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s Billionaire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세르게이의 미래 (2)
“란카르트, 당신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겠어요. 고개를 드세요.”
매혹적인 목소리가 화려한 궁궐에 울려 퍼졌다.
궁궐 가운데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란카르트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붉은 드레스를 입고 세상의 모든 미를 모아 놓은 거 같은 여자가 그곳에 있었다.
“베아트리체 님, 맡겨만 주십시오. 그게 드래곤 로드의 목을 베어 오는 것이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란카르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실제로 가슴이 두근거릴 수는 없었다. 자신은 심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죽음마저 거부한 당신만이 이걸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베아트리체는 그 말을 하며 란카르트의 이마를 손으로 만졌다. 순간 란카르트의 이마에 빛이 나며 몇 가지 기억이 란카르트의 기억으로 복사되었다.
“이건! 세계수 아닙니까? 게다가 다른 세상이네요?”
“맞아요. 하지만 작지요?”
란카르트의 녹색 눈이 흔들렸다. 이해가 안 돼서였다.
“세계수가 다른 세상에도 있는 겁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걸 보니 이제는 모르겠어요. 꼭 누가 장난치는 거 같아요. 절 방해하려고요.”
“누가 감히! 베아트리체 님의 일을!”
란카르트가 화를 내자 베아트리체가 그의 해골을 어루만졌다.
“누군지는 제가 곧 알아낼 거예요. 하지만 이곳에 세계수가 있는 게 문제에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전 이 세계수가 우리의 일을 끝까지 방해하고 있는 바로 그 세계수와 연관되어 있는 거 같아요.”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여긴 다른 세상입니다.”
“그래요. 말이 안 되는데, 세계수 가운데 박혀 있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나요?”
“이건!”
“네, 세계수는 여러 개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세계수가 둘일 수는 없지요.”
그제야 란카르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차렸다.
“걱정 마십시오, 베아트리체 님. 제가 가서 세계수를 완전히 소멸시키겠습니다.”
“고마워요, 란카르트. 하지만 그곳은 다른 세상, 한번 가면 되돌아오기 힘들어요.”
란카르트가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전 죽음을 벗어난 대마법사입니다. 제가 9서클을 이루는 날 다시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란카르트의 말에 베아트리체가 그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럼 부탁드리죠. 이곳의 일의 마무리 되면 저도 그곳으로 직접 가겠습니다.”
* * *
– 콰아아아아.
엄청난 양의 브레스가 사방에 쏟아졌다. 란카르트는 순간 이동으로 브레스를 피했다.
강민은 그걸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더 브레스가 빨랐더라면!’
하지만 이건 강민이 브레스를 과소평가한 거였다. 포자 브레스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폭 100m 길이 1km 정도의 넓이에 포자가 깔렸다. 그 사이에 있던 모래와 바위 그리고 세계수에도 모두 녹색의 포자가 깔렸다.
포자는 바로 움직였다. 포자에서 녹색의 실이 나오더니, 거미줄처럼 포자와 포자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다음 포자 위에 작고 하얀 줄기가 자라더니 봉우리를 만들고 터트렸다. 그 안에서 또다시 녹색 포자가 사방으로 퍼졌다.
‘아!’
강민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금 전 드래곤 브레스의 10배는 될 듯한 수의 포자들이 사방에 퍼졌다.
강민이 있던 곳을 제외하고 반경 1km 내의 모든 곳에 포자가 퍼져 땅에 포자를 다시 심었다. 그곳에서 또다시 포자가 자라고 또다시 퍼졌다.
그렇게 반경 10km 지역을 모두 포자로 장악하고 나서야 포자의 활동에 변화가 생겼다.
하얀 민들레 씨앗 같은 게 하늘에 퍼졌다. 반경 10km 내에 있는 셀 수 없는 포자들이 내 뿜는 씨앗이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씨앗이 퍼졌다.
그 씨앗이 포자를 피해 도망치는 란카르트의 전신에 붙었다.
“으아아악!”
강민의 방패조차 비웃던 란카르트가 비명을 질렀다. 몸, 아니 뼈에 달라붙은 씨앗들 때문이었다.
이 씨앗들은 당연히 일반적인 씨앗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힘이 담긴 씨앗이었다.
씨앗들이 란카르트의 힘을 흡수하며 자라기 시작했다. 란카르트의 뼈에서 새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놈들이!”
란카르트는 고함을 지르며 씨앗을 떼어 내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씨앗들은 더욱 달라붙어 란카르트의 힘을 뽑아 먹기 시작했다.
란카르트가 덮고 있는 망토에도 씨앗이 달라붙어 새싹을 자랐다. 그리고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 치이이익.
망토의 힘을 다 빨아들인 씨앗에 의해 망토가 가루가 되고 만 거였다.
어느새 뼈만 남게 된 란카르트가 소리쳤다.
“이! 저주의 씨앗들이!”
란카르트의 온몸이 어느새 새싹으로 뒤덮였다.
그걸 본 강민이 눈을 부릅떴다.
‘이건 상상 이상이잖아!’
강민도 ‘포자 브레스’가 이 정도 효과를 낼지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잘하면 이걸로 저 리치를 끝장낼 수 있겠어!’
대마법사란 타이틀은 아무나 다는 게 아니었다.
“웃기지 마라! 죽음마저 벗어난 나다! 이까짓 씨앗 따위에 죽을 줄 아느냐!”
란카르트는 고함을 지르더니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란카르트의 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강민이 깜짝 놀랐다.
‘저… 미친놈! 자기 몸에 불을 붙인 거야?’
식물의 상극은 불이었다. 그걸 생각해 낸 란카르트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거였다.
순간 란카르트의 몸에 붙은 씨앗들이 불에 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안 돼! 저놈이 다시 움직이기 전에 끝을 내야 해!’
강민은 란카르트를 향해 방패를 던졌다.
방패가 날아오는 걸 본 란카르트가 순간 이동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지만 순간 이동으로 란카르트의 몸에 불이 꺼졌다. 아직 허공에는 수많은 씨앗이 가득했다.
씨앗들이 다시 란카르트의 몸에 달라붙어 새싹을 피웠다.
“이 잡것들이!”
란카르트는 다시 몸에 불을 내 씨앗들을 불태웠다.
그 순간 강민은 다시 방패를 날렸다.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를 보냈다. 강민은 순간 이동을 고려해 아예 지역 전체를 방패로 장악해 버린 거였다.
란카르트는 순간 이동을 하려다 멈칫했다. 이동하려는 곳이 마땅치 않아서였다.
게다가 순간 이동을 하면 다시 씨앗이 몸에 붙는다는 게 생각났다.
‘어떻게 하지?’
그 잠시의 망설임이 생사를 결정했다.
– 싹둑.
강민의 방패가 란카르트의 목을 잘랐다. 란카르트의 머리뼈가 바닥을 굴렀다.
“휴, 끝났나?”
강민은 조심스럽게 머리뼈를 향해 다가갔다. 사방에 씨앗이 가득했지만, 강민 주위에는 씨앗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머리뼈에 녹색 불이 켜지더니 허공을 날며 자신의 목뼈에 다시 붙었다.
강민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뭐야! 저건!’
다시 목이 붙은 란카르트가 소리쳤다.
“크크크, 고작 그런 것으로 날 죽이려 했나? 난 죽음을 벗어난 존재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넌 아직 그 의미를 모르는구나! 크크. 나에게 선물을 줬으니 이제 나도 줘야겠지?”
란카르트가 하늘에 대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레인 오브 파이어!”
지팡이를 따라 하늘에서 다시 불덩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상은 강민만이 아니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었다. 란카르트는 불로 씨앗과 포자들을 모두 태우려고 한 거였다.
대마법사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1분 동안 하늘에서 계속 불덩어리가 쏟아졌다.
모든 것이 불에 타 재가 되었다. 모든 포자와 씨앗이 타 버렸다.
‘빌어먹을, 너무 강해!’
불에 타지 않고 멀쩡한 것은 란카르트와 방패로 막고 있던 강민이 유일했다.
마법이 끝난 후 란카르트는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녹색 눈의 빛도 조금 흐려져 있었다. 조금 전 마법으로 힘이 약해진 거였다.
“네놈! 똑똑히 보았느냐! 이것이 나의 힘이다, 하하하!”
강민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군!”
“하하하, 나야말로 적들도 인정하는 대마법사지. 그럼 네놈에게 완전한 죽음을 내려 주겠다!”
강민이 슬쩍 란카르트 뒤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하나 잊은 거 없어?”
“잊은 거? 막상 죽음이 닥치니 두렵나 보군. 이상한 말을 하는 거 보니.”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지금 왔다.”
순간 란카르트 뒤에서 거대한 식물 줄기들이 란카르트의 몸을 잡아 버렸다.
“이… 이건!”
“그래, 너 세계수를 잊고 있었잖아? 포자가 너에게는 상극이지만 세계수에는 생명수와 같거든.”
다 죽어 가던 세계수에 포자가 달라붙어 싹을 틔웠다. 세계수는 모든 식물의 기원. 새로운 생명의 힘에 세계수가 다시 살아난 거였다.
“이건 말도 안 돼!”
란카르트가 비명을 질렀지만 수많은 식물 줄기가 그의 뼈다귀 몸을 분리해 버렸다. 란카르트는 마법이 강력했으나 뼈다귀가 강한 건 아니었다.
란카르트는 다시 몸을 이으려 했지만, 식물 줄기들은 서로 떨어져서 사방으로 멀어졌다.
란카르트의 머리뼈가 소리쳤다.
“네! 이놈! 조금만 더 있었어도 세계수를 없애 버릴 수 있었는데! 베아트레체님의 명령을 완수할 수 있었는데!”
순간 강민이 눈을 빛냈다.
“베아트리체? 그게 누군데?”
순간 란카르트가 멈칫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그건!”
“좋아, 말 안 하겠다는 거지? 나한테도 방법이 있어.”
강민은 란카르트를 죽이고 싶었지만, 리치는 죽일 수 없는 존재였다.
‘죽이려면 라이프 베슬을 깨 버려야 하는데, 그게 어딨는지 알아야 죽이든 말든 하지.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롭게 만들 수 있을지 몰라.’
불에 타 사라졌던 포자들이 다시 살아나 주위에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포자에서 씨앗이 나오고 씨앗이 조각난 란카르트 뼈에 달라붙었다.
“으악!”
씨앗들이 새싹을 틔우자 란카르트가 비명을 질렀다.
‘저러면 저 리치도 힘을 빼앗겨 다시 움직이지 못하겠지.’
나머지는 세계수가 알아서 할 거 같았다.
강민은 시계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정도인가?’
강민은 세계수를 향해 걸어갔다. 이제 진짜 일을 할 차례였다.
* * *
강민은 세르게이에게 다가갔다. 그의 모습은 많이 회복되었음에도 처참했다.
세르게이는 목까지 완전히 세계수와 동화되어 있었다. 남은 건 머리뿐이었다.
세르게이가 강민을 보며 말했다.
“인간, 도와줘서 고맙다.”
그의 목소리는 강민이 알고 있는 세르게이 목소리와 달랐다. 목으로 소리를 내고 있지만, 쇳소리 같았다.
‘인간이 아닌 거 같아. 이미 나무와 하나가 된 건가?’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강민은 세르게이에게 말했다.
“고맙긴,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세르게이?”
강민의 말에 세르게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세르게이? 그게 누군가?”
강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설마.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린 거야?’
강민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가서 말했다.
“세르게이, 이건 네 이름이야.”
“세르게이가 내 이름이라고?”
세르게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세르게이 보로다이. 이게 네 본명이라고!”
세르게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름 따위는 의미 없다. 그건 존재를 한정 짓는 일이다.”
강민은 답답했다.
“하아, 세르게이…….”
“인간, 그런 표정 짓지 말이야. 나는 이름이 필요 없다. 그보다 인간, 도와줘서 고맙다. 만일 네가 나를 돕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 있지 못했을 거다.”
“너를 만나러 이곳에 왔으니 당연히 도와야지.”
“나를 만나러 왔다고? 내 존재를 아는 이들이 없을 텐데?”
“그야…….”
현실 세계에서 너를 만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강민은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세르게이,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나를 구해 준 너다.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마.”
“네 피를 얻고 싶어.”
“피? 피? 피가 뭐지?”
세르게이는 고개를 갸웃하다 잠시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이었다.
“아! 그 피! 생각 나는구나. 그건 생명체의 에너지를 운반하는 액체지.”
예전 학자였던 습관이 남아 있던지 세르게이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세르게이가 처음 짓는 인간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 피. 그걸 나한테 줘.”
“어렵지 않다.”
세르게이의 대답과 함께 세계수 줄기가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하얀 액체가 나왔다.
“가져가라.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 좋다.”
“이건… 세계수의 정수잖아. 피가 아니야!”
“이게 내 피 맞다. 이 액체가 내 몸의 생명을 운반하는 액체다.”
강민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세계수를 자신의 몸이라 말하다니, 너무 늦은 건가. 완전히 인간으로서 자아를 잊은 거 같아.’
이러면 여기까지 온 게 헛수고였다.
“미치겠네. 어떡하지? 아나톨리 교수님이 있었으면 달랐을까?”
강민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세르게이가 멈칫했다.
“아… 나톨리?”
“네 형 이름도 기억 안 나? 하긴, 자기 이름도 모르는데…….”
그때였다.
“아나톨리. 아나톨리. 아나톨리!”
세르게이가 고개를 흔들며 그 이름을 계속 불렀다.
그걸 보며 강민이 깜짝 놀랐다.
‘응? 뭐야? 세계수와 몸이 떨어지고 있잖아?’
나무처럼 변한 세르게이의 목 부분이 다시 사람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형의 이름을 듣고 반응을 보였어.’
강민은 세르게이와 아나톨리의 각별했던 사이를 떠올렸다.
‘분명해. 형의 이름을 듣고 사람이었을 때 기억을 떠올린 거야. 그게 인간처럼 변하게 만드는 거라고!’
강민이 세르게이에게 소리쳤다.
“맞아. 아나톨리, 네 형이잖아. 하나밖에 없는 형! 기억해 내! 네 형을 기억하란 말이야!”
강민의 말에 세르게이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건 처음으로 보는 인간다운 표정이었다.
강민의 작전이 성공했는지 세르게이의 가슴까지 사람처럼 변했다.
‘이걸로 부족해 더 없을까? 더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끌어낼 만한 거!’
고민하던 강민은 조금 전 세르게이가 혈액을 설명하던 것을 떠올렸다.
‘맞아, 세르게이는 완전한 학자였어!’
강민이 다급히 말했다.
“세르게이, 넌 시공간 이동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어. 체르노빌에서 말이야. 기억 안 나?”
“시… 공간 이동 장치? 체르노빌? 아나톨리?”
세르게이의 몸이 허리까지 완전히 인간처럼 돌아왔다. 양팔도 손끝을 빼곤 사람처럼 돌아왔다.
그 순간 세르게이가 손으로 머리를 잡고 소리쳤다.
“으악!”
그건 고통에 찬 비명이었다.
‘뭐야? 뭐가 잘못된 거야?’
이상했다. 세르게이의 모습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의 눈과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피! 붉은색 피야!’
그건 강민이 그렇게 원하던 피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비명을 지르던 세르게이가 강민에게 말했다.
“허억… 허억… 아나톨리! 형은 어딨지?”
이상했다. 세르게이가 뭔가 쫓기는 듯 다급하게 물었다.
“그… 글쎄, 그건 나도 몰라. 그런데 세르게이, 기억을 찾은 거야? 형을 떠올린 거 같네?”
“기억을 되찾아? 기억? 형? 시공간 이동 장치?”
세르게이는 몇 가지 단어들을 계속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세르게이의 몸이 나무로 변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면 나무로 변해!’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강민은 아공간에서 예전 주상민의 피를 뽑을 때 사용하던 기구를 꺼내 세르게이에게 다가갔다.
“이 피 좀 가져갈게.”
세르게이는 혼란스러운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하지도 않았다. 강민이 보기에는 아무 상관없어 보였다.
강민은 얼른 코와 입에서 흘러나온 피를 담았다.
‘이거면 됐어.’
그때였다. 강민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본 세계’로 이동합니다. 현재 두 개의 선택지가 있습니다.>1) 서울 집.
2) 체르노빌
[어느 곳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1분 내로 선택하지 않을 시 1번으로 이동합니다.>강민은 바로 2번을 선택했다.
[본 세계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 *
[본 세계로 이동을 완료하였습니다.> [다시 본 세계로 갈 때 저장했던 포인트 중 한 곳으로 이동합니다.>주위를 둘러보니 체르노빌에 있는 자신의 거처였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이었다. 한국 시간으로 정확히 오전 11시 30분이었다.
‘돌아왔구나.’
강민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샤워라도 했겠지만, 강민은 마음이 급했다.
곧바로 강민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안갯속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통로가 나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수와 세르게이가 보였다.
세르게이는 여전히 몸 일부가 세계수와 이어져 있었지만, 인간처럼 움직이는 데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거 같았다.
“어? 오셨어요?”
세르게이는 강민을 반갑게 반겼다.
“아나톨리 교수님은요?”
강민의 말에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산책 좀 하고 온다고 했어요. 여기만 있으니 좀 답답하다고 해서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르게이, 저번에 부탁한 거 가져왔어요.”
“네? 부탁한 거라뇨. 설마? 그 푸른 보석 말씀 하신 거예요?”
강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푸른 보석은 아니에요. 하지만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거죠. 어쩌면 더 강한 효과가 있을지 몰라요.”
강민은 아공간에서 ‘평행 세계’ 세르게이에게서 가져온 혈액을 꺼냈다.
“영주님, 그거 피 아니에요?”
“맞아요, 하지만 아주 특별한 피죠. 세르게이 팔 내밀어 봐요.”
강민의 말에 세르게이가 팔을 내밀었다. 세르게이는 강민의 기사였다. 강민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고 있었다.
강민은 주사기를 세르게이의 팔에 꽂았다.
그리고 피가 세르게이의 몸에 모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