는 대신 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나는 묘한 장소를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방이 유리 벽으로 된 작은 방. 그 방에는 자그마한 컴퓨터와 전자 키보드와 기타가 있었다.
몸을 누일만한 자그마한 공간만 남은 방. 그 유리 벽 바깥에는 새까만 어둠이 유리 벽을 감싸고 있었다.
방안의 악기가 저절로 소리를 낸다.
그러자 새카만 어둠이 출렁이더니 자그마한 어둠이 떨어져 나온다. 그 어둠은 생긴 것이 꼭 음표같이 생겼다.
하나의 음을 시작으로 악기의 연주가 시작되자, 어둠 속에서 새까만 음표를 빠르게 토해낸다. 그 음표들은 마치 연주되는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추듯이 방안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기들끼리 자리를 맞추듯이 음표들이 움직인다.
연주가 멈추자 음표들의 움직임도 멈춘다. 그러자 방안에는 오와 열을 맞춘 음표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
이번에는 악기들 대신에 키보드가 소리를 낸다. 그러자 꺼져 있던 모니터가 하얀빛을 내었다.
검은색의 음표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줄을 서서 하나씩 모니터로 빨려 들어간다.
그걸 보던 나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장면이지만 이건 나에게 하나의 현상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설마, 내가 곡을 떠올릴 때 진행되는 작곡 상황을 형상화한 건가?’
그런데 그 형상이 어째 나에게 익숙하게 다가왔다.
크기는 내가 목동에서 살던 내 방과 비슷한 크기지만, 분명 내방은 아니었다. 내방에는 저런 식의 구조를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다시 봐도 묘하게 익숙했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들려오는 하나의 가는 어 끊어질 듯이 들려오는 목소리.
[해···. 행복하···. 니?]*****
‘행복이라.’
며칠 쉬고 나자 영훈 형이 나를 데리러 왔다.
“형, 얼굴에 꽃이 폈네요. 푹 쉬었나 봐요.”
“그래. 너도 피곤이 싹 가신 모습이네.”
“네. 잠이 보약이죠.”
차를 타고 가다 문득 생각이 나 물었다.
“형은 행복해요?”
“해···. 행복?”
“네?”
“글쎄다. 즐겁고 재밌냐고 한다면 그렇다고 하겠는데 행복이라······. 잘 모르겠는데?”
“그런가요?”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까 행복이라고 해도 될까?”
“저도 그게 의문이란 말이죠. 이게 행복인가 싶은 순간이 있는데 과연 이게 행복이라고 표현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죠.”
“…..미안하다. 나는 너처럼 싱송라가 아니라서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어.”
“그렇죠? 저도 늘 이렇진 않아요. 그냥 문득 생각이 들어서.”
회사에 도착했다.
내 연습실로 향하기 전에 기획사 건물을 둘러 보았다.
그런데 비어 있던 다른 안무실 두 곳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 팀이었다.
7인조 남자와 5명의 여자.
드디어 이들이 출격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는 카페테리아로 가서 먹을 것을 사서 차례로 그들을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네. 열심이네요. 이거 드세요.”
아직 나의 나이는 어린 축에 속했다. 이들의 그룹 중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이 많다. 그래서 서로 존칭을 쓴다.
“데뷔가 미뤄지고 있는데도 표정이 밝네요.”
내 물음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미흡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부족해서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 거니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을 보니 팀워크가 잘 잡힌 것 같았다. ‘올 포 원, 원 포 올’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그런가요?”
바벨탑 연습실을 나와 히폴리테 연습실을 찾아갔다.
히폴리테. 고대 아마존 여왕의 이름이라고 알고 있다.
아름답고 강한 여전사들이 모인 아마존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는 여인.
최고의 자리에 오르라는 의미의 그룹 이름이다.
노크를 했다.
“누구세요?”
“납니다.”
“나라고 하면······. 선배님?”
“네.”
“잠깐만요.”
“네.”
대답하고 나자, 비명과 함께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후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쩐 일이세요?”
“여기.”
나는 사 온 음식을 넘겨줬다.
“어머, 역시 선배님이 오시니 다르네요.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해요.”
“잠깐 들어오셔서···.”
“아뇨. 저는 이제 출근이라…”
“아! 네.”
말하는데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분명 비명과 함께 들렸던 소음들 탓이겠지. 실컷 난리 치며 환기하고 정리했는데 그냥 간다니까.
“나중에 봐요.”
“네.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하는데 다른 이들도 내가 그냥 가는 모습에 고개들을 내민다.
나는 그들에게 웃어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저들은 행복할까?
즐겁고 재밌고, 고통스럽냐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행복이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으면 행복한 걸까?
공식적인 내 스케줄은 모교를 방문하는 것이다.
음악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리겠다고 따로 만나기를 희망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정식으로 학교를 방문해주기를 바랐다.
“예성아, 넌 우리 학교의 자랑 아니겠어? 한 번 와라.”
“네. 선생님. 다행입니다. 마구니라도 쓸모가 있어서···.”
“그렇구나.“
“선생님 이때는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고 말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요?”
“예성아, 내가 설마 너에게 학교 방문해달라는 이유가, 내가 좋아서라고 생각하냐?”
“당연히 아니시겠죠. 선생님은 언제부턴가 제가 전화하는 것도 싫어하시니.”
“그건 언제나 타이밍이 나빠서지. 예성아, 남자는 여자에게 전화를 할 때는 타이밍이 중요한 거야.”
“선생님 우리 사이에 타이밍이라······. 섭섭하네요.”
“난 안 섭섭하다.”
“선생님!”
선생님은 여전하시다. 언제나 귀찮다는 듯이 상대해주지만 내 걱정을 하시고 내가 기댈 수 있는 분이다.
이래서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는 말이 있는 걸까?
학교를 방문하는 것은 하나의 행사였다.
기자들이 학교 앞에 진을 치고 학생들은 기대 섞인 눈빛을 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런 기자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로 들어갔다. 그런 내 뒤로 영훈 형과 석태 형이 상자를 들고 뒤따랐다.
“어서 오세요. 신예성 씨”
“허, 선생님, 왜 이러세요. 그냥 예성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도 되냐?”
“당연하죠. 제자인데.”
“그래. 잘 왔다. 정말 볼 때마다 달라지는구나.”
“그런가요?”
“그래. 너를 보며 영어 선생님이 한탄을 한 건 아니? 내가 저놈 붙잡고, 어떻게든 기본 회화는 공부시켜야 했는데 다른 선생님 볼 면목이 없다고 말이지.”
“에혀, 선생님도 나가면 학교영어는 크게 안 쓰이는 거 아시면서 괜히 그러시네요.”
“그렇긴 하지. 아무튼, 잘 왔다.”
“네. 아, 형들 그건 교무실에 갖다 놓으면 되세요.”
“뭔데?”
“아! 선생님들 뵈러 간다니까 엄마가 갖다 드리래요.”
“네가 장학금 만드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뭘 저런 것까지. 그런데 예성아, 내가 생각하는 황금색의 그거 맞냐?”
선생님이 침을 꿀떡 삼키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내 대답에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꼭 전해 드려라.”
“어째 제 장학금보다 더 좋은 취급을 받는 것은 착각일까요?”
“응. 착각이야. 암 그렇지.”
“표정은 아니신데.”
“어허, 아니래도.”
하긴 장학금이라고 해봐야 학생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인삼주야 선생님에게 돌아가니 어느 게 나은 것인지는 뻔한 이야기다.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이 학교의 최고 권력자인 교장 선생님에게도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당연히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러자 교실에서 밖을 내다보던 아이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교장 선생님과 깊은 인연이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분 덕에 학교방송을 하고 슈스케도 나갔으니 이분이 나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분이 만약 학교공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면 나는 지금에 이르기 위해 많은 길을 돌아와야 했는지도 모른다.
“예성인 졸업하고도 하나도 안 변했네. 생뚱맞게 절이라니”
“안 변하긴 월드 스타인데.”
절을 하고 일어서는데 교장 선생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잡아주셨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참 켄터키 할아버지를 빼다 박으셨다.
“멋지게 자랐구나.”
“다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 덕분이죠.”
내 학교생활이 그리 평탄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고뭉치로 이름 높았지만, 그것 또한 학교를 관두었던 이후에는 선생님이나 나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아니, 나만 그럴까?’
“말썽 많이 부려서 죄송합니다.”
“하긴 너희 때가 좀 특별하긴 했지. 너와 상우 덕에 학교가 매일 시끌시끌했으니까.”
나는 교장 선생님에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음악 선생님 앞에 다가가 절을 하려고···.
“하지 마.”
“네?”
“하지 마.”
“그래도 선생님 그림이···.”
“그 그림 집에서 혼자 그리고 하지 마!”
“참 한결같으시네요.”
“너만 할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선생님과 나는 미소로 서로의 안부를 대신 했다.
고등학교 생활은 나에게 특별했다. 특히 나에게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던 음악실은 더욱 특별했다.
오랜만에 찾은 음악실은 변함이 없었다.
“요즘은 애들이 안 와. 역시 너희 때가 유별났던 거야.”
우리 때는 나 이외에도 음악실에 놀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음악 선생님이 오면 다 도망을 갔지만.
“요즘 평판은 어떠세요?”
“글쎄다. 내가 알 수 있나? 그래도 요즘은 좀 신경 써서 가르치긴 해.”
“애들 죽어나겠네요.”
“왜?”
“달리기 안 해요?”
“안 해.”
“아니. 왜요?”
“이 애들은 음악을 취미로 배우는 거지. 너처럼 배우는 게 아니니까. 즐겁게 해야지 안 그래?”
“선생님. 제가 해드릴 건 없고, 피아노랑 사물함 하나 놔드려도 될까요?”
“피아노는 그렇다 치고 사물함은 왜?”
“의자 속에 있는 물건이나 피아노 뒤에 있는 물건 치워야죠.”
“너어~”
“헤헤.”
“그러지 말고, 방송실이나 좀 바꿔주지 그러니? 애들 방송할 때 애로사항이 많아.”
“어? 아직도 해요?”
내가 놀라 묻자 음악 선생님이 웃음을 보이셨다.
“물론이지. 너희가 하나의 전통을 만든 거야.”
“전통이라니 부끄럽네요. 하지만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학교 스피커 끔찍한데.”
“알면 바꿔주던가?”
음악 선생님은 내가 학교에 돈 쓰러 왔다는 것을 알기에 서슴없이 주문서(?)를 남발했다.
‘혹시 본부장님이 뜯어먹어도 티도 안 난다는 말을 한 거 아니야?’
그러면 또 어떤가?
“선생님답지 않으신데. 남 일에는 신경 쓰지 않으시던 분 아니었어요?”
내 말에 선생님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남 일이 아니야.”
그 말에 눈치채지 못하면 바보다.
“고문이세요?”
“어.”
“축하합니다. 드디어 학교에서 직책을 맡으셨네요.”
이 말에 선생님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축하받을 일일까?”
“네.”
“이왕 하시는 거 합창부 같은 것도 하나 하시죠? 노래가 학생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될 텐데.”
“너 임마, 교장 선생님에게 그 말 꺼내기만 해봐.”
“이야기 나왔어요?”
“그래.”
하긴 교장 선생님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니. 그렇지만 이분은 만사가 귀찮은 분이고.
‘생각해보면 참 웃긴 조합이긴 해.’
그 날 학교방문은 큰 화제를 낳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학교방송을 했던 테이프가 세상에 공개가 되기 시작했다.
음질도 안 좋고, 내용도 뻔했지만, 내가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은지 누나, 군보 형과 안 만나요?”
“왜 하필 군보야?”
“군보 형, 이제 기계 덕후도 아니고, 돈도 벌잖아요?”
내가 예전에 군보 형과 은지 누나를 이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은지 누나는 질색했다.
“저질 체력에다가 수입도 일정치 않은 놈을 어떻게 데리고 살아?”
“우와 누나 대놓고 속물이네요.”
“속물? 네가 어려서 모르는 거야. 결혼은 비슷한 사람끼리 해야 행복해. 한쪽으로 기울면 서로 행복하지 못해. 더구나 나는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서 가족에 대한 욕심이 커. 나는 희생을 할 준비가 되어있어. 그만큼 헌신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이런 이야기를 했던 누나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군보 형에게 말하니 군보 형은 달려들어 내 목을 쥐고 탈탈 흔들었다.
“내가 그렇게 너에게 죽을죄를 지었냐? 차도 살인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캑캑···. 형 저 죽어요.”
“죽어. 이대로 죽어.”
이래서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안되면 뺨이 세대라고 했던가?
이 착한 군보 형이 이렇게 화낼 줄이야.
예전에 같이 일할 때 군보 형을 얼마나 괴롭혔길래 이래?
“흠흠, 예성아, 그 누나 이쁘냐?”
“네.”
“그···. 그럼 나는?”
태수 형의 말에 군보 형이 기함한다.
“아서라. 아서. 네 영혼을 맷돌에 넣어 갈아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그래도 괜찮은데. 나는 그냥 밥만 제때 주면 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할 수 있어.”
“부모님은 어쩌고?”
“우리 부모님은 ‘치마만 두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데려만 가세요’라고 한 지 오래야. 내가 좀 속을 썩였어? 그 누나 직장도 좋다며,”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안정성만 따지면 갑 오브 갑이죠. 절대 해고될 리가 없으니까요. 능력도 대단하지만, 고용주가 그 누나에게 기를 못 펴요.”
조 사장님이 결혼했다고 자를 일은 없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그래. 그러니까······.”
“잠~~~깐! 그런 이야기면 나도 빠질 수가 없지. 예성아, 내가 생일은 더 빠르다. 그러니까 나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에야 내가 돈을 제대로 버니 괜찮지만, 우리 직업이라는 게 그렇잖아. 몸이 재산인데 언제 고장 날지도 모르고, 그래서 우리 부모님도 그런 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고 노래를 불러. 군보 형이 화내는 거 보니 성격이 장난 아닌가 본데. 딱 내 이상형이야.”
“부모님 이상형이 형의 이상형이에요?”
“나도 나를 못 믿겠거든······.”
그런 기수형을 보며 군보 형이 고개를 흔든다.
“미쳤군. 스스로 그런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니······.”
“사진 있냐?”
뜬금없이 묻는 학수 형이다.
“네. 저랑 찍은 게 보자······.”
은지 누나는 화장 잘 먹은 날이면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내 준 적이 몇 번 있었다. 내가 나이로 놀려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사진은 당연히 은지 누나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샷일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보여주자 학수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I’m in.”
“헐, 학수 형도요?”
“그래. 내 평생에 가장 완벽한 여성이다.”
“미친놈들. 너희들이 안 당해봐서 모르지.”
“군보 형, 꼭 장을 찍어 먹어봐야 맛을 아나?”
“그럼 그럼. 그녀는 완벽해.”
아무래도 이 형들은 명태 형을 빼고는 모두 이상형이 하나로 통일된 모양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탓일까?
‘이렇게 되면 선택권은 은지 누나에게 넘어가는 건가? 허, 은지 누나, 축하해요. 그 나이에 모테키라니….. 상대를 보고 축하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
[행복하니….]다시 잠이 들자, 나는 그곳으로 와 있었다.
이번에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연주되지 않는 방.
그 방에서 나는 조심스레 악기를 연주해 보았다. 그러자 그 소리에 다시 내가 보았듯이 어둠 속에서 음표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라, 연주되어야 음표가 나오는 게 아니야.’
내가 연주를 하지 않아도 곡은 연주되었다. 내가 연주하는 것은 처음뿐이었다.
쏟아져 나온 음표들이 자리를 바꾸기 시작하자 악기들이 소리를 내었다. 마치 음표들이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는 모양새다.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스스로 나누는 것처럼.
‘허~ 이게 정말 내 머릿속일까?’
******
“들었어? 신예성이 우리 병원에 왔데.”
“뭐? 아니 신예성이 왜 우리 병원같이 작은데 올까?”
“넌 온 지 얼마 안 되어 모르겠구나. 외과 부장님 아들 친구잖아.”
“그래?
“아저씨, 우리 엄마 어때요?”
“아들, 가만 좀 있어. 어련히 알아서 말씀해 주실까? 넌 어째 촐싹대는 게 하나도 변하지 않니?”
“아직 어리잖습니까? 그래도 어머니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게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킁, 이게 다 작전이에요. 오빠의 작전. 내가 이렇게 엄마를 생각한다는 것을 남이 알아주기 바라는 거죠.”
딱.
“아야!”
“이놈의 계집애. 여기가 어디라고 까불어?”
“이씨. 내가 없는 이야기 한 것도 아닌데. 이게 다 오빠 때문이야.”
“그렇겠지 참 미안해요.”
“흥!”
김성태는 그런 예성의 가족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들과 딸이 최고의 궁합을 보이는데, 우리는 아들만 둘이니···. 쯧 그것도 다 커서 징그럽지. 이 여사님은 자식 키우는 맛이 나겠구나. 아들은 촐싹대고 딸은 대들고, 우리 자식놈들은 사고 쳐도 시큰둥하게 죄송합니다, 한 마디면 끝이니······. 그래서 아내가 예성이를 챙기는 걸지도···. 이참에 다시 한번 도전을······. 마누라가 나를 죽이려 하겠지. 차라리 입양을···.’
“아저씨. 아저씨!”
“응?”
김성태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혹시 안 좋은가요?”
왜 저렇게 서류를 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걸까?
설마, 드디어 올게. 오고 말았나?“
“선생님, 저희 엄마 그렇게 안 좋은가요?”
빡.
“아들, 엄마, 옆에 있다. 거기다 검사 받았는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아직도 엄마가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어?”
“아! 엄마, 내가 언제 그렇게 말을 했어. 선생님이 심각하잖아.”
“엄마, 오빠가 충동조절 장애가 있는 거 알잖아. 그러려니 해.”
“동생아, 너도 정상은 아니거든. 내 검사를 맡아서 했던 선생님이 하는 말이 요즘 젊은이들은 정신질환 하나씩은 있다고 봐야 한다고 그랬어. 그저 티가 안 날 뿐이라면서.”
“얼씨구. 미친놈이 누구더러 미친년이래?”
“네가 말하는 거 봐라. 그게 정상인이 할 말이냐?”
빡. 빡
“너희들 정말, 여기서 이럴래?”
“미안.”
“미안해.”
“죄송해요. 선생님 말씀 계속하세요.”
“아직 결과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만···.”
“어머, 그런가요? 그럼 시작해주세요.”
‘산만한 건 이 집안 내력이구나.
******
“정말 다행이야. 엄마가 건강해서.”
엄마는 여전히 건강했다. 싹수없는 동생도 이제 정상인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 오히려 정상인은 내가 걱정하는 엄마밖에 없구나. 웃긴다. 킥킥’
잠이 드니 나는 다시 그곳으로 와있었다.
‘왜 매번 이 방에 들어올까?’
나는 드디어 여기가 어딘지 깨달았다.
‘그놈이 있던 곳이구나.’
그렇다. 이곳은 내가 꿈에서 보았던 내 미래의 놈이 머물던 방이랑 똑같이 생긴 방이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던 환청은······. 그놈인 건가?’
별로 무섭지는 않다.
느낌이 그랬다.
‘루시드 드림이라고 했던가? 꿈속에서 잠재의식과 만나게 되는 것을.’
내가 처음에 꿈을 꾸고 나름대로 꿈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하던 와중에 루시드 드림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당연히 내 꿈은 루시드 드림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김명인을 만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김명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일단 나 가족의 일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그가 바르면 나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지금 의식이 미래의 의식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럼 나는? 그 미래의 의식이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모른다. 나는 미래의 나를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여기는 미래의 내가 머무는 공간이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기에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곳에 머물던 미래의 내가 만든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째서 지금에서야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그가 나에게 묻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이제 묻는 거지?
그리고 왜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다시 주위를 살펴보게 되었다.
어쩐지 방이 저번보다 조금 더 낡은 느낌이다. 거기다 악기도.
‘약해져 가는 걸까?’
그는 여전히 나에게 한 가지만 묻고 있었다. 행복하냐고.
그의 일생을 지켜봤던 나에게 묻는 그 한마디.
넌 행복한 적이 없던 거니. 아니면 행복을 행복이라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거니?
아마 후자일 것이다. 그와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없다. 어릴 때의 나는 같은 삶을 살았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내가 느끼고 있는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응. 나는 행복해. 지금 행복한 게 아니면 나는 평생 행복이라는 것을 모를 거야.”
그러자 방안의 악기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마치 기쁨을 노래하듯 밝은 음악과 눈물을 흘리듯이 슬픈 음악의 하모니.
마치 그는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동시에 흘리는 것을 표현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왠지 그가 떠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낡아가는 방과, 그의 연주, 그리고 하나의 물음.
‘잘 가라. 상상인지 아닌지는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나만 아는 곳이니 인사해도 상관없지. 네가 얻고 싶은 것을 얻었기를 바라.’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방에 들어가게 되는 날이 없었다. 그저 꿈속의 공간이었으니 내가 원해서 산적은 없다. 그러니 의미도 없다.
그곳에 가지 못하지만 나는 여전히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가 왔다. 함께 걷는 전우의 전화다.
“오빠 우리 좀 만나요.”
“그래.”
만난 승아는 나에게 격려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유학을 간다고?”
“네. 이제 저도 용기가 생겼어요.”
나는 그 말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하다. 승아야.”
머리를 쓰다듬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승아는 나에게 한걸음 떨어져 얼굴을 붉힌 채 씩씩거렸다.
“오빠, 기다려요. 내가 정상에 서기만 하면 이런 행동은 못 할 거예요.”
“그렇지? 감히 오페라계의 정상에 오르실 분 머리를 누가 감히 쓰다듬을까요?”
“흥, 알면 됐어요.”
“표는 공짜로 주는 거냐?”
“에휴, 오빠는 하여간에···. 덕분에 안심이 되네요.”
“뭐가?”
내가 물어도 승아는 그냥 웃기만 했다.
“승아야. 미안한데. 오빠가 지금,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래요? 이렇게 선뜻 와줘서 고마워요. 오빠. 나중에 봐요.”
“그래. 네가 나에게 해준 게 얼만데. 힘들면 전화해.”
“네.”
승아는 많이 변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내가 처음 보았던 모습이 거짓인 양. 얼굴도 몸매도 부끄럼타던 성격도 모든 것이 변해간다.
나도 변했겠지.
승아는 멀어져가는 예성을 보면서 눈에 힘을 주었다.
‘오빠,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는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거에요.’
몇 년 후 나는 한 장의 티켓을 받게 되었다.
그 티켓에의 한 곳에는 고운 글씨체로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건 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슈발, 가지 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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