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82
77. 지금은 라디오 방송중(1) >
“네. 지금 촬영 끝났습니다. 네. 네. 말씀한 대로 바로 집으로 데려가겠습니다. 그런데 본부장님, 약간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촬영 중에 우주 씨와 예성의 입술이 닿았습니다.”
촬영이 무사히 끝났다는 보고를 듣다가 이기호는 석태의 마지막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뭐? 예성이에게 그런 빅이벤트가 열렸다고? 찍었어?”
“네? 그걸 제가 왜 찍습니까?”
“아우~ 이런 미련한 놈을 봤나? 그런 건 찍어놔서 두고두고 자료로 써야지. 아니 촬영 중에 생긴 일이니 감독에게 영상이 있겠구나. 일단 알겠다.”
“그런데 촬영장에서 없었던 일로 하자는 분위기인데 말입니다. 당사자들도 그렇고.”
“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지. 이미 발생한 시점에서 끝난 거야. 우리 쪽이 아니더라도 저쪽에서 먼저 써먹을 거야.
거기다 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게 감춰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사자의 생각은 중요한 게 아니야. 스캔들이 아니라 해프닝이잖아. 소소뮤직도 옳다구나 하고 있을걸.”
화제에 목마른 것은 어느 기획사나 마찬가지다.
한 번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는 것이 인지도가 생기는 일이다. 특히 이런 일은 더 그렇다.
그냥 광고 촬영을 했다. 이런 식의 무미건조한 기사보다는 촬영현장에서 이런 일이? 라는 사람들에게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더구나 예성은 지금 검색어에 올라있는 상태. 인기로 따진다면 우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런 우주라도 이 시기에 기사가 쏟아질 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예성은 하태핫태한 상황, 그런 상황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그냥 넘길 이유가 없다. 스캔들이라면 이미지에 타격이 가서 쉬쉬하겠지만 이런 일은 오히려 터져줬으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습니까?”
“예성이는 어때?”
“그냥 피곤해 보이네요. 촬영이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 일단 집으로 잘 데려다줘.”
“네, 알겠습니다.”
석태는 전화를 끊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성의 모습을 보았다.
“힘들었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건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재밌지 않아? 첫 키스 졸업도 했고?”
“형! 이건 사고지, 키스가 아니에요. 자고로 키스라는 것은 쪽쪽거려야 키스죠. 아니면 물꼬 빨고 난리를 치던가?.”
“헐, 해봤어?”
석태는 예성의 과격한 단어선택에 놀라 물었다.
“잘 아시면서 물으신다. 그냥 제 친구가 교실에서 자랑스레 말하는 걸 들었죠. 영화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러냐?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다행일 것까지야, 그냥 해프닝이죠.”
그래. 해프닝이다.
****
“신예성 씨, 우주 양과 키스는 어떤 맛이었나요? 피자 맛, 아님 스파게티 맛?”
정신영 씨의 질문이 나의 가슴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아! 감독님 없었던 일이 될 거라면서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어제 집에 돌아 온 후 나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참으로 피곤한 하루였다.
이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지를 않나? 선풍기로 찬 바람을 쐬지 않나? 거기다 과식까지 내 몸이 휴식을 부르짖는 하루였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 핸드폰을 보니, 회사에서 스케줄을 알리는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정신영의 정오의 호프 송이네. 10시에 데리러 온다니, 서둘러야겠다.’
방문을 열고 나오니 집이 고요하다. 동생이 나갔나 싶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동생이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모습이 보였다.
‘부럽다. 완전 밤과 낮이 바뀐 생활을 하다니. 보나 마나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을 거야.’
들어온 김에 동생 방을 둘러 봤다. 여전히 변함이 없는 방이다.
타미씨가 벽지를 대신하고 있는 방이다. 기획사에 나가면서 타미씨와 내가 친해지면 좋겠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내 물음에 동생은 고개를 맹렬히 저으면서 싫다고 했다.
그냥 멋진 모습만 보면서 지금의 환상을 유지하고 싶단다. 스타와 아는 사이가 되면 그건 그냥 아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말하며 절대 친해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느냐고 물으니 동생은 그럼 절대 자신에게 내색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쯧, 이것도 다 한때지.’
“헤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 상당히 어른스럽다. 히히”
동생의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려는데 책상에 동생이 ‘열어보지 마’라고 글자를 적어놓은 것이 보인다.
이건 나를 겨냥한 경고문인 것 같다. 예전에 자두 주스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하자 이런 조처를 해놓은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해보고 싶어지는 것이 본능이 아닌가?
왠지 함정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지만 이런 것은 당해줘야 설치하는 동생의 기분도 좋아질 것 아닌가?
‘그래. 이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동생을 위해서야. 공을 들였으면 성과를 얻는 게 있어야 뿌듯한 기분이 드는 거지. 암’
나를 이해시키며 조심스레 서랍을 열어보니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
[하여간에 지독히도 말을 안 들어요. 봐도 아무것도 없지롱?]하지만 적힌 말과는 달리 스케치북이 하나 들어 있었다. 꺼내어 넘겨보니 내 기사가 나온 부분을 프린트해서 스크랩하는 모양이다.
보자마자 딱 필이 왔다.
“엄마와 또 딜을 했나 보네.”
동생이 나를 보면서 이런 정성을 들일 리가 없다. 동생은 그냥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찾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인터넷보다는 TV와 친하신 분이라 내가 TV에 나오지 않으면 잘 모른다.
그래서 아마 동생이 딜을 걸었을 확률이 백 퍼센트다.
스케치북을 넘겨보는데 어제 자의 기사가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커다랗게 ‘오빠가 계 탄 날, 오빠에게 모테키가 오는 것인가?’라고 적어놓았다.
‘이······. 이건,’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어제 감독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하면서 안심시켰던 바로 그 장면이 기사로 나와 있었다.
나와 우주 누나가 스파게티를 먹으며 입술접촉 사고를 내는 바로 그 장면. 그것도 화질이 깨끗한 것을 보니 몰래 찍은 장면도 아니다. 그냥 촬영장면인 것 같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역시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 하아, 동생아, 오빠가 계를 탄 게 아니라, 우주 누나가 계를 탔지. 나의 18년의 순정을 농락했으니까.’
보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봐서 그런지 급 피곤이 몰려든다. 오늘도 피곤한 하루가 될 것 같다.
동생 방을 나와 준비를 마치고 석태 형이 오기를 기다렸다.
“준비 다 됐어?”
“네.”
“가자.”
“네.”
차에 오르자 레드엔젤의 숙소로 향했다.
“형 저에게 할 말 없어요?”
“무슨 말? 아까 문자로 보냈잖아. 정신영 프로그램에 나갈 거야.”
“그거 말고요.”
내 말에 석태 형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일까?
“없는데.”
“정말요?”
“그래. 뭐가 궁금해서 그런 걸 물어?”
“오늘 제 기사 난 거 보셨어요?”
“아~~, 봤구나.”
“네. 봤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그거 소소뮤직에서 기자 불러서 낸 걸 거야.”
“설마요, 그 누나가 그럴 리가? 어제 오히려 비밀이라면서 소문나면 가만 안 둔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겼는데.”
“우주가 그런 건 아닐 거야. 기획사에서 그랬겠지. 거기도 어제 매니저가 와 있었잖아.”
“이게 우주 누나에게 좋은 일 같지는 않은데요.”
“글쎄, 본부장님 말로는 좋은 거라던데. 지금은 개별 활동 중이지만 1월에 그룹활동을 시작하나 봐. 알다시피 그룹활동을 시작하면 예능에 나가지. 그런데 이런 에피소드는 화젯거리가 되니까.”
“그런가요? 아 댓글이 참···.”
석태 형과 이야기를 하며 눈으로는 아까 동생의 방에서 봤던 기사를 검색했다.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다.
“참 기사 제목도 가지가지네요.”
“뭐라고 낫는데.”
“전생에 우주를 구해서 우주와 키스한 남자라네요. 참”
“크크크. 나라도 아니고 우주를 구했어?”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오히려 우주를 팔아먹었다면 모를까?”
“뭐가? 맞는 말이지. 걸그룹멤버랑 키스라니, 영광이잖아?”
“영광은 무슨? 오히려 18년 동안 지켜온 제 순정이 농락당했다고요.”
그래. 이건 내가 완전 손해 봤던 일이다.
그 누나는 드라마도 하고 해서 별일이 아니지만, 나는 처음이다. 이게 키스가 맞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지켜온 순정을 도둑맞은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자의 순정 따위 어디다 쓰게?”
“헐, 형, 이 남녀평등시대에, 아니 여자우대 시대에 남자가 순정을 지키기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서 그래요? 그런 순정이 농락을 당했는데 어디다 쓴다니.”
“그런데 예성아, 잠은 잘 잤냐? 어제 첫 키스에 두근거려 밤새우고 그러진 않았지? 오늘도 할 일이 많다.”
“아주 푹 잤거든요. 정말 이 기사만 보지 않았더라도 저는 아주 편안했을 거예요.”
“그냥 맘 편히 먹어. 어차피 일어난 일이야.”
석태 형이 말하며 한 빌라로 들어갔다.
“여기에요?”
“그래. 어쩔래? 기다릴래?”
“저도 가봐도 돼요? 어찌 사는지 궁금하기는 하네요.”
“그래. 같이 가자.”
“그런데 형, 우리가 왜 데리러 와요? 미로 누나도 매니저 있을 것 아니에요?”
“그냥 같은 곳 가는 거잖아. 두 팀이 움직일 필요가 있나?”
“그렇긴 해요.”
딩동, 딩동
“매니저님이세요?”
“그래. 문 열어.”
“잠시만요.”
문이 열리면서 리더인 요원 누나가 부스스한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헐, 누나 안녕하세요? 하마터면 누군지 못 알아볼 뻔했어요.”
“너도 왔네. 들어와.”
“그래도 돼요? 금남의 구역 아닌가요?”
“금남은 무슨,”
석태 형과 같이 들어갔다. 하지만 괜히 들어온 것 같았다. 이건 컬쳐쇼크였다. 내 동생 방도 이 정도는 아닌데.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 거기다 여자 집에 들어왔건만 향기로운 냄새는 고사하고 땀 냄새가 진동한다. 아마 벗어놓은 옷에서 나는 모양이다.
요원 누나는 내 찡그림을 보더니 슬며시 보이는 곳의 옷을 안 보이게 발로 한쪽으로 치웠다.
‘이 누나들은 시간도 많다면서 왜 이렇게 해놓고 사는 거지’
“그런데 집이 생각보다 작네요. 방이 2개인가요?”
7명이 살기에는 조금 좁아 보였다. 거의 우리 집이랑 비슷한데. 우리 집이 28평인데 우리 집에서 7명이 살 수 있나?
“아니 3개, 두 개의 방에서 생활하고 하나는 옷이나 잡동사니 있는 방이야.”
“네.”
“미로야 멀었어?”
“….”
‘오늘도 버퍼링은 이상 없음인가?’
잠시 후 미로 누나가 하얀 옷을 입고 나왔다. 하얀 목폴라에 하얀 패딩 하얀 바지. 아 장소와 너무 잘 어울리는 패션이다.
고작 라디오 나가는데 이런 패션은 뭐란 말인가? 조금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지만 정말 잘 어울렸다.
그에 비해 나는 그냥 청바지에 똥색 외투인데 참 비교가 된다.
“미로 누나 모습이 꼭 진흙 속에서 핀 꽃처럼 보이네요.”
내 말에 거실에 있던 모든 여자가 나를 째려봤다.
‘헐, 사이는 좋아 보인다.’
거실에는 미로 누나의 스케줄을 응원하는 것인지 멤버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일본인인 레이카, 미나, 태국인 리리, 한국인 요원, 연지, 효정, 다들 부스스한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본부장님이 번아웃을 걱정할 만해.’
“예성아, 생각만 하고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역시 석태 형도 똑같이 생각했군요. 이런 건 말해줘야 해요. 누나들은 여자잖아요? 다들 이쁜데 인기가 없는 것은 여자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좀 치우고 요리도하고 여자력을 좀 끌어 올려요. 누나들. 남자인 제방도 이렇지는 않아요.”
“우···. 우리도 늘 이렇지는 않거든. 어제 연습을 너무하다 보니 피곤해서 그런 거야.”
“그럼, 다음에 다시 놀러 와봐도 돼요?”
“무···. 뭐? 여기가 어디라고 놀러 와? 오늘은 매니저가 있어서 같이 들어오게 한 거지. 어림도 없어.”
“저도 이런 집에는 오고 싶지 않네요. 요즘 제게 여자의 환상을 깨주는 분이 왜 이리도 많을까요?”
“뭐야? 너 지금 우리보고 더럽다는 거야?”
“아뇨. 집이 더러워요. 남자 기숙사도 이렇지는 않을 거예요. 누나들 이미지가 걸크러쉬인데 집도 제대로 걸크러쉬네요.”
“우리 집이 더럽긴 하지. 오늘 대청소나 할까?”
“대청소하시면 제가 나중에 누나 편으로 사식이라도 좀 넣어드릴게요.”
“야! 여기가 무슨 교도소야? 사식은 무슨?”
“그건 교도소에 대한 모욕이에요. 교도소가 얼마나 깨끗한데. 혹시 저 Y앱 방송한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응? 갑자기 그건 왜 말하는 거야. 듣긴 했어. 우리도 돌아가면서 나갈지도 모른다며?”
“네. 저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제가 방송할 게 뭐가 있겠어요? 나중에 방송하면 불시에 습격해서 여기를 한 번 노출해야겠어요. 걸크러쉬그룹의 걸크러쉬숙소 특집으로요.”
내 말에 정말 그럴 건 아니지 하는 눈으로 나를 본다. 하지만 정말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야! 우리 이미지가 있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지.”
“왜요? 좋을 것 같지 않아요? 걸크러쉬에다 생계형 아이돌 이미지가 더해질 것 같은데.”
나의 깐족거림에 요원 누나가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할 거야?”
“네. 할거에요. 어차피 저도 할 거 없다고요.”
“후회하지 마. 우리 정말 평소에 이렇지 않다. 오늘 원래부터 청소하기로 했어. 안 그래?”
“으···. 응. 그···. 그렇지”
연지 누나와 효정 누나가 마지 못한 듯 편을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정말 제가 나중에 사식 넣어드릴게요. 제가 어제 광고를 찍은 거 아시죠? 거기에서 피자 쿠폰을 여러 장 주더라고요. 그걸 미로 누나 편으로 보내드릴게요.”
“피···. 피자?”
“네. 안 좋아하세요?”
“아니, 없어서 못 먹지. 회사에서도 못 먹게 하고.”
“그건 제가 본부장님에게 말해 해결해 드릴게요. 제가 이래도 본부장님이랑 꽤 친해요.”
누나들을 보면서 말하자 누나들은 별것 아닌 피자에 정말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설마 다이어트 기간인가?
“예성아, 그만 가자”
“네. 형 그럼 사진 찍어 보내세요.”
내 말에 요원 누나가 나를 쳐다봤다.
“알았어. 너도 방송 잘하고 미로 잘 좀 도와줘. 애가 한 박자 느린 건 알지?”
“네.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해야 하는데 저도 솔직히 자신이 없어서.”
“미로 잘하고 와.”
미로 누나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요원 누나의 고함이 들렸다.
“이년들아, 대청소다. 내가 봐도 이건 너무 심해. 우리는 사람이야. 돼지가 아니잖아? 청소하자.”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고마워.”
미로 누나가 나에게 말했다.
“뭐가요?”
“나는 그런 말 못하거든. 거기다 돈이 없어서 맛있는 것 사주지도 못해.
“헐, 누나 그런 이야기는 안 해도 되는 거예요.”
“… 그런가?”
“네. 그런데 누나들 정말 힘이 없어 보이긴 해요. 겨울을 타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않다. 그건 실패한 자의 분위기였다.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나의 모습처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주위 환경이 안 따라주자 자신을 좀먹어 가는 느낌이다.
밖에서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은 전혀 달라 보였다.
‘본부장님이 왜 그렇게 걱정을 하는지 알겠어.’
“….집에만 있어서 그래. 연습실에 가도 흥이 안 나기도 하고.”
“그럼 할 일을 좀 만들어볼까요?”
“…”
아무래도 잠들어 있는 핸드폰의 노래를 꺼내야 할 것 같다.
나는 즉흥적으로 곡을 떠올리기에 언제나 핸드폰의 녹음기능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덕에 핸드폰에는 전혀 노래 같지 않은 짧은 멜로디나 허밍이 스무 개 정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 누나들을 보자 녹음해놨던 것으로 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가 부를 곡은 다 넘겼으니 이건 누나들에게 곡을 만들어줘도 되겠지. 그리고 내가 꼭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멜로디도 아니니까.’
군보 형이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노래는 만들어져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불려야 그게 노래라고.
이건 내가 갖고 있으면 묵혀 둘 수밖에 없다. 묵혀두느니 좋은 일이나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곡을 만들고 그 곡에 누나들이 가사를 만드는 것을 방송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누나들은 가사를 쓰고 나는 그 옆에서 누나들 밥이나 하고, 나는 밥을 할 테니, 너희들은 가사를 쓰거라. 완전 한석봉 엄마네. 히히’
생각할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노래를 직접 불러 음원 활동만 하는 것이다. 음원 서비스야 회사에서도 해주려고 할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방송국에 도착했다.
“예성아, 내리자.”
“네.”
미로 누나와 정오의 호프 송으로 가자 PD가 반갑게 맞아 준다.
“안녕하세요. 신예성입니다. 라디오 방송은 처음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고마워요. 우리 방송을 택해줘서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쪽이 백설 공주 미로 씨인가? 정말 아름답네요. 오늘 보이는 라디오 하기를 잘했네요.”
“네?”
보이는 라디오라니? 그런 말은 없었지 않은가? 알았으면 나도 이런 꼴로 안 왔을 텐데.
“몰랐어요? 기획사에 말했는데.”
“그런가요? 보다시피 기획사가 제 안티라서, 아마 미로 누나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려고 저를 희생양으로 삼은 모양입니다.”
“하하, 농담도······.”
PD는 말을 하다 진지한 내 표정에 다시 말을 이었다.
“농담 아니군요. 신예 성씨.”
“네. 저는 항상 궁서체만 고집합니다.”
“하하. 좋아요. 여기 대본이에요. 보면서 맞춰가면서 해나가면 돼요.”
“네.”
그래. 대본만 믿고 가자.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받은 질문은 우주 누나와의 입술접촉사고였다. 물론 대본에 없다.
“정신영 씨, 대본대로 하셔야죠.”
“훗, 대본은 거들뿐, 방송은 즉흥성이에요. 지금 청취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게 있는데 그걸 물어야 청취자들이 방송을 집중해서 들어줘요. 안 그래요? 여러분!“
누나의 말에 채팅창이 휘리릭 넘어가기 시작했다. 정신영 씨가 그걸 보며 물었다.
“봤죠?”
“네. 그렇네요.”
“네. 그러니까 무슨 맛?”
아! 이놈의 방송은 왜 이리 나를 못살게 구는 걸까? 에라 모르겠다.
“맛을 알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죠. 그냥 피자 냄새와 스파게티 냄새만 맡았어요.”
“그래서 느낌은?”
“네? 닿은 느낌요? 없어요. 그냥 ‘뭐가 지나갔냐’ 이런 느낌”
“아! 우주 씨 입술이 꿈틀꿈틀했다는 거군요. 아 우주야, 어린 남자의 입술이 그렇게 탐이 났나요?”
“아니 이야기가 왜 그렇게···.”
“모 광고를 빗댄 거 아닌가요? 꿈틀꿈틀 참 절묘한 비유였어요. 신예 성씨. 그럼 광고 듣고 다시 갈게요.”
“아니 여기서 광고 나가면 제가 뭐가 됩니까?”
“그래도 광고 나갑니다.”
광고가 나가자 나는 신영 누나에게 물었다.
“아! 선배님, 너무한 거 아니에요? 갑자기 훅 들어오면 어떡해요?”
“방송이 다 이런 거지. 이번 방송 흥하겠어. 고맙다.”
“라디오도 정글이네요.”
“그래. 정신 차려. 어디나 마찬가지야. 자 준비해.”
“신예 성씨 혼자 안 나오고 공주님을 모시고 왔네요.”
“네. 이번에 완전 여신급으로 소개가 되는 분이죠. 백설 공주 미로 누나.”
“…”
“방송이···.“
미로 누나의 대답이 없자 정신영 씨가 다시 말을 이으려는데 미로 누나의 입에서 대답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레드엔젤의 미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예 성씨 이건 제가 잘 못 느낀 걸까요? 조금···.”
“맞아요. 이 누나 조금 반응이 느리죠. 미로 누나가 중국인인 건 아시죠? 그러다 보니 한국어를 배우는데 조금 급하게 배웠어요. 그래서 빨리 배우는 대신 트랜스···. 트랜스······?”
“혹시 트랜스 레이션이라고 하려고 한 건가요?”
“네 그거. 번역하고 머리에서 다시 말로 나오는데, 시간이 걸려요.”
“정말 그래요?”
“네. 그러니까 질문하시고 한 템포 기다려 주셔야 해요.”
“설마 노래 할 때도 그러지 않겠죠?”
“물론이죠. 누나 노래 들어보셨어요?”
“저도 Y앱으로 봤어요. 아 덕분에 정말 유난히 이브가 추웠어요. 아마 커플에게는 행복을, 솔로들에게는 자괴감을 들게 만드는 노래죠. 1년 동안 난 무엇을 했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감사합니다. 저도 부르면서 속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그럼 여기서 안 들어볼 수가 없겠죠. 라이브 가능한가요?”
“네. 물론이죠.”
“그럼 준비해 주시고요. 여러분 귀 활짝 열고 들으세요. 신예성, 미로가 부릅니다.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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