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all-purpose machine RAW novel - Chapter 174
176화
한편 같은 쉘터 알파벳인 쉘터N 역시 쉘터M과 마찬가지로 좀비들에 의해 침공받았다. 쉘터M처럼 그 수가 많지는 않아 가까스로 막아 내고 있었지만, 수는 점차 늘어가고 있었다.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쉘터N의 리더인 아더는 탄식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먹구름만이 가득하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이상황에 비까 지퍼붓는다면 그 결과는 뻔한 노릇 이었다.
비가 내리면 좀비들의 능력이 강화된다는 건, 이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는 기본 상식이었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리더?”
“다른 쉘터 알파벳에 도움을 청해 본다.”
“방금 전에 통신이 왔는데, 다른 쉘터 알파벳들 역시 저희와 비슷한 처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움을 요청할 세력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시리우스 성 연합. 교활한 외계인들이라 믿지 못할 법하긴 하지만, 그들이 가진 무기는 막강하니 자신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시리우스 성 연합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완곡한 거절 메시지가 돌아왔다. 그들 역시 좀비 들의 침공을 받고 있고, 지금 당장 돕기는 어렵다는 메시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뚫린 듯, 빗줄기는 닥치는 대로 퍼부어댔다. 좀비 들이 더욱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미스릴로 된장벽은 반쯤 부서졌고, 장벽을 넘어서 좀비들이 내부로 침입하기 시작했다.
내부에 있는 군용 안드로이드 로봇 들로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긴 하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임은 자명했다. 그 역시 쉘터M의 리더와 마찬가지로 결단을 내려야만했다.
쉘터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쉘터를 버리고 도망칠 것인가.
쉘터M의 리더와 달리 그가 내린 선택은 전자였다. 그는 여기서 도망 쳐봤자 자신이 좀비들에게 공격받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소총을 들고 장벽 밑의 좀비 들에게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군인이었던 그의 사격술은 신묘한 편이라 탄환은 연이어 좀비 들의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좀비의 시체를 지르밟고 좀비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괴상망측한 사족 보행의 좀비들이 장벽을 빠른 속도로 기어 올라왔다.
‘이제 끝이구나.’
올라온 좀비들에 의해 거주민들이 하나둘씩 당하기 시작했다. 장벽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더는 원망스런 얼굴로 하늘을 바라봤다.
쉘터 알파벳의 리더가 됐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비록 아포칼립스 세상이긴 하지만, 26명밖에 없는 이로 선택됐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 어째서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왔던가. 세월들이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아까 도망친다는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죽어가는 거주민들은 자신의 그릇된 선택을 원망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다음 순간,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 던 그에게 좀비가 달려왔다. 그는 간신히 총을 휘둘러 좀비의 머리를 후려쳤지만, 좀비는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은 듯 그의 어깨를 물었다.
마치 생살을 불에 지진 듯한 화끈 거리는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고통.
“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 그는 들고 있던 소총으로 좀비의 머리를 연이어 발사했다. 탄환은 좀비의 머리에 박 혔다. 좀비는 바닥에 풀썩 쓰러진다.
‘제기랄, 제기랄.’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던 아더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근처 의 거주민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장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좀비에게 물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상, 딱히 방도는 없고 자신 이 좀비가 돼버릴 거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은 몸은 가속에 가속을 더 해 추락하다가 좀비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쉘터 알파벳의 리 더치고는 허무한 최후였다.
장벽 위를 끝까지 사수하던 거주민들은 리더의 죽음을 목도하고 나서 야 도망치기 시작했다. 쉘터N에는 벙커가 있다.
대피용으로 지어진 지하 벙커로, 그사이즈는 크지 않지만 단단한 아다만티움, 미스릴로 이루어진 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부로 도망친 다면 어느 정도 시간은 벌 수 있다.
이상황에서 시간을 버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누군가의 말이 타당하긴 했지만, 딱히 수가 없는 처지인 대부분의 거주민들은 벙커 내부로 들어갔다.
애석하게도 벙커 내부는 수용 공간 이 넓지 않아 거주민들로 꽉 들어차 고 말았다.
그들은 이대로라면 오래 못 버틸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에 지하 벙커에 저장된 식량도, 식수도 많지 않다. 이 많은 인원이 최대한으로 아끼고 아낀다 하더라도 고작 하루 반나절이면 동날 양이었던 것이다.
하루 반나절 안에 바깥에 있는 좀비들이 가길 바라는 건 자신이 생각 하기에도 어처구니없는 바람이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수를 줄이면…’
거주민들의 수를 줄이면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러고 싶진 않지만, 그게 좀 더 다수를 살리는 길이라면”
쉘터N의 간부,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리 볼버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그때였다.
밖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더니 이제는 천둥마저 치는 구나 라고 생각하며 거주민들의 표정이 더욱더 암담해졌다. 그러나 천 등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연속으로 수여 차례, 수십 차례가 계속됐다. 세상에 이런 천둥은 본 적이 없다. 그제야 그들은 이것이 천둥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천둥이 아니면 뭐지?’
물론 벙커문을 열지 않는 이상 그 들이 알 방도는 만무했다.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긴 했지만, 이미 전기 부족으로 인해 연결은 끊겨버린 지 오래였다.
카일은 벙커문을 쥐었다. 나가볼까 말까. 그는 수십 차례나 망설였다. 그를 만류하는 거주민들도 있었다. 고민하던 그는 문을 열었다.
거주민들은 뒤에서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를 엄호할 생각이었다. 물론 좀비 앞에서 엄호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벙커 앞에서있는 거대한 거인의 모습에 카일은 기겁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산탄총 탄환이 튕겨져나간다. 그는 그제야 거인이 좀비가 아닌 안드로이드 로봇이라는 걸 깨달았다.
‘안드로이드 로봇이 여기 왜…’
쉘터 내에 있던 안드로이드 로봇과는 체구부터가 달랐다. 몸집은 두 배 이상에, 외형 역시 자신들의 안드로이드 로봇과는 확연히 달랐다.
‘뭐가 이렇게 커?’
즉, 외부 세력의 안드로이드 로봇 임이 틀림없다.
‘어디 소속이지…?’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총을 내려놓지 않았다. 안드로이드 로봇을 다룬다고해서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에게 호의적이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안드로이드 로봇을 다루는 대표적인 세력인 진리회 같은 경우는 종종 쉘터 알파벳을 공격하기도 한 다 했으니까.
그때였다. 안드로이드 로봇에서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온 것은.
「좀비 소탕이 완료됐습니다. 바깥으로 나와도 좋습니다.」
카일은, 아니 듣고 있던 거주민들 전체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바깥에 있던 좀비들의 숫자를, 그리고 강함을 직접 봤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빨리 나오시기 바랍니다. 저희 리더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리더라는 분이 혹시 좀비는 아니지?”
카일은 얼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 리더는 좀비 따위가 아닌 인간입니다. 물론 특별한 인간이긴 하지만. 의심되신다면 한 분만 나오 셔도 좋습니다.」
카일은 거주민들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내가 가지.”
솔직히 말해서 가기 싫었지만,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안드로이드 로봇을 따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하 벙커의 계단을 올랐다.
계단 곳곳에는 좀비 시체가 널브러 져 있었다. 어쩌면 그는 안드로이드 로봇이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는 어느새 그치고, 하늘에는 태양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줄줄이 늘어선 안드로이드 로봇들이었다. 한 대도 아니고, 무려 수십, 수백 대였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좀비 시체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안드로이드 로봇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좀비들은 모조리 소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좀비들을 쉽게 소탕 됐다는 말은 자신들 역시 쉽게 소탕 될 수 있다는 말이었으므로.
그리더라는 사람이 마음만 먹는다 면 말이다.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리더 가 어떤 식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자신과 거주민들 목숨 전체가 걸렸다.
마침내 그는 보기만 해도 정신을 잃을, 아름다운 검은색 자동차의 보닛 위에 올라타 있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보자 아래로 내려왔다.
“카일, 맞습니까?”
“아, 예!”
대체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만난 적도 없을 텐데… 생각하던 그는 그가 쉘터 알파벳의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 거주민들의 정보를 주고받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쉘터 알파 벳의 인물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같은 쉘터 알파벳인 자신들을 죽이 진 않을 테니까.
그의 얼굴이 조금 환해질 찰나, 사 내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이 나온 걸 보면 아더는 죽은 모양이군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떨어지기 전 아더의 얼굴은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떠올랐다. 그의 얼굴이 절로 씁쓸해졌다.
“오늘부터 쉘터N을 우리 쉘터에 편입하려 합니다. 그 일을 도와줬으 면 좋겠습니다.”
“예?”
“글자 그대롭니다. 쉘터N과 우리 쉘터를 합치자는 말입니다.”
“그걸 갑자기…”
두두두
땅에 진동이 울린다. 카일은 소리 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수십 대의 전차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포신이 당장에라도 이쪽을 향해 불을 뿜을 것만 같아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저 무인 전차들이라면 거주민들을 태우기엔 충분할 겁니다. 뭐, 트럭을 이용하는 게 간단하긴 하지만 도시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해서.”
카일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갈 데도 없다. 장벽도 무너진 마당에, 이곳에 머물러봤자 좀비들의 먹잇감밖에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묘한 기대감 역시 가지고 있었다. 이만한 안드로이드 로봇들과 무인 전차를 보유한 쉘터가 평범 할 리 없다. 어쩌면 자신들이 그리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마치 헤이든이 세웠다는 ‘낙원’과 마찬가지로.
쉘터N의 거주민들은 겁에 질린, 하지만 한편으로 기대감이 어린 표정으로 바깥으로 나왔다. 그들은 무인 전차에 탑승했다. 무인 전차는 그들을 수용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공간이 넓었다.
사내― 박시현은 그들을 바라보다 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마스터, 쉘터M의 생존자들 역시 쉘터 아포칼립스로 이동을 완료 했습니다.」
“거긴 몇 명이나 살아남았어?”
「72명 정도입니다.」
“많이 죽었네.”
로봇의 계기판에 울상을 짓는 듯한 이모티콘이 올라온다. 박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너를 탓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쉘터M, 쉘터N은 시나리오 5의 시작과 동시에 멸망한다.
그것은 시나리오상 벌어지는 필연적인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것을 막아냈다. 안드로이드 로봇들과 무인 전차를 동원해 쓸어버렸다.
디펜스 게임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오펜스 게임을 해버린 셈이다.
‘생각보다 쉘터를 공격하는 좀비들의 숫자도 적은 모양이고… 이 정도 면 딱 좋겠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아포칼립스 만능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