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3
2. 내귀에 멜로디
다시 눈을 감았다. 조용하다. 다시 흔들리는 버스에 맡겼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는 않지만 생각은 그쪽으로 흘렀다.
‘그런데 처음 듣는 노래던데? 새로 나왔나? 이런 미친놈, 떠올리지 마. 음악은 니길이 아니야.’
어느새 버스는 흘러 학교 앞에 정차했다. 학교는 정류장에서 꽤 걸어가야 한다. 항상 학교를 걸어가면서 생기는 의문이 있다.
‘왜 우리 학교는 서울에 있으면서 오르막에 지었을까?’
별거 아닌 의문이지만 답은 언제나 모른다. 그런데 학교까지 걷는 것도 힘든데 꿈속의 나는 어떻게 연습생 생활을 한 걸까? 미스테리한일이다.
“어이, 가수.”
누군가 가수를 찾으며 내어깨를 친다. 옆을 보니 자전거탄 김상우가 보였다.
“그래, 연기자, 여전히 힘차군.”
“이 몸이야 언제나 그렇소, 그런데 자네는 심상치 않군. 무슨 일인가?”
친구가 목소리를 깔면서 말을 걸어온다. 한결같은 녀석이다.
“이번에는 사극이냐? 몇 번 나올 것 같아?”
“모르겠소. 엑스트라는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인간 이하의 짐승이 아니겠소?”
친구의 말을 들으면 언제나 느끼지만 엑스트라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걸로 보였다.
친구의 말을 빌리면 엑스트라들은 반장이라는 괴수 앞에 놓인 먹이들이었다.
반장은 엑스트라들에게 무법자였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도 없다고 한다.
어리고 할아버지고 상관없이 반말이고 쌍욕이란다.
어떤 때는 때리기까지 한다니 정말 미친 곳이 틀림없다.
그리고 친구는 그런 곳에 불러만 주면 달려간다. 이놈도 제정신이 아닌 거다.
“그런데도 하고 싶냐?”
“그렇소. 본래 꿈이라는 것은 장애가 있어야 불타오르는 것 아니겠소?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법이요.”
“그래. 열심히 해라.”
“가수, 오늘은 분위기가 영 껄쩍지근하오.”
“나 가수 어제부로 관뒀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세계를 울리는 가수가 되어 조물주보다 위대한 건물주가 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힌 가수가 아니오?”
친구가 흥분했다. 이해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린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지. 참고로 이 녀석이 바로 내 뒤의 세 명중 한명이다.
“연기자, 미안하다. 나는 어제부로 어른이 되어 순수함을 잃어버렸어. 더 이상 네버랜드에는 가지 못할 거야. 이제 피터 팬은 너만이 만날 수 있어.”
예성이 말을 하자 친구는 표정이 굳었다.
“정말이냐? 진짜 관둘 거야?”
피터 팬을 만나자는 말은 친구와의 약속의 단어다.
지금의 순수함을 잃지 말고 꿈을 향해 달려가자는 약속. 하지만 이제 의미가 없다.
“응, 상우야 나는 어제부터 현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가수는 많다. 그리고 꿈꾸는 예비가수는 더 많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계속 노력하면 안 되더라도 한 7년은 노력해보겠지. 연습생들이 오래 걸리면 그 정도 시간이 걸리니까. 솔직히 내가 얼굴 좀 잘생기고, 노래를 평범한 이들보다는 잘하지. 하지만 나보다 잘 생긴 것들은 엄청 많아. 그리고 노래는 더더욱 말이지. 그런데 7년 뒤에도 실패하면 어쩌나 싶더라. 고졸에 기술도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지.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친구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홀어머니 밑에 장남이잖아. 그런데 그 후에도 빌빌 거리면 우리 엄마는 어쩌겠냐? 그런 현실을 깨달은이 더 이상 네버랜드에 가서 피터 팬을 만날 생각이 없어지더라.”
예성의 말을 듣던 친구는 눈물을 글썽이며 예성을 끌어안았다.
“이 자식, 정말 다 컸구나. 감동이다.”
이 친구자식은 다 좋은데 이 헐리웃 액션이 문제다. 예성은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만 놓자. 사람들 쳐다본다. 아침부터 남자끼리 이게 무슨 꼴이냐?”
“하지만, 흑 넌 너무 감동이야.”
미치겠다.
“자 웃으세요. 스마일~ 찰칵”
사진 찍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반친구인 규석이 스마트폰으로 우리를 찍고 있었다.
“이야, 너희는 아침부터 끈끈하구나. 사진봐라. 광채가 난다. 역시 잘생긴 것들은 뭔짓을 해도 그림이구나.”
“헛소리 말고 지워라. 규석아 그러면 유혈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상우 초상권 있다. 알지? 영화에 나온 거.”
상우는 연기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상우는 영화에서 15초정도 얼굴이 나왔다.
“짜식, 예민하긴 그런데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상우가 울고 있냐?”
규석의 물음에 상우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예성이가 더 이상 네버랜드를 꿈꿀 수 없데.”
규석은 이게 뭔소리냐 싶었다.
“쯧 하여간에 잘생긴 것들은 말도 이상하게 해.”
“그냥 내가 가수 못하겠다고 한 말이다.”
“어? 머야? 그러면 나 연예인 친구 하나 줄어드는 거야?”
“그런 거다.”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어제와 느낌이 다르다.
이게 학생의 마음자세인가? 책을 꺼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옆자리의 상우는 어느새 꿈나라로 갔다.
첫 교시는 수학이다.
학생의 마음자세를 가지려고 했지만 예성의 몸은 마음을 무너뜨리기 시작 했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잉크, 분필소리는 내 귀의 자장가다.
어느새 눈이 감겼다. 잠이 들려는 찰나에 너무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귓가에 멜로디가 들렸다.
선생님이 적던 것을 멈추고 돌아보고 예성이를 째려봤다.
“이번에는 뭐야? 또 화장실?”
“죄송합니다. 다리에 쥐가 나 놀라서 일어섰어요. 죄송합니다.”
예성의 말에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참 가지가지 한다. 진짜 뒤로 나가 서 있어.”
“네. 선생님”
‘내 귀에 이상이 생긴 걸까? 어제 지진이 있었다고 하던데 머리를 부딪친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지진에 놀라 잠을 설쳤다고 했다.
자신은 요상한 꿈을 꾸면서 엄마가 깨울 때까지 일어나지도 못했다.
자신은 잠이 깊게 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에 오히려 밤에 깊게 자지 못했다.
그런 내가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그 멜로디 아침에 들었던 것이랑은 분명히 달랐어.’
“신 예성”
“야! 신 예성”
갑자기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야, 서서도 조는 거니? 편해서 졸아? 불편하게 만들어줘?”
“아니에요. 선생님 잠 다깼어요.”
“들어가서 앉아.”
“네. 선생님”
점심을 먹고 음악실로 왔다. 왠지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가수만 안하면 되지. 음악을 멀리할 필요까지야 있겠어?’
작심 반나절의 나였다.
음악실에 들어서자 아무도 없었다.
간혹 다른 학생들이나 음악선생님이 있을 때가 있다.
평소라면 곤란하지 않지만 오늘은 곤란했다.
나의 손은 절로 기타를 향했다.
내가 흉내 낼 수 있는 유일한 악기니까.
디리리링.
마음이 평안해진다.
‘멜로디가 어떻게 되었더라.’
생각에 빠졌지만 내가 연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절대 음감을 가진 것도 아니고, 교본 사서 배운 독학의 기타리스트가 바로 나다.
기타를 잡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평소 내가 즐겨 집던 코드가 이어져 나갔다.
낮고 부드러운 선율에 저절로 눈이 감겨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소리가 좋다.
나는 순간 나르시스트의 기분이 이해가 된다.
나는 내가 연주하는 기타소리에 반했다.
내가 이 정도였다니 스스로가 놀랍다.
속으로 연신 ‘난 너무 멋져’를 외치면서 연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다. 내귓가에 속삭이듯 멜로디가 들여왔다.
‘그런데 또 달라. 뭐지?, 어라 근데 귓가에 들리는 멜로디를 내손이 연주를 하고 있어. 코드도 모르는데? 헐~ 이거 뭐지? 근데 소리가 좋아.
“
멜로디는 계속 들려왔다. 새로운 멜로디에서 출발해서 수업시간에 들었던 멜로디 그리고 아침에 들었던 멜로까지 연결되어 들려왔다.
‘아침에 들었던 게 후렴구구나. 어쩐지 짧은 것이 자꾸 반복되더라니, 수업시간이 중간, 지금게 초입인가?’
멜로디의 연결은 처음에는 마치 서로가 다르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삐걱거렸다.
하지만 연주가 될수록 귓가에 들리는 멜로디도 길어지고 연주도 마치 한곡 인 것처럼 매끄럽게 연결 되었다.
‘아! 정말 좋다. 나에게 반할 것 같아.’
“드르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내 귓가에 울리던 멜로디도 떠나고 내손에 연주되던 기타소리도 멈췄다.
“아!”
“아는 뭐가 아야? 신 예성, 음악실 사용할 때는 선생님께 말하고 쓰라고 했어? 안했어?”
이 분이 바로 이 음악실을 지배하는 음악선생님 하연정 선생님이시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무심코 지나가다 들어오게 되었네요.”
“그런데 신 예성 너 작곡 배웠니? 노래를 다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아뇨 배우긴요.”
“그런데 그 음악은 뭐야? 노래 만들던 거 아니었어?”
“그게 기타를 치는데 갑자기 저도 모르게 코드를 집으면서 만들게 되더라고요.”
예성의 말에 하연정 선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야, 실제로 그런 게 되는구나. 선생님 40년생에 처음 봤다.”
“네. 뭘요?”
내가 물어보자 선생님은 아주 귀중한 정보를 가르쳐 준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전문용어로 음악인들은 이렇게 말하지”
“뭐라고 하는데요?”
“삘 받았다라고 하지.”
“그거 놀 때 쓰는 말이잖아요. ‘오늘 삘 받았어. 끝까지 달려’ 이러잖아요.”
선생님은 나를 향해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쯧쯧, 그거야 우매한 중생들이 하는 말이고. 창작자들에게는 의미가 달라. 창작자에게 필이란 무엇이냐? 소설가에게 필이란 한 달 쓸 분량을 하루 만에 쓰게 하고, 음악가에게는 단숨에 곡을 쓰게 만들지? 너도 이야기 들어봤지? 15분 만에 한곡을 썼다느니, 10분 만에 썼니 하는 그런 말말이야.”
“네. 그게 지금 제 상태라고요.”
“그래. 그렇지. 너는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이상하게 불협화음 같은 소리를 연주했는데 점점 소리가 연결되고 마치 스스로 어긋난 부분을 수정하듯 곡을 고쳤어. 그리고 완성된 곡을 만들었지.”
“그런데 선생님.밖에서 계속 듣고 계셨어요?”
“그럼 제자가 그분을 영접해서 창작을 하는데 들어올까? 넌 운이 좋은 줄 알아. 선생님 아니었으면 얘들이 벌써 깽판 놨어.”
“감사해요. 선생님”
“그럼 한 번 들어 볼까?”
“지금요?”
“그래. 들어보자.”
“잘 될지 모르겠네요. 얼떨결에 한어라······.”
“괜찮아. 남의 노래 연주하는 거랑은 달라. 네가 생각하고 네 손으로 완성시킨 곡이야. 못할 리가 없어.”
예성은 선생님의 말에 자신감을 갖고 방금 연주했던 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자신의 손과 머리는 기억을 하는지 연주해나갈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비록 귓가에 멜로디는 들리지 않았지만 자신은 곡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예성은 연주를 마치고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 선생님, 정말 되네요. 신기해요.”
“그래, 그게 정말 되네. 신기하다.”
“선생님!”
“아, 미안 나도 말은 했지만 정말 될지는 몰랐어. 그게 그렇잖아? 사람의 기억력은 정확하지가 않아. 네가 소설을 쓰는데 실수로 블록을 씌워 날려 버렸어. 그런데 줄기는 기억나. 하지만 다시 쓰면 먼저 것과 비교하면 단어와 부사가 전부 똑같을까?”
“아니겠죠.”
“그런 거야. 자신의 손으로 적는 것도 틀리는데 하물며 머릿속에 떠오른 게 정확하다고 할 수없지. 그런데 예성이 대단해. 그대로 연주하네. 너 가수한다고 했던가? 솔직히 어린놈이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서 똥인지 된장인지 천지분간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능이 있어.”
“선생님 그래도 선생님인데, 학생에게 너무 심한 말 아닌가요?”
“아줌마는 원래 이래. 내가 너한테 촌지 받을 것도 아닌데 이정도면 충분하지. 뭘”
“야, 말이 그런 거지. 그런데 싱어송 라이터로 활동할거냐? 이정도 실력이면 될 것 같기는 한데.”
“네? 아! 가수요. 저 가수 안할 건데요?”
“안 해? 왜? 너하고 걔 누구야? 오버액션 쩌는 아이랑 같이 연예계 가는거 아니었어?”
“상우는 할 거에요. 걔는 꿈이 배우니까? 근데 전, 하~아! 선생님 말씀하신 게 맞아요.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든 아이요. 그래서 바람이 빠지니 현실이 보여서 안하기로 했어요.”
“그래. 니가 그렇게 정한 거면 어쩔 수 없지.”
“에, 너 정도면 충분해. 왜 시작부터 포기해 그런 거 없어요?”
“야! 그러다 잘못되면 누구 책임인데? 난 덤터기 쓰기 싫다. 그리고 학교 선생이 학생에게 권할 직업은 솔직히 아니지. 너무 불확실하잖아.”
“그건 그렇죠. 저도 그 때문에 포기하려고 해요. 기획사 들어가면 연습생 신분 일텐데 데뷔 못하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세월만 보내고 말이죠. 그리고 길게 남은 인생은 또 어떻게 해요? ”
“그럼 만든 곡은 어쩔 거야?”
“그냥 기념이죠. 혼자 집에서 연주하면서 ‘나 혹시 천재인건 아닐까?’라며 자화자찬하면서요.”
내 말에 선생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너 그 곡 한 번 팔아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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