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Survival Game RAW novel - Chapter 86
85화
아마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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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맞은편에서도 수풀 너머로 한 무리가 나타났다.
라그네와 그의 파티원들이었다.
“진세운!”
맞은편에서 루시가 손을 흔들었다.
“용케 안 죽고 살아 있었네!”
죽길 바라는 마음은 조금도 없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긴.
라그네가 내게 다가왔다.
“부상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뒤쪽에서 오는 중입니다. 그래서 그런데,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라그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와 함께 움직인 팀원들을 그에게 맡긴 뒤 서둘러 뒤쪽 팀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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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뭐지?”
진혁이 떠나고, 라그네가 세운의 옆에 묶여 있는 여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세운이 아차 싶은 얼굴로 말했다.
“블랭크 쪽 파티원입니다. 진혁이네 파티를 찾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라그네가 터벅터벅 그녀에게 다가갔다. 블랭크 파티원인 여자는 다가오는 라그네의 기세에 눌려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가 고개를 살짝 들어 라그네를 바라본 뒤 서둘러 시선을 내렸다.
“이진혁 파티를 찾았다고?”
블랭크 파티원 여자가 작게 소리치듯 대답했다.
“라, 라그네 님 파티도요……!”
라그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왜지?”
“이, 이 상황에선 힘을 합치는 게 좋을 테니까…….”
“너희 파티는 어디 있지?”
“저희는 전부 흩어져 있어요. 몰려다니면 위험하다고 블랭크 님께서 그렇게 지시하셨거든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다만 그런 경우엔 파티원들 모두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죽어도 혼자 죽으라는 것이던가.
“한데 본인 파티원들이 모두 흩어졌다면 우리를 찾는 건 무의미한 것 아닌가? 우리를 찾은 뒤의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이걸 드리라고 하셨어요!”
블랭크 파티원 여자가 자신의 옆구리를 내밀었다.
“?”
라그네가 눈썹을 휘며 바라보자 그녀가 머쓱히 웃으며 말했다.
“손이 묶여 있어서…….”
진세운이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세운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달걀만 한 검은 돌이었다.
“하나는 이진혁 님 드려야 하는데……. 말 꺼내 보기도 전에 붙잡혀 버렸어요.”
라그네는 문득, 이런 파티원을 혼자 돌아다니게 한 블랭크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아무리 봐도 제 혼자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진혁이는 제가 전해 줄게요.”
세운이 돌 하나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라그네가 고개를 끄덕이고 검은 돌을 살폈다.
“이건 통신용 아이템이군.”
여자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다고 하셨어요! 연락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걸 쓰시라고요! 팔찌는 절대 쓰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근데 이상하군요.”
여자와 라그네의 시선이 진세운을 향했다.
진세운은 묶여 있는 여자의 옆에 서 있었는데, 그가 무릎을 굽혀 앉으며 여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이 인상 좋아 보였지만 여자는 도리어 몸을 떨었다. 진세운이 말했다.
“전부 흩어져서 저희를 찾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쪽이 우리를 만날 줄 알고 이 돌을 가지고 있어요? 다른 파티원이 우리를 만났으면 어쩌려고요?”
그 말에 여자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스르릉-
루시가 검을 빼 들어 여자의 목덜미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바른대로 말해, 죽고 싶지 않으면.”
여자를 내려다보는 라그네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근처에 있던 라그네의 파티원들과 라훌, 제인도 라그네의 서늘한 기세에 마른침을 삼킬 정도였다.
그러니 그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여자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재미없는 장난을 치는군.”
여자를 빤히 바라보던 라그네가 돌을 든 손을 내렸다.
“본인이 어디 있냐고 물을 뻔했어.”
그 순간 여자의 입꼬리가 활처럼 휘었다.
“블랭크.”
“뭐야, 재미없게. 벌써 알아 버리면 어떡해요?”
그리고 조금 전 모습이 변했던 때와 같이 여자의 모습이 다시 한번 변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작은 스파크가 일어나며 포니테일의 여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묶어 두었던 진혁의 [포박]이 스르륵 풀렸다.
세운이 놀라 몸을 일으켰고, 블랭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루시의 검이 일어나는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정체는 밝혔으니까, 당신 파티원보고 이것 좀 치우라고 하죠?”
라그네가 가볍게 손을 들었다.
루시는 무언가가 불만인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검을 자신의 검집에 꽂아 넣었다.
라그네가 블랭크에게 물었다.
“변신이 가능하다는 파티원이 본인이었던 건가?”
“뭐, 그래요.”
“파티원들은 어디 가고 혼자 돌아다니는 거지?”
“말했잖아요,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고요. 지금쯤 열심히 이 아마존을 벗어나고 있겠죠.”
라그네가 인상을 찌푸렸다.
“책임감이 없는 건가, 부하들을 신뢰하는 건가.”
“둘 다예요. 난 우리 파티원들을 신뢰하고, 내가 그들의 목숨을 책임져 줄 의무는 없으니까.”
블랭크의 말에 세운은 속으로 내심 감탄했다.
이번 대륙의 설정상 리더가 정해지고 그에 맞춰 파티로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FTU는 지극히 개인적인 게임이다.
결국 리더인 대귀족이든 그의 정예 기사단이든 자신의 증표를 위해 게임에 임하고 있는 것이니.
“그럼 넌 왜 여기 있는 거지?”
“당신들을 찾았죠.”
“어째서?”
“이 거지 같은 대륙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신들의 힘이 필요할 것 같거든요.”
부스럭.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제인이 반사적으로 무리 위에 어둠을 드리웠다.
라그네와 블랭크가 반사적으로 제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수풀에서 나온 무리를 향했다.
“나야. 파티 채팅 좀 봐, 제인.”
“아, 진혁 님!”
진혁과 그의 파티원들이었다.
가장 마지막 팀원들까지 데려온 것인지 라훌과 제인을 제외한 아홉 명이 무리 지어 다가왔다.
“……부상자가 있군요.”
“……블랭크 씨?”
블랭크와 진혁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굳었다. 블랭크는 진혁의 뒤쪽 타이양을, 진혁은 갑작스레 나타난 그녀를.
“뭡니까, 이 상황은?”
“아까 그 여자가 블랭크 씨였어.”
세운이 상황을 설명하며 진혁에게 검은 돌을 내밀었다. 돌을 받아 든 진혁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거, 어디서 났어?”
“이것도 블랭크 씨가.”
“비싼 건데…….”
진혁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자 블랭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돈이 좀 많아서……. 근데 도움 좀 받아 보려고 했더니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인 것 같네요?”
진혁이 검은 돌을 주머니에 넣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도움은 이쪽에 받을 생각이니까.”
“아,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요.”
“사과는 이쪽에 하시죠.”
진혁이 타이양을 가리켰다.
그래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땀범벅이 되어서 열심히 걸어왔는데. 한순간 짐짝 취급을 받아 버린 그의 표정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블랭크가 잠시 멈칫거리더니 이내 정중하게 사과했다.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해요.”
“……괜찮소, 조심하지 못한 내 잘못이오.”
짧은 사과가 끝나고 블랭크가 진혁을 향해 섰다.
“그래서 이제 어쩌실 건가요? 제가 오면서 봤어요. 지금 결계석은 전부 열렸고 [레드 팀] 파티장들도 전부 마을로 모이고 있어요. 결계석 범위 주위엔 이미 부족원들이 쫙 깔렸고요.”
“퇴로를 차단했다는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저희 파티원들은 이미 결계석 범위를 빠져나갔지만.”
“왜 블랭크 씨는 안 가셨습니까?”
“당신들 때문에요.”
블랭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혁과 세운이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곤 무슨 뜻이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블랭크가 말을 이었다.
“결계석 지역을 벗어나려는데 부족원들이 경계 주위를 둘러싸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죠, 아, 나머지 두 파티는 아직 결계석 안에 있구나.”
결계석 주위를 둘러싼다는 것은 사냥감이 밖이 아닌 안에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당신들은 이 사실을 모를 테니까요.”
“그것참 감격스럽군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결계석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돌아왔다니.
당연하지만 진혁은 블랭크의 호의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 먼저였기에 묻지 않았다.
블랭크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날이 밝으면 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예요. 그전에 여길 벗어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들겠죠?”
“도망치지 않아도 됩니다.”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뇨? 그게 무슨 말이죠?”
진혁이 라그네를 향해 말했다.
“오늘 밤 [결계의 지도]를 없앨까 합니다.”
“흠.”
“그동안 저희 파티를 부탁합니다.”
“[결계의 지도]면……. 설마 주술사 집에 있는 그 지도요?”
블랭크가 진혁의 어깨를 붙잡아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당신, 주술사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요? 아니, 어떤 NPC인 줄 알아요?”
“모릅니다.”
“황제보다 강해요! 적어도 제가 느끼기엔!! 들키자마자 죽을 거라고요!”
격정을 토해 내는 듯한 필사적인 외침에 진혁이 잠시 머뭇거렸다.
블랭크는 자신보다 높은 랭크를 가진 유저.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면 자신에겐 더 버거운 상대일 터였다. 그러나.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이양 때문만은 아니다.
남은 시험 기간과 남은 파티원들의 안전한 도피를 생각했을 때 내린 결정이다.
비록 목숨을 하나 잃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
“로이트를 붙여주지.”
라그네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허공에서 스르륵 한 남자가 나타났다. 라그네의 첫 번째 심복 로이트였다.
“은신을 사용하니 도움이 될 거다.”
“감사합니다.”
진혁은 거절하지 않았다.
라그네의 말처럼 은신을 사용할 줄 아는 로이트는 이번 일에 크게 도움이 될 터였다. 자신이 적들의 시선을 끌 동안 지도를 없앨 수도 있는 거고.
“언제 출발할 생각이지?”
진혁의 눈빛이 빛났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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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가져가.”
준비를 끝내고 출발하려는데 세운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은색 반지였다.
“뭔데?”
“은신 스킬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반지야.”
“은신?!”
예상치 못한 아이템의 등장에 나는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지도를 없애러 간다고 생각할 때부터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 스킬을 이렇게 얻을 줄이야.
“아이템 설명은 창 열어서 확인하고. 주는 거 아니라 빌려주는 거다.”
“너, 이거…….”
“퀘스트 보상으로 받았어. 아끼는 거니까…….”
진세운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꼭 돌려줘.”
고개를 끄덕였다. 진세운이 불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알겠어, 고맙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운 뒤 한쪽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파티원들에게 다가갔다.
민선화와 한인규가 앞으로 나왔다.
“제가 없는 동안 나머지 분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민선화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면 죽어.”
그렇게 말하는 한인규의 얼굴이 울상이었다. 나는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누르며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내가 애냐.”
일단 모습은 애잖아.
내 손을 치우는 한인규를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친 후 나는 몸을 돌려 섰다.
로이트가 어느새 내 곁에 와 있었다.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