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s Billionaire RAW novel -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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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탈출 (2)
민주는 4층 복도 창가 위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미 방패 위로 올라간 강민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잡아 줘?”
“괜찮아.”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창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높이 때문도 있었지만, 도로에 가득 있는 좀비들 때문이었다.
“연습 많이 했잖아. 괜찮을 거야. 한 발 한 발 천천히 와. 내가 하나, 둘, 셋 샐 때 발을 옮기는 거야, 알지?”
앞을 보니 강민이 살짝 웃으며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안심시키려 하는 게 분명했다.
‘친절하네.’
강민과 같이 단둘이서 이틀을 지내다 보니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조금씩 망가져 있었다.
좀비가 된 가족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좀비에게 잡힌 연인을 놔두고 도망쳐야 하는 세상이다.
인권은 이름조차 남지 않았고, 힘과 폭력 그리고 생존이 최우선인 세상.
그런데 강민은 묘하게 달랐다.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망가짐’이 보이지 않았다.
“민주야, 준비됐어?”
그래서 그랬는지 몰랐다. 민주는 강민과 말을 텄다. 그 어떤 남자에게도 하지 않은 거였다.
다만 강민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오빠’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응.”
“그럼, 하나, 둘, 셋!”
셋과 동시에 강민이 앞 방패로 이동했다. 민주도 얼른 방패에 올라섰다.
– 두근두근.
심장이 미치도록 뛰었다. 롯데월드타워 꼭대기에서 유리로 된 아래를 내려다볼 때와 비교도 안 되게 무서웠다.
“잘했어, 그렇게 하면 돼. 그럼 다시, 하나, 둘, 셋!”
강민이 다시 셋을 샜다. 민주는 동시에 발을 옮겼다. 오른발이 앞에 있는 방패에 올라서는 사이 뒤에 있던 방패가 사라졌다.
가슴이 싸늘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 내가 만드는 방패는 내 몸에서 1m 이상 떨어지면 사라져 버려.
민주는 이를 악물고 강민을 따라갔다.
첫 번째 목표인 건너편 4층 건물 옥상에 도착했다.
고작 10m 이동했는데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고생했어.”
“미안, 나 때문에 늦었지?”
“아니야, 괜찮아.”
괜찮다고 말했지만, 강민의 얼굴이 어두웠다.
– 계속 방패를 타고 갈 수는 없어. 방패를 타고 갈 수 있는 시간은 대략 5분이 한계야.
이동하기 전 강민이 민주에게 알려 준 사실이었다. 민주는 자신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해.’
민주가 다급히 말했다.
“빨리 가자, 시간 없잖아?”
“알았어.”
두 사람은 두 개의 골목을 더 넘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파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리가 떨렸다.
그러다 세 번째 골목을 이동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골목에 있던 근육 좀비가 두 사람을 발견한 거였다.
“크아아앙!”
근육 좀비가 위를 쳐다보며 괴성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근처의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민주의 몸이 굳어 버렸다.
“한민주! 정신 차려!”
“으… 응.”
“안 되겠어, 민주야 빨리 간다! 하나, 둘, 셋!”
강민의 소리와 함께 민주가 발을 옮겼다. 하지만 너무 다리가 떨렸다. 앞발이 앞 방패에 닿았지만, 뒷발을 떼지 못했다.
방패가 사라지고 몸이 기우뚱해졌다.
“꺄악!”
민주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떨어졌다.
“한민주!”
강민이 다시 뒤쪽 방패로 뛰어와 몸을 날렸다. 강민의 손이 민주의 손을 잡았다.
“꽉 잡아!”
민주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크아아아!”
아래에 있던 근육 좀비가 뛰어올랐다.
“꺄악!”
근육 좀비의 손끝이 민주의 발끝을 스쳐 지나갔다.
“절대 내 손 놓지 마!”
강민이 양손으로 민주의 손을 잡고 끌어 올렸다.
“민주야, 방패를 밟아!”
강민은 방패를 민주의 발아래에 소환시켰다. 민주는 방패를 밟고 강민이 있는 방패로 올라섰다.
온몸이 떨렸다. 참으려 했지만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강민이 민주의 몸을 껴안았다.
“괜찮아, 괜찮아.”
강민이 민주의 등을 두드려 주자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낯설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오빠?’
민주는 문득 자신의 친오빠가 생각났다. 오빠는 자신이 무서워할 때마다 껴안아 주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오빠가 아니었다.
“고마워, 이제 괜찮아.”
떨림이 사라지자 민주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알았어, 하지만 이대로는 위험해. 내 손 잡아.”
조금 머뭇거리다 민주는 강민의 내민 손을 잡았다.
굳건하고 따뜻했다. 민주는 강민에 대해 조금 더 신뢰가 가는 마음을 느꼈다.
“자, 간다.”
가는 방법은 이전과 똑같았다. 강민이 셋을 세고 동시에 움직였다. 다만 손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훨씬 떨림이 줄었다. 민주는 왜 그런지 알아챘다.
‘오빠하고 손이 비슷해.’
민주는 앞을 바라봤다. 강민의 등이 보였다.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인데 묘하게 오빠가 겹쳐 보였다.
“민주야, 다 왔어.”
강민의 말에 민주는 앞을 바라봤다.
눈앞에 ‘오패산’ 등산로 입구가 보였다.
* * *
강민은 산책로 옆 주택 옥상에서 오패산을 바라봤다.
‘오패산 너머에 있는 주상 복합 아파트가 기지라고 했지?’
민주가 속한 기지가 가까이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였다.
강민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입안이 타들어 가는 거 같았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이 정도로 힘들 줄이야.’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물은 아껴 먹었지만, 어제 아침에 다 마셨다.
배고픔도 참기 힘들었지만 목마름은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방패를 타고 이곳까지 온 게 기적이었다.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자 근육 좀비와 좀비들이 가득했다. 저들을 뚫고 오패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강민은 상태창을 열었다. 방패 세계의 내구도가 3밖에 남지 않았다.
강민은 도끼를 꽉 잡고 말했다.
“민주야, 이번에는 뛰어야 할 거 같아.”
“걱정 마. 이제 어느 정도 적응했어.”
강민은 민주를 바라봤다. 크고 예쁜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주는 강민의 눈을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돌렸다.
민주는 조금 말을 더듬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산책로로 가다 오솔길로 가야 해. 좀비들은 오솔길을 못 따라와.”
“길은 알아?”
“따라오기나 해.”
고개를 끄덕인 강민이 방패를 소환했다. 좀비들의 머리 위로 방패가 나타났다.
강민이 민주의 손을 잡고 첫 번째 방패 위로 뛰었다.
[내구도가 3 남았습니다.>강민과 민주가 좀비 머리 위를 달렸다.
[내구도가 2 남았습니다.>뒤에 있던 근육 좀비가 괴성을 지르며 쫓아왔다.
[내구도가 1 남았습니다.>내구도가 1 남은 순간 강민이 소리쳤다.
“뛰어!”
강민이 민주의 손을 놓고 허공에서 뛰어내렸다. 민주도 마찬가지였었다. 두 사람은 오패산 산책로 입구에 떨어졌다.
먼저 일어선 건 민주였다.
“이쪽이야!”
하늘에서와 달리 땅에서 민주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뛰었다.
나무로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뛰던 민주는 얼마 안 돼 나무 난간을 뛰어넘어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강민도 민주를 따라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 꽝!
뒤에서 나무 난간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강민이 뒤돌아보니 근육 좀비였다.
“크아아앙!”
근육 좀비는 둘을 쫓아 오솔길까지 쫓아왔다.
“강민, 빨리!”
몸에 힘이 없어 뛰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길폭이 점점 좁아졌다.
왼쪽으로는 비탈길이었다. 조금만 삐끗해도 끝이었다.
등 뒤로 근육 좀비의 기척이 느껴졌다.
‘제길!’
강민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앙!”
근육 좀비의 괴성이 들렸다.
힐끗 뒤돌아보니 근육 좀비가 기슭으로 미끄러져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주변에 있는 작은 나무를 잡았지만, 곧 뿌리째 뽑혀 아래로 더 미끄러졌다.
‘됐어!’
뒤따라오던 좀비들도 마찬가지였다.
“크흥!”
“우웨에엥!”
수많은 좀비가 비탈길을 따라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천만다행이었다.
얼마 안 가 오패산 꼭대기가 보이고 철조망이 보였다. 철조망 안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참호가 보였다.
두 사람은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갈 때는 잘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갔다.
얼마 안 가 높은 주상 복합 아파트가 보였다. 보통 아파트가 아니었다.
제일 먼저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컨테이너가 보였다. 컨테이너가 없는 곳은 버스가 막고 있었다.
그건 요새였다.
“강민, 저기야. 우리 기지가.”
얼핏 봐도 물 샐 틈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이 정도가 되니까 살아 남을 수 있는 거였구나.’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자 그제야 안심이 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크아아앙!”
조금 먼 어딘가에서 근육 좀비의 포효가 들렸다.
“좀비가 산 정상에 있어!”
민주의 말에 강민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어떻게 온 거야!”
“산책로를 따라온 거 같아!”
두 사람은 미친 듯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 쿵! 쿵! 쿵!
근육 좀비와 처음에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곧 가까워졌다. 근육 좀비는 수 미터를 뛰어서 내려왔다.
이러다 곧 따라 잡힐 거 같았다.
‘남은 방패 내구도는 1이 전부인데 어떡하지?’
그때였다. 앞서가던 민주가 칼을 뽑고 뒤돌아섰다.
“강민, 달려. 내가 막을게!”
민주가 근육 좀비에게 달려들었다.
“미쳤어!”
강민이 소리쳤지만, 민주는 이미 근육 좀비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강민은 이를 악물고 근육 좀비에게 달려갔다. 여기까지 같이 왔는데 혼자 갈 수는 없었다.
근육 좀비가 민주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평소 같으면 민주가 충분히 피했겠지만, 민주도 힘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제발!’
강민은 방패 하나를 소환시켰다.
– 팡!
[방패 내구도가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방패가 소환 해제됩니다.>3개의 방패 중 1개가 사라졌다. 대신 민주의 공격이 성공했다.
“크아아악!”
민주의 칼이 근육 좀비의 목을 찌르고 나왔다. 힘이 없어 1/10 정도만 목이 잘렸지만 근육 좀비의 행동을 잠시 멈추기에는 충분했다.
“민주야! 이때야, 달려!”
민주가 달리기 시작했다. 강민도 뒤따라 달렸다.
눈앞에 컨테이너가 보였다.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근육 좀비는 끈질겼다. 뒤에서 근육 좀비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민주야, 방패 밟고 뛰어!”
강민은 컨테이너 앞에서 두 개의 방패를 소환했다. 민주와 강민은 그 방패를 밟고 컨테이너 꼭대기로 뛰어올랐다.
[방패 내구도가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방패가 소환 해제됩니다.>민주가 밟은 방패가 사라졌다. 하지만 괜찮았다. 두 사람 모두 컨테이너 위로 올라온 후였다.
– 꽝!
뒤따라온 근육 좀비가 컨테이너를 후려쳤다.
그때였다.
“공격해!”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어딘가에서 불꽃이 날아왔다.
– 팡!
불꽃은 근육 좀비의 목을 정확히 맞췄다. 민주가 칼로 상처를 낸 곳이었다.
“크아앙!”
목이 절반 가까이 벌어지고 근육 좀비가 괴성을 질렀다.
강민이 눈을 빛냈다. 아직 강민에게는 한 개의 방패가 남아 있었다.
‘기회야, 근육 좀비는 10포인트였지?’
강민은 ‘방패 치기’로 컨테이너 아래에 있는 근육 좀비의 머리를 내려쳤다.
– 쾅!
근육 좀비의 목이 떨어졌다.
[‘근육 좀비’를 죽이셨습니다. 10포인트를 얻으셨습니다.>메시지가 뜨자 그제야 강민은 컨테이너에 주저앉았다.
“그걸 죽인 거야?”
민주의 말에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단해, 보통은 그렇게 악착같이 죽이지 않는데.”
포인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어 강민은 그냥 웃어 보였다.
조금 지나자 컨테이너 안쪽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 제일 앞에는 강민도 익히 아는 얼굴이 서 있었다.
“언니!”
바로 새미였다.
* * *
강민이 도착한 첫날, 강민은 가벼운 죽을 먹고 종일 잤다. 정확히는 기절했었다.
정신을 차린 건 다음날이었다. 눈을 뜨니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옆에 계셨다.
그 할머니는 다친 강민의 왼팔을 만지고 있었는데 손에서 은은한 빛이 나고 있었다.
할머니는 눈을 뜬 강민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치료는 했어. 뼈와 근육은 괜찮아졌을 거야. 하지만 흉터는 남을 거네.”
“네?”
놀란 강민이 왼팔을 보니 방진호 칼에 찔린 상처가 거의 나 있었다.
‘맙소사, 이 할머니 힐러야?’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힐러냐고 묻기는 그랬다.
“자네가 방진호를 죽였다지?”
방진호가 누군가 잠시 생각했다가 민주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네.”
할머니가 강민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고맙네, 고마워.”
강민은 뭐가 고마운지 전혀 이해가 안 됐다.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참, 배고프지? 밥은 식당에서 먹으면 되네.”
“식당이요?”
“내 정신 좀 봐. 자네 여기 처음이지?”
할머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지나가던 한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이보게, 홍영이.”
“네, 어르신.”
중년 남자는 더운지 상의에 하얀 속옷 하나만 입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부름에 바로 달려왔다.
“이 친구 여기가 처음인데, 식당에 좀 데려다주게나.”
“알겠습니다, 어르신.”
할머니가 일어서자 강민은 중년 남자를 따라 식당에 갔다.
식당은 정말 식당이었다. 과거 고깃집이었던 곳을 식당으로 쓰고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식판을 들고 배식받으면 되네.”
강민이 식판을 들고 배식하는 곳에 가자 배식을 담당하는 아주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혹시 방진호를 죽였다는 그 사람 아닌겨?”
“네?”
조금 전 할머니가 방진호를 얘기했는데 이곳에서 또 방진호 얘기가 들였다.
아주머니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제 민주랑 같이 온 사람 아닌겨?”
“맞는… 데요.”
“그럼 맞제!”
아주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훌쩍거리더니 말했다.
“내 아들놈, 방진호 그놈이 죽여 부렸어. 그놈 언제고 죽여 뿔라 했는디, 고마우이. 정말 고마워.”
아주머니는 그 말을 하고 밥과 김치를 듬뿍 얹어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참, 이건 특별식이여.”
식판 한쪽에 김치 부침개 2쪽을 주었다.
“원래 정찰조만 주는 건디, 어여 먹어.”
눈만 깜빡인 강민은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숙이고 중년 남자가 앉아 있는 자리에 앉았다.
“엉? 김치 부침개가 있네?”
옆에 앉은 중년 남자가 김치 부침개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드시고 싶으세요?”
“아… 아니야.”
“전 괜찮아요, 드세요.”
“진짜? 그…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중년 남자는 김치 부침개 한쪽을 눈 깜짝할 사이 해치운 다음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이게 얼마 만이냐. 부침개라니, 좀비가 나타난 이후 처음 먹어 보는 거 같아. 정말 맛있어.”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강민의 말에 중년 남자가 강민의 옆으로 다가왔다. 땀 냄새가 확 풍겼다.
“정말 자네가 방진호를 죽였어?”
또 방진호 얘기였다.
“저 혼자 죽인 건 아니에요. 민주 덕분에 막타 친 거뿐이죠.”
“막타는 뭐든 죽인 건 자네 아닌가? 그게 중요하지. 여기 사람들은 방진호라면 이를 갈 거든.”
“왜 그렇죠?”
“그야. 휴…….”
중년 남자는 말 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얘기하려면 한참 얘기해야 해. 밥 먼저 다 먹게. 들으면 밥맛 떨어지니까.”
“네.”
강민은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흰 쌀밥에 김치 하나,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된장국이었지만 꿀맛 같았다.
‘그런데 흰 쌀밥이라니? 여긴 식량이 풍부하나?’
강민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중년 남자가 옆에서 말했다.
“자네 정말 때 맞춰 잘 왔어. 며칠 전 식량을 가지러 멀리 갔던 정찰조가 왔거든. 그들 아니었으면 아마 멀건 흰죽만 먹었을 거야. 이런 음식은 한 달에 한 번 먹기도 힘들어.”
그제야 강민은 어떻게 된 건지 알았다.
“아, 오랜만에 부침개를 먹어서 그런지 담배가 땡기네. 진짜 담배 한 개비 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거 같아.”
강민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현실로 돌아가면 얼마든 살 수 있는 게 담배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영혼과도 바꾼다는 사람이 있었다.
강민의 눈이 번뜩였다.
‘이 아저씨, 나쁜 사람 같지 않은데 내 편으로 만들까? 여기 정보도 필요하고 말이야.’
민주에게 이 세계 사정에 대해 대충 들었지만 한 사람 얘기만 들으면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저씨, 나중에 담배 얻으면 가져다 드릴게요.”
중년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진… 진짜!”
“민주 말을 들으니 전 이곳에 오면 정찰조로 활동할 거라 들었어요. 찾다 보면 담배 한 개비 없겠어요?”
중년 남자는 강민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고맙네, 고마워!”
“이 정도로 뭘요. 아직 드린 것도 아닌데요.”
“이 정도라니! 정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 다 해 주고 싶은 심정이야. 비록 지금 능력이 없어 정찰조에도 못 들지만 나도 예전에는 정말 잘나갔거든.”
다른 사람의 과거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강민은 이 중년 남자를 통해 이곳 정보를 얻어야 했다.
“과거에 뭐 하셨는데요?”
“나? 흠흠, 자네 혹시 요기 1층 상가 봤나?”
“아뇨, 저 조금 전 일어났잖아요.”
“아차, 그랬지. 그럼 나중에 1층 가면 출입구 쪽에 있는 KC 은행이 보일 거네. 내가 지점장이었어! 지점장 알지? 내 연봉이 몇 억이었는데, 지금은 이러고 있으니.”
중년 남자의 말에 강민의 눈이 흔들렸다.
‘은행 지점장?’
강민의 머리에 갑자기 수많은 것이 떠올랐다.
‘은행이면? 돈! 지폐! 신사임당 님!’
강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럼, 그곳에 돈 많겠네요?”
“돈? 금고에 쌓인 게 돈이니 많지. 몇백억 있을걸? 에잇, 그러면 뭐 하나. 똥도 못 닦을 쓰레기인걸.”
강민의 얼굴이 달아오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몇… 몇백억!’
몇백억이면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돈이었다. 아니,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돈이었다.
강민은 부침개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며 말했다.
“아저씨, 이 부침개 하나 더 드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