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30
25. 재도전
25.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다음날 예성이 학교에 가자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방송 승인이 떨어졌다. 역시 최고 권력자의 힘은 확실했다.
“너희들, 너무 장난치고 그러면 다시 못하게 할 거다.”
선생님의 으름장에 우리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첫 수업이 끝나자 예성의 주위로 삼인방이 몰려왔다. 어제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이제 학교의 승인이 떨어졌으니 자신들이 기획하고 방송을 하기만 하면 된다.
홍수가 어제 했던 말을 구체적으로 생각했는지 종이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종이에는 여기저기 글을 지웠다 썼다 한 표시가 많을 걸 보니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예성은 그런 홍수가 참 고마웠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이렇게 고민을 해주다니, 평소에는 시도 때도 없는 뷰티핑크 드립에 친구들을 이상한 세계로 이끌지만 이런 때는 든든했다.
“일단 방송의 제목은 ‘예상의 빛나는 청춘’ 이다.”
“설마 예상이라는 게?”
“그래, 예성과 상우의 한 글자씩 딴 거지.”
“너무 식상한데?”
예성에게는 식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식당이름마저 자신과 예린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지 않은가?
홍수는 그런 예성에게 식상함의 다른 말은 익숙함이라는 말을 하면서 설득했다.
우리가 방송을 하지만 고작 마이크와 스피커 인원도 4명이 고작인데 낯설게 만들어 봤자 호응을 얻기 힘들다는 것이 홍수의 뜻이었다.
예성도 듣고 보니 그랬다. 아무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어제 자신은 사람들에게 낯설다는 것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처절하게 경험을 했다.
“그래. 알았어. 다음은?”
“어차피 방송은 30분 한다. 끝나고 우리도 밥을 먹어야지. 코너는 두개, 신청곡 코너랑 고민상담.”
“두개가 비슷한 게 아닌가? 신청곡 할 때도 사연을 적잖아,”
“그렇긴 한데 어쩔 수 없어.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끼리 해야 돼. 게스트도 없고, 광고도 없어. 그러면 너와 상우가 30분 동안 이끌어야 하는데, 그게 쉽게 되겠어? 예성이 네가 노래를 메들리로 부른다고 해도 시간은 많이 남아. 그러니 사연을 듣고 사연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홍수의 말에 우리는 홍수를 의외의 눈빛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놈이 아니었는데······.
“반대의견 있냐?”
이 말에 우리가 무슨 말을 할까?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홍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방송은 월, 수, 금 3일을 하기로 했다.
매일 하기에는 우리 인원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말을 했다. 홍수는 이번 일을 아주 진지하게 임해 제대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우와 내가 고민 상담할 깜냥이 될까?”
고등학교 생활에 가장 충실하지 못한 이들 꼽으라면 상우와 자신이 꼭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보고 고민 상담이라니.
홍수는 그런 우리를 보며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걱정할 것 없어. 어차피 방송들어가기 전에 내용을 알고 들어갈 테니까. 어제 말했잖아. 짜고 치는 거라고. 그냥 상우가 사연을 읽고 예성이가 위로의 노래를 불러주면 되는 거야.”
홍수는 철저하게 안전주의를 표방했다. 무리수는 털끝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내용을 다 알고 시작하니 녹화방송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네. 네. PD님”
“그래. 알아 모셔라.”
“그럼 난 뭘 하지?”
규석의 말에 홍수는 노트북을 꺼내 넘겨주었다.
“어제 말했다시피 넌 게시판 관리야. 신청곡과 사연이 들어오는 걸 체크 해야지. 괜찮다 싶을 걸 체크해.”
“그래.”
홍수는 규석에게 설명을 마치고는 교탁에 가서 섰다. 그러고는 교탁을 두 손으로 내리쳤다.
탕.
“제군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 반의 아웃사이더 예성이가 드디어 슈스케를 향해 위대한 첫발을 뗀다.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학교게시판에 사연을 하나씩 남겨다오. 문제집 산다고 용돈 삥땅친 것도 좋고, 공부 못한다고 여자 친구에게 차인 이야기도 좋다. 그냥 사연이면 된다. 그런 사연이 없다고? 좋다. 픽션도 허가한다. 어차피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럴싸하게 올려라. 그럼 제군들 부탁한다.”
홍수는 교탁을 내려 와서는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것으로 시작은 문제없다.”
홍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예성과 상우는 서로 마주봤다. 방송을 하는 것은 자신들이다.
“뭐. 괜찮겠지.”
“그렇겠지.”
***
“그래 날 찾아 오셨다고?”
나은태 CP는 자신을 찾아온 남자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신길형 실장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자신의 명함을 나은태에게 넘겼다.
“늘 푸른 이라면 이번에 그······.”
“네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아왔죠?”
“이번에 저희가 폐업을 했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이번에 방출된 연습생 하나가······.”
나은태는 이야기를 다 듣지 않아도 내용이 짐작이 갔다. 이런 일은 프로그램을 할 때다 있는 일이다.
“아, 이야기 안 들어도 되겠어요. 이미 티오는 다 찼어요.”
“벌써요?”
신 실장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두 달 가까이 남았는데······.
나은태는 그런 신실장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딱 보니 어디서 소문을 듣고 온 모양이다.
“이봐요. 신 실장 티오는 말이죠. 기획단계에서 이미 끝나요.”
슈스케에는 베스트8 티켓 두 장이 기획사들에게 판매가 된다. 가격은 각 이천 만원.
본선이 시작되면 대충 견적이 참가자들에 대한 견적이 나온다. 그리고 티켓을 구매한 기획사는 자신이 점찍은 이를 제일 먼저 계약을 맺을 수 있다.
기획사는 자신이 점찍은 참가자가 우승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1등은 기획사에게 부담감을 주기 때문이다.
상금과 인지도가 있기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리한 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인지도는 1등이나 아니나 거기서 거기였다.
이미 실력은 베스트에만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일단 계약을 맺고 결승이 시작되기 전에 탈락 시켜 버리는 것이다. 우승을 시키는 거라면 시청자 투표 때문에 힘들지만 탈락은 쉽게 시킬 수 있었다.
다른 방식의 하나는 자신의 기획사에서 연습생을 참가 시킬 경우다.
기껏 공들여 키운 연습생을 인지도 쌓기 위해 내보냈는데 본선에서 바로 떨어지기를 바라는 기획사는 없다. 그래서 티켓을 사는 것이다.
물론 기획사의 연습생은 철저히 일반인으로 속이고 참가하는 것이 원칙이다.
슈스케는 돈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다. 본선이 시작되면 더욱 그렇다.
생방송 무대를 한 번 꾸미는 데는 큰돈이 든다. 노래, 무대의상, 헤어, 메이크업, 안무팀, 특수 조명, 크레인, 블루스크린 등등등 생방송을 한 번 하는데 억이라는 돈이 든다.
더구나 참가자는 일반 참가자라 기획사의 도움 없이 방송사의 힘으로 해야 한다. 광고가 완판 되지 않으면 방송이 힘들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 티켓이 생겨난 것이다.
화려함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가수들의 음원 계약이 짠 이유도 이것을 들 수 있었다.
그들에게 투자를 한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방송사도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챙겨야 할 건 챙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욕먹는 것은 언제나 방송사다.
신 실장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습니까?”
“네. 프리패스카드가 남긴 했는데 이건 지금 팔리는 게 아니니까요. 뭔 줄은 알죠?”
“네.”
“아마 베스트에는 들 거라 생각하고 찾아오신 모양인데 그러면 그냥 출전시켜요. 어차피 베스트에 들면 우리의 손을 떠난 거나 마찬가지란 거 아시잖아요? 혹시 자료 가지고 온 거 있어요?”
“네. 여기 있습니다.”
“두고 가면 살펴볼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제가 뭔가 해줄 건 없어요. 그냥 알고 있기만 할 거에요.”
나은태는 연습생이라는 소리에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스폰서, 연습생, 기획사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이번에는 꽤 볼만 하겠는데, 미꾸라지에, 절대음감, 스폰, 거기다 밑바닥 인생들 줄줄이 나올 테니······. 오래간만에 악당이 되겠네.’
나은태는 오랜만에 잡는 메가폰이지만 자신이 어쩔 수 없는 PD임을 알 수 있었다. 하기는 싫지만 하게 된 이상 결과는 내야한다.
****
“그래. 어제는 어땠어? 환호성은 많이 들었어? 앵콜은?”
“아니 다 아시면······.”
예성은 빽 소리를 지르다 선생님의 눈빛에 목소리를 낮추었다. 진중해야지. 진중.
“선생님 예상대로입니다. 제대로 폭망했습니다.”
“그래? 그거 아쉽게 됐네. 쉽지 않지?”
“네.”
예성의 우울한 대답에 연정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럼 어제 인사는 했으니 오늘은 가서 제대로 해야겠네. 오늘도 갈 거지?”
“네. 물론이죠. 신세계를 발견했으니 적응해야 하지 않겠어요?”
“오늘은 가자마자 가버린 그녀를 불러.”
“네?”
예성은 선생님의 말에 의문이 들었지만 묻지 않았다. 이제는 선생님에게 확실한 믿음이 생겼다.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그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네. 선생님”
예성은 파리공원에 다시 왔다. 오니 어제 당했던 굴욕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누구를 원망할 일은 아니다. 그냥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가자, 원수(?)를 갚으러.’
어제와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호흡······. 오케이.
성대······. 오케이
컨디션······.오케이
예성은 자전거를 세워 두고 걸음을 당당하게 걸으려 했지만 어제의 기억이 몸에 제동을 걸었다. 마치 벌을 받으러 가는 느낌이다.
‘정신 차리자. 신 예성 넌 두 달 뒤면 수백 명의 모르는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사람이야. 고작 수십 명의 사람에게 쫄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예성은 자신을 다그치며 다시 걸음을 옮겨 갔다. 어제의 자신은 너무 준비 없이 행동한 경향이 있었다.
하루정도 지켜보고 오늘 공연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미 흘러내린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다.
예성은 끊임없이 하품과 입술떨기를 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처음부터 고난이도 곡이다.
고음병자인 예성도 자주 부른 곡이지만 이 곡은 기복이 있었다.
3옥솔에 해당하는 곡이라 두성의 사용이 관건이었다.
예성은 처음에 두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미 자신은 두성을 쓰고 있었다.
허밍을 할 때 코가 간질거리는 것이 비강공명이다.
비강공명을 사용해 고음을 낼 때 머리가 울리는 느낌을 상상하면 그게 두성이다. 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에 예성은 예전부터 자신은 두성을 썼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몰랐을 뿐이다.
‘선생님의 설명은 참 알아 듣기 쉽게 들린단 말이지.’
예성은 어제의 그 자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보다 사람이 더 많아. 아줌마들 모임이라도 있는 건가? 선생님, 정말 이 자리에서 가버린 그녀를 불러도 될까요?’
오늘은 특명마저 받고 왔다. 망설여지는 예성의 머리에 선생님이 스쳤다.
‘예성아, 고음을 지르며 목 푸는 이들을 본적이 있니?’
고음을 지르면 몸에서 힘이 빠진다.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때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 처음에 시원하게 지르고 힘 빼고 노래하는 거다. 설마 쫓겨나진 않겠지?’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망설일 순 없었다. 어제처럼 도망치듯 돌아가긴 싫었다.
예성은 어제의 그 자리에 섰다.
“안녕하세요? 가수를 꿈꾸는 목동고 2학년 신예성입니다.”
예성이 인사를 하자 조그만 박수소리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예성이 고개를 드니 어제 보았던 여중생이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여중생은 약속대로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예성도 반갑고 고마워서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제가 여름에 어울리며, 공원에서 쉬는 여러 어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한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여기 오기 전에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반드시 첫 곡은 이 곡으로 부르라고 하셔서 그 곡을 먼저 부르겠습니다.”
예성의 말이 끝나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곡 제목은 말하고 불러야제?
갑작스런 남자의 말에 예성은 당황했지만 누군가 호응을 해주었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스틸하트의 ‘She’s gone’ 들려드리겠습니다.”
“오~”
“오늘은 완전 작심했구먼.”
“어제 어지간히 분했나봐.
“
“누워서 이불 찬다고 잠도 못 잤을지도 몰러.”
쑥덕쑥덕.
아줌마와 아저씨의 말이 예성의 귀에 콕콕 박혀들었다.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사실이니 할 말이 없었다.
가버린 그녀는 1990년대에 나온 음악이라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대부분 아는 노래다.
그리고 그만큼 애증이 깃든 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른들의 말에 더 부끄러운 지도 모른다.
조용히 노래할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홍수에게 블루투스 스피커를 빌려왔다. 어제 노래를 하며 기타를 치니 둘 다 엉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은 긴장이 풀리지 않으면 기타는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예성은 말하고는 MR을 켰다.
전주가 흐르자. 사람들의 기대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
“힘내라!”
“포기 하지 마.”
예성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노래는 이런 식이다.
친구들과 노래방가도 마치 운동하는 선수를 격려하듯 응원하게 되는 노래다.
예성은 어제와 다른 느낌에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마이크도 없고 양손은 기타를 쥐고 서 있는 볼품없는 자세지만 예성은 만전의 상태였다. 그리고 곡마저 남자의 혼을 불사르게 하는 가버린 그녀다.
조용한 숲속에선 바람소리와, MR, 그리고 예성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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