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all-purpose machine RAW novel - Chapter 209
211화
최종 진화체들과의 전투를 복기해 보면 과연 끝판왕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서른 마리가 침입해 쉘터의 장벽을 넘어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바하라 광산까지 침입했다.
물론 쉘터의 전력이 쉘터Z를 상대하느라 분산됐다고 해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더 숫자가 늘어났다면, 나는 둘째 치고 다른 거주민들이 당하고 말았을 테니까.
해서 나는 쉘터의 방비를 늘렸다.
모든 지하 통로를 아다만티움으로 막아버리고, 배치된 전투형 안드로이드 로봇의 숫자를 두 배, 세배로 늘렸다.
이런 내 방비는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 만에 최종 진화체 한 무리가 또다시 쉘터에 습격을 감행해 왔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전보다 열 마리 늘어난 마흔 마리였다.
‘어째서 조금씩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방비를 해뒀던 탓에,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인 탓에 무사히 막아낼 수 있었다.
물론 말이 무사히 막아낸 거지 이 백여 기의 안드로이드 로봇과 열 명의 거주민을 잃었다.
안드로이드 로봇이야 그들을 막다 가 그랬다 쳐도, 하필이면 운 나쁘 게도 최종 진화체들이 지나던 경로에 있었던 이들이 당한 것이었다.
뭐, 거주민들이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위대하신’ 쯔쉬안 신께서 부활을 내려주셨지만.
“놀리지 말라고요.”
“재밌는 걸 어떡합니까?”
그녀는 썩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밀어내는 듯, 밀어내는 듯하다가 내 품에 폭 안겼다.
“이제 완성까지 머지않은 것 같네요.”
우리는 전함의 위에 올라와 있었다. 이전에 알 수 없었던 고철의 모양과 달리 전함은 거의 완성 직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진척도 98%.
아다만티움 전함의 완성을 정말로 목전에 뒀다. 늦으면 이번 주 중, 빠르면 내일 중으로 완성될 것이다. 게임을 끝낼 키 카드, 그리고 저 너머의 세상으로 향할…
“알리샤와 드숀은 떠난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전함을 제조하기 전,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전함이 완성되면 게임은 끝난다고. 물론 장벽 너머, 도시 바깥의 세상을 알기 전의 일이었다.
“그렇습니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우리의 결혼식이 부러웠는지 그들은 게임 말고 현실에서 그들만의 결혼식을 가지고 싶노라고 떠들곤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들을 붙잡을 생각도, 무엇 보다도 자격도 없었다.
“그리고 지오반도 떠날 거라 하더라고요.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현실로 돌아간 지오반을 ‘천상의 구’를 사용해 되살린 데 어느 정도 미안함을 가지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타샤는 어떻게 한답니까?”
“나타샤 언니는 뭐랄까… 잘 모르겠어요. 아마 니하타와 함께 움직이 고 싶은 모양이에요.”
“니하타와 말입니까?”
“시공의 증표가 있으면 넘어가고 싶다, 넘어가서 그쪽 세상을 구원하고 싶다… 뭐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도 생각만 했던 것이었다. 시공 의 증표를 사용한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는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조력자가 돼 그들을 도울 수 있다.
나타샤는 니하타의 만남을 통해, 아마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싸이코의 부재. 아쉽기는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있는 일도 아니고, 그럴 수 있겠죠.”
“존슨은 뭐 말 안 해도 알겠죠? 존슨은 도시를 완전히 수복한다면 바깥으로 나가 죽을 생각이래요. 미 친 듯이 싸우고 죽을 거라던데…”
“그러다가 플레이어 좀비가 되려고, 쯧.”
존슨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바깥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라는 생각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괜히 플레이어 좀비가 돼서 우리 쉘터를 습격하면 자기가 책임지기라도 할 거야?
“별로 이 세계에 미련은 없는 모양 이에요.”
미련이 있는 건 나밖에 없는 건가. 하기야, 이게 당연한 건가. 하는, 조금 섭섭하다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이내 털어버렸다.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다.
“그나저나 김훈은 뭐 하고 있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기억 속 한편에서 김훈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같은 대한민국에서 온 한국인, 정상이라 말할 수 없는 정신 이상자. 고일이 초능력을 가지고 떠났듯, 그놈 역시 초능력을 가지고 떠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사고를 치고 다닐까?
“내심 조금 불안하더라고요. 시현과 가까운 곳에 사는데, 혹시 시현에게 무언가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에요.”
김훈의 고향이 부산이라고 했었나? 광주라고 했었나?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거주하는 서울과는 멀 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마음만 먹고 기차 타면 1시 간 30분이면 이동할 수 있으니 틀 린 말은 아니다. 김훈이 마음만 먹 는다면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내가 증발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시현에게 해를 끼친다면… 내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다른 플레이어들을 모아서 그를 죽여버려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 말하는 쯔쉬안의 눈빛은 냉기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정말 사람 죽일듯한 치명적인 눈빛이네. 원 체 아름다운 그녀가 그런 눈빛을 하니 색다른 매력이 있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앙탈을 부리며 조금 밀어내다가 또다시 내 품에 안기고 말았다. 나는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합시다.”
쯔쉬안은 불안한 눈을 하고 있었다.
“…두려워요. 현실에서는 시현을 못 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를 못 볼일은 없을 겁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과거의 나를 찾는 게 쉽지는 않을 테니까.”
김훈이 돌아갔다고 해봐야, 내 소재지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방콕해서 하루 종일 게임만 붙잡고 있었다. 방송을 하긴 했지만 내 얼굴과 자취방이 드러나는 것이 전부다.
녀석이 어디 시청, 경찰서를 털어 내 소재지를 파악하지 않는 이상, 즉 나를 찾아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는 존 슨이 만든 플레이어 연합이 존재한 다했다.
존슨이 플레이어 범죄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한다면 녀석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무언가를 하기 전에 이미 잡혔을 확률이 있으 려나.
김훈이 분명 ‘싸이코’인 건 맞지만 결국 그뿐이다. 지금의 나타샤와는 그야말로 천지차이… 비교 자체가 미안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은 궁극기를 찍지도 못했다. 시나리오 3에 들어가기 전, 구원교에 합류하는 선택을 했다가 우리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 었으니 말이다.
“김훈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뭘 하고 있을까요?”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지지만 마틴, 청한, 올리비아 등등 기억나는 이들을 제외하고도 몇 명의 인원들이 다 있었다. 그들도 간단한 초능력 정도는 가진 상태에서 죽었다.
현실에서 그들은 뭘 하고 있을까? 초능력자인 걸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현실에는 초능력자가 더 있을 것이다. ‘시공의 중 표’가 그 방중이다.
니하타와 같은 게임 세상에 있던 이들, 그리고 존재할지 모르는 또 다른 게임 세상…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이 죽어서 고스란히 게임 능력을 가지고 돌아왔다면…
세상은 몹시 혼란스러워지겠지. 내가 아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어.’
이곳에서의 경험 때문일까. 한 집단의 리더가, 한 나라의 군주가 됐던 경험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나는 아무것도 없는 현실로 돌아간다 해도 의연하게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함의 완성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퍼지자 시리우스 성 연합 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은 박시현 이전함을 활용해 도시 소탕한 이후 자신들에게 넘겨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행복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평범한 시리우스인들에 반해, 리더 격인 헤이든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순 없다.’
어떠한 위험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고향으로 돌아갈 순 없다. 그의 생각은 조금도 변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시현과도 이미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눈 상태였다.
-이 세계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모습을 감춘다면 당신들에게 전함을 제공할 의사도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 없네. 어차피 우리는 이 세계를 떠날 생각이 없으니 말이야.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고민했다. 매사에 고민한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일생일대 처음으로 해본 고민이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 간의 고민에 대한 결과가 바로 이것.
-당신의 의사가 그렇다면… 존중 하겠습니다.
다른 시리우스인들은 알지 못하는 계약 조건. 이 대화가 알려질 경우, 그들은 자신에 대한, 그리고 박시현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분노한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는, 그조차 알지 못한다.
‘어쩌면 반기를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지.’
시리우스인들이 아직 ‘오만함’에 빠져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만 먹는다면 박시현을 밀어내고, 쉘터 아포칼립스의 전권을 쥘 수 있을 거라고 지금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림 반푼어 치도 없는 생각이었다.
쉘터 아포칼립스의 리더는 그로서도 좀처럼 역량을 감안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사소한 능력을 넘어 이번 전함 제조로 그것이 확실해졌다.
그가 생각했던 전함은 그들이 시리우스성까지 타고 갈 만한 소형 전함 이었다. 이런 대형 전함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박시현은- 비록 자신과 베 타의 왕족이 전함에 대한 팁을 주긴 했지만- 대형 전함 제조에 거의 성공했다. 말 그대로 맨땅에서 이루어 낸,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가 자비를 내려줘서 아직도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거늘… 하지만 힘들구나. 나 또한 그들을 속였으니.’
마치 그에게 모든 잘못이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눈을 감은 채 고심하던 그때…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구려, 헤이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전까지 없었던 괴물의 홀로그램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론 괴물이 아니라 바라가쉬 남작 이었다.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바라가쉬 남작의 말에, 헤이든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나는 제대로 귀담아들었던 것 같소만.”
「말장난하지 마시오. 선물은 잘 받았소?」
“무슨 선물? …잘 받았지. 변변찮 은 선물이긴 했지만 말이야.”
말하던 그는, 이내 그가 변종 좀비 몇몇이 쉘터 아포칼립스를 습격했던 사실을 말하는 것임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를 죽이기로 결정했지. 그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요.」
“그녀가 누군지는 뭐, 어렴풋이 짐작이 가지만. 글쎄,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고?”
헤이든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어디 해보던가.”
바라가쉬 남작은 말없이 그를 노려 본다. 그는 그 시선을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다음 순간, 그의 홀로그램 이 사라졌다. 헤이든은 방안에 혼자 남은 채 한숨을 푹 쉬었다.
아포칼립스 만능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