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Survival Game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신이 되고자 하는 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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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 처음 갇혔을 때 우리는 시스템의 강제성이 두려워 움직여야만 했다.
72시간 내에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운 벌을 받는지 모두가 똑똑히 보았으니까.
첫 72시간 퀘스트는 72시간 동안 열심히 임한다면 충분히 깰 수 있는 퀘스트였고, 다음 72시간 퀘스트는 다소 달성하기 쉬운 목표였다.
그다음은 조금 더 쉽고 그다음은 더 쉬운.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에 따라 난이도가 조정되어 적정하게 주어졌고, 죽음이라는 페널티는 같았지만 두려움은 서서히 사라졌다.
“72시간 목표가 처음 주어졌을 때 그런 말을 했지, 시스템이 사람들을 살린다고.”
먹지 않아도, 일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배고프지도 죽지도 않는 가상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
그들이 FTU 세계에 처음 갇혔을 때 나는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갑작스런 배고픔과 가난에 적응하는 사람들은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
그러나 시스템이 고통을 각인시켜 사람들의 행동을 강제하고 움직이게 만들고, 그들을 살게 했다.
“처음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쳐도. 이후엔 우리에게 분명한 ‘선택’이 주어졌어.”
72시간 목표는 사막을 지나며 어느샌가 사라졌다.
시스템은 더 이상 죽음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사막 이후엔 남는 자와 나아가는 자를 선택할 수 있었지.”
비록 남는 자들은 캠프에 남아 기술을 배우고 일을 해야 했지만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기술이나 일을 하는 건 이 세계에서 살기 위해선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이후에도 시스템은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게임을 포기할 기회, 퀘스트를 거절할 기회, 유저들 사이에서 죄를 저지른 살인자들에 대한 처벌의 기회. 그리고…….
‘이 대륙에서 어째서 퀘스트가 없는지 알 것 같아.’
이번 대륙에서 시스템은 우리에게 해야 할 일들을 주기보단 대륙의 여러 모습을 보게 했다.
신전의 부패와 패악, 잘못된 권력에 순응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맞서지 못하는 도시의 약자들.
그 문제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이번 대륙에선 모든 것이 보란 듯이 우리 앞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시스템이 던져준 ‘대륙의 증표 퀘스트’.
신전에 굴복하고 신앙 포인트를 쌓으면 증표를 얻을 수 있다는 대륙의 증표 퀘스트는 사실상 ‘목표’가 아닌 ‘선택지’였다.
시스템이 우리를 향해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던져준 선택지.
신전에게 굴복하고 쉽게 증표를 얻을 것이냐,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어렵게 증표를 쟁취할 것이냐.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조금 전의 그 모습이겠지.’
도시 NPC들을 챙기며 도망치던 유저들 그리고 그런 유저들을 피해가며 도망치던 사제들.
신전에 도착하기 전까지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유저들의 선택이 명확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유저들은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어렵지만 옳은 길을.
“우리는 우리의 선택으로 목숨을 걸었어. 근데 네 계획에 선택이 어디 있지? 네가 벌이는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에 우린 목숨보다 더 큰 걸 걸어야 돼. 그런데 무작정 따르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 말이 이어질수록 일루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내가 본인의 계획에 반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환영마는 이전 FTU 때부터 그런 습관이 있었다.
혼자서 무언가를 고심하고, 혼자 답을 내리고, 그것이 완벽하다는 듯이 우리에게 설명했다.
그러다 우리가 그 계획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면 그는 한동안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한참을 혼자 구석에서 삐져 있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다는 듯이 나와서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곤 했다.
“그만둬. 우리는 원하지 않아,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세계를 뒤엎는 거.”
“…….”
“조금만 더 생각해봐. 너도 알 수 있을 거야, 사람의 목숨은 그렇게 쉽게 네 멋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싫다면요?”
싫다고?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은 의문이 든다.
과연 일루전이 여기서 멈출까?
이전 FTU 때와 같이 아니라는 말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긴 할까?
지금의 상황은 이전 FTU 때의 상황과 비슷하지만 문제의 크기가 다르다.
그땐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지금의 문제는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는 거대한 사건.
“싫어도 그만두는 게 맞아.”
나는 긴장하며 그를 응시했다.
그의 반응에서 ‘토마’의 반응이 나오진 않을까, 그의 습관이 보이진 않을까.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뒤쪽에선 세운을 포함한 파티원들과 사르단 일행이 숨을 죽인 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내가 일루전을 설득시킬 수 있느냐에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이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야, 토마.”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일루전이 날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맹수의 날 선 시선이 느껴졌다.
잔뜩 경계하고 적대하는 시선. 그리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함이 가득 배어 나오는 시선.
“난 선택받았어요!”
“선택이라니?”
“가상 세계를 이렇게 만든 자들이 날 인류의 구원자로 선택했다고요!”
“…….”
무슨 말이지? 구원자? 선택?
“지금 네가 신이라도 된다는 건 아니겠지?”
“맞아요.”
너무나 단호한 대답에선 그의 확신이 느껴졌다.
자신이 선택받았고, 사람들을 구원할 운명이고, 우리의 신이라는.
“……어째서?”
“그들이 내 세상을 선택했고, 내게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줬으니까요.”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나 그게 어째서 일루전이 우리의 신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순 없었다.
“그런 이유면 그들이 스스로 우리를 다스렸겠지.”
“뭐, 그건 귀찮았나 보죠. 아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가.”
세계를 이렇게 뒤엎어놓고도 사람들을 다스릴 자신이 없어서 일루전을 선택했다?
“하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왔다.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켰다는 얘기는 들어 봤어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그들을 희생시키는 신은 듣도 보도 못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류를 희생시키겠다니, 누가 생각해도 믿기 싫은 신이 아닌가?
“……왜 웃으시죠?”
일루전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되물었다. 대답할 가치조차 느낄 수 없었다.
왜 웃냐니? 어이가 없으니까지.
슈르륵-
탄환을 소환했다. 고무줄에 걸고, 일루전을 향해 조준했다.
일루전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탄환을 바라보았다.
“이게 당신의 선택입니까?”
“아니.”
이건 내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이건 네 선택이지.”
설득시킬 수 없다면 싸울 수밖에. 상대가 아무리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후회하실 겁니다.”
파지지직……. 파직…….
그의 손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이 일루전의 일부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쐐애액-
탄환을 날렸다. 그러자.
슈슉-
“이런 걸로 절 막으려 하시다니요. 제 능력, 대충 아실 텐데?”
를 쓴 일루전이 순식간에 내 곁에 다가왔다.
파지지직-!!
“진혁아!”
전류가 휘감긴 일루전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졌다. 나는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그의 손을 피하며 관통형 탄환을 박아 넣었다.
“!!”
탄환의 머리가 일루전의 옆구리에 반쯤 들어가는 순간.
슈슉-!
일루전이 또다시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
“젠장!!”
를 이용해 거리를 벌린 일루전이 옆구리에서 탄환을 뽑아내려 했다.
그 순간, 진혁이 탄환을 변형시켰다.
‘폭발형 변형’
관통형이 중지만 한 길이의 탄환이라면, 폭발형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동그란 탄.
변형된 탄환은 일루전의 몸속에 자리를 잡았고, 갑작스레 사라진 탄환에 일루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그 순간.
퍼엉-!
일루전의 옆구리 쪽에서 작은 폭발음이 울리더니 동시에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슉- 슈육- 슉-!
진혁이 쉬지 않고 연기를 향해 탄환을 날렸다. 그러나 탄환이 어딘가에 맞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다섯 개쯤 날린 후 진혁은 연기 속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타격을 줬을까.’
[놈의 몸 안에서 폭발했다. 그건 확실해.]를 쓰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
는 새총뿐만 아니라 탄환까지 포함되는 것이었다.
탄환의 기본적인 부분은 변형시킬 수 없지만 모양은 새총과 같이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고, 무기에 따라 자동으로 변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금 전처럼 공격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
‘…….’
새총의 말을 들으며 나는 연기 속을 응시했다.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고 해도 일루전 정도면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터.
저벅. 저벅. 저벅.
아니나 다를까, 일루전이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 초록빛이 맴도는 것으로 보아 치유 스킬을 사용한 듯했다.
“진혁아.”
세운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즈엉 란과 선화 누님 그리고 사르단 또한 무기를 든 채 내 뒤에 섰다.
“누님과 란을 데리고 피해.”
“너는.”
“내가 일루전을 막고 있을게.”
“막으면? 그다음은?”
“…….”
사실 그다음은커녕 내가 일루전을 막을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지금 쓸 수 있는 스킬은 고작 무기뿐. 치유든 회복이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일루전을 상대로는…….
“내가 일루전의 스킬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
세운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스킬을 막는다는 거지? 진세운도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건가?
“대신 난 그것 외에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어. 그러니까 생각해봐, 그다음.”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스킬을 못 쓰도록 막는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세운은 진심이었다.
‘그다음이라.’
그다음, 일루전을 쓰러트린 그다음. 일루전이 이 세계를 뒤엎으려는 계획을 막을 방법.
“……알겠어.”
새총을 세게 말아 쥐었다.
나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일루전이 스킬을 쓰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파지지직- 쿠르르르르릉…….
신전 광장의 주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들었다.
화르륵-
걸어 나오는 일루전의 주위로 붉은 불길이 화르륵 타올랐다.
그의 옷깃이 불길이 일으키는 힘의 흐름에 따라 펄럭였고, 그의 양손에선 조금 전과 달리 날카로운 스파크가 일었다.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내가…… 내가 그렇게 봐드렸는데 어떻게…….”
짓씹듯 내뱉는 말에선 서늘한 분노가 느껴졌다.
마치 조금 전까지의 상황은 전부 장난이었다는 듯이.
쿠르르릉-!!
먹구름이 머리 위에서 번쩍였다.
순식간에 저녁이 된 듯이 주위가 어두워졌다. 일루전이 개발자라는 것이 더욱 실감 났다.
“무(無)가 어떤 것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곳에서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제 뜻을 분명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파지지직-!!
그의 손에서 스파크와 불길이 동시에 빠르게 피어올랐다.
“당신들은 내 계획이 전부 실현될 때까지…….”
그의 눈가가 촉촉했고, 목소리가 울먹였다. 마치 우리를 죽이는 것이 진심으로 슬프다는 듯이.
“그곳에 있어 줘야겠습니다……!”
파지지지직-!!! 화르륵!!
“!!”
나는 서둘러 새총을 앞으로 내밀었다.
새총이 순식간에 커다랗고 동그랗게 커지며 방패가 되어 나와 파티원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