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all-purpose machine RAW novel - Chapter 237
239화
존슨은 타고 있는 오토바이를 내려 다본다. 협회의 메카닉이 미스릴로 만들어준 신형 오토바이.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기준에서는 불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이미 ‘공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박시현이 만든 디아블로, 그 세 번째 시리즈를 타본 경험이 있으니까. 그로부터 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이제는 기억마저 아득해졌지 만.
핸들을 붙잡고 있던 그는 이내 천천히 돌린다.
운석이 떨어지고, 좀비가 나타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라스베가스는 여전히 차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 이들을 지나 그가 도착한 곳은 도시 구석에 있는 작은 바였다.
바에 들어간 그는 점원에게 인사를 건넨다. 점원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과거, 그와 함께 게임 속에 빠졌던 마틴이었다. 그에게 짤막하게인사를 건넨 그는 자리에 앉았다.
바에는 손님이 한 명밖에 없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겉보기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아볼 수 없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박시현, 안 보러 갈 거냐?”
후드 사이로 천천히,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글쎄, 곧 갈 예정이긴 해.”
“대체 왜 아직도 박시현을 기다리 게 만드는 거냐? 너도 많이 기다렸 잖아.”
후드 사이로 여자의 얼굴이 비친다. 그녀는 다름 아닌 쯔쉬안이었다. 그와 세계 초능력 협회의 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리고 재벌 위의 재벌로 손꼽히는 Z.
“글쎄.”
그녀가 이 라스베가스의 허름한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저 도박장 안에 있을 부자들이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구름 같이 찾아올 거라 그는 자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천천히 잔을 들이켰다. 초능력자는 일반인에 비해 해독 기능이 뛰어나, 술에 잘 취하지 않는다. 하물며 150레벨이 넘은 ‘힐러’라면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술에 취해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술에 취해있는 듯한 기분이라는 표현 쪽이 옳을 것이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글래스를 들어가볍게 목을 축였다.
“네가 흔들리는 건 이해한다. 예상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당연한 거다. 우리의 말에 따라 대비를 하지 않은 건 결국 각국의 정부니까.”
존슨은 쯔쉬안이 이렇게 술에 취한 이유가 그녀가 제대로 재앙에 대비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을 들은 그녀는 픽, 실소를 흘렸다.
그런 이유는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대신 자신의 경험담을 풀기 시작했다.
“글쎄, 존슨. 내가 이번에 내 나라를 돌아봤는데 말이야.”
“중국은 지옥이라 했었지. 괜찮나?
…아니, 괜찮을 리가 없겠군.”
그녀의 말을 들은 존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이번 재앙을 미국 정부와 미국내의 초능력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막아냈다.
괜히 ‘선진국’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나은 대처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런데 협조와는 거리가 먼 중국 정부,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초능력자들. 당연하게도 그들이 쉽게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미 좀비들에 의해 뒤덮였어.”
중국은 인구가 많다. 다른 나라의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 가까이다. 그리고 그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좀비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로 변해버렸다.
그마저도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좀비가 있을지는 그들조차 알지 못한다. 변종 좀비도 대거 탄생했을 것을 감안한다면, 이 지구에 다시 없을 재앙이었다.
중국 정부가 핵을 발사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결국 그들은 핵을 발사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옳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이미 먹혔으니까.’
운석이 떨어져 내리던 날, 자신을 플레이어라고 칭하는 좀비들 역시 떨어졌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패러 사이트 퀸처럼 정신지배 능력을 가진 좀비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중국의 지배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어렵지 않게 수뇌부를 잠식하는데 성공했다.
쯔쉬안은 그 사실을 알고 그들을 모두 다 솎아냈지만, 이미 회생 불가상태로 망가져 버린 지 오래였다. 특히나 특정 지배층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이니만큼 그 정도는 심각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제 망했다. 아니, 망하지 않았다 한들, 이 아포칼립스가 끝난다 하더라도 수십 조각으로 분열될 일만 남았다.
물론 그녀는 중국이 수십 조각으로 나뉘어진 것 때문에 이토록 심란해 한 건 아니었다.
지난, 약 구 년간의 세월 동안 중국 정부를 상대하며, 없던 정도 떨어졌던 그녀였으니까. 심지어 주석 은 그녀의 재산을 노리기까지 했었고 말이다.
“그럼 대체 왜 그러는 거냐? 우린 지난 십 년간 잘해왔잖아. 그리고 박시현도 돌아왔고.”
“그건 말이야. 존슨, 사실 이 세계 가…”
느릿하게말하던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짓이라면 어떻게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가 사는 세계가 왜 거짓이야?”
“매트릭스에서 봤던 것처럼 빨간 약을 먹은 세계와 파란 약을 먹은 세계. 진짜 세계는 사실 이 세계가 아닌 저 멀리에 있는 세계인 거지.”
말을 빙빙 돌려 말했지만, 이 세계 가 거짓이라는 의미였다.
“네 말에 의하면 우리가 한낱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거냐?”
존슨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세계 가 실은 게임 세계고, 이 세계에 있는 이들은 게임 NPC라고?
도저히 믿기 힘들지만, 최근에 일어난 일들- 자신을 플레이어라고 자처한 좀비들이 운석에서 떨어진 일-을 본다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그래, 데이터 쪼가리. 너도, 나도, 마틴도, 그리고 이 바도, 바깥세상도.”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 없다. 이건 현실이니까.”
이게 거짓일 리 없다. 마치 게임 세상 속의 게임 NPC들이 현실이라고 믿는 것처럼, 그 역시 이 세계를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품게 된 이유가 뭐지? 자신을 플레이어라고 주장하는 좀비들 때문인가?”
“내가 말했던가? 내가 게임의 끝을 봤다고?”
“…아니, 들어본 적 없다.”
“그 게임의 끝에서 말이야. 내가 본 게 뭔 줄 알아?”
그녀는 글래스를 들어 입을 축였다. 그녀의 말을 기다리는 것이 조금지루하다 느낄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붉은 입술. 그사이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
그녀의 말을 들은 존슨의 입이 벌어졌다.
퀸은 눈을 뜬다. 최근 슈퍼컴퓨터 수백 대가 추가되면서 그녀는 한층 더 진보했다. 유례없는 인공지능, 이제는 그야말로 신이나 다름없는 능력을 보유한 그녀였다.
그녀는 그런 능력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무기를 양성해냈다. 이 세계에 있는 초월체들을 전부 쓸어버리 기 위해. 박시현이 있던 시절에 비해 안드로이드 로봇들은 약해지긴 했지만.
아다만티움 전함까지 동원하니, 실로 그것은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결국, 초월체들은 모조리 쓸려나갔고, 좀비들을 대신해 그 자리를 차 지한 건 안드로이드 로봇들이었다.
한편, 도시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 인공지능이 미쳐서, 저 로봇들이 우리를 공격할 거래.
라는 등의 이상한 소문. 박시현이 있던 시절에도 저런 소문이 퍼진 적이 있었지만, 당연히 그에 의해 쉽게 무마됐다. 그러나 이제는 박시현 이 없었다.
퀸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거주민 들은 불안해했다.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극히 일반적 인상식을 가진 일반인들마저 점차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었다.
쯔쉬안이 막아보려 했지만, 쉽게 막을 수 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마. 어차피 그 사람들 대개는, 그냥 못 까서 안달인 사람들이니까.”
그녀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현실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넘쳐흘렀다. 쯔쉬안의 말에, 퀸은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않아요, 쯔쉬안.”
“글쎄, 내가 보기엔 신경 쓴다고 밖에 안 보이는데? 하기야, 신경이 안 쓰이면 이상한 거겠지만.”
쯔쉬안은 한숨을 쉬었다. 퀸은 그녀의 말에 대한 대답 대신 화제를 돌렸다.
“마스터는 뭘 하고 있을까요?”
“글쎄, 나도 모르지. 어디 딴 여자 랑 놀고 있을지도.”
그녀는 쓰게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여기 있는 쯔쉬안과, 마스터의 세계에 있을 쯔쉬안.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만약 존재할 수 없다면, 어느 쪽이 진짜일까요?”
“그게 무슨 의미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쯔쉬안의 말에 퀸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마스터의 여동생에게 물어보고 나서 확신했어요. 저 세계는 우리 세계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세계예요.”
“…그렇다면?”
“퀸은 두세계 중 어느 세계가 ‘거짓’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 세계든, 아니면 저 세계든 둘 중 하나 는.”
“이 모든 게 거짓이라고?”
쯔쉬안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 하긴했다. 자신이 여기서 죽는다고해서, 시현이 있는 ‘현실’로 돌아가는 걸까. 그런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그녀는 무언가 ‘잘못됐다’라는 것을 느끼고 에밀리를 찾아가 물어보 기도 했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게임 세계. 저 세계가 게임 세계 와 같은 허구의 세계라면?”
“그러면 우리 세계가 거짓이고, 이쪽이 진짜라는 말이야?”
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 거짓일 수도 있으니까.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그 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였다. 그녀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모든 안드로이드 로봇들과 모든 감시 카메라들과 시야를 공유한다.
그녀의 눈에 하얀색의 연구실이 들어왔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대략 3,000km 떨어진 곳에 있는 연구실. 그녀는 그 안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팀 아포칼립스 (Team ApoCa1ypse)라고 적혀진 건물이었다. 팀 아포칼립스? 공교롭다. 초능력 양성 기관이었던 걸까?
그녀는 인공 심장이 뛰는 걸 느끼고, 천천히 안드로이드 로봇들을 시켜 안으로 들여보냈다.
건물 안은 어두웠지만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그녀는 환한 대낮처럼 알 아볼 수 있었다. 건물 안에는 온통 ‘캡슐’들이 들어 있었다.
캡슐 안에는 사람의 형체가 들어 있었다. 무슨 종류의 캡슐인 걸까.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는 천천히 캡 슐을 열었다. 그 안에는 남자가 잠 들어 있었다.
모르는 남자였다. 하지만 남자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포칼립스가 터진지 일 년이 훌 쩍 넘어간 세상이다. 딱히 냉동 캡 슐인 것 같지도 않은데, 캡슐 안에 있는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고?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생명 유지 장치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 순간, 저 멀리 있던 캡슐의 문이 덜컥, 하고 열렸다.
아포칼립스 만능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