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91
86. 상남자가 되려면… >
1월 중반에 접어들면서 행사가 줄어들었다.
레드엔젤 누나들은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나는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표정이 밝네?”
“이게 사람이 사는 거죠. 그동안 너무 바빴죠.”
“그래? 행사가 적어서 아쉽지는 않고?”
“저 놀리시는 건가요? 행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매일 나가잖아요? 형도 솔직히 지금이 편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이만하면 됐어요. 오죽하면 인터넷에 ‘신예성 도플갱어’ 이야기가 나돌까요?”
그렇다. 나는 ‘행사 계의 수도꼭지’라고 불리고 있었다. 아직 한 달도 안 되었지만 나를 목격한 목격담이 올라오면서 전국 각지에서 같은 날에 여러 지역에서 목격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너무 혹사당하고 있지 않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아직 그렇게 오랜 기간이 아니기에 그 이야기는 힘을 받지 못했다.
“예성아, 교복 지면광고 나왔더라.”
아, 이야기를 들으니 또 생각이 떠오른다. 걸스패밀리, 말 그대로 서양 조폭을 뜻하는 패밀리, 글자 그대로였다.
그날 그 누나들에게 당하고 집에 와서 머리를 싸맸다. 스스로 왜 그렇게 당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설마 누나들의 똘끼에 눌려버린 걸까? 그래 난 순수하니까 그럴지도 몰라.’
그리고 생각이 흘러가다가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세뇌가 되어가고 있었다.
본부장님이 늘 부르짖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자에게 져주는 일상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성우대에 젖어 들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본부장님은 내가 가장 닮지 않아야 하는 어른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니.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망정이지. 정말 위험할 뻔했어.’
이걸 깨닫고 나니 본부장님과 만날 때 가정사에 관해 묻지를 않았다.
본부장님이 ‘예성 학생, 오늘 내가 집······.’ 여기까지만 들어도 귀를 막고 도망쳐 나왔다.
선생님이 나를 마구니라 칭했는데, 그 남편인 본부장님은 나에게 마구니였다.
듣다 보면 세뇌가 될지도 모르기에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다. 선생님과 통화를 하게 되어도 본부장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 선생님과 본부장님은 부부가 아니야. 모르는 사람인 걸로 하자. 나에게 너무 해로운 가족이야. 어서 내가 상남자였던 시절의 내 모습을 다시 찾아야 해.’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내가 상남자였던 시절이 없다. 기껏해야 여동생과 서로 코피 터트려 가면서 싸웠던 초등학생일 때 정도일까?
아니지. 이건 그냥 여자와 주먹다짐한 한심한 놈이 아닌가?
‘큰일이야. 내가 상남자였던 시절이 없어.’
상남자, 상남자, 도대체 상남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맹모삼천지교, 자라나는 청소년인 나에게는 환경이 중요한데 내 주위에는 롤모델이 될만한 어른이 보이지가 않는다.
조 사장님, 은지 누나에게 까이는 일상.
본부장님, 선생님에게 엎드리는 일상.
나은태 CP, 와이프에게 져주는 일상.
상우 아버지, 편식을 강요당하는 일상.
그리고······.
“석태 형, 여자친구 있어요?”
“아니, 없는데. 요즘 같으면 없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바쁠 때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싸웠을까 싶다.”
여기 구차하게 일을 핑계로 여자친구가 없다고 핑계 대는 사람 하나 추가.
‘아, 이렇게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곁에 있다니, 이러다간 정상인인 나조차 비정상적인 어른이 되어버릴지 몰라. 아빠가 그립다. 엄마의 말에 밥상을 뒤집던 그 모습이 그리···. 잠깐, 이것도 추억보정이잖아. 아빠는 뒤집고 치우기도 아빠가 치웠지. 그렇게 따지면 아빠도 상남자는 아니었어.’
주위에 멋진 어른이 없다. 이게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것인가?
멋진 직업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른들이지만 여자를 이기는 어른이 없다.
여자를 이겨서 뭐하느냐?
하지만 이기고 싶다. 정말 이기고 싶다. 눈물 나게 이기고 싶다.
싸워서 이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듯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제일 나은 방법으로 이기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나에게 여자 사람이라고는 엄마와 여동생밖에 없었는데 주위에 여자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뷰티핑크, 레드엔젤, 걸스패밀리, 선미, 심영 누나 등등.
‘내 주위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것이 큰 실수다.’
어느샌가 남초현상을 보이는 내 인생에 여초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자 전화번호밖에 없던 핸드폰에도 어느새 여자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남자 전화번호들을 밀어내며 잠식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본부장님 꼴을 면하기 힘들었다.
머릿속에 본부장님이 환한 표정으로 플랜카드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Welcome to New 돌쇠!’라고 적혀 있었다.
‘절대 안 되는 말이지. 내 인생은 찬란하게 빛이 나야 해. 여자 앞에만 서면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인생은 안 되는 거야.’
그때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깨우는 석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성아, 다 왔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식은땀마저 흘려? 곡 생각이라도 한 거야? 시간이 없어서 지금은 곤란하다. 행사를 펑크낼 수는 없잖아?”
석태 형은 어느새 나에게 주려고 한 것인지 수첩과 볼펜마저 손에 쥐고 있었다.
“전혀 그런 거 아니에요.”
****
행사하고 나오자 요원 누나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예성아, 표정이 왜 그래? 차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뇨. 제 표정이 어때서요?”
“마치 세상만사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띠꺼운 표정을 짓고 있잖아?”
“그냥 염세적이라고 해주세요. 저는 오늘부터 세상 만물과 남녀 구분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살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내 말에 누나들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또 시작이구나.”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니?”
“레이카, 너 또 예성이 간식 먹었어?”
“나 아니거든.”
“그럼 누구야?”
요원 누나의 물음에 누나들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예성아, 우리 아니다. 그러니까 표정 풀어.”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왜 애초에 간식이라고 단정 짓는 건데.
내가 표정 변하는 일이 그것밖에 없는 거야? 애초에 내가 애도 아니고 간식 때문에 화낼 거로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생각인데?
“그런 문제가 아녜요. 그냥 요즘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성격을 바꿔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 하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고딩이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예성아, 적당히 해라. 어차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좋든 나쁘든. 그냥 생긴 대로 살게 되어 있는 거야.”
“그래 예성아, 너 여기서 더 삐뚤어지면 누나들이 힘들어지니까 적당한 시간, 적당한 기간만 고민해.”
“맞아. 예성아, 알다시피 우리가 너에게 빨대 꼽고 있는 상황인데 네 표정이 굳으면 우리가 눈치 볼 수밖에 없잖아?”
“하~아, 그런 말 하는 시점에서 전혀 눈치를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모르겠어요?”
“그래. 미나 네가 잘못했어. 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입으로 내뱉으면 안 되는 거야.”
“봐요. 이게 문제에요. 누나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봐요. 나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럼 나중에 봐요.”
예성이 자신의 차로 향하자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요원이 굳은 표정으로 바뀌면서 다른 멤버들을 바라봤다.
“큰일 났다.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온 것 같아.”
“정말 그게 지금이야?”
그녀들은 예전에 코러스로 예성에게 붙을 때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너희들, 예성이와 함께 다닐 때 조심해. 예성이는 아주 예민한 시기가 있어.”
“처음 봤을 때도 이미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애가 사람 어려운 줄을 모르던데요. 친화력이 좋다고 해야 하나?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그건 약과야. 지내다 보면 알겠지만, 애가 성격의 간극이 커. 침울할 때는 땅 파고 들어갈 정도로 침울하고, 기분 좋을 때는 하늘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기분이 좋아.”
“살짝 텐션이 높기는 해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던데요?”
“그게 평소의 예성의 상태야. 평소에도 그렇게 텐션이 높아. 하지만 자극을 받으면 그 텐션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너희도 예성이가 사이다 소년이라 불리게 된 일을 알고 있지?”
“네.”
“그래. 예성이는 일단 수틀리면 자기 자기 생각에 빠져 주위를 아예 보지를 않아. 그래서 그런 일이 터지는 거지. 그러니까 이상 조짐이 보이면 조심하고 보고 있다가 정상이 아니다 싶으면 나에게 연락을 해.”
요원은 기억을 되짚다가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라는 걸 알았다.
“매니저 오빠. 전화기 좀 주세요. 본부장님에게 연락해야겠어요.”
요원은 전화기를 받아 본부장님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본부장님, 저 요원이요. 예성이 상태가 오늘 좀 이상한데요.”
“뭐? 역시 그런가? 알았다. 안 그래도 나를 살살 피해 다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예성이가 뭐라고 했어?”
“그냥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만만하게 본다.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러던데요?”
“뭐? 만만하게 본다고? 일단 알았어.”
이기호는 전화를 끊고는 석태에게 회사에 들어오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석태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 다짜고짜 물었다.
“석태야, 예성이가 이상하다면서?”
“네? 글쎄요. 평소에도 이상한 아이라.”
예성은 자신만 빼고 주위 사람이 다 이상한 사람이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예성이 비정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오늘 특별한 일이 있었나?”
“아니요. 그냥 평소와 같았는데? 아! 뜬금없이 저에게 여자친구가 있냐고 묻던데요?”
“뭐? 여자친구? 설마 여자친구가 생긴 건가?”
이기호는 말을 하며 석태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이건 말도 안 되지. 예성이가 연애를 한다고?”
“그럼요. 그 성격에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죠.”
“그럼 뭐가 문제인 거지? 오늘 다른 이야기 한 건 없고?”
“그냥 행사 줄어서 좋냐고 물었고, 교복 지면광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했죠.”
“그 이야기 할 때 이상한 점은 없었고?”
“아! 제가 지면광고 이야기를 하니까 한참을 생각에 빠지던데요.”
“지면광고라···. 지면 광고면 걸스패밀리랑 찍은 거지?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나?”
“아뇨. 그냥 즐겁게 촬영하던데요? 우주가 예성이를 살뜰하게 챙기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멤버들과도 사이좋게 촬영을 했어요.”
석태의 말에 이기호는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이 만만하게 나를 본다. 그리고 걸스패밀리와 찍은 지면광고라···.’
“석태야.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혹시 예전 로드 할 때처럼 그냥 예성이 실어주고 뒷짐 지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니겠지?”
“네? 당연히 제가 데리고 인사시키죠.”
“인사만? 너 예성이 확실히 챙겨. 예성이가 이제 제법 경험이 쌓였다고 방심하면 안 돼. 예성이 고등학생이다. 네가 사회에 나온 것이 언젠지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들지 알지? 대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온 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보통 작은 사회를 거친 후에 사회에 나오게 되는 거야.
그런데 예성이는 그런 단계를 건너뛰고 가장 복잡한 사회의 하나인 연예계에 들어왔어. 주민등록증도 안 나온 어린아이가 어른들 틈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거야. 그냥 돈을 받고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이기호의 말에 석태는 가슴이 뜨끔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방심하는 것이 맞았다.
평소에도 항상 밝고 일할 때도 사람들이랑 잘 어울려서 자신도 모르게 뒷짐 지고 지켜보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예성이가 이상하기라도 해요?”
“이놈아! 네가 너에게 묻는 거잖아. 네가 나에게 물으면 되겠어?”
“그러네요. 제가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아니, 너 가서 예성이 좀 데리고 와. 지금 회사에 있지?”
“네. 지금 연습실에서 곡 만들고 있을 거예요.”
“곡? 무슨 곡?”
“나중에 Y앱 방송할 때 레드엔젤이랑······. 헛! 이거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안 되긴 뭐가 안돼? 앞으로 일거수일투족 다 보고해. 너도 알겠지만, 연예인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예성이야 아직 어려서 바로바로 표시가 나지만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연예인들이 갑자기 자살하는 이유가 뭔지 알지? 기획사가 방심해서 그래. 특히 예성이는 자기 또래가 아무도 없잖아? 자기밖에 없어. 연예인은 인기가 많아도, 주위에 친구가 많아도 자기가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성이는 정말 혼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 앞으로 더 신경 써. 넌 예성이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니야. 예성이를 보호하는 보호자지.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보호자라······.’
석태는 자신이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일을 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본부장님의 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었다. 어린아이를 어른들 틈바구니에 밀어 넣으면서 자신은 손을 놓고 있던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본래 연예인의 일은 연예인이 알아서 하고 매니저는 매니저끼리 이야기하는 법이다. 하지만 예성은 어린 학생이지 않은가? 자신이 더 신경 써야 하는 게 맞는 일이다.
‘그래. 내가 너를 지켜주는 게 맞는 일이지. 앞으로 나만 믿어라. 예성아.’
석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다짐은 나중에 여러 스타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매니저로 석태를 꼽게 되는 말그대로 스타 매니저의 길로 석태를 이끌게 된다.
그저 예성은 상남자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로 인해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이다.
“네? 지금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그래. 너랑 이야기 하고 싶다고 오라고 하시더라.”
“무슨 일일까요? 설마 또 뭔가 하자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글쎄다.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는데? 그냥 너랑 이야기해 보고 싶은 거겠지. 아무래도 숙모가 네 스승님이잖아?”
“숙모? 아! 맞다. 석태 형, 본부장님 조카였죠? 잊어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눈길이 왜 그래요? 마치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알아내겠다는 듯이 그렇게 내 몸을 훑으세요?
아무리 여자친구 없는 시간이 오래되었더라도 음양의 이치를 버리면 안 돼요.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아요.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거 보면 평소랑 같은데 말이지.”
“네? 무슨 이야기예요?”
“아니다. 얼른 가봐. 본부장님이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아!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피해야 하는 분을 내 발로 만나러 가야 한다니···.”
“이 시기? 역시 뭔가 있는 거냐? 형이 뭐 도와줄 일이 있어?”
“아니요. 특히 형은 절대 저를 도우면 안 돼요. 형만이 아니라 다른 이 씨인 본부장님도 저를 도우면 안 돼요.”
“그···. 그러냐? 무슨 문젠지는 말을 하지 않겠지?”
“네. 물론입니다.”
쪽팔리게 상남자가 되고 싶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 갔다 올게요.”
“그래.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언제나 말해줘. 나는 그러라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까.”
“네. 형, 언제나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연습실을 나와 본부장님 사무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 찾으셨다면서요?”
“그래. 예성 학생, 요즘 들어 나를 살살 피하는 눈치던데? 섭섭하다고.”
“그거야 이제 깨달았을 분이에요. 본부장님과 친해져 봤자 늘어나는 건 일밖에 없다는 것을요.”
“왜? 돈도 같이 늘어나잖아?”
“그거야 그런데, 제가 상상하는 금액이 넘어서자 그게 그거란 느낌이 들어서요.”
“어허, 그래서야 쓰나? 예성 학생, 그러면 그 상상하는 금액을 올려야지. 건물주가 목표잖아? 언제까지 1억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1억을 만져봤으면 10억, 10억을 만졌으면 100억을 상상해야지. 그래야 예성 학생이 노래하는 조물주보다 위대한 건물주가 될 수 있어.”
“그렇겠죠?”
“그래. 이제 시작인데 마치 모든 것을 이뤘다는 그런 마인드 좋지 않아. 인기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남는 것은 돈밖에 없어. 그러니까 돈에 무감각해지면 안 돼. 예성 학생”
“허,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좋은 걸 가르치시네요. 남는 건 돈뿐이라니.”
“이게 바로 살아 있는 생생한 현장교육이지. 그런데 예성 학생 요즘 힘든 일이라도 있어?”
“아뇨. 이제 좀 살만한데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죠.”
“그래. 그런데 왜 레드엔젤에게 모든 사람이 만만하게 본다고 화를 냈어?”
“어? 화 안 냈는데요? 그냥 그렇다고 이야기를 한 거지.”
“그래?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거야?”
“이야기하기도 부끄럽지만, 본부장님이 들어도 그렇게 썩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허, 예성 학생. 나를 또 띄엄띄엄 보네. 내가 뭐라고 했어? 잡무의 이기호, 예성 학생, 내가 이렇게 순하게 보여도 헤쳐나온 세월의 풍파가 장난이 아니야. 말해봐. 내가 확실히 해결해 줄 테니까.”
‘말할까?’
예성은 안 그래도 이미 ‘와이버 뭐든지 물어보세요’에 질문 검색을 했다. 거기에 ‘상남자가 되려면?’ 질문을 입력하자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고등학생의 질문이 여러 개 올라와 있었다.
이 나이의 고등학생은 다 생각이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답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공부하세요. 유식한 당신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될 겁니다.’
이건 물어볼 필요도 없이 통과.
‘근육을 단련하세요. 근육으로 다져진 당신을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될 겁니다. 단, 자의식 과잉으로 마초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이것도 통과.
‘혼전 순결을 지키세요. 당신은 이 낙태와 인스턴트사랑이 만연한 세상에 한 줄기 빛 같은 존재가 될 겁니다.’
아! 이건 타의로 이미 하고 있는데 그 빛은 언제 저를 비추죠?
이런 지경이라 상담할 사람이 필요하긴 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본부장님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죠. 제가 어떤 일을 겪었냐면······.”
내가 이야기를 하자 본부장님은 정말 평소와 다르게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그리고 그게 불편했다는 거지?”
“네. 역시 제가 이상한 걸까요?”
“아니, 전혀 이상하지 않아.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항상 문제가 되지. 내가 느끼는 거리와 상대방이 느끼는 거리는 다를 수밖에 없어.
사람의 성격이 제각각이니까. 그에 따른 거리감도 틀리지. 거기다 예성 학생은 제일 어리잖아? 아무래도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낮은 위치에 자신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을 거야.
여기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여긴 거지. 힘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까? 예성 학생도 학교에서 친구랑 장난하다가 싸움이 된 적이 있지?”
“네. 그거야 다반사죠. 저만 아니라 친구들끼리 종종 그런 일이 있죠.”
“그래. 친한 친구들끼리도 거리감이 틀려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데 다른 말이 뭐가 필요할까?”
“그렇긴 해요.”
“예성 학생, 그런 게 부담되면 예성 학생이 거리를 둘 수밖에 없어. 연예계는 똘끼 넘치는 이들이 많아서 오히려 그것보다 심한 일을 당할 수도 있어. 그러지 않으려면 거리를 둬야지. 나는 당신과 이 정도의 거리라고 생각하게 하여야지.”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럼 쉬워. 그냥 나에게 말을 놓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거야.”
“네?”
“예성 학생, 항상 일하러 가면 어리니까 저에게 말을 놓으세요 라고 말을 하지?”
“네. 그래야 편해지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그 말은 나는 당신의 하급자라고 상대방이 인식하게 만들어. 친해지긴 하지만 나는 당신의 아래라고 말을 하는 것과 같지. 누구도 상급자에게 반말하지는 않으니까.”
“그렇군요.”
“그래.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회에 친구는 없어. 그냥 상급자와 하급자만 있을 뿐이지. 만일 우주가 예성 학생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면 이렇게 친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그저 그런 후배로 알게 되었겠지. 그리고 예성 학생 같은 경우도 라디오에서 입 냄새났다는 말을 쉽게 하지는 못했을 거야.”
“입 냄새가 아니고 치즈 냄새요.”
“그거나 이거나 같은 말이지. 아무튼, 예성 학생이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좋은 거야. 거리감은 사람 사이에서 아주 중요하거든. 일찍 깨닫는 게 좋아. 아무튼, 예성 학생이 그런 게 부담스러우면 사람들에게 말을 놓지 못하게 하면 돼. 매일 마주 보며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경우는 서로 조심하게 되니까.”
“그렇게 해야겠어요.”
“그런데 이러면 예성 학생도 조심해야지. 예성 학생은 격의 없이 다가서는 경향이 있으니까. 상대방에게 거리를 두게 하면서 자신은 친근하게 대하면 불공평한 일이잖아. 불공평은 싸움을 부르게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상남자가 되는···. 푸흡······.”
“아! 이래서 말하기 싫었다니까요.”
“미안해. 예성 학생. 상남자는 주관적인 판단이야.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지. 누군가에게는 상남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냥 마초남으로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상남자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냥 인텔리로 보이는 거야.”
“역시 그렇죠?”
“예성 학생 경우에도 사이다 소년으로 불릴 때 상남자구나! 댓글도 달렸잖아.”
“그랬나요?”
“그래. 모두가 인정하는 상남자는 없어. 그냥 생긴 대로 살아.”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이 안 보여요.”
“어허, 예성 학생 섭섭하게 왜 이래? 바로 앞에 있잖아?”
“어디요? 서···. 설마?”
“설마는 무슨? 내가 바로 상남자가 아니면 누구라고 할 수 있겠어?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남자. 집에서는 가정적인 남자. 누가 봐도 내가 바로 상남자라고 말하지 않겠어?”
“언제부터 돌쇠가 상남자의 아이콘이 된 걸까요?”
“어허, 그건 그냥 애칭이라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렵다. 본부장님과 내가 이렇게 말을 격의 없이 하지만, 내가 본부장님을 바라보는 시각과 본부장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사람과의 거리, 사랑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하루다.
끝
ⓒ 꿈속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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