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36
31. 넌 너무 잘해서 안돼.
예성은 차분히 호흡을 가라앉혔다.
그 동안 짧았지만 선생님과 보낸 시간, 친구들과의 방송, 공원에서의 공연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여기 기획사의 연습생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지만, 스스로에게는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아. 나는 이 한 달을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어.’
이 자리는 한 달 동안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자리다. 4명의 남자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니 절로 경쟁심이 솟아났다.
오보에의 슬픈 전주가 흐른다.
막상 노래가 시작되니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녹음실에 있어서 그런지 머릿속에 임재호의 비상을 녹음했던 목소리가 소용돌이친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갑자기 몸에 힘이 들어간다.
심호흡을 하며 온몸에 힘을 뺏다.
턱은 물론 온몸에 힘을 빼야 울림이 좋고 소리가 뻗는다. 선생님이 강조한 말씀이다.
마음을 다 잡아야해. 그때와는 달라.
“쟤 왜 저래? 오줌 마렵나?”
이기호가 시시각각 변하는 예성의 표정을 보며 중얼거렸다.
“긴장했나 보지. 딱 저번만큼만 해주면 좋겠는데······.”
저번에 보았던 예성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잣말 하듯 말하는 일형을 뒤에서 보고 있던 연정은 비웃음을 띠었다.
이들은 예성이 얼마나 변했는지 짐작도 못한다. 자신도 예성의 노래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을 보며 얼마나 놀랬던가?
공원에서 마이크도 없이 백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천천히 불어난 것이다.
그리고 예성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과연 자신의 목소리가 이들에게 모두 전달되는 걸까?
고민을 하던 예성이 자신을 찾아왔다.
연정은 그런 예성에게 오페라의 창법을 보여주며 설명해줬다.
기본적으로 오페라가수는 오케스트라를 압도할 수 있는 성량을 가져야 데뷔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성량으로서는 예술가곡 성악가들이 따라오지 못한다.
설명을 들은 예성은 며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더니 차츰 감을 잡았는지 자신의 목소리에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연정은 그런 예성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만의 발성이 확립되지 않아 가능한 것이지만 정말 축복받은 성대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성이 노래를 부르자 연정은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저놈이 마이크대고 노래하는 건 거의 한 달 만인데. 평소 공원에서 노래하듯이 하면······.’
아니나 다를까? 예성의 노래는 후렴부로 갈수록 웅장하게 녹음실을 울렸다.
[♬시간의 태엽을 감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다시 네~게 ~로)만약 그때로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너를 다시 만~나~)
한걸음이 그리 길지는 않을 텐데.
다시 당신과 함께 할 수 텐데♬]
장 프로듀서는 예성의 노래를 들으면서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이건······.곤란한데’
장 프로듀서가 이 기호를 쳐다보자 이기호도 인상이 굳어져 있었다.
“어이, 마누라 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난번이랑 완전히 다른 애가 됐잖아?”
“글쎄. 그렇게 물어봐도 별로 해준 게 없는데, 그런데 잘하네?”
그녀가 정말 자신이 배울 때와는 달리 별로 해준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예성이 알고 있는 것을 개념적으로 정리해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도 잊고 있었던 예성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보세요. 그걸 지금 말하면······. 어휴. 일형아, 어때?”
이기호의 말에 장프로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경이 온통 예성에게 쏠려 있었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공연을 하며 지냈다고? 이걸 써먹을 수 있을까? 아니야. 시간이 모자라. 성량부터 압도되잖아. 녹음이라면 몰라도 야외에서는 AR로 하지 않는 한 힘들어. 라이브로 얘랑 붙였다간 소율이가 묻혀.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소율이 주체가 되어야 해. 이건 작게는 소율의 쇼케이스지만 크게 보면 뷰티핑크의 해외를 겨냥한 콘텐츠야. 포기하자. 이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잠깐 안 본 사이에 이렇게 발전했다니.’
장 프로듀서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장 프로듀서는 아이돌 인큐베이터 시절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그래서 재능 있는 청소년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짧은 기간에 이렇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예성이 처음이었다.
자신이 이기호의 말에 찬성한 것은 처음 보았을 때의 예성의 모습이지 이런 모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친분은 친분이고 일은 일이다.
“하 선생님, 이거 안되겠습니다.”
장 프로듀서의 말에 연정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건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예성의 상태를 자신이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고 여기 온 것이다. 이정도가 차이날줄은 자신도 생각을 못했다.
한동안 마이크 없이 노래를 부르다 마이크에 대고 부르니 성량과 음색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들렸다.
‘사진과 액자타령을 할 때가 아니었어. 파워에서 차이가 너무 나. 안 그래도 우울한 아이에게 몹쓸 짓을 했네.’
“네. 어쩔 수 없죠.”
연정은 이기호의 아내이기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예성에게는 그냥 기회이지만 이들에게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사업이다.
팬클럽을 초청하고, 무대장비, 취재 요청과 여러 가지 많은 돈이 들어가는 행사다. 거기다 예성으로 인해 소율에게 타격이 가면 그 손해는 얼마나 커질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연정의 말에 장 프로듀서가 고개를 돌려 멍하게 있는 4명의 남자에게 말했다.
“너희도 그만 가 봐라. 노래 들었지? 저렇게 될 정도로 연습해라. 3일 뒤에 다시 보자.”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명은 녹음실 문을 열고 나와 한숨을 쉬었다.
“시파, 저 새끼 뭐야?”
“우리가 방금 뭘 본걸까요?”
“그러게요. ‘작곡가라고 해서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이랬는데?”
“그냥 마이크를 씹어 먹네요. 쩔어요. 쩔어.”
“그래도 안 된다니 다행 아니에요?”
“넌 자존심도 없냐? 들었잖아? 잘해서 못쓰겠다는 거잖아. 지금.”
“뭘 흥분해요? 잘하는 사람 한 둘인가? 기획사내에도 많잖아요. 우리도 다른 애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걸요? 기회가 우리에게 왔다는 게 중요하죠.”
“기회가 우리에게 온 게 아니지. 나에게 온 거지.”
“에? 형은 데뷔했잖아요. 양보 좀 해요.”
“시끄러. 데뷔하면 끝나냐? 데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데뷔하고도 연습실에 죽치고 있는 거 보면 모르냐? 나에게 목매고 있는 얘들이 4명이다.”
남자의 말에 3명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불태웠다.
****
“네? 저 탈락이라고요?”
“그래. 미안하다.”
“아니 미안하실 것까지야. 제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을.”
“그런 게 아니야. 들어봐”
예성은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문제가 뭔지를 알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소율 누나의 목소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이래선 액자가 사진보다 더 화려해 져 버린 것이다.
“저기 이제 문제가 뭔지 알았으니 다시 한 번······.”
그런 예성의 말을 자르며 이기호가 예성을 다독였다.
“예성아, 너도 알다시피 이건 야외에서 라이브로 부를 노래야. 너는 모르겠지만 야외공연은 변수가 많아. 거기다 조명도 없고 화려한 댄스도 없어. 그런데 너라는 불안요소까지 가져갈 수는 없어. 물론 연습해서 나아진다고 해도 말이지. 이건 비즈니스야. 소율이 야외에서 쇼케이스를 하는 것도 유투브에 영상을 송출하기 위해서야. 즉 해외홍보란 말이지. 방송무대는 앞으로도 많지만 소율에게 야외무대는 많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이번 무대는 콘텐츠로서 아주 중요해. 이해할 수 있지?”
이기호의 말에 예성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안다. 이들도 흙 파먹고 사업하는 게 아닐 테니. 하지만 이럴 거면 부르지를 말던가? 피곤해 죽겠구만. 예성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웃음을 보였다.
“네.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래.”
예성은 선생님을 봤다. 그러자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까?”
“네.”
떠나는 예성의 뒷모습을 장일형과 이기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쟤 슈스케 내보낼 필요가 있을까?”
“그러게. 그런데 나 은태 그놈에게 받아먹은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어.”
“나가면 다른데서 입질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
“절대 뺏길 수 없지. 쟨 내꺼야.”
“그런데 예성이가 저만큼 실력이 늘었다면 하 선생 가르침이 장난 아닌가 봐? 우리가 초빙해야 되는 거 아니야?”
“글쎄, 시킨다고 들어먹는 사람이 아니라······.”
“쯧, 시키지도 못하면서 말은?”
“야!! 그렇게 맞는 말을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문을 나서자 선생님이 예성을 꼼꼼히 살폈다. 하아, 제자 눈치를 살피는 선생이라니.
“안 우냐?”
예성은 선생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가 언제 선생님 앞에서 울었던가?
“저는 사나이라 세 번밖에 울지 않아요.”
“그렇다고 하자.”
“선생님, 역시 세상은 냉정한 것 같아요.”
연정은 예성의 말에 뜨끔했다. 따뜻하게 대해주던 사람들이 갑자기 넌 안 돼 이러니 저런 말이 나올 만 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렇지? 선생님이 편 들어 주고 싶지만 저게 맞는 말이니까 어쩔 수 없더라. 너에게는 경험일 뿐이지만 저들에게는 큰 사업이잖아? 괜히 선생님이 너에게 못할 짓 한 것 같아. 공원도 물 건너갔는데 이런 일이라니.”
자신의 실수가 크다. 자신이 예상했어야 했다. 예성에게만 관심을 두다 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괜찮아요. 제가 너무 잘나서 그런 건데요. 뭘”
“오늘은 그런 걸로 치자.”
“오늘 만이 아니거든요.”
예성은 말을 하다 한숨을 쉬었다.
“하~아 선생님 허세를 부려도 기분이 좋아지질 않아요. 저에게 재앙신이라도 붙은 걸까요? 공원은 노래하지말라고 하고 그러고 듀엣은 물 건너가, 학교방송은 끝나, 모든 걸 잃은 패배자가 된 느낌이에요.”
예성은 이상하게 기분이 다운된 느낌이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성공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짐을 모두 내려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니?”
“그럴까요?”
“그래. 우산장수와 부채 장수 이야기 알지? 그런 거야. 좋게 생각해.”
선생님의 말에도 예성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은 왠지 하루가 굉장히 긴 느낌이다.
“선생님, 저 집까지 태워주실 거죠?”
“그러자. 집에 가서 푹 자라. 내가 데려오고 할 말은 아니지만 꼴이 말이 아니다.”
“저도 거울 보지 않아도 그럴 것 같아요.”
****
소율은 예성이 나가는 데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쩜, 세상에’
한손을 들어 팔뚝을 만져 보았다. 닭살이 돋아 있었다.
‘한 달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저런······.’
소율은 자신보다 노래를 잘해서 예성과 듀엣을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들으니 절로 자신과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노래를 유리 건너편에서 듣는 데도 노래에 담긴 절절한 감정이 느껴져 자신도 슬퍼졌다. 저런 성량과 음색에, 가사 전달력이라니.
‘슈스케 나간다고 했지? 또 하나의 괴물보컬이 탄생했다고 난리 나겠구나.’
*****
예성은 집에 와 방안에 몸을 뉘였다. 몸이 나른해 지며 잠이 쏟아······.지지가 않아.
예성은 덮고 있는 이불을 마구 걷어찼다.
“아이 씨!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야?”
예성은 가슴이 답답했다. 뭔가 억울하면서도 억울하지 않은 미묘한 감정이다.
모두 자신들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지만 왠지 자신만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공원도 자신의 공간이 아니니 물러나는 게 맞고, 방송도 방학이니 물러나는 게 맞다. 거기다 듀엣도 목소리가 안어울리니 물러나는 게 맞다.
다 맞는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억울한지 모르겠다.
한참을 누워서 이불을 걷어차니 마음이 진정이 된다.
“역시 마음을 진정 시키는 데는 이불 킥만 한 게 없어.”
마음이 진정되자, 예성은 내일을 생각했다. 이제 방학이다. 자신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성은 핸드폰을 꺼냈다.
“역시 내 노래가 있어야겠어. 오늘만 해도 내가 부른 노래였다면 이런 설움은 겪지 않아도 됐잖아.”
예성은 공원에서 공연을 하게 된 후 10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다.
여러 장르의 곡을 마구 부르다 보니 머릿속에서 멜로디가 마구 솟아났다.
그저 흥얼거린 정도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그걸로 충분했다. 작곡앱이 나머지를 해주는 세상이다. 자신이 만든 곡을 들어보며 한 곡을 선정했다.
“그래 이걸로 하자. 군보형님의 스튜디오는 싸니까 녹음한다고 하면서 싸바싸바 해서 편곡에 도움을 받는 거야. 군보형님은 머덕후니까 악기 소리 얹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일거야. 그리고 홍대로 진출해서 당당하게 내 노래를 부르자.”
생각을 하다 보니 조승아가 떠올랐다.
“애도 써먹을까? 슬픈 발라드니까 앞에 오페라의 아리아를 넣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넣어보고 괜찮으면 얘를 시키자.”
예성은 생각을 시작하자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계속 떠올랐다.
“가사는 뭘 적지? 선생님이 저번에 내 가사는 에러라고 했지. 트렌드에 맞지 않다면서? 그럼 사랑인데, 그래. 노래가 슬프니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는 남자를 쓰자.”
예성은 멜로디를 반복재생으로 틀어 놓고는 글자를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새 잠이 든다.
기도
너 없는 세상에서
나 홀로 오늘도 너를 느끼며 숨을 쉬어
따스한 봄바람을 느낄 때도
차가운 칼바람을 맞을 때도
나는 너 없는 오늘을 네가 있던 어제처럼 살아가 어두운 하늘이 찾아오면 나는 항상 기도해꿈속에서 너를 보게 해 달라고
단 한번만, 그저 단 한번 만이라도
나에게 모습을 보여 주기를
햇살 아래 눈부시던 너의 미소를
다시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너 없는 하늘 아래
나는 오늘을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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