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s Billionaire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좀비의 정체 (1)
란카르트의 말을 들은 강민은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죽지 않았다고? 죽지 않았다고! 좀비가 죽은 사람이 아니라고!”
지금까지 강민은 좀비를 당연히 죽여야 할 것으로 여겼다. 그건 강민만이 아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그랬다.
그런데 란카르트는 지금 좀비가 죽은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난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인 거야?”
강민의 혼잣말에 란카르트가 비웃었다.
“너 바보냐? 내가 한 말 제대로 들은 거 맞아?”
“그래, 똑똑히 들었어. 좀비가 죽은 사람이 아니란 걸!”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강민의 모습을 본 란카르트가 녹색의 눈을 깜빡거렸다.
“이거 완전히 맛이 갔네. 이러면 내 말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똑똑히 들어라. 난 좀비가 살아 있다고 안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했지. 게다가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말을 안 했고.”
란카르트의 말에 강민이 고개를 확 들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정도 얘기했는데도 이해가 안 돼? 머리는 장식으로 들고 다녀? 말 그대로 좀비들은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야. 그리고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예전에는 사람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완전 다른 종. 어쩌면 종이란 개념도 벗어난 그 어떤 ‘존재’다.”
강민은 란카르트의 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살았으면 살았고 죽었으면 죽은 거지? 그 경계에 있다는 게? 게다가 다른 종이라고? 아니, 종의 개념을 벗어났다니. 그런 게 있을 수 있어?”
란카르트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네 말이 맞아. 나도 이런 게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 만약 9서클이 되지 않았다면 못 알아차렸을 거였다. 그만큼 이건 대단한 거다. 그것도 인위적으로 이렇게 만들었어. 누굴까? 누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지?”
란카르트는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이는 게, 매우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강민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너희들이 한 짓이 아니야?”
강민은 지금까지 좀비를 이계인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현실 세계와 평행 세계의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이세계와의 연결이다 보니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한 거였다.
“우리? 글쎄?”
란카르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너희들이 아니라고?”
“난 9서클 대마법사야. 그것도 네크로맨서지. 죽음에 그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야. 하지만 나보고 이걸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불가능해.’야.”
강민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좀비들은 너희를 공격하지 않잖아! 게다가 너희는 좀비를 이용도 한다고! 이걸 부정하지 않겠지?”
란카르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크크크,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강민이 웃는 란카르트를 향해 작지만 힘을 줘 말했다.
“당연해? 뭐가 당연한 거지? 뼈다귀, 날 제대로 설득시켜야 할 거야.”
강민의 말에 란카르트도 눈에 불을 냈다.
“인간! 지금 협박하는 건가? 내 주인은 네가 아니야.”
그때 두 사람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아민이 끼어들었다.
“털털아, 조금만 좋게 말하면 안 돼? 오빠한테 큰 소리 내지 말고 말이야.”
“제 주인님은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에게만 복종하지, 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도 조금은 말을 곱게 쓸 수 있잖아? 대화하는데 화는 내지 말았으면 좋겠어.”
아민의 말에 란카르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최대한 그렇게 하겠습니다.”
란카르트는 그렇게 말하고 강민에게 말했다.
“주인님 때문에 참겠다. 좋아, 어디까지 말했더라. 맞아, 왜 좀비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냐고 물었던가? 그야 당연히…….”
말을 하던 란카르트가 멈칫했다. 란카르트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털털아?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아민의 말에 란카르트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란카르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했다.
“아니, 왜 이걸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지? 왜? 왜?”
란카르트는 머리를 잡고 입을 쫙 벌렸다. 피부가 있었다면 그건 분명 경악한 표정이었을 거라고 아민은 생각했다.
“털털아, 도대체 뭔데 그래?”
“이건 있을 수 없는데…….”
란카르트가 계속 말을 돌리자 아민이 눈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털털아! 말해! 제대로! 똑바로!”
아민의 말에 그제야 란카르트가 아민과 강민을 보며 대답했다.
“좀비가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가 좀비를 부릴 수 있는 건…….”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란카르트의 입을 바라봤다.
“동족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강민이 뭔가 홀린 것처럼 말했다.
“동족? 동족?”
“그래, 동족… 왜 이걸 이제 안 거지? 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거지?”
란카르트도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강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동족이라고? 거짓말 마! 너희는 종족이 모두 다르잖아? 엘프, 고블린, 오크, 드워프, 인어! 그런데 그들이 모두 좀비를 동족으로 여긴다고?”
“나도 지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럴 수 없어! 뭐지? 도대체 저 좀비의 정체가 뭐야?”
그 뒤 란카르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강민도 그런 란카르트를 바라만 봤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가 제각기 생각에 빠졌다. 그런 상태를 깬 건 여진이었다.
여진이 나타나 강민에게 다가갔다.
“영주님, 홍영 님이 왔습니다. 급한 볼일이 있는 거 같습니다.”
“홍영 아저씨가?”
어차피 더 대화할 수도 없을 거 같았다.
“올라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여진이 홍영을 데리고 왔다.
올라온 홍영은 강민과 아민에게 인사를 하다 어딘가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홍영은 란카르트를 보고 손짓을 하며 소리쳤다.
“응? 영주님! 이건 뭡니까?”
“아, 아민의 새로운 소환수예요. 무슨 문제 있나요?”
홍영이 란카르트에 다가가 말했다.
“이거 엄청난 놈인데요. 빛의 강도를 보니 최소한 은행 30개 정도의 가치와 맞먹을 정도예요. 사람은 아닌 거 같고 도대체 이놈 정체가 뭡니까?”
* * *
소환 해제가 되어 소환수들이 머무는 곳으로 온 란카르트는 어이가 없었다.
“뭐? 내가 그 원수 같은 놈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거라고?”
마지막에 거친 숨을 내뱉으며 올라온 남자의 말을 떠올린 란카르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말이 돼! 당장 죽여 버려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그놈에게 내가 도움을 준다고?”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죽였으면 죽였지 절대 돕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찝찝한 게 있었다.
“만일, 내 주인이 도우라고 명령하면 어떡하지?”
란카르트는 풀이 가득 난 자신의 손을 꽉 쥐었다.
“하… 모두가 두려워하는 네크로맨서이자 대마법사였던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자신은 아민의 소환수, 주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마음과 머리는 거역하려고 해도 몸은 어느새 아민을 향해 충성하고 있었다.
“이대로 살 수 없어. 그 여자에게서 벗어나야 해.”
자신은 대마법사였다. 지금이야 방법이 생각나지 않지만, 고민하다 보면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시간은 많아.”
란카르트는 동굴처럼 생긴 소환수들의 거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좀비는 뭐지? 어떻게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지?”
좀비의 존재는 란카르트의 모든 상식을 깨 버리는 거였다. 아니 마법적 개념 자체를 뒤흔들었다.
“어떻게 모든 종족이 자신의 종족으로 여긴다는 거지?”
자신은 리치였다. 리치는 종족이란 게 없었다. 그런 자신조차 좀비를 동족으로 여겼다. 이건 이 세상의 율법상 있을 수 없는 거였다.
‘게다가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어. 꼭 누군가가 생각을 막은 것처럼 말이야.’
9서클에 이른 자신도 간신히 알아차린 거였다. 그렇다면 다른 종족들은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컸다.
머리가 복잡해진 란카르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휴우, 답답해. 나중에 생각하자. 우선은 그 여자의 소환수 마법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야.”
아민에게서 벗어나 바깥에만 나갈 수 있다면 좀비에 관한 연구를 제대로 해 볼 생각이었다.
란카르트는 입꼬리를 올리며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응?”
그런데 동굴 깊숙한 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뭐지? 아! 그 여자의 소환수들인가?’
많지는 않았다. 그중에서도 란카르트가 시선을 줄 정도의 존재는 하나뿐이었다.
‘인어족인가?’
란카르트는 피식 웃었다. 인어족이 아니라 그 누가 있더라도 상관없었다.
‘난 9서클 대마법사야. 감히 내 앞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어!’
있다면 지금 자신의 주인인 아민 정도나 드래곤 정도뿐이었다.
란카르트는 주위를 돌아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인어족, 나락에게 다가갔다.
“거기, 인어족. 일어나라.”
란카르트의 말에 나락이 말없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지? 그 의자에는 내가 앉겠다.”
란카르트는 사실 굳이 의자에 앉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저 의자가 이곳의 권위를 말해 주는 거 같아 앉으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락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응?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란카르트는 전혀 모르겠다는 나락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빌어먹을 지금은 위엄 넘치는 리치의 모습이 아니지! 이놈의 풀!’
란카르트는 당장이라도 이놈의 풀들을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이 있어서 그런지 풀들은 자신의 몸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에잇! 나는 대마법사 란카르트다. 인어족이라도 이름은 들어 봤겠지?”
란카르트는 자신의 이름을 들었으니 나락이 바로 일어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락은 여전히 바라만 봤다.
“뭐야? 설마, 나를 모르는 거야? 이 란카르트 님을?”
란카르트의 말에 나락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란카르트가 활짝 웃었다.
“그래, 진작 일어날 것이…….”
그때였다. 나락이 란카르트의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이놈, 뭐 하는 짓이냐!”
해골만 있기에 목을 잡혀도 말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뭐 하긴. 시끄러운 해골 교육하려는 거지.”
“뭐라고? 해골! 나는 리치이자 네크로맨서 란카르트다!”
“알아, 나도 소문을 들었거든.”
란카르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유명한 대마법사가…….”
“맞아. 동정 대마법사. 못생긴 얼굴 때문에 평생 여자들에게 퇴짜 맞고 그게 한이 되어 리치까지 되어서 잘생긴 남자와 영혼을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다 실패하고 대신 네크로맨서로 대성한 인간.”
순간 란카르트의 순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누… 누가… 그런 모함을…….”
“누구긴 누구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소설책으로도 있을걸?”
“뭐? 소설책!”
“그래, 동정 대마법사 리치.”
나락의 말에 란카르트는 크게 분노했다. 거짓말이라 생각한 거였다.
“거짓말 마라!”
“거짓이면 내가 어떻게 그런 걸 알겠어? 참, 저자 이름이 알렉스인가?”
순간 란카르트의 얼굴 풀들이 곤두섰다.
“알렉스? 알렉스, 그놈이 살아 있었어?”
알렉스는 수많은 여자를 희롱한 카사노바였다. 란카르트는 알렉스를 잡아, 몸을 바꾸려 했다가 실패하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알렉스가 있던 자리에는 재만 남아 있어 죽은 줄만 알았다.
“그래, 그 소설책이 크게 인기를 얻어 수많은 여자와 오랫동안 잘 살았지.”
란카르트는 귀를 막았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네 이놈. 거짓으로 대마법사인 나를 현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네 죄를 벌하겠다!”
란카르트는 크게 소리치며 자신이 아는 가장 강한 마법 ‘메테오’를 쓰려 했다.
“응?”
그런데 마법이 반응하지 않았다.
“뭐… 뭐야?”
란카르트는 다른 마법도 써 봤다. 하지만 어떤 마법도 써지지 않았다.
나락이 당황하는 란카르트를 보며 비웃었다.
“너 아직 확인도 안 한 거냐?”
“뭘 확인 안 했다는 거냐?”
“상태창이라고 불러 봐.”
“뭐? 상태창?”
순간 란카르트 눈앞에 이상한 글씨가 떴다.
“뭐라고? 1서클? 내가 1서클이라고?”
“그래, 소환수가 되면 마법사는 1서클로 내려가지.”
란카르트가 입을 쫙 벌렸다.
“말도 안 돼! 9서클인 내가 1서클이라니!”
“물론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야. 성장이 가능하거든. 살아생전에 있던 벽도 넘을 수 있어.”
절망인 줄 알았는데 희망도 있었다.
“어…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거지? 당장 가르쳐 줘!”
그때였다. 나락이 주먹에 힘을 꽉 줬다.
– 뿌지직.
란카르트가 다시 목과 몸뚱어리로 다시 분리되었다.
“가르쳐 주지. 그 전에 신입 교육 먼저 하고.”
– 뿌직.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동굴 속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도대체 좀비는 뭐지?’
모두를 보낸 후 강민은 밤새도록 고민했다.
사실 ‘좀비’란 너무나 유명했다. 전 세계 사람 누구나 알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좀비란 선입견 때문에 정말 평행 세계에 나타난 좀비가 무엇인지에 대해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어.’
그제야 강민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좀비는 왜 생겨났지? 누가 만들어 낸 거야?’
처음에는 영화나 소설처럼 바이러스 때문인 줄 알았다. 이계인들을 본 이후에는 이계인 들이 만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란카르트와 대화를 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좀비를 죽이지 말아야 하나? 혹시라도 좀비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란카르트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란카르트도 좀비가 뭔지 잘 모르잖아?’
강민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좀비를 죽인 게 혹시나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강민은 혼자 끙끙거리며 근정전에서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강민을 아민이 찾아왔지만, 강민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오빠를 이대로 두면 안 돼!’
아민은 이렇게 시무룩해 있는 강민을 본 적이 없었다.
아민은 강민이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란카르트와 강민의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들어서였다.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아민은 ‘무지개 여의주’가 생각났다.
‘혹시 여의주에게 물어보면 대답해 주지 않을까?’
아민은 바로 강민에게 가서 자기 생각을 알려 줬다.
“무지… 개 여의주?”
“네, 오빠. 여의주면 혹시 좀비가 뭔지 대답해 주지 않을까요?”
흐릿했던 강민의 눈에 힘이 들어왔다.
“잠깐만, 바로 해 보자.”
강민은 바로 아공간에서 ‘무지개 여의주’를 꺼내 소원을 빌었다.
“내 소원은 좀비의 정체를 아는 것이야!”
강민의 소원에 바로 메시지가 떴다.
[현재 레벨로 답할 수 없는 소원입니다.>“뭐라고? 레벨이 안돼? 그럼 몇이나 돼야 하는데?”
[해당 소원은 무지개 여의주 레벨이 5가 되어야 답변을 받을 수 있습니다.>강민은 다시 주저앉았다. 희망이 생겼다가 사라지니 더욱 힘이 빠져 버렸다.
아민은 그런 강민 옆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민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이건 털털이잖아? 어떻게 나한테 말을 거는 거지?’
소환수들을 소환 해제하면 다시 소환할 때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란카르트에게서 목소리가 들린 거였다.
– 주인님, 할 말이 있습니다. 제발 저를 소환해 주십시오.
란카르트의 애원에 아민은 강민의 눈치를 보다 소환했다.
아민의 바로 옆에 란카르트가 나타났다. 그런데 란카르트의 모습이 이상했다.
아민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털털아, 너 얼굴이 왜 그래?”
란카르트의 모습은 처참했다. 눈 부분이 함몰되어 폭 들어가 있었고 한 손에는 부러진 다리뼈를 들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다. 안에서 넘어진 거뿐입니다.”
“넘어져?”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아민은 자세한 것을 물어보려 다시 입을 열었다.
“털털아 솔직히…….”
그때였다. 란카르트가 아민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주인님, 들었습니다. 소환수는 적들을 많이 상대할수록 강해진다고요. 그게 진짜인가요?”
“응… 그건 사실이긴 한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란카르트가 부러진 다리뼈를 들고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게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가장 중요해요! 주인님, 제발 저를 적과 싸울 때 내보내 주세요.”
아민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왜 그러는지 알겠는데, 사실 나는 잘 싸우지 않아. 내가 싸우는 건 거의 오빠가 명령을 내릴 때야.”
“오빠요?”
란카르트는 아민이 바라보는 사람을 바라봤다. 바로 강민이었다.
순간 란카르트는 이를 악물었다.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 강민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놈만 아니었으면!’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주인이 아니라 바로 강민이었다.
란카르트는 부러진 다리뼈를 허벅지 뼈에 붙이고 절뚝거리며 강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강민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앞으로 있을 전장에서… 저를 써 주십시오.”
란카르트는 한 번도 쓰지 않던 존칭을 강민에게 썼지만, 강민은 전혀 흥미가 없는지 얼굴도 바라보지 않았다.
그걸 본 란카르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만일 그렇게 해 준다면…….”
란카르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좀비의 정체를 알 만한 종족을 알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