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Survival Game RAW novel - Chapter 3
3화
죽고 시작하는 게임 (3)
“그쪽은 누구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찰리의 시선은 나보다도 얼굴 하나 위에 있었다.
“난민입니다.”
“당신……. 난민 맞소……?”
“예.”
“난민치곤 참…….”
찰리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곤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쌩쌩하오.”
“칭찬입니까?”
“그렇소.”
“감사합니다.”
찰리의 시선이 불가로 향했다. 불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고기를 보며 그가 물었다.
“식사하던 중이었나 보오?”
“예, 아직 전이면 같이하시겠습니까?”
찰리의 눈이 커졌다.
놀랐겠지. 이 대사는 원래 찰리가 할 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게 나 또한 찰리에게 볼일이 있었다.
나는 찰리를 나의 식탁으로 초대했다.
“내게 간이 될 만한 것들이 좀 있소.”
나의 앞쪽에 앉은 찰리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놓기 시작했다.
나뭇잎에 싼 소금과 과일 잼, 천으로 싸여 있는 커다란 덩어리였다.
천을 걷어내니 빵이 나왔다.
찰리는 빵을 두 덩어리로 잘라서 내게 내밀었다. 나도 그에게 구운 토끼 다리를 하나 주었다.
“마음껏 드시오.”
“감사합니다.”
소금을 집어 토끼 다리에 뿌리자 소금이 열기에 녹아 스며들었다.
베어 먹으니 맛이 아주 좋았다.
빵은 찰리가 싸 온 산딸기로 만든 잼을 발라 먹었다. 빵이 좀 푸석했지만 그래서 잼과 더 어울렸다.
FTU에 들어온 이후 제대로 된 첫 끼 식사였다.
“이 불은 직접 피운 것이오?”
찰리가 내게 물었다. 나는 준비하고 있던 답을 말했다.
“예. 보우 드릴로 불씨를 만들었습니다. 부싯깃은 부들의 씨앗을 사용했고, 밧줄은 뽕나무 줄기를 엮어 만들었고요.”
어차피 보상을 받으려면 찰리에게 나의 생존법을 인정받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물어볼 것이 뻔하니 미리 구체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찰리가 놀란 눈빛을 하다가 자신의 수염을 쓸었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하오.”
“토끼는 올가미 덫을 만들어 잡았습니다. 사실 잡힐 줄은 몰랐는데, 눈먼 토끼가 우연히 걸렸더군요.”
“호오.”
사실 시작의 섬엔 눈먼 토끼가 많다. 사냥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초반 유저들을 위한 섬이니까.
“아무런 도구 없이도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살아남다니. 정말 대단하오. 당신은 내가 만난 어떤 난민보다 가장 사람답게 살고 있소.”
“그렇습니까?”
“다만 괜찮다면 내가 도움을 조금 주고 싶소만. 아니, 도움이랄 것까지도 없소. 식사를 얻어먹은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하시오.”
찰리가 가방에서 녹색의 주머니를 꺼냈다. 내가 기다리던 찰리의 보상이었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그가 건네는 주머니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열어 보시오.”
주머니를 열자, 생존에 필요한 각종 도구가 나왔다.
서바이벌 나이프, 라이터, 나침반, 수통, 칫솔, 비누, 여러 가닥의 끈.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주머니를 다시 묶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소. 말했듯이 호의에 대한 답례일 뿐이오.”
띠링!
[튜토리얼 완료 보상을 받았습니다.]알림을 끄며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보상을 받았으니 이제 내가 그를 기다린 이유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차례였다.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찰리가 운을 뗐다.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깜빡했군. 나는 섬을 돌아다니며 당신 같이 혼자 떨어진 난민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소. 찰리라고 하오.”
“이진혁입니다.”
짐짓 모르는 척 그의 말에 대꾸하자 찰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 위에 잠시 꺼졌던 전구가 다시 반짝이며 불이 들어왔다. 동시에 그가 말했다.
“여기서 바닷길로 하루 정도 떨어진 곳에 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소. 우리끼린 ‘캠프’라고 부르지. 혹시 나와 함께 캠프로 가지 않겠소?”
띠링!
찰리는 당신에게 함께 캠프로 가길 제안했다. 난민들이 모여 있다는 캠프는 과연 어떤 곳일까?
난이도 : E
[찰리의 제안 (수락/거절)]퀘스트 보상 : 3골드
* 퀘스트를 수락할 경우 찰리의 인도가 시작됩니다.
* 만일 거절할 경우 찰리의 호감도가 떨어집니다. 찰리가 섬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찰리를 식사 자리에 초대한 이유였다.
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나는 조심스럽게 찰리에게 물었다.
“캠프에 다른 난민들도 있습니까?”
시작의 섬에서 튜토리얼을 끝내고 나면 유저들은 찰리를 따라 ‘캠프’가 있는 첫 번째 대륙으로 간다.
생존자들이 모여서 도시를 이루고 사는 곳. FTU의 진정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캠프에선 다른 유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인데, 그 말은 즉 이곳에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찰리가 낮게 탄식하며 수염을 쓸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찰리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오.”
“이상…… 하다고요?”
“최근 들어 난민들이 많아졌소. 그것도 아주 많이.”
“!!!”
찰리의 말은 나의 심장을 더욱더 빠르게 뛰게 했다.
쿵. 쿵. 쿵.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기분마저 들 정도로.
“많…… 아졌다고요?”
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마치 대륙 하나가 멸망한 것처럼 아주 많아졌소. 요 며칠 새에.”
짧게 숨을 들이켰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많아진 난민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가상 세계의 균열로 떨어진 사람들.
이런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찰리에게 묻는 나의 목소리가 조금 격양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왜 자신이 여기 있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소. 하지만, 그 말은 난민이라면 누구나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아니오?”
찰리가 의아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찰리의 눈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NPC에게 맞춰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내게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이 상황에 대해 의논하고,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혼자 떨어진 것보다는 막막함이 덜하니까.
거기다 혼자보다는 여럿일수록 ‘지구’에서 우리를 찾아낼 가능성이 높았다.
가상 세계를 관리하는 진짜 현실의 본부 ‘지구’에서.
‘하지만…….’
찰리가 준 퀘스트의 수락을 누르자 확인 창이 한 번 더 떠올랐다.
[퀘스트 ‘캠프로!’를 수락할 경우 퀘스트 ‘생존하라!’가 자동으로 중도 포기됩니다. 퀘스트 ‘캠프로!’를 수락하시겠습니까?]마음 같아선 곧장 퀘스트를 수락하고 캠프로 가고 싶지만,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생존하라!’ 의 클리어 보상인 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FTU는 유저의 생명의 개수를 제한하지 않는다.
생존 게임이니 죽을 시 페널티가 센 편이긴 했지만 부활은 몇 번이고 가능했다.
그런데 분명 이번에 깨어났을 때는 이러한 알림이 떴었다.
[당신의 생명이 3개로 제한됩니다.]그땐 정신이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못 했는데. 부활의 깃털을 포기하려니 이것이 걸린다.
이전에는 없던 설정이.
‘남은 시간은 8시간 남짓.’
부활의 깃털을 주는 퀘스트는 앞으로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FTU가 흥행했을 때에나 그렇지 않았을 때에나 부활의 깃털은 고가에 거래됐다.
워낙 희귀한 아이템이었으니까.
거기다 만일 처음 뜬 메시지처럼 생명이 3개로 제한되는 시스템이 추가되었다면 목숨을 하나 더 가지고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찰리의 퀘스트를 거절했다.
찰리의 눈썹이 서운한 듯이 찌푸려졌다.
“이유가 뭐요? 이곳에서 혼자 사는 것이 좋소?”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할 일이 뭐가 있소? 이곳에서.”
찰리가 의아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을 좀 둘러보려 합니다. 놓았던 덫도 회수해야 하고요. 혹시라도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다시 올 거면 덫은 두고 가는 게 낫지 않겠소?”
“쓸데없이 동물들을 죽게 할 순 없죠.”
찰리의 눈빛에 이채가 어렸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이제 알았다는 대답을 받고 시간만 끌면 된다.
문제없이, 이전과 같이,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데.
“왜?”
“……예?”
찰리가 내게 이유를 물어왔다.
당황해서 되물으니 찰리가 친절히 다시 말해주었다.
“동물들을 죽게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뭐요?”
나는 말을 잃은 채 찰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찰리의 반응이 변했다.
왜? 이전과 모든 것이 같은데. 그렇다면 같은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 아닌가?
아니, NPC들은 AI이니까 정해진 답이 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나의 생존 본능이 찰리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찰리의 시선을 마주하길 잠시, 나는 천천히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는 이 숲을 파괴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왜요?”
“파괴하는 건 쉽지만 돌이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애초부터 파괴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을 할 필요도 없겠죠.”
찰리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좀 다른 것 같소.”
‘달라?’
무엇이? 누구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묻지 못했다.
찰리의 이어지는 말이 한 박자 빠르게 나왔다.
“그 일만 끝나면 나와 같이 갈 생각이 있소?”
다시 익숙한 대사.
조금 떨떠름함을 느끼며 나는 찰리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할 일만 끝나면요.”
“좋소.”
찰리가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당신의 일을 좀 돕고 싶은데 어떠시오? 내가 이래 봬도 힘이 좀 세오. 일도 꽤 잘하는 편이고. 얼마든지 부려먹어도 좋소.”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당신같이 능력 있는 생존자는 우리 캠프에도 아주 필요하오. 당신이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찰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조금 전에 느껴지던 위화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선 뭐부터 하면 되오?”
“배가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그럼 그 배를 섬의 반대편으로 옮겨 주십시오. 제가 덫을 정리하며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찾아올 수 있겠소? 이 섬은 생각보다 크오. 방향을 잃을 텐데.”
나는 고개를 꺾어 위쪽을 보았다. 울창한 나뭇잎을 가리켰다.
“방위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나뭇잎들이 향하는 방향이 남쪽이죠.”
그리고 이번에는 근처에 자라 있는 이끼들을 가리켰다.
“이끼가 자라 있는 곳이 북쪽이고요.”
“호오.”
“그리고, 당신이 주지 않았습니까? 나침반.”
나는 찰리가 준 주머니에서 나침반을 꺼내 보여줬다.
찰리가 또다시 자신의 수염을 쓸었다. 찰리의 수염을 쓰는 행동은 긍정의 표시나 마찬가지.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찰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는 얼추 끝난 상황이었다.
“그럼 난 미리 출발하겠소. 지금 보니 내가 더 늦을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거기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