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Survival Game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두려움 (1)
나는 화염마가 여자인 것보다, 한인규가 상처받았다는 얼굴을 하는 게 더 어이가 없었다.
경중을 따지자면 근육질 덩치가 꼬맹이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인데.
‘생각해보면 이전 FTU때 민석은 우리랑 같이 물에 들어간 적이 없었지.’
그땐 그냥 물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어. 깔끔한 성격인 것 같기도 했고. 그런데 여자였다니. 이상했던 행동들이 전부 이해가 된다.
‘아, 정말…….’
역시 믿을 만한 놈들 하나 없다니까.
나는 화염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인규의 말처럼, 그녀는 나를 죽일 목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내 정체를 왜 묻지? 사사건건 방해나 하면서.”
“사람을 찾고 있다.”
화염마의 시선이 잠시 한인규를 향했다.
무언가 질책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예상 가는 사람들은 전부 확인했다. 내가 찾는 사람은 아니더군. 한데 너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하, 그러니까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알고 싶어서 사람들도 보내고 육식 토끼 무리도 보냈다는 말인가?
“누굴 찾고 있는데?”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다.”
“왜 찾고 있는데?”
“그것도 네가…….”
“이진혁 찾는 거지?”
화염마의 말을 끊은 것은 한인규였다. 화염마는 그런 한인규를 빤히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그래.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군, 괴력마.”
“우리 서로 그런 오글거리는 칭호로는 부르지 말자. 맘에 들긴 하는데 지금은 좀 안 어울리게 돼 버려서 말이야.”
그 말을 하는 한인규는 조금 씁쓸해 보였다. 민석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인규의 말이 이어졌다.
“이진혁은 왜 찾는데? 증표 찾으려고?”
“그놈만큼 믿을 수 있는 놈은 없으니까.”
생각 외로 순순한 대답에 나는 도리어 놀랐다.
나한테는 절대 안 알려줄 것처럼 굴더니 의외로 아는 사람한테 약한 타입인가? 아님 어린아이한테?
민석의 대답을 들은 한인규가 재미있다는 듯이 큭큭 웃었다.
민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웃지?”
“아니,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뭐가 웃기지?”
“앞에 두고 몰라보고 있으니까.”
한인규가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민석의 시선이 자연스레 나를 향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아, 그래. 이런 성격이었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 내리는, 한인규가 성급하다면 민석은 신중하다.
즉 지금 그녀는 자신이 알아본 정보를 바탕으로 나를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집한 정보엔 나의 개방 스킬이 무엇인지도 있겠지.
‘딱히 속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한인규 때와 같은 상황이 돼 버렸네.
“웃지 마라. 아직 안 죽인 거지, 못 죽인 게 아니니까.”
“……하하.”
어떻게 만나는 놈들마다 나를 못 죽여서 안달인지.
“한인규, 어째서 이놈이 이진혁이라는 거지? 이놈은 스킬이 고작 새총이다.”
눈썹이 착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감히 내 스킬을 비웃다니.
“그게 사정이 좀 있어. 야, 이진혁. 네가 말해. 석이가 못 믿고 있잖아.”
민석의 시선이 다시 나로 향했다. 여전히 불신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내가 이진혁인데.”
“…….”
“못 믿는 눈치네?”
“이진혁은 생존가다. 이진혁의 개방 스킬은…….”
“해독? 알아, 해독이었지. 나도 그 스킬 얻고 싶었어. 처음에 복구 뜰 때까지만 해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고.”
나는 나에게 벌어진 일을 민석에게 설명해주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한인규를 만난 일까지.
그동안 민석은 아무런 대꾸 없이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봐, 여전히 못 믿잖아.”
그녀의 눈빛은 똑같이 불신으로 가득했다.
‘예상은 했지만.’
화염마는 이전 FTU 때에도 속을 알 수 없던 사람이었다.
한인규 때와 같이 둘만 나눈 대화가 있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어쨌든 이게 전부야. 이 이상 믿기지 않는 건 나도 어쩔 도리가 없어.”
“……그렇군.”
“그래서. 어쩔 거야? 지금처럼 계속 날 시험해볼 생각인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사르륵 따라 흔들렸다.
“이제부턴 굳이 이렇게 일을 벌일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 말은……?”
이제 뒤에서 일을 벌이지 않겠다는 말이겠지?
“너와 같이 다니겠다.”
“……뭐?”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녀가 딱딱한 얼굴로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너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같이 다니겠다는 거다. 너와 같이 다니며 네 정체가 확실해질 때까지 널 감시하겠다.”
“…….”
그러니까 지금 동료가 되겠다는 건가? 그런 말이야?
한인규를 바라보았다.
한인규가 자신도 모른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진짜 이진혁인지 아닌지. 겪어보면 알 수 있겠지. 혹여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괴력마를 어떻게 꼬드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텐 안 통한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꼬드긴 게 아니라니까.
나는 한인규에게 빨리 해명하라는 눈치를 보내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미안하다.”
허, 그러나 정작 한인규는 내가 저를 꼬드겼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쓸데없는 말에 반응하기나 하고.
나는 화염마를 파티원으로 얻은 것을 환영해야 하는 건지, 대놓고 감시하겠다는 말에 화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그렇게 파티를 이루었다.
“참고로 내 이름은 민석이 아니라 민선화다.”
그리고 그녀의 진짜 이름도 알아냈다.
*
*
*
웅성웅성.
[72시간 퀘스트의 주어진 시간이 끝나기 3분 전]본부 앞 광장에는 가상 세계가 이렇게 변해 버린 날과 비슷하게 사람들이 가득했다.
서둘러 퀘스트를 마무리하려는 사람들, 퀘스트를 하긴커녕 본부 앞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 그들의 말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
지금 이순간에도 성장에 힘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나와 파티원들은 결과를 지켜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든 ‘시스템’이 처음으로 가한 제약이다.
가상 세계를 이렇게 만든 배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니, 이렇게라도 확인해야 했다.
그들의 ‘의도’를.
“난 솔직히 별일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죽고 다시 살아나지 않겠어?”
한인규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진세운이 대답했다.
“아마 그러진 않을 거야. 시스템이 처음으로 우리를 제약한 거니까. 본보기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
“기다려보면 알게 되겠지.”
팔짱을 낀 채 노려보듯 농성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민선화가 말했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군.”
그녀와 파티를 맺고 지켜본 그녀의 능력치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키웠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녀의 능력치는 나와 비슷할 정도였다.
‘괴물…….’
나야 특이한 성향을 얻었으니 가능했다지만 어떻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감시하면서 저렇게 성장할 수 있지?
“시간 다 됐다.”
진세운이 긴장한 눈으로 광장의 첨탑 위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 세계의 정확한 시간은 저 첨탑의 시계를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첨탑의 초침이 이제 막 숫자 9를 지나가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파티원 전원과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전부 긴장한 채 초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10. 9. 8. 7…….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줄어드는 시간을 속삭였다. 군중의 속삭임은 그것대로 긴장감을 불러왔다.
6. 5. 4. 3…….
초침이 12시에 닿기 직전, 나는 시선을 돌려 농성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태연한 척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두려움을 전부 숨길 순 없었다.
모두가 숨죽이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1’
뎅- 뎅-
괘종시계가 맑은 종소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든 생각을 잊게 만드는 울림이었다.
그리고 벌어진 상황은 모인 사람 전부를 충격에 빠트렸다.
“끄으으윽…….”
“끄으윽……”
뎅-
첫 번째 종소리에 퀘스트를 깨지 못한 사람들이 일제히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뎅-
두 번째 종소리에 그들은 괴로운 듯 땅을 구르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뎅-
세 번째 종소리엔 그들의 온몸의 뼈가 뒤틀렸고.
뎅-
네 번째 종소리엔 선홍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종기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3일 전, 알림이 떴을 때의 시각은 4시.
네 번의 종소리가 끝났음에도, 광장엔 그들의 신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3일 전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들의 신음이.
종소리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끄아아악!!”
“꺄아악!!”
부풀어 오르던 종기는 결국엔 터져 고름과 함께 피가 섞여 흘렀고, 광장엔 순식간에 악취가 퍼졌다.
“으악!”
“떠, 떨어져……!”
그들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악취 속을 뒹구는 사람들의 비명이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들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무어라 소리 질렀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살려줘……!’
눈으로 보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은 끔찍한 광경,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
그들이 죽어 가는 시간은 보이는 고통에 비해 오랫동안 지속 되었고, 분명 이 정도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행위는 끝나지 않았다.
마치 시스템이 그들의 목숨을 붙들고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듯이.
그리고 끝내는.
화르륵-!
“꺄아악!!”
“으악!!”
그들의 몸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은 다른 곳에 옮겨붙지 않고 오로지 그들만을 태웠다.
그들의 살과, 피와, 뼈와, 눈동자를. 그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후우욱-
강한 바람이 불고, 불길이 바람과 함께 날아간 자리엔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 그대로, 그들의 검게 탄 딱딱한 형체만이 남아 있었다. 마치 광장에 전시된 동상같이.
그리고 동시에.
“꺄아악! 꺄악!”
“으아아악!!!”
“아아악!! 아악!!!”
본부 앞에서 고통에 가득 찬 절규가 들려왔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 죽은 사람들이 부활해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빠져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전히 뼈가 뒤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여전히 자신의 몸이 불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
그 광경을 보는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잔인하다. 어떻게 사람을 겨우 퀘스트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보기를 보여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끔찍한 상황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이건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대체, 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한번 종말을 맞이한 인류에게 어째서 같은 시련을 겪게 하는 것일까.
그저 이 일을 벌인 자들의 유희? 고통에 신음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도취? 이 세계가 자신의 손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과시?
‘그게 뭐든…….’
이 상황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한 것이 두려움이라면. 그것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띠링!
[72시간 동안 ‘1차 개방’을 하지 못할 시 당신은 죽습니다.]사람들은 이미 두려워하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