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all-purpose machine RAW novel - Chapter 188
190화
냉동인간으로 있는 동안 영양 공급을 최소한으로 받았기 때문인지 노인의 몸은 앙상하게말라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매만 졌다. 딱히 벗고 있는 노인의 몸을 감상하는 취미 같은 건 없던 나였기 에, 나는 그에게 가운을 내밀었다.
“고맙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앞으로 모우린님께서는 쉘터 내부의 저택에서 생활하시게 될 겁니다.”
나는 모우린을 믿지 않는다. 그저 대가를 받기 위해, 헤이든에게 그를 되살려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 그와 나의 계약의 전부일 뿐이다. 게다가 되살아난 그가 우리 쉘터에 딱히 도움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지부장들도 불편해할 것이고, 특히 그의 손자인 소린은 더하겠지. 모종 의 음모를 꾸밀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때문에 나는 그를 저택에 가두 기로했다. 저택에 가두고 허튼짓을 못하도록 24시간 내내 감시할 생각이었다.
나이 80줄에 달하는 노인에게 가혹한 처사일지 모르지만, 괜히 분란을 야기하는 것보다야 그편이 나았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속내에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는 이러한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나는 그에게 성 도(星島)에 거대한 규모의 저택을 지어주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라고 말할 정도로 그 디자인 역시 화려했다.
그리고 생활 전반적인 면도 부족함 없이 지내게 될 것이다. 우리 쉘터에 물자는 넘쳐나고, 노인이 원하는 ‘사소한’ 것들이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가 이것을 요양이라 생각할지, 아니면 감금이라 생각할지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없으니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우린의 처리를 마친 나는 그에게 카시오페아 사의 보물 창고 가 묻혀있는 위치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보물 창고의 입구는 시나리오 8지역의 끝자락에 위치한 화물 창고의 지하였다. 지하로 내려간 우리는 핵미사일 발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부를 지키는 안드로이드 로봇 몇 대가 있었지만, 우리 쪽에서 끌고 온 안드로이드 로봇 수십 대로 무사히 진압을 마쳤다. 핵미사일 발사실을 접수한 나는 메인 컴퓨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 카시오페아 사의 보물 창고 안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전력이 공급되자, 초록색과 붉은색 빛이 번쩍이더니 가녀린 미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만 해도 병약 해 보이는 미소년. 그의 정체는 바로 에반(Evan)이다. 시나리오 후반 부에 등장하는 만큼 사기적 스펙을 가진 인공지능…이라곤 하지만 퀸의 잠재력에는 못 미친다.
「당신은 누구죠? 이곳은 아무나 들어와서는 안 되는…」
그러자 내 뒤에 있던 퀸이 앞으로 나섰다. 하기야, 인공지능에게 설명 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빠를 것이다. 이내 기억이라도 전수받고 있는지 그의 동공이 멍해진다. 멍하던 그의 눈이 다시 생기를 되찾은 건 그로 부터 대략 몇 분 후였다.
「그러면 박시현님께서는 지금 카시오페아 사의 마스터이십니까?」
“카시오페아 사가 사라지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인식했습니다. 박시현님을 새로운 마스터로 인식합니다. 마스터께 서는 1급, 2급, 3급 보안을 모조리 해제하실 수 있습니다. 보안을 해제 할까요?」
“응, 그렇게 해줘.”
그의 말과 동시에 보안이 속속히 해제되기 시작한다. 새롭게 나타난 안드로이드 로봇들은(일반적인 안드로이드 로봇들보다 훨씬 더 인간답 게 생긴 안드로이드 로봇들이었다) 적대적으로 우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무릎을 꿇음으로써 메인 컴퓨터에서 비켰다.
나는 메인 컴퓨터를 지나, 핵 발사 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디 디스토피아 영화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단추가 있었다. 그 밖에도 자 잘한 것들이 많았지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단추였다. 뉴클리어 버튼. 요컨대 저 버튼만 누르면 핵 이 발사된다 이거겠지?
「목적지를 지정할까요?」
“아니, 지금 안 쏠 거야.”
목적지를 지정해서 핵미사일을 발사해봐야, 결국 도시 안에 쏴야 한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 미사일 발사는 실패한다. 모우린이 소위 ‘카시오페아 기프트’라 부르는 이것은 도리어 이 도시에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물론 지금 이 도시는 이미 재앙이 왔지만.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핵미사일 발사를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최근 침입 시도가 있었나?”
「가장 최근에 있었던 침입 시도는 3일 전입니다.」
“3일 전?”
3일 전이라는 건 의외였다. 에반은 이내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리는 사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 동안이나 입구를 수색하던 그들은 이내 입구를 찾지 못했는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이내 그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쉘터Z의 메인 NPC 중 하나인 신스케였기 때문이다.
‘쉘터Z.’
쉘터Z에서 핵미사일 발사실을 왜 찾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핵미사일 발사실을 찾고 있다는 것 만은 확실했다. 그것도 아마도 데메 테르- 전직 국가 원수의 딸의 이름으로. 무슨 목적으로 찾는 걸까? 이 아포칼립스를 종식시키기 위해? 그게 아니면…
확실한 것은 그들이 핵미사일 발사 실을 찾는 목적이 썩 좋은 목적이 아니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만약 데메테르가 반쯤 돌아서 핵미사일이라도 발사하는 날에는 우리가 이룩 했던 것들은 개박살 날 테니 말이다.
물론 우리 쉘터가 이곳을 점거한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을 위한 대비를해서 나쁠 것은 없는 것이다.
“이곳의 보안을 더 강화해줘.”
나는 에반에게 부탁하고, 안드로이드 로봇들을 추가로 배치했다. 내가 아닌 이상, 이곳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아다만티움 장벽으로 사방을 막아 놨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들어 갈 수야 있겠지만, 내 눈에 띄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대처는 마쳤다. 나는 발사 실 안에서 얻은 부가 아이템을 손에 들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한 게임에 하나 보기도 힘든 게 또 나왔다.
‘이게 또 나오네.’
설마 또 나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천상의 구 x1을 획득했습니다.」
바로 부활 아이템이.
* * *
‘어떻게 내가 가는 곳마다 망하지?’
존슨은 요 근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돌이켜보면 항상 자신이 가는 곳마 다 위기를 맞이하거나, 쫄딱 망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박시현에게 이 생각을 털어놨더니, 그는 심 려치 말라고 했지만…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슬슬 자신에게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공원에 서서 담배를 물던 그는 기어나오는 좀비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간만에 드는 평범한 재래식 권총…이긴 하지만 60레벨 중반에 육박하는 그가 들고 있는 이상 더이상 권총은 평범한 권총이라 할 수 없었다.
탄환이 머리를 박살 내고, 육편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공중 화장실 안에 있다가 소리를 듣고 나온 다른 좀비들도 똑같은 결말을 맞았다. 깔 끔하게주변에 있는 좀비들을 모조리 소탕한 그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때, 그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저게… 뭐야?’
어린아이가 걸어오고 있다. 이런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어린아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좀비라고 생각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좀비라고 생각하기엔, 도저히 좀비 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의 향상된 인지력을 통해 확인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권총을 내려놓고, 플라즈마 권총을 든 채로 아이를 겨눴다. 저런 경우 그가 알고 있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었다. 한 가지는 정말 아이 거나, 아니면 변종 좀비거나. 아무래도 후자 쪽에 가능성이 쏠리는 것은 어찌할 재간이 없었다.
그때, 아이가 입을 열었다.
“Eto kto? CheloVek?”
외계어? 아니, 언어가 통합된 이 세계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언어. 그때, 아이의 몸이 연보라색으로 빛났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는 그제야 지금 아이가 사용하는 것이 염동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플레이어? 아니, 플레이어일 리는 없지. 그렇다면 다른 초능력자가 있었던 걸까? 박시현에게 딱히 그런 얘기는 듣지 못했었는데. 염동력에 의해 몸이 들려있다는 것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던 그는 아이의 몸에 총을 겨눈 채로 말했다.
“인간이라면 멈춰라, 아니면 머리를 박살 낼 테니까.”
“Vy?”
또다시 물어오는 아이. 적대 의사 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결국 총을 내려놨다. 염동력을 푼 건 지 자신의 몸 역시 내려간다. 자신에게 다가와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에게 존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초콜릿을 건넸다. 아이는 초콜릿을 받아들고 야금야금 먹기 시작한다.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그는 박시현에게 우선 데려가 봐야겠다는 생각을했다. 박시현이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제로 데려가려 한다면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오토바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 멀리 있을 쉘터 아포칼립스를 가리켰다.
이내 그의 말을 이해하기라도 한 건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토바이 뒷좌석에 탑승했다. 디아블로 2에 있는 수납공간에서 헬멧을 꺼 낸 존슨은 아이에게 헬멧을 뒤집어 씌우고 단단히 아이의 팔을 고정한 다음 쉘터 아포칼립스로 출발했다.
마침내 쉘터 아포칼립스로 도착했을 때, 그가 본 것은 다름 아닌지 오반이었다. 박시현이 천상의 구를 통해 살려낸 인물이 바로 지오반이 었기 때문이다. 그는 반가운 얼굴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오반 역시 미소를 짓다가 아이를 보고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저 아이는…”
“아는 아이야?”
“존슨, 자네가 만든 협회에 있던 아이야.”
지오반은 담담하게과거를 회상했다. 좀비들에 물려 죽은 이후, 어딘 가 달라진 세상에서 그를 찾아왔던 것은 놀랍게도 쯔쉬안을 비롯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그를 반갑게 맞으면서 협회에 가입하기를 제안했고, 그는 덕분에 협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그 협회 안에는 ‘놀랍게도’ 초능력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족히 수십, 수백 명 이상의 초능력자들이 있었다. 대체 초능력자들이 어떻게 여럿 인 건지 쯔쉬안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녀는 얼버무릴 뿐 알려주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협회 안에서 봤던 초능력자 중에 아이가 있었다는 걸 떠올려냈던 것이다. 존슨의 얼굴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플레이어가 우리가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박시현은 아이에게 다가와 눈을 맞 췄다. 아이가 조금 불안한 눈길로 입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그 역시 알아들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언어가 자신이 들었던 억양과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러시아어인가?’
간단하게확인해보면 될 노릇이다.
그들의 쉘터에는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물론 번역기가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도 그것이 통용될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그는 이내 아이에게 기다리라 말한 다음, 나타샤를 찾으러 갔다.
아포칼립스 만능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