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Survival Game RAW novel - Chapter 115
114화
씨-시티 (6)
‘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조금 전 걸었던 것과 같은 출렁이는 길. 그러나 조금 전 불투명했던 길과는 다르게 문 너머의 길은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기다란 비눗방울이 출렁대는 것만 같았다.
거기다 바다로 이어지는 길이라더니, 세운은 이 길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이미 바다로 나와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방호복을 입었던 곳에서 나왔을 때부터 바다였던 거죠.”
세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눈을 빛내는 세운을 향해 버디가 말했다.
“발전기 외부와 연결되는 곳입니다. 바닷물 속에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유연한 소재로 길을 만든 겁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버디가 안경을 추켜세우듯 헬멧 유리의 앞쪽을 손으로 쓸었다.
세운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상의 대답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정말로 아름다워서.
“저는 이 길을 ‘씨-로드’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바닷길이죠. 이 길로 다닐 때마다 바다에서 걸어 다니는 기분을 느낍니다. 바다 위가 아닌, 바닷속을요.”
세운이 또다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귓가로 버디의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왔다.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리곤 투명한 그 길로 걸음을 내디뎠다.
길을 둘러싼 막이 투명하기 때문일까, 그는 정말 바닷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세운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저건……. 뭐지?]라그네의 말에 무심결 고개를 돌린 세운은 곧장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길과 멀지 않은 어두운 바닷속에, 기다랗고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무언가가 마치 막대기처럼 서 있었다.
그 거대한 막대기는 조금씩 옆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바닷물에 휩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막대기 스스로 이동하고 있었다.
두려움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버디의 설명이 들려왔다.
“저건 갈치입니다. 변이돼서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는데, 이전 갈치와 다를 바가 없어 그대로 ‘갈치’라고 불리죠.”
“…….”
“구워 먹으면 맛있겠습니다.”
“?!”
자신은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는데. 천하태평인 버디의 말에 세운이 놀라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버디는 휘적휘적 걸어갈 뿐 특별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생각을 읽은 것인지 버디가 말을 이었다.
“갈치는 흉포한 생물이긴 하지만 건드리지 않으면 위험할 게 없습니다. 씨-시티는 주위에 생물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다생물들이 싫어하는 파장을 쉴 새 없이 뿜어내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거대하게 솟은 갈치를 흘낏 바라본 뒤, 세운이 그의 뒤를 쫓았다.
세운은 버디의 뒤를 쫓아 씨-로드를 한참 걸어갔다. 중간 지점이라는 곳도 세 번이나 더 지났고, 그럴 때마다 버디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건너갔다.
아무래도 이 씨-로드라는 곳은 미로나 다름없는 것 같았다.
“다 왔네요.”
그리고 얼마를 걸었을까, 버디가 드디어 길 중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세운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곳이 요새 저의 고민입니다.”
“이곳이요?”
버디는 길 바깥, 발전기의 외부를 보고 있었다. 세운도 버디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
그것을 확인한 세운의 눈이 커졌다. 세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버디가 가리킨 발전기 일부에 마치 칼로 난도질을 해놓은 듯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발전기 일부가 찌그러지고, 파손된 것은 물론이고 아래엔 알 수 없는 문양도 새겨져 있었다.
“이건…….”
“뭐로 보이십니까?”
“누가 이런……. 제가 보기엔 각인 같은데요. 아닙니까?”
“흠. 역시 그런 것 같죠?”
버디가 돌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민 손은 마치 비눗방울같이 길을 감싸고 있던 막 너머까지 나아갔고, 막이 손을 따라 주우욱- 늘어나는 것을 보며 세운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혹시라도 찢어질까 봐 겁이 나서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러라고 투명으로 만든 거라.”
“아…….”
그리고 버디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막은 그의 손을 감싸며 늘어날 뿐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떤 재질로 만들어진 것인지 세운이 신기한 듯 막을 만졌다.
그사이 수리가 필요한 발전기의 외부를 살펴보던 버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막 너머 어딘가에서 네모난 상자가 물살을 가르며 날아왔다.
세운은 그것이 처음엔 안디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버디는 자연스럽게 네모난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수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가 들어 있었다.
공구함이었다.
‘신기하네…….’
수리공은 막 안에 있는데, 도구는 막 바깥에 있다.
하기야 도구를 사용하면 막이 걸리적거리게 될 수 있으니 당연하였지만, 세운은 그럼 이 도구함이 평소엔 어디에 보관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 얇은 막의 밖은 완전한 바다고, 그 말은 씨-시티의 돔 바깥이라는 말이니까.
달그락. 달그락.
버디는 공구함에서 필요한 도구를 꺼내 발전기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흠집이 사라지고, 부서진 파편이 복구되는 것으로 보아 도구들도 평범하진 않은 것 같았다.
보기엔 쉽게 수리하는 것 같은데도 또 버디의 집중한 모습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이 많던 사람이 수리에 들어가면서부터 한마디 일절 입을 열지 않고 있으니까.
버디의 수리가 이어질 동안 세운은 잠자코 그를 기다렸다.
치이이익- 우웅- 위이잉!!
그렇게 또 한참. 수리를 마친 뒤, 버디가 도구들을 다시 공구함에 넣었다.
뚜껑을 닫자, 공구함이 어디론가 날아갔다.
“끝난 겁니까?”
“보시다시피.”
그가 가리킨 발전기의 외부는 언제 파손되어 있었냐는 듯이 말끔했다. 역시 수리공은 수리공인 듯싶었다.
“사실 귀찮아서 내일이나 수리할까 했는데, 마침 구경 오신 김에 해 버렸습니다. 앗, 이런!!”
“??”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고 있었잖아? 성함이?”
뜬금없지만 충격적인 질문에 세운은 그제야 자신의 이름은 버디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세운이라고 합니다.”
“진……. 예?”
“진. 세. 운입니다.”
버디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군요.”
어딘가 모르게 엉뚱한 사람.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수리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세운은 그런 버디가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띠링!
[퀘스트 ‘발전기 수리공의 고민’을 완료하였습니다.] [완료 보상으로 100Cal가 인벤토리로 지급됩니다.]“최근 들어 파손 알림을 받고 가보면 오늘처럼 누군가 일부러 파손시킨 듯한 모습을 자주 봅니다. 문제는 그런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건데……. 이 주위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변이체도 접근하지 않는데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참.”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씨-시티를 보호하는 돔의 외부 구역. 거기다 발전기는 씨-시티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이러한 짓을 누가 했든 발전기를 파손시키는 것은 도시 전체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
“귀찮아 죽겠습니다.”
“……그게 고민이신 겁니까?”
“이렇게 외부 수리가 많으면 얼마나 귀찮은지 아십니까? 내부에도 수리할 게 천지인데……. 씨-로드도 한두 번이야 신기하지, 매일 다녀보십시오.”
버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식상하기만 하죠.”
세운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자신이 보기엔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상황인 것 같은데. 고민이 겨우 귀찮은 거였어?
세운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럼 이 사실을 어디에도 말하지 않은 겁니까?”
“말하다뇨? 어디에요?”
“어……. 도시를 관리하는 부서라든가 그런 곳에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요?”
버디가 짧게 혀를 차올렸다. 그가 한숨과 함께 토로했다.
“보시다시피 일이 너무 바빠서 말이죠. 그럴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럼…….”
그럼 이대로 발전기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거지? 그렇게 되면 이 도시는 완전히 망하는 거 아닌가?
‘뭐 이렇게 태평해??’
“아, 혹시 시간 있으시면 저 대신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B구역 도시 관리국에 가서 얘기만 해주시면 되는데.”
띠링!
최근 들어 발전기 외부에 누군가 고의로 파손한 듯한 현상이 여러 차례 발견되고 있다. 발전기 수리 일로 시간이 부족한 버디는 당신이 이 사실을 대신 전해 주길 원하는데.
난이도 : D
[도시 문제 접수 (미완료)]보상 : 100Cal
* B구역에 위치한 ‘도시 관리국’에서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세운은 돌연 떠오른 퀘스트를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그제야 버디의 태평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볼게요.”
“오오. 감사합니다.”
*
*
*
솨아아아-
하얀빛이 사그라들고, 공기가 변했다. 나와 즈엉 란은 씨-시티에서 텔레포트 섬으로 나왔다.
“약간 덥네요, 여긴.”
“씨-시티는 적정 온도 조절이 되지만 여긴 아니니까요.”
“하긴, 역시 씨-시티가 살기 좋아요. 아깐 증표고 뭐고 그냥 여기서 눌러살까 싶었다니까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있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즈엉 란이 진지하게 다시 물어왔다.
“솔직히, 유토피아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여기가 이전 가상세계 일반 서버보다 살기 좋지 않아요?”
“…….”
“아니, 생각해 보세요. 씨-시티는 사람들을 제약하는 법도 있잖아요? 기준이 기계들이라서 그렇지……. 어차피 사막 대륙 이후로 72시간 제약도 안 나오겠다, 딱인 것 같은데?”
즈엉 란의 말을 듣고 문득 자연스레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사막 대륙에서 시험을 치를 때 이후로 72시간 목표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아가는 자와 남는 자를 구분하는 것도 그렇고. 72시간 목표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어느 순간 시스템의 억압이 풀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만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시선을 돌려 내게 물어오는 즈엉 란을 바라보았다. 즈엉 란이 어깨를 으쓱이며 내 의견을 눈빛으로 재차 물었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죠?”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 어떤 때인 줄 아십니까?”
즈엉 란이 눈썹을 휘었다. 모른다는 표정이라서 곧장 대답했다.
“평안할 때입니다.”
“……평안할 때요?”
“평안할 땐 그만큼 무방비 상태가 되고, 평안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무르려고 하죠. 더 이상의 발전도, 변화도 바라지 않게 됩니다.”
“좋은 거 아닌가요? 평안하다면.”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순간, 인간은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평안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죠.”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평안을 이루는 것이 오로지 인간의 의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영원할 거라 믿었던 환경이 변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익숙하던 인간은 변화하는 환경에 휩쓸려간다.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 믿으며,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게 된다.
인류는 그렇게 멸망했다.
“즈엉 란 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평안할 때입니까?”
“…….”
즈엉 란이 입술 안쪽을 깨물며 시선을 내렸다. 찌푸려진 얼굴이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녀는 저 스스로 답을 내렸는지, 슬픈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지금은 싸울 때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사람들을 구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