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s Billionaire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사업을 시작하다 (2)
강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도끼로 목을 자르던 감각, 솟구치던 피, 발아래로 떨어져 구르던 목.
“욱!”
강민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좌변기를 열고 속에 있던 것을 다 게워 냈다.
강민이 처음으로 죽인 사람이 방진호였다.
평행 세계에서는 워낙 많은 일이 있어 잠시 잊고 있었던 건데 살아 있는 방진호를 보니 다시 그 충격이 쏟아졌다.
강민은 몸이 진정될 때까지 화장실에 있다가 나왔다. 그런데 화장실 바깥에 팔봉이 서 있었다.
“화장실에 간 거냐?”
“…네에, 갑자기 배가 아파서요.”
팔봉은 강민을 유심히 살폈다. 눈이 충혈됐고 와이셔츠 위에 분비물이 묻어 있었다.
“그랬구나. 떡만 문 앞에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다. 들어가자.”
안에 들어가자 여비서와 팔봉의 부하인 덩치 3명이 막 접시에 시루떡을 담고 있었다.
강민은 이들을 잘 알고 있었다. 팔봉과 함께 자신을 훈련시켜 준 사람들이었다.
“형님, 빨리 오십시오. 시루떡 겁나 맛있어 보입니다.”
덩치 3명 중 팔에 장미 문신을 한 남자가 손짓했다.
강민은 이 사람의 이름이 여명구인 걸 떠올렸다. 여명구는 이들 삼인방 중 가장 큰형이었다.
‘인정사정없었지. 정말 그때는 이가 갈렸었는데. 덕분에 살았어.’
강민은 삼인방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장미꽃 문신을 새긴 명구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워메. 우리가 뭔 도움을 줬다고 그려. 다 팔봉 형님이 한 거지.”
명구의 말에 옆에 있던 금목걸이를 한 남자, 정종남이 말했다.
“우리 도움 준 거 맞잖아요. 조카님, 우리 도움 잊으면 안 돼! 난 다른 건 바라지 않고 무료 커피 그거면 돼!”
“아 형님들, 조용히 하고 떡이나 드세요.”
마지막 막은 막내 마정식이 말했다. 가장 얼굴은 순하게 생겼지만, 강민은 가장 야차같이 날뛰던 게 이 마정식임을 떠올렸다.
마정식이 비서를 향해 말했다.
“서라야, 와서 같이 먹자. 맛있어.”
강민은 비서의 이름이 서라인 걸 처음 알았다.
“됐어, 살쪄. 다이어트 중이야.”
“네가 살 뺄 게 어딨다고?”
“요즘 뱃살이 얼마나 나왔는데. 내 배 그만 쳐다보고 어서 떡이나 드셔.”
서라의 핀잔에 정식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너도 앉아서 먹자.”
팔봉의 말에 강민도 소파에 앉아 시루떡을 같이 먹었다.
강민이 앉자 언제나처럼 서라가 다가와 ‘커피, 녹차’를 물었고 강민이 녹차를 말하자 금세 녹차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팔봉이 시루떡 한 접시를 다 먹고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냐?”
“저번에 마트에 와 주셨는데 제대로 인사도 못 한 거 같아서요.”
“쓸데없이. 얼굴 봤으면 됐지 뭘 또 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팔봉의 입가는 조금 올라가 있었다.
“저… 삼촌,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뭔데? 뜸을 들이냐. 그냥 물어봐.”
“아까 제가 사무실 들어올 때 한 사람을 봤거든요. 노란 머리의 남자요.”
순간 팔봉과 삼인방이 멈칫했다.
“그 사람이 명함을 줬어요. 이름이 방진호더라고요.”
팔봉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명함 어딨냐?”
“여기요.”
강민은 명함을 팔봉에게 건넸다. 그러자 팔봉이 명함을 찢어 버렸다.
강민이 놀란 눈을 하자 팔봉이 말했다.
“경고하는데, 절대 이놈과 만나지 마라. 연락해서도 만나서도 안 돼!”
강민은 팔봉을 다시 만난 이후로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목소리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팔봉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삼인방도 눈빛이 살벌해져 있었다.
팔봉이 이렇게 말했으면 평소의 강민은 더는 캐묻지 않았을 거였다.
하지만 강민은 ‘방진호’에 대해 알아야 했다.
“삼촌, 도대체 누군데 그래요?”
팔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잊고 있던 약속이 생각났다. 오늘은 이만 가라.”
축객령이었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팔봉은 단호했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삼촌.”
강민은 자리에서 일어서 인사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강민이 힘없이 사무실을 나서는데 뒤에 서라가 쫓아 와 종이 한 장을 건네며 화장실로 갔다.
– 궁금한 걸 알려 드릴게요. 꼭 연락해 주세요. 010-XXXX-XXXX.
* * *
강민은 서라가 퇴근한 후 미아 역 구석진 커피숍에서 만났다.
“아시겠지만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건 절대 비밀이에요. 원래 저도 말해서는 안 되지만 강민 씨라면 사장님을 도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팔봉을 도운다는 말에 강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삼촌이 왜요?”
“아까 방진호에 관해 물어보셨죠? 바로 그놈 때문에 사장님이 위험해 처할 수도 있어요.”
다짜고짜 방진호 때문에 팔봉이 위험하다니, 강민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침 주문한 아이스커피가 나오자 강민은 그걸 서라에 건네며 말했다.
“우선 이거 드시고,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서라는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겠죠. 그럼 어디부터 말해야 하나. 혹시 회장님이 사장님을 포함해서 3명에게 후계자 경쟁을 시키고 있는 건 알고 계세요?”
후계자 경쟁이란 말에 강민은 예전에 본 노인이 떠올랐다.
“잠깐 들은 거 같아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여기서 이긴 사람이 회장님의 모든 걸 이어받아요. 돈과 조직까지요.”
“돈과 조직이요?”
강민은 노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돈과 조직이란 게 어느 정도인지 가름이 안 됐다.
“그냥 우리나라 20대 기업 정도 되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돈과 10번째 안에 드는 조폭 조직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강민의 눈이 커졌다.
‘20대 기업의 돈과 10번째 안에 드는 조폭?’
서라는 쉽게 말했지만 그건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물론 정부에서 감시가 심해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후계자는 그 모든 것을 이어받고요.”
“아니, 그런 곳과 삼촌이 왜?”
“말하려면 길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나중에 사장님께 직접 들으세요. 중요한 건, 그 후계자 중 한 명이 방진호라는 거예요.”
“뭐라고요?”
강민의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후계자 그리고 경쟁자?’
강민은 단번에 깨달았다.
‘이거 완전 왕위 쟁탈전이잖아?’
그런데 이상했다. 팔봉을 보면서 강민은 단 한 번도 그가 뭘 준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삼촌이 그걸 얻기를 원하는 건가요?”
서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랬으면 제가 여기 안 왔죠. 사장님은 큰 관심 없어요.”
“삼촌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하면 되지 않나요? 다른 두 명 끼리 치고받고 하라고 하세요.”
강민의 말에 서라는 답답한지 컵 속의 얼음을 하나 입속에 넣었다.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게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회장님이 사장님을 은근히 지지하고 조직 내 꽤 많은 사람도 사장님을 지지해요. 그런데 만일 방진호나 다른 사람이 후계자가 되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대답은 어렵지 않았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적당히 떼어 주고 멀리 보내 버리겠지만 들어보니 이 조직은 일반 조직이 아닌 거 같았다.
강민은 중세 시대 왕위 쟁탈전이 떠올랐다.
“설마?”
“짐작했나 보네요. 죽일 겁니다.”
“요즘 어떤 세상인데 사람을 함부로 죽여요!”
서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방진호의 형이죠.”
“형이요?”
“네, 방경호라고 이 근처에서 유명한 조폭 행동 대장이에요. 흑룡파라고 아주 지독한 놈들이죠.”
강민의 눈을 부릅떴다.
‘여기서 흑룡파가 왜 나와? 설마 평행 세계의 흑룡파가 진짜 조폭이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방진호가 흑룡파 소속이었다는 걸 들은 기억이 났다.
“아니, 방진호고 형이고 말이에요. 그걸 회장님이란 사람이 지켜봐요? 삼촌 아낀다면서요?”
“그건 강민 씨가 회장님을 몰라서 그래요. 만일 후계자가 결정되면 그분은 철저히 지켜만 볼 겁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에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죠.”
강민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좋아요. 이제 이해가 됐어요. 그런데 제게 왜 온 겁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거예요. 경쟁은 올해 말인데 벌서 8월이에요. 4개월 안에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어야 해요.”
“얼마나요?”
“최소 100억 이상이요.”
강민이 입을 쫙 벌렸다. 평행 세계에서 돈을 휴지 줍듯 하는 자신도 100억은 쉽게 가져올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두 번째 이유는요?”
“저희 안에 방진호가 심어 놓은 첩자가 있어요. 믿을 수 있는 건 강민 씨밖에 없어요.”
* * *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집으로 돌아온 강민은 집 근처 헬스장으로 갔다.
평행 세계에서 체력이 부족한 걸 느끼고 현실 세계로 오자마자 등록한 거였다.
– 윙! 윙! 윙!
강민은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러닝 머신을 1시간째 뛰고 있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제야 팔봉이 아버지와 자신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알게 되었다.
‘후계자 경쟁도 아버지 때문에 그만둔 거야.’
강민은 어떻게든 팔봉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 사장님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해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요. 하지만 사장님은 사채도 고작 10% 이자만 받고 시장 상인들에게 빌려주고 있어요. 이러면 다른 사람들을 이기지 못해요.
‘서라 씨가 아는 것을 삼촌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무슨 생각이지?’
강민은 2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샤워하고 난 후여서 그런지 몸이 개운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8시가 다 되었다.
‘벌써 목요일이구나, 모레면 평행 세계로 가야 하네.’
강민은 안방에 있는 수많은 박스를 바라봤다. 대다수가 라면 상자였고 일부는 과자 상자도 있었다.
모두 이번 평행 세계 이동 때 가져갈 것들이었다.
‘50kg을 맞추긴 했는데 너무 작아. 더 무게를 늘려야 해.’
강민은 다시 한번 물건들을 살펴보다 구석에 있는 가방을 발견했다.
‘맙소사, 내 정신 좀 봐! 저걸 놓고 있었다니.’
강민은 현실 세계로 2개의 가방을 들고 왔었다. 하나는 지폐가 든 가방 또 하나는 귀금속이 든 가방이었다.
가방을 여니 그 안에 금붙이들이 가득했다.
‘이걸 언제 팔지?’
저번에야 돈 버는 재미에 힘들 줄 몰랐지만, 현금이 가득한 지금 또다시 그 일을 하려니 귀찮아졌다.
‘게다가 가격을 잘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금은 시세대로 받는 게 아니었다. 수수료로 20% 정도를 떼고 받았다.
가방에는 금이 가득했다. 이걸 다 팔면 수수료만 해도 억 단위일 거 같았다.
‘잠깐? 수수료?’
순간 강민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삼촌이라면 이 정도는 쉽게 처리하지 않을까?’
러시아와 밀수까지 하는 팔봉이었다. 이 정도 귀금속이야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강민은 바로 팔봉에 전화했다.
아까 쫓겨나다시피 해서 안 받을 줄 알았는데 팔봉은 바로 전화를 받고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하아, 이건 또 어디서 난 거냐.”
팔봉이 가방에 가득 있는 귀금속을 보며 한숨 쉬었다.
‘혹시나 몰라 4분의 1만 가져온 건데 다 가져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강민은 흠흠거리며 대답했다.
“아시잖아요, 영업 비밀. 묻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삼촌.”
“끄응.”
팔봉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건 이 세상 누구에게도 훔친 건 아닙니다. 아버지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어요.”
“장물도 아닌데 이 정도 귀금속이 있다고? 그게 말이 돼?”
“그냥 조상님 은덕을 받아 구했다고 생각해 주세요.”
평행 세계로 가는 것이 조상님 덕이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좋아, 이걸 왜 가져온 거지?”
강민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삼촌, 저하고 사업 하나 하시죠.”
“사업?”
“이 귀금속 삼촌이 팔아 주세요. 대신 수수료 20% 삼촌이 다 가지시고요.”
팔봉이 눈을 빛냈다. 가방 속 귀금속은 언뜻 봐도 양이 상당했다.
이걸 처리하고 20% 수수료를 챙기면 못해도 몇 억은 벌 수 있을 거 같았다.
“삼촌, 그리고 이건 일회성이 아니에요. 양의 차이는 있지만 매주 상당수의 귀금속을 드릴 겁니다.”
팔봉의 손이 멈칫했다. 쉽게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매주 이 정도면 수수료만 한 달에 못 해도 5억 정도 나.’
러시아와 진행하고 있는 무역까지 생각하면 월 7~8억 정도의 수입이 생길 수 있었다.
거기다 사채로 인한 이자를 생각하면 한 달에 10억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팔봉의 눈이 심각해졌다. 꼭 강민이 자신에게 후계자 경쟁에 나가도록 부추기는 거 같았다.
“너, 혹시 누구에게 무슨 얘기 들었냐?”
순간 강민의 눈이 흔들렸지만, 얼른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무슨 얘기죠? 전 단지 이 귀금속 처리하기 귀찮아서 삼촌에게 온 건데요?”
팔봉은 강민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좋아, 알았다.”
팔봉은 그 말을 하고 일어섰다.
“밥 먹었냐?”
“아뇨.”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하러 가자.”
* * *
다음 날 오후 2시. 해가 하늘 높이 떠 있는 시간이었다.
– 파하.
방진호는 호텔 방 침대에서 대마초를 피우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뽕은 뽕만의, 대마는 대마만의 맛이 있단 말이야.”
방진호 옆에는 옷을 하나도 입고 있지 않은 여자 2명이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미친년들, 아예 맛이 갔구먼.”
여자들의 근처에는 주사기가 널려 있었다.
방진호는 여자들을 발로 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연락했다.
잠시 후 몇 명의 건장한 남자 세 명이 방안에 들어왔다.
“야, 이년들 가져다 팔아.”
“알겠습니다, 형님.”
덩치 두 명이 여자들을 데리고 나갔는데 한 명이 그대로 남아 진호에게 말했다.
“형님, 한 시간 전쯤에 ‘탱구’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탱구가?”
탱구는 팔봉이 측에 심어 놓은 방진호 사람이었다.
“알았어.”
진호는 바로 ‘탱구’에게 연락했다. 몇 번 신호가 가고 ‘탱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 형님.
“뭔 일이야?”
– 형님, 큰일 났습니다.
진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탱구가 큰일이라고 말하는 건 팔봉에 좋은 일이란 거였다.
“뭔데?”
– 사장님… 아니, 팔봉에게 1억이 생겼습니다.
“1억? 설마 러시아와 무역으로 번 거야?”
– 아닙니다. 귀금속을 처리했습니다.
“귀금속? 팔봉이 이놈이 장물이라도 손댄 거야?”
– 아닙니다, 형님. 조카라는 놈이 5억 정도 귀금속을 팔아 달라고 가져왔습니다.
진호의 머릿속 계산이 빨라졌다.
경쟁은 올해 말까지였다. 현재 자신이 모은 돈이 40억. 시드머니 20억을 가지고 8개월 만에 2배로 늘렸다.
팔봉에 1억이 생긴다고 큰일이 벌어지지 않겠지만 이 거래가 계속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러시아 수입도 생각하면 위험해.’
진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조카란 놈이 업자야?”
– 아닙니다. 마트 사장입니다.
“마트 사장?”
가면 갈수록 이해가 안 됐다.
– 그런데 형님, 그 조카가 러시아 밀수를 성공시킨 놈입니다. 저희가 포섭한 통역이 들킨 것도 그 조카란 놈 때문입니다.
“뭐라고!”
진호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 쾅!
“그런 개새끼가!”
러시아 일은 ‘탱구’의 첩보를 바탕으로 진호가 공들여 진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성공 직전에 조카란 놈의 방해로 실패했다.
그때는 재수가 없는 우연으로 치부했는데 이쯤 되니 뭔가 이상했다.
“야, 조카란 놈 사진 보내고, 지금 어딨는지 보고해.”
– 형님, 그 사람 팔봉 형님의 조카입니다. 건들면 큰일 납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몰라!”
– 형님! 그래도 팔봉입니다. 강남 파를 끝장낸 팔봉 말입니다.
진호가 이를 갈고 말했다.
“한 번만 더 그 소리 하면 너부터 끝장내마.”
– …죄송합니다, 형님.
“끊어!”
진호는 전화를 끊었다.
“그놈의 팔봉! 팔봉! 지긋지긋해!”
얼굴이 시뻘게진 진호는 테이블 위에 올려있는 주사기를 팔에 꽂았다. 곧 정신이 아련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진호는 소파 위에서 한참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핸드폰을 보니 조카의 사진과 현재 위치가 와 있었다.
“헤? 이놈이었어?”
핸드폰 사진 속에는 어제 사무실 앞에서 만난 남자가 있었다.
진호가 환하게 웃음 지었다. 아직 약 기운이 남아 있어 정신이 몽롱했다.
“크크크.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이상하게 죽이고 싶더라.”
진호는 히죽 웃더니 전화를 걸어 부하들을 모았다.
“얘들아, 오늘 회 좀 떠야겠다.”
* * *
강민은 평소처럼 헬스 클럽에서 운동 후 건물을 나섰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펴고 건물을 나선 강민은 곰곰이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끝냈나?’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내일 11시 30분에는 다시 평행 세계로 떠나야 했다.
‘과자, 애들이 좋아하겠지?’
애들이 웃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등 뒤에 날카롭고 뾰족한 것이 닿았다. 칼이었다.
“조용히 따라와.”
음침한 남자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뭐지?’
무섭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사선을 지나왔다.
“앞으로 쭉 가다 골목으로 들어가.”
강민은 뒤에 있는 남자의 말을 따라갔다. 20분쯤 가다 보니 외곽진 곳에 공사 중인 건물이 보였다.
‘이런 곳이 있었네? 누가 죽어도 모르겠어.’
강민은 공사 중 건물 3층으로 올라갔다.
“호오. 오늘 또 만났네. 우리 인연인가 봐? 명함도 줬는데 연락하지?”
그곳에 방진호가 있었다. 게다가 방진호 옆에는 5명의 덩치 큰 남자들이 서 있었다.
강민을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는 3층 입구에 서서 막고 있었다.
“명함에서 냄새나서 버렸어. 좀 씻고 다니지 그러냐?”
“크하하하하.”
진호가 미친 듯이 크게 웃었다. 눈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너 정말 재밌구나? 최근에 들어 본 말 중 가장 웃겼어.”
“재밌으면 또 해 줄까? 너 피어싱 안 어울려. 꼭 소 같잖아?”
진호의 표정이 굳었다.
“내 앞에서 그런 말 한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별로 안 궁금해.”
진호가 손짓했다.
“곧 알게 될 거다. 얘들아. 저 새끼. 말 좀 잘 듣게 해 봐.”
“알겠습니다, 형님!”
덩치 5명이 강민을 둘러싸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두려워야 할 상황이지만 강민은 피식 웃었다.
“경고하는데 오면 다친다.”
강민의 말에도 덩치들은 말없이 다가왔다. 강민은 그들과 자신의 거리를 차분하게 살폈다.
‘어쩔 수 없지! 방패!’
마음속으로 외치는 순간 강민의 몸 주위에 3개의 방패가 나타났다.
하지만 덩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지 강민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강민이 마음속으로 외쳤다.
‘회전!’
옆으로 누인 방패가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