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81
76. 광고 >
“다 왔다.”
“여긴가요?”
말을 하면서 내다보니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였다.
나는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여긴가요?”
“그래. 여기야. 스튜디오 촬영을 먼저 하고, 피자가게에서 촬영하게 될 거야.”
스튜디오라니, 분명 촬영대본에서는 길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찍는 장면이었는데.
“아! 그건가?”
“뭐가?”
“CG 촬영인가요?”
“글쎄, 그건 감독 마음이니까. 들어가자.”
스튜디오로 들어가니 스텝으로 보이는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자 드디어 내가 광고 촬영을 하게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아무렇지 않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잘해야 할 텐데···.’
본부장님의 뒤를 따라가자 나는 한 사람의 앞에 서게 되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GJ에서 왔습니다.”
“오셨어요?”
피곤한 얼굴의 김명식 감독이 고개를 들고 우리를 봤다.
“일찍 오셨네요.”
말을 하며 본부장님의 뒤에 서 있는 나를 보는 느낌이라 얼른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신예성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촬영을 주도하실 이분은 2015년 KOREA 아이디어 페스티벌 대상을 받고 여러 분야의 광고를 히트시킨 분이다.
“그래. 광고는 처음이죠?”
“네.”
“촬영대본은 봤어요?”
“네. 처음이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긴장한 모습을 보고는 김명식 감독은 웃음을 보였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간단한 촬영이니까. 편하게 생각하고 촬영에 임하면 됩니다.”
피곤한 얼굴로 편안한 웃음을 보이면서 말씀하시는 감독의 모습에 가슴 한쪽으로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다행이다. 꼬장부리는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아.’
나름대로 광고 쪽은 아니지만, 예성은 감독에 관해 이야기를 제법 들었다. 상우가 아르바이트를 뛰고 오면 항상 자신이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시시콜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 눈에 공원을 축소해 놓은 듯한 미니어처가 보였다. 미니어처는 무척 세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공원과 그 밖의 빌딩이나 가게도 마치 실제로 축소해 놓은 것처럼 실제 모습과 똑같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 마스터 피자가게도 있었다.
“히야, 엄청 잘 만들었네. 아!! 그렇구나.”
말을 내뱉다가 머릿속에 오늘 촬영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게 되었다.
“왜 그래?”
“아뇨, 그냥 오늘 제가 어떻게 촬영이 될지 알게 된 것 같아서요.”
“그래?”
“네. 제가 이 미니어처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
“네가 여기에?”
본부장님이 손가락으로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공원을 가리키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본부장님도 사진 찍을 때 해보지 않았어요? 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으면 사물의 크기가 차이가 나잖아요?
가령 손가락을 카메라 렌즈 앞에 놓고 사람을 찍으면 마치 거대한 손가락이 작은 사람을 누르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착시효과처럼요.”
“아! 그럼 오늘 이게 거기에 쓰이는 건가?”
“그런 것 같아요. 촬영대본에 봤을 때 눈이 오는 동네에서 헤어지던데, 오늘 눈이 안 왔잖아요? 그래서 배경이 바뀌었나 생각을 했는데 이런 방법으로 촬영하나 보네요.”
“그럼 여기 미니어처에 눈 스프레이 같은 거 뿌리면서 촬영하는 건가 보네.”
본부장님도 내 말에 눈치를 챘는지 미니어처를 신기한 눈으로 보면서 말했다.
“그럴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하네요.”
“알아보는 신예성 씨가 신기하네요, 보통은 그런 쪽으로 연결을 잘 못 하는데.”
우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감독님이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전문가 앞에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직 어린데 존댓말 하시면 제가 부담스러워서요.”
“이게 편하니까 괜찮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광고 촬영의 진실이라는 기사를 본 게 문득 떠올라서요. 거기에 촬영하는 사진이 올라왔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 게 있어요?”
궁금해하는 감독님의 표정에 얼른 핸드폰을 꺼내 기사를 보여 주었다.
“아, 이런 게 다 있었네요.”
“저희 친구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았어요. 아이디어로 봐야 하는 거냐? 사기라고 해야 하나? 거의 토론이 벌어졌죠.”
내 말이 웃긴다고 생각했는지 김명식 감독은 웃음을 보였다.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죠. 알면 아무것도 아닌지만 모르면 어떻게 이런 장면을 찍을 수 있을까 감탄을 하게 되죠.”
“그런데 감독님, 이렇게 촬영을 하면 가짜가 표나지 않나요?”
“그냥 찍으면 그렇지요. 하지만 조명이 들어가고, 프레임 수를 늘려 고속촬영하면 실제처럼 보이게 돼요. 거기다 요즘은 컴퓨터로 3D 효과를 보강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처럼 찍는 게 감독의 역량이죠.”
“마치 영화 촬영하는 것 같네요.”
“비슷하죠. 광고는 15초의 영화나 다름없으니까요. 음, 씬 스틸에 가깝겠군요. 잠깐의 등장으로 모든 이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니까.”
“감독님 말씀이 맞네요. 씬 스틸. 그럼 전 씬 스틸러가 되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되면 좋죠. 오늘 좋은 씬 부탁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구 부려 주세요.”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성희야!! 신예성 씨 준비 좀 도와드려.”
한쪽에 서 있던 30대의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네. 이쪽으로 오세요.”
“네. 그런데 아직 상대 배우인 우주 선배님이 안 왔는데요?”
“우주 씨는 오후 촬영장에서 보게 될 거에요.”
“그럼 이 장면은 저 혼자 하는 건가요?”
“네. 기대되죠?”
눈을 찡긋거리면서 나에게 말하는 뽐새가 참.
‘성희 씨라면 참 기대되겠어요.’
분명 놀리는 거다. 이건
성희 씨의 말로는 나와 우주 선배님을 따로 촬영해서 나중에 합친다고 했다.
한 번에 하면 될 걸 왜 이렇게 번거롭게 하느냐고 물으니 이게 화면이 더 예쁘게 나온다고 한다.
아무래도 미니어처기법을 써서 그런가 싶다.
성희 씨의 안내에 따라 준비를 마쳤다. 메이크업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아니 분장인가?
추운 겨울에 이별하기에 빨간 볼 터치도 받고, 입술도 추운 날씨에 맞게 붉은 기운을 죽였다.
그리고 눈이 오는 날의 개념에 맞게 온몸에 눈을 맞은 것처럼 곳곳에 눈이 뿌려졌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내 몸을 유린당하고 있으니 내 눈은 자연이 나의 보호자인 본부장님을 따라 움직였다. 본부장이 내 눈빛을 봤는지 나에게 다가와 말을 했다.
“예성아, 잘할 수 있지?”
“네. 물론이죠.”
“그럼 그렇게 알고 간다.”
“네? 저만 여기 두고 가신다고요? 제가 아무리 잘할 수 있다고 대답해도 가시면 안 되죠.”
“나도 일해야지. 석태를 보내줄게.”
“하아, 알았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본부장님이 가고 나 홀로 남자 긴장이 된다. 낯선 곳에 나 홀로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감독님 끝났어요.”
“그래? 신예성 씨, 이쪽으로 와봐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말해줄 테니.”
“네. 감독님”
내가 감독님에게 가자 감독님은 나를 꼼꼼히 살펴보셨다.
그리고 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더 뿌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고는 나에게 촬영에 관해 이야기했다.
촬영은 내가 미니어처와 겹쳐지게 서서 한마디만 하면 되었다.
바로 ‘그래.’ 이 한 마디였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간단한 촬영은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컷! 신예성 씨 표정이 너무 굳었어요. 지금 차이는 장면이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무덤덤한 표정은 아니잖아요? 촬영대본에서 봤듯이 헤어지기 싫지만, 그녀를 위해 헤어지는 장면이에요.”
“네. 감독님”
표정이 굳었다고 멈추고, 대사에 감정이 없다고 멈추고 땀이 나서 멈추기도 했다. 겨울에 추운 스튜디오에서 땀이라니, 어이가 없지만 내가 지금 그런 상황이다.
눈이 쌓일 정도로 많이 오는 곳에서 이별하는 장면이라 나는 목폴라에 목도리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다 조명이 나에게 딱 붙어 있어 정말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얼굴에는 땀 한 방울이지만 이미 몸속은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한겨울에 땀이라니, 나 혼자 여름에 사는 느낌이다.
여러 번의 NG에도 감독님은 여유 있는 목소리로 집중하자는 말씀만 하셨다.
다른 이들도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다. 애초에 단번에 끝나지 않을 것을 예상한 모양이다. 나 혼자 미안하고 속 타고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물 마셔요.”
지켜보고 있던 성희 씨가 물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힘들죠?”
많은 의미가 내포된 느낌이다. NG를 계속 내면서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네요. 그저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쉽지가 않네요.”
“광고는 쉽지 않아요. 영화나 드라마는 지나가는 한 장면일 뿐이지만 광고는 그 한 장면이 전부이기도 하니까요. 감독님이 땀을 식히고 다시 가자고 하시네요.”
“네. 죄송합니다.”
말하고는 얼른 꼭꼭 잠갔던 외투를 열어젖혔다. 차가운 바람이 몸속으로 들어오니 이제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저희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대신 집중하세요. 상대 배역이 없어서 힘들 수 있겠지만 가수잖아요?
노래할 때 보니 표정이 살아있던데, 노래한다고 생각하고 감정을 잡아요.”
“네.”
노래하듯 이라, 그러고 보니 다른 게 아니다. 그냥 가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나는 감성을 노래하는 발라드가수가 아닌가? 그냥 이별 노래의 한 소절을 부르는 감정으로 말을 하면 되는 것이다.
“누나 좋은 말씀이세요. 제가 왜 그렇게 생각을 못 했을까요?”
“본래 훈수 두는 사람이 잘 아는 법이죠. 그럼 다시 시작할까요?”
“네.”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땀을 흘리지 않게 선풍기가 동원되었다. 이 겨울에 선풍기라니···. 헐
“컷, 좋아요. 그럼 클로즈업으로 다시 한번 갈게요.”
“네.”
촬영은 이 한 장면을 여러 각도로 찍었다. 나중에 합성할 것이기에 여러 각도로 찍은 다음 우주 선배님이 찍은 것과 제일 잘 어울리는 것으로 화면을 만든다고 한다.
“컷! 수고했어요. 신예성 씨.”
끝을 알리는 감독님의 말에 나도 큰소리로 대답했다.
“감독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대답을 해드리고 스텝들을 향해서도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하나가 끝났네. 내가 광고를 너무 만만하게 봤나 봐.’
내가 찍은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16초의 광고 중에 5초를 넘기지 않을 것 같은데도 한 시간이 넘게 촬영을 했다. 준비시간까지 치면 두 시간이 넘을지도 모른다.
“이제 갈아입어도 돼요?”
“그래. 얼른 갈아입어요. 춥죠?”
성희 씨의 말대로다. 나는 탈의실로 들어가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땀에 젖은 옷이 차가웠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 누나에게 물었다.
“이제 피자가게 촬영을 하러 가는 건가요?”
“아니, 밥 먹고 가야죠.”
“제 밥도 나오나요?”
“여기서 먹게요?”
“보통 같이 먹지 않나요?”
“글쎄, 그런 연예인도 있고, 아닌 연예인도 있죠.”
“저 매니저가 아직 안 와서 움직이지 못해요.”
내 우울한 표정이 웃긴지 성희 씨가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다.
“짜장면 보통이면 되죠?”
“곱빼기는 먹어야죠. 돌도 씹어먹는 나인데?”
“나중에 피자 엄청 먹어야 할 텐데.”
내가 촬영한 모습을 봐선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성희 씨가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피자 먹는 장면이 없는데.
“네? 그런 장면은 없었는데?”
“아 촬영대본에는 없어요. 이건 보너스 영상이라서.”
“그래요?”
“가끔 광고 길이보다 더 길게 들어가야 하는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용으로 붙여넣는 영상이에요. 영상은 신예성 씨가 포크로 치즈를 들어 올리면서 끝나잖아요?
보너스 영상은 그 후를 담는 거죠. 우주 양과 신예 성씨가 같이 앉아서 웃으며 피자를 먹는 장면이요.”
“아! 그런 것도 찍네요. 몰랐어요. 점심을 굶는 게 나을까요?”
슬며시 걱정이 든다. 그래 한마디를 하는데 1시간이 넘었는데 피자는 또 얼마나 먹어야 할까? 설마 모 연예인처럼 소화제 먹어가면서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 건 스스로 정하는 거죠.”
성희 씨의 말에 나는 굶기로 했다.
밥을 굶고 다음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석태 형이 오지 않아 스텝들 차량에 타고 가게 되었다.
그곳에 가니 상대역인 우주 씨가 이미 와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얼른 가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늘같이 촬영할 신예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걸스패밀리의 우주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선배님, 말씀 놓으세요. 후배인데.”
“그래도 될까?”
“네. 그게 저도 편해요.”
“그러자. 그럼.”
“네.”
“촬영 어땠어?”
“제가 처음이라 그런지 엄청 힘들었어요. ‘그래’라는 이 한마디 하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어요. 오늘 저 때문에 고생하시게 되도 양해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마. 나도 만만치 않으니까. 거기다 이 감독님이 꼼꼼한 감독이라고 소문난 감독이라서,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그런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너 좋겠다. 이 광고에 네 노래가 CM송으로 들어간다고 하던데.”
“네? 제 노래요?”
“그래. 이번 콘서트에서 불렀던 노래. 처음에는 25분이라는 곡이었는데 감독이 네 노래를 듣고는 바꿨다고 하더라. 러브송이니 광고랑 잘 맞기는 하잖아.”
“헤에, 처음 들어요.”
“촬영 들어갑니다.”
“가자.”
“네.”
촬영에 임하자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NG의 연속이다. 나도 그렇고 우주 선배님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는 치즈가 문제였다.
대사를 하는 와중에 치즈가 자꾸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 선배는 자꾸 내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기에 NG가 났다.
“좀 그만 웃으시죠. 이제 적응 되실 만도 하잖아요.”
“미안, 네 표정이 웃긴 걸 어떻게? 넌 어떻게 이런 오그라드는 대사를 진지한 표정으로 하니? 혹시 나 좋아해? 그러지 마. 난 만인의 연인이라 네 사랑을 받아줄 수 없어.”
“허허허, 선배님,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왜? 나 안 아픈데.”
“그 약도 없다는 도끼병 환자를 내가 보게 될 줄 몰랐어요. 설마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뭐야?”
우주 선배와 촬영을 하면서 점점 친해졌다. 누나도 나도 우리가 편해져야 촬영이 쉽게 끝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치즈와 같은 거야. 뜨거울 때는 붙어서 떨어지지 않지만, 식으면 끊어져 버려. 우리 사랑은 어느 쪽일까?”
내가 대사를 치면서 우주 선배를 보자 누나가 아련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아.’
“컷! 수고하셨어요.”
“끝났다.”
“아직 남았잖아. 먹는 거. 이거는 제발 한번에 가자. 예성아, 이 누나 다이어트 중이거든.”
‘표정이 궁서체야. 이건 진심이다. 하지만 나는 이때를 위해 밥도 굶었는데. 남의 사정이냐? 내 사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도 나보다는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무지 배가 고프다. 촬영장에서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그렇다. 그리고 지갑에 돈도 없다. 애초에 석태 형에게 길이 들어 돈을 갖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게 문제다.
‘그래. 내 사정이 먼저야.’
이렇게 생각하고 NG를 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 석태 형이 온 것이 내 눈에 보였다.
‘우주 선배, 운이 좋았네요.’
일찍 끝내고 석태 형이랑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내식성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컷! 다시 갈게요.”
우주 선배가 나를 날카롭게 노려본다.
“이봐 후.배.님 지금 나 테러하는 거지? 내가 군살을 뺀다니까 너 어디 한번 죽어봐라. 이런 거지?”
“아닙니다. 선배님, 제가 어찌 감히?”
“그런데 왜 그렇게 걸신들린 것마냥 먹는데? 사랑스럽게 먹어야 할 것 아니야?”
“죄송해요. NG 날 걸 대비해서 점심을 걸렀더니 본능이 이성을 이겨버렸어요.”
“헐, 이런 미련한 중생을 봤나?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을 굶어?”
“군살을 빼는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먹으면서 하고 있거든. 그래서 양 조절이 중요한 거야. 그런데 너 때문에 망했어.”
“이왕 망한 거, 먹고 내일부터 새마음 새 뜻으로 하는 게 어떠세요?”
“내일이라고? 네가 내일이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나 본데?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아.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이야. 그래서 지금이 소중한 거고.”
이 선배에게는 다이어트가 정말 중요한가 보다.
“헐. 죄송해요. 이제 배가 찼으니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감정 잡고 한꺼번에 갈게요. 누나도 그러니 집중하세요.”
내 말에 또 뭐가 잘못됐는지 우주선 배는 또 화를 낸다.
“이······. 이 자식이, 이제 실컷 먹었다는 거냐?”
아 나보고 어쩌라고, 먹는다고 화내고, 그래서 안 먹고 한 번에 끝내겠다고 해도 화내고.
역시 내 동생만 그런 게 아니라 여자는 다 이런 건가?
“저기 선배님 말투가 변했는데요?”
“너 GJ인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우리 소소뮤직이었으면 뒤졌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냥 촬영 중에 NG가 날 수도 있는 거지.
“선배님, 사람들이 봐요. 웃어요, 웃어. 미소 천사잖아요.”
그제야 주위가 의식되는지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조그맣게 입술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두고 보자.”
“…”
유구무언이다.
촬영이 다시 시작되어 한번에 오케이를 받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주문을 던졌다.
“네? 그건 곤란하지 않은가요?”
나는 말을 하면서 우주 선배를 봤다.
“괜찮아. 실제 하는 것도 아니고 시늉만 하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스파게티 뽀뽀를 주문했다. 실제 하라는 소리는 아니고 시늉만 하는 것이다. 약간 고개를 틀고 닿을 듯 말 듯한 것이 포인트다.
스파게티 면발로 우주 선배의 입술과 내 입술에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자 나도 모르게 그만 끊어버리고 말았다.
“컷! 다시 갈게요.”
감독의 말에 우주 선배가 또 복화술을 시전했다.
“야, 제발 한 번에 가자.”
“죄송해요. 제가 이런 경험이 전혀 없어서.”
“뭐야? 그럼 나는 경험이 많아서 이러고 있는 거야? 너 말 이상하게 한다.”
아! 이 여자 피곤한 여자다. 왜 이리 물고 늘어지는 거야. 동생과의 생활을 볼 때 길게 끌어봐야 나만 힘들다.
“죄송해요. 다음번에 잘할게요.”
“아니야. 넌 일부러야. 내 다이어트를 망치기 위해서 그런 거지. 안 그래?”
“제가 누나를 언제 봤다고 그러겠어요? 정말 이번에 잘할 거라니까요?”
아무래도 이 여자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가 보다.
따끈한 스파게티가 다시 오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입술이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누르느라 온 힘을 기울였다. 이번에 끊어버리면 정말 폭발할지도 모른다.
내가 꾹 참고 있는 와중에 사람들이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우주 선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지금 닿았지?”
“그런가? 설마”
“컷! 수고했어요.”
“감독님, 지금 닿았죠?”
“아뇨. 안 닿았어요.”
감독은 말을 하고는 우주 선배를 쳐다봤다.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우주 선배는 또 웃는 얼굴을 보이면서 복화술을 시전했다.
“너 이거 죽을 때까지 비밀이다.”
“말할 때도 없어요. 그리고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어차피 그냥 사고잖아요.”
“뭐야?”
또 뭐가 불만인 거야? 아, 첫인상이랑 전혀 다른 사람이다.
역시 좋은 여자는 하늘에 계신 오드리 헵번님밖에 없는 걸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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