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53
48. 복귀 >
“어이! 사이다 소년.”
“저 불렀어요?”
그래. 나는 사이다 소년으로 불리고 있었다. 상전벽해라더니, 나의 위상은 너무도 달라져 버렸다.
처음에 슈퍼위크에 복귀하고 첫 번째 미션에서 나는 또 꼬였다.
미션에서 노래를 끝마치고 나자 개운하다는 느낌보다 씁쓸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그래. 이 맛은 탈락의 맛이로구나.
바로 느낌이 왔다. 가사도 두 군데나 틀리고, 음정도 흔들렸다.
‘역시 단시간에 새로운 노래를 익힌다는 것은 힘든 일이구나.’
요즘 유행하는 곡도 아니고 예전의 노래를 현대식으로 해석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거기다 듀엣이라니.
첩첩산중의 막막함을 나에게 느끼게 하였다.
나와 팀을 이룬 사람은 28살의 강경수라는 사람이었다.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기가 막혔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대단하다는 의미로 정말 기가 막히는 사람이다.
루프 스테이션이라는 장비를 가지고 자신의 반주를 녹음해서 노래하는데 음악의 풍성함에서는 참가자 중에서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참가자 중에 북두칠성이라는 세기말의 밴드 명을 가진 참가팀이 있는데 그들도 이 사람에 비하면 사운드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은 정말 잘했다. 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마치 자신과 음악만 생각하는 사람이랄까?
오로지 악기와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말을 나누어 보면 이야기는 되는데, 언제나 이야기가 가벼웠다. 깊은 이야기를 피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맞춰서 음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듀엣에 나도 기타를 들고 참가하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반주에 다른 사람의 악기가 섞이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그와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절대음감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포기했다. 거기다 줄리아드 음대 중퇴라니.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줄리아드 음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안다. 그런 곳을 관두게 되었다면 뭔가 자신이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선생님과 절대음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그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 강경수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일 거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늦게 합류한 관계로 이 사람과 팀을 짜게 되었는데 싸워서는 둘 모두에게 좋을 것은 없다.
하지만 참가자 중에 유독 이 사람만 팀을 못 짜고 홀로 남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포기하고 나는 노래만 부르기로 했다.
한편으로 그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면 어떤 느낌일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생각보다 더 이기적이었다.
“뭐라고요?”
“화음도 각자 알아서 넣는 거로 하자.”
“그게 말이 돼요. 입이 몇 개라도 돼요? 어떻게 화음을 넣고 노래하고 둘을 동시에 해요?”
내 말에 그는 루프 스테이션을 가리켰다.
“미리 녹음해서 하면 돼.”
“하~아, 정말 그렇게 싫어요?”
“이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지. 내 말대로 하든가 아니면 그냥 포기하던가. 둘 중 하나야.”
‘아! 정말 내 주위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거지? 혹시 나에게 정신이상자만 느끼는 페로몬이라도 뿜어져 나오는 걸까?’
과연 이걸 심사위원들이 듀엣이라고 인정해 줄까?
미치지 않은 이상 이걸 듀엣으로 봐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심사위원들의 앞에서 노래했을 때 그들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참신하네요. 설마 이렇게 곡을 해석할 줄이야.”
듀엣이라고 봐주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노래는 좋았다. 각자 자신의 목소리로 화음을 넣으면서 1절과 2절로 나누어 불렀다.
“승철이 형 말대로 참신하기 그지없네요. 참신하다 못해 기가 막혀요. 마치 피쳐링된 솔로곡 두 곡을 들은 느낌이네요. 하지만 저희가 원한 미션이 이게 아니라는 것은 잘 알면서 왜 이렇게 했죠?”
윤종수의 말에 강경수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개인적으로 남과 함께 노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미션에 대해서 사전에 알지 못했어요.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마치 속은 기분입니다. 애초에 슈퍼스타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이 참가자 각각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 미션은 이해가 안 되네요. 듀엣이 가수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모두가 듀엣을 하는 건 아닌데 이걸로 심사하다니 좋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역시 이 형은 미쳤어.’
어디다 대고 말대꾸를 하는 거야?
동의서도 읽어보지 않았나? 심사위원의 평에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적혀 있어요. 이 사람아.
“강경수 참가자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도 그건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가 설마 듀엣을 뽑으려고 이런 미션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슈퍼스타 코리아는 여러분의 숨겨진 재능과 끼를 찾는 프로그램이죠. 사람의 재능은 다 달라요.
그리고 우리는 그 다른 재능을 확인해야 하고, 그러려면 여러 가지 시험을 해야죠. 그리고 듀엣은 그런 시험 중에 하나에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당신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알겠어요?”
“음, 이해했습니다.”
“그럼 심사를 계속할게요. 신예성 참가자 앞으로 나오세요.”
“네.”
“오늘은 저번과는 달리 정말 실망스러운 무대였어요. 가사도 틀리고, 가사가 틀리자 음정도 불안해졌죠?”
“네.”
“거기다 스스로 불안해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보였어요. 노래하는 사람이 불안해하는데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리효리씨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오늘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미흡한 무대였다.
“죄송합니다.”
“잠깐 저희끼리 회의 좀 할게요.”
이성철, 윤종수, 리효리, 고미가 한자리로 모였다. 그만큼 둘 다 눈여겨보던 참가자였다.
“일단 나는 강경수가 좋은데, 그는 언제나처럼 완벽해. 완전 메트로놈이야. 완벽한 반주에 그에 어울리는 목소리, 감탄이 절로 나와.”
이성철의 말에 고미가 반대를 표했다.
“저는 오히려 신예성이 좋아요. 이번 무대는 아쉬웠지만, 솔직히 너무 불리한 여건이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능력이잖아. 극복해냈어야지.”
“고작 고등학생에게 뭘 바라고 있는 거예요? 거기다 신예성이 양보했기에 지금의 무대가 된 거죠. 솔직히 예선에서 신예성 기타 치던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그만, 그래서 각자 누구야?”
이성철의 물음에 고미를 빼고는 모두 강경수를 지목했다. 그리고 모두 이성철을 바라봤다.
“음, 나도 이번 무대는 강경수가 압도했다고 봐. 하지만 신예성도 포기하기는 아까워. 저번 무대를 보면 분명 사람의 마음을 건드릴 줄 알거든.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없어서 아쉬웠어.”
“그리고 살펴보면 둘의 느낌이 너무 달라요. 강경수는 내 음악을 너희는 들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듯이 노래를 한다면, 신예성은 내 음악을 들어 달라고 호소하듯 노래를 하죠.”
“효리, 네 말이 맞아. 그래서 난 이 둘의 무대를 생방송에서 꼭 봐야겠어.”
이성철의 말에 세 사람은 찬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철은 참가자들을 보았다.
“음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솔직히 두 참가자 모두 우리가 눈여겨보던 참가자들이라 나중에 붙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미 만난 이상 결과는 내야겠죠.”
이성철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윤종수를 쳐다봤다.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갈렸어요. 무효표 하나가 나오고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지목했어요. 강경수 참가자, 합격입니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강경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 난 듀엣이랑은 인연이 없나 봐.’
“신예성 참가자.”
“네.”
“왜 그렇게 시무룩해요?”
“아쉬워서요.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지금 그 마음을 잊지 말아요. 그게 좋은 가수가 되는 원동력이에요. 가수 활동을 하다 보면 정말 완벽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무대를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죠. 이후에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항상 후회 없는 무대를 준비하세요.”
“네?”
‘이게 무슨 말이지? 나 혹시 불합격이 아닌가?’
“모두 이번 미션에서 신예성 참가자가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에 뜻이 맞았어요. 팀도 너무 성향이 다른 참가자와 맺어져서 불리했죠.
그래서 이성철 심사위원이 가진 슈퍼패스 카드를 신예성 참가자에게 쓰기로 했어요.”
“그······.그럼 합격인가요?”
“네. 다음 미션 때 봐요.”
고미 심사위원의 미소 띤 응원에 그 순간만은 정말 고미씨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였다.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심사장을 나서며 기쁨도 가라앉았다.
대신 저절로 자신의 부족함에 마음이 불편했다.
‘역시 노래는 쉽지가 않아. 준비한 대로 되었으면 이런 마음이 들지는 않을 텐데.’
강경수 참가자의 땡깡에 자신이 불리할 거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비한 것마저 실수할 줄은 몰랐다.
‘분위기에 휩쓸린 거야. 내가 그 사람이랑 다시 상종하면 성을 간다. 정말 자기밖에 몰라.’
하지만 다시 숙소로 가면 봐야 하는 신세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다.
예성이 어렵게 본선을 통과하고 있을 때 나은태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동욱아, 몇 프로라고?”
“5.7%입니다.”
“푸힛, 후하하, 동욱아, 몇 프로라고?”
“5.7%입니다.”
“동욱아”
“아, 진짜 직접 봐요.”
김동욱이 나은태에게 종이를 내던졌다.
“야, 그래도 내가 총괄 피디인데 던지는 건 좀 아니지.”
“그럼 종일 이러고 있을 거예요? 곧 테이프 넘어올 겁니다.”
“야. 그런데 정말 대박이다. 만찢남이 그렇게 히트할 줄이야.”
“얼통령이라잖아요. 제가 그 학생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 어머, 이놈은 꼭 출연시켜야 해. 느낌이 빡 오더라니까요.”
김동욱의 말에 나은태는 웃음을 보였다. 김동욱이 큰일을 해냈다.
거기다 예고편에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게 유효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얼굴이기에 만찢남이라 불리는지 궁금해서 너도나도 검색을 해대기 시작하자 검색어에 ‘목동고 만찢남’이 올라갔다.
그리고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얼굴이 노출되자 난리가 났다.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잘생김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연히 사진으로도 이렇게 잘생겼는데 실제로 움직이면 어떨지 궁금해 TV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차 예선의 샤방사방이 나오자 더욱 난리가 났다. 남자들은 욕을 하기 위해, 여자들은 감상하기 위해 본방송이건 재방이건 가리지 않고 보았다.
과도한 잘생김은 적과 아군을 확실히 구분 짓게 했다.
그리고 박도빈도 보았는지 SNS에 ‘졌다. 내가 이긴 것은 노래밖에 없다. 자신하는 얼굴에서 졌다는 게 뼈아프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런 시청자에다가 신예성의 일이 추가되자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설마 하던 방송의 뒷이야기가 실제로 방송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부모를 욕되게 하기 싫어 방송을 거부하는 어린 참가자, 그런 어린 참가자에게 강요하는 스텝. 절로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미 예성의 탈락이라는 뉴스가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합격한 예성이 왜 지하철에서 자고 있었는지 알게 되자 시청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 방송이 되기 전에 예성의 인터뷰와 노래로 인해 시청자들에게는 아, 고놈 참, 말 예쁘게 하네. 라는 인식이 생겼는데 그런 예성을 괴롭히는 스텝이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에 방송국은 시청자 게시판에 공지로 스텝이 근신처분을 받고 퇴직하게 된다는 사실을 적어 올렸다.
하지만 이제 정신 차렸다는 의견보다는 왜 꼭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수습하느냐며 욕만 얻어먹고 있었다.
이 희대의 방송(?)사고에 기자들은 마구 기사를 써 갈겼다. 그리고 이때쯤에 예성이 녹음했던 ‘어머니에게’ 음원이 발표됐다.
음원은 나오자마자 지붕 킥을 연달아 시전하면서 1위로 우뚝 서는 기염을 토했다.
“크크, 사이다 소년이라니. 참 멋진 말이야. 그지 동욱아?”
신예성은 방송이 나가자 사이다 소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신예성이 스태프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대꾸하면서, 이건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는 말을 남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에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자신을 갈구는 상사의 얼굴에 사표를 던지면 이런 기분이 들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자들의 사이에서는 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이라고 불렸다. 역시 실력이 있고 봐야 한다. 아쉬우니 방송사도 어쩔 수 없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하지만 신예성을 까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방송이 나가고 그다음 날 신예성이 다시 슈스케에 참가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났다.
시청자들도 예성이 다시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말에 본방송 사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게시판에 흘러넘쳤다.
“덕분에 우린 배 터지게 욕먹고 있지요.”
“욕먹는 거 하루 이틀이냐? 그냥 아, 일찍 죽을 일 없겠다고 생각해.”
“오늘 촬영분 왔습니다.”
“크크, 올 것이 왔군.”
나은태의 음침한 웃음에 김동욱이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악당 같은 거 아세요?”
“우린 악당이야. 몰랐어?”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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