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61
56. 일상으로
[혼자라고 얕보지 마. 너 없이도 잘살아!나 혼자 극장가고 나 혼자 쇼핑을 해.
너와 사귀느라 끊어졌던 친구들도 다시 만나 너를 그리워하는 눈물은 아까워 흘리지 않아.
혼자서도 잘 살아. 우워~우워~우우우~]
예성은 몸에 있는 산소를 모두 뱉어내듯 두성으로 고음을 뽑아냈다.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지니 어지어질 한 느낌마저 들었다.
‘고음을 지르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더니 이런 느낌이구나.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이제 공연이 끝났는데 쓰려지면 그보다 볼썽사나운 모습은 없을 것이다.
공연을 마치니 몸은 힘들지만 속은 후련했다.
탑4가 결정된 다음날 예성은 이기호 본부장의 방문을 받았다.
“어쩐 일이세요?”
예성의 말에 이기호 본부장은 곤란한 표정을 잠시 짓다가 말했다.
“예성학생, 약속했던 그날이 오고 말았어.”
“네? 저랑 무슨 약속을 했다고 그래요? 계약을 했다고 하면 모를까?”
“어허, 예성학생,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잊었어?”
오랜만에 뜬금없이 찾아와 생뚱맞게 뜨거운 태양이라니.
“제가 본부장님과 태양빛아래 있은 적이 있던가요?”
“비유잖아. 기억 안나?”
“본부장님과 나눈 대화라고 해봐야······. 설마 아름다운 패배요?”
“그래. 그거야.”
“설마 때가 되었다는 말은 저보고 떨어지라는 말인가요?”
내가 놀라 말을 하자 이기호 본부장님은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놀라? 이미 이야기 다 된 상황이잖아?”
“그게 그런 상황이긴 한데, 그럼 우리 엄마에게 바람은 왜 넣으신 거예요? 저는 그걸 우승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잖아요.”
“아!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나? 하지만 그건 아니지. 예성학생. 내가 말했잖아. 우승하면 곤란하다고, 어머니의 발언은 예성학생의 우승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지금 떨어지는데 엄마 보고 그런 기부를 하라는 말을 하게 만든 건가요?”
내 음성이 올라가자 본부장님은 진정하라는 듯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흥분하지 마. 예성학생, 어머님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야. 그냥 희망사항을 이야기 한 거지.”
“그런데 본부장님, 어차피 기부를 하면 우승을 하게 되도 상관없지 않아요?”
“아주 상관있어. 저번에 말했듯이 저작권을 우리가 갖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네. 덕분에 저도 손해 보는 것 없이 저작권료가 나온다고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그렇지. 예성학생, 알다시피 우승자에게는 심사위원이 참가하는 호화음반제작이 부상으로 주어져. 그런데 저작권을 우리가 가졌어. 그럼 방송국과 심사위원들이 음반에 참여하고 싶을까?”
본부장님의 말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럼 안하나요?”
“그래.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해. 이미 슈스케가 시작할 때 우승자 음반제작의 지분이 모두 나누어졌거든. 방송은 철저한 비지니스야.”
“아! 저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하기에 우승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잖아요.”
“저런, 예성학생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어. 그냥 알다시피 예성학생이 사이다로 이슈가 되었잖아? 애초에 원인이 된 게 뭐야? 가족이잖아?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이 가족에게 쏠리게 된 거야. 그러니 어쩌겠어? 가족의 이미지를 생각해야 하잖아.”
“그래서 그게 기부를 하는 행동으로 나온 건가요?”
“그래. 우승상금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이야기에 얼마나 반응이 좋았는지는 예성학생도 잘 알잖아?”
“네. 저도 검색으로 살펴보긴 했어요.”
“그래. 예성학생의 이미지는 지금이 아주 좋아. 거기다 음원성적도 좋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 애초에 내가 얻고 싶었던 성과 그 이상을 내었어.”
“그거야 운이죠.”
“예성학생, 연예계는 운도 실력이야. 연예인 중에 미신을 신봉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부적에다 굿, 예성학생이 말한 그 운을 가지기위해 별 짓을 다하는 곳이 연예계야. 그러니 운을 무시하지 마.”
“네.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떨어지고 싶다고 떨어질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예성학생이 마음만 먹으면 돼. 그리고 이거 받아.”
본부장님은 나에게 USB를 나에게 내밀었다.
“우리 기획사에 레드엔젤이라는 걸 그룹이 있다는 것은 알지?”
“네. 당연히 알죠. 7인조 아이돌이잖아요.”
GJ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하고는 누가 있는지 알기 위해 나름 검색을 했다.
그중 레드엔젤은 작년에 데뷔한 아이돌 그룹이다.
작년에 데뷔를 하고 활동을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리고 올해도 싱글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차트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노래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 여기 USB에는 레드엔젤이 부른 ‘두고 봐’ 라는 곡이 담겨 있어. 일차적으로 장프로듀서가 예성학생이 부를 수 있게 편곡을 해놓았어. 이걸로 탑4에 나가”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탈락하게 되겠지.”
“노래가 그렇게 형편없어요?”
나는 레드엔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노래는 모른다. 그런데 부르면 탈락이라니? 얼마나 엄청난(?) 노래기에 이리도 자신을 한단 말인가?
“예성학생 그게 아니야. 아이돌 노래를 무시하는 것 같은데 지금 K팝을 이끄는 것이 아이돌 뮤직이라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지?”
“그런데 왜 탈락한다고 확신해요?”
“예성학생 내가 누누이 말했었지. 내용은 중요한 게 아니야. 보이는 게 중요해.”
본부장님의 말에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항! 또 뭔가 하신 거군요?”
“예성학생 눈초리가 불손해.”
“제 눈초리가 왜요?”
“사기꾼을 경계하는 눈빛이야. 내가 이러는 이유가 바로 약속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그러는 거라는 걸 몰라?”
“상황이 변하면 대처도 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변해서 지금까지 그냥 뒀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예성학생 내가 처음부터 말했듯이 예성학생은 우승을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리고 할 수도 없다고.”
“알죠. 그런데 아쉬워서 그래요.”
많은 일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포기라니. 더구나 기권의 야망을 접은 이 시점에, 기분이 묘하다.
들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슈스케가 오디션만을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도 그냥 참가자는 아니지 않은가?
“예성학생 처음 하는 방송이라 애착이 가는 것은 이해를 해. 이제 시작이야. 그런데 너무 방송에 연연해 하지 마. 음악에 연연해하는 것은 상관이 없어.
하지만 방송은 아니야. 이번처럼 사정으로 하차할 수도 있고, 그냥 하차 당하는 경우도 많고 방송 폐지되는 경우도 많아. 그럴 때마다 이러면 버티지를 못해. 멀리 봐야지.”
이기호 본부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런데 USB에 든 노래 편곡은 해도 되요?”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
마치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결승에 오를 수 없을 거란 믿음이 있는 모습이다.
“가만 그러면 지금 우승자는 정호영씨로 결정이 났다는 소리예요?”
주혜영과 고형중은 기획사 소속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럼 남은 이는 정호영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내말에 이기호 본부장님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상황이 보이나봐. 맞아.”
정호영이라니, 정말 예상 밖의 우승자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마 슈스케에 참가해서 가장 실력이 발전한 사람이 바로 정호영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그 사람······.’
“딱 나은태CP님이 말하던 사람이네요. 시골에서 올라와 알바를 하면서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래.”
“더 하실 이야기 있으신가요?”
“아니, 넌 할 이야기 없어?”
“네.
본부장님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솔직히 상황이 바뀌지 않았나 하는 나의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래.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하잖아. 거기다 내 힘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니까 아쉬워 할 필요도 없어. 본부장님 말씀대로 얻으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 가잖아.’
다음 날이 되어 군보형과 만났다.
그리고 노래를 들려주었다.
“어때요?”
“좋은데, 그냥 락이네.”
“그렇죠? 하지만 뒷부분에 고음을 더 늘였으면 해요. 제대로 고음병자 행세를 하려고요.”
“목에 무리가지 않겠어?”
“괜찮아요. 제대로 소리 한 번 질러보고 싶어요.”
“갑자기 왜 이래? 오늘만 살 것처럼. 결승은 생각하지 않아?”
“일단 저 스스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요.”
“이제까지 한 건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아?”
“그건 아닌데 기왕에 하는 오디션이니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알았다.”
*****
내 노래가 끝나고 심사평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정말 파격적으로 편곡을 했어요. 걸그룹 노래를 락으로 편곡하다니, 신예성 참가자의 도전 정신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하지만 너무 파격적이다 보니 오히려 신예성참가자의 색깔이 많이 죽어버리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누가 뭐라고 해도 신예성 참가자의 장점은 가사를 통한 감정전달이 장점인데 이번 미션에서는 그 부분에서 많이 미흡함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제 점수는요.”
이성철 심사위원을 시작으로 모든 심사위원의 점수가 공개 됐다.
80. 85, 84, 86
평균 점수 83.7을 받았다.
내가 꼴찌였다. 그리고 시청자투표점수가 나오고 나서 확인을 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나는 슈스케에서 탈락을 했다.
그리고 결승전에는 정호영과 고형중이 올라갔다.
약속된 탈락이지만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기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처음 숙소에 들어와 기뻤던 일과, 형들과의 경연 가족들의 방문 등 많은 추억이 떠올랐다.
그냥 마냥 바쁘게 지내기만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기억에 남는 일은 많았다.
짐을 챙기고 밖에 나오니 남은 두 참가자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두 분만 남았네요.”
“그러게 쓸쓸하네.”
“화이팅 하셔서 꼭 결승전다운 모습을 보여주세요.”
“조심해서 가라.”
“네”
카메라가 돌고 있기에 긴 말은 생략했다.
나는 캐리어를 끌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음을 옮겼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남자가 멋진 남자가 아니겠는가?
숙소를 나오니 본부장님과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그동안 수고했어.”
엄마가 다가와 나를 꼭 안아준다.
“죄송해요. 엄마가 기부할 수 있게 만들어 드렸어야 했는데.”
“아니다. 오히려 다행이야. 안하던 행동하면 일찍 죽는다는 말도 있잖니?”
“어허, 그럼 이 아들이 본의 아니게 효도한 셈이구려.”
“어이구 오라버니, 떨어졌으면 침통한 표정이라도 좀 그래야 하는 거 아니우?”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아니겠어?”
“대단하긴 개뿔, 누누이 말했듯이 올 오어 낫씽. 오빠는 낫씽인데 뭐가 대단해?”
“왜 낫씽이라고 생각해? 차트에 남은 노래가 몇 갠데. 안 그래요? 본부장님.”
“맞아. 예성이는 상금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으니까 충분해.”
“그건 아니죠. 상금도 얻었으면 더 좋죠. 아저씨”
“그게 가지고 싶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만 차에 타자.”
이기호는 말을 길게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서둘렀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네. 본부장님”
차가 출발하자 옆에 앉은 동생이 나를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뭘 보냐? 오랜만에 보니 오라버니의 잘생긴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지?”
내가 동생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말하자 동생은 얼른 얼굴을 물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오빠의 성격상 지금쯤이면 징징거리면서 짜증을 부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여유로운 얼굴이야. 이건 냄새가 나.”
동생이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으면서 말했다.
“냄새는 무슨? 킁킁! 방구 꼈냐?”
다시 예린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킁킁거렸다.
“오빠! 그 냄새가 아니거든.”
“아니면 말지. 소리는 왜 질러? 오빠 피곤하니 눈 좀 붙일게.”
나는 얼른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괜히 어울려 봐야 손해 보는 것은 나였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본부장님이 창을 열고 나를 쳐다봤다.
“예성학생, 내일은 푹 쉬고 모레부터 학교에 가면 돼. 내가 그렇게 말해놨으니까. 그리고 내일 저녁 때 다시 나 좀 보자. 이야기 할게 있으니까.”
“네. 본부장님”
“그럼 푹 쉬어. 이만 간다.”
“안전 운전 하세요.”
본부장님이 가고 나자 나는 짐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들 밥 먹을래?”
“아니, 오늘은 그냥 잘게. 피곤해. 모든 것은 내일 일어나서 시작할게.”
“누가 들으면 할 게 엄청 많은 사람인 줄 알겠어. 학교도 안가면서.”
“그래. 난 안 가지. 학교 가서 할 게 많은 너는 그냥 좀 닥치고 들어가서 자면 안 되겠니?”
“그래. 딸, 오빠 피곤하다고 하잖아? 내일 괴롭히고 들어가서 자.”
“엄마, 괴롭히는 거 아니거든?”
“그렇다고 치자.”
“치긴 또 뭘 그렇다고 쳐?”
“먼저 들어간다.”
이런 꼬투리 잡는 대화는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얼른 방으로 피신했다.
내 방인데도 오랜만에 들어오니 낯선 느낌이 든다. 짐을 한 켠에 두고 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제 끝이 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