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s Billionaire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샹그릴라로 가는 길 (2)
“으악!”
태진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이 멈춰지지 않았다.
‘시발, 꿈이잖아.’
꿈속에서 아버지와 형이 나타났다. 그들이 자신에게 손짓했다.
– 태진아, 어서 이리 와라. 가족은 같이 있어야지.
– 동생아, 우리를 미워해도 네 몸에는 같은 피가 흐른다. 너도 곧 우리처럼 될 거야.
태진이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와 형은 한 달 전에 굶어 죽었다. 태진이 그렇게 만든 거였다.
“가족은 개뿔.”
태진은 코웃음 치며 일어나 냉수를 마셨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기분은 여전히 찜찜했다.
‘그냥 꿈이야. 꿈일 뿐이라고.’
그냥 꿈이라고 넘기려 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며칠 전 본 광경 때문이었다.
강민과 산타의 싸움은 생명체의 싸움이 아니었다. 신화 속 괴물들의 싸움이었다.
‘그놈이 이곳으로 올까?’
이곳 진도는 최남단에 있는 섬이었다. 망해 버린 세상에서 이곳까지 올 방법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놈이라면…….’
좀비 따위가 그놈을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일 그놈이 이곳으로 온다면 모든 게 끝이야. 그때는 간신히 도망갔지만, 다시 만난다면…….’
태진은 초조해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민이 온다면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태진은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미국!’
얼마 전 연결된 미국이 떠올랐다.
‘맞았어! 미국으로 가면 돼! 그곳에는 무기가 많잖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핵폭탄이었다. 아무리 강민이라도 핵을 떨어트리면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했다.
물론 핵이야 많은 나라가 가지고 있지만 지금 연락이 되는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가지?’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가 있을 리 없었다. 바다에도 괴물들이 살기 때문에 배로도 이동하기 힘들었다.
‘잠깐, 이동?’
태평양을 배로 건널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수영으로 갈 수 있잖아?’
수영으로 태평양을 건넌다는 건 말이 안 됐지만 그게 가능한 종족이 있었다.
‘인어족!’
태진은 진도에 있는 인어족의 왕자 ‘칼리’를 떠올렸다.
‘그놈을 잡아먹으면 인어족으로 변신할 수 있어. 그럼 태평양을 건너는 것도 문제가 아니야.’
왕처럼 지내고 있는 진도를 포기한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게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결심이 선 태진은 바로 칼리를 가두고 있는 ‘숙소’로 이동했다. 칼리는 지금 ‘시청’으로 쓰고 있는 건물 지하에 있었다.
태진이 시청에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이 태진을 보며 인사를 했다.
태진은 그들을 무시하고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 에에에에엥.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청 경비들이 몰려 나가고 있었다.
‘응?’
태진이 흠칫했다. 혹시나 강민이 이곳에 왔나 싶어서였다.
다급해진 태진은 시청 마당까지 달려가 지나가던 경비원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경비원은 걸음을 멈추고 바로 대답했다.
“충성! 김상철 위원님을 누군가가 인질로 잡고 있다고 합니다.”
태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김상철을?”
태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그놈이 온 건 아니었네. 그놈이었다면 인질 따위를 잡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김상철?’
김상철은 태진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박쥐 같고, 바퀴벌레 같은 새끼지.’
확실히 그것도 능력이었다. 어느 쪽에 붙어야 자신이 살 수 있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능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알아서 살아남겠지. 아니면 죽든지.’
진도를 떠나려는 태진은 김상철 따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가서 처리해! 모두 사살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태진은 그 말을 하며 다시 시청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 쿵!
시청에 있는 바리케이드가 박살 나며 한 사람이 시청 안으로 들어왔다.
그곳으로 얼굴을 돌린 태진이 눈을 부릅떴다.
“너… 넌!”
“오호라, 너 여깄었구나?”
그곳에 김상철의 멱살을 잡은 강민이 서 있었다.
* * *
김상철을 발견한 강민은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나 간절히 만나기를 원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강민의 생각도 모른 채 김상철은 쾌재를 불렀다.
‘최강민이라고? 그 호구 새끼? 어디서 힘 좀 얻었나 본데, 너 정도 구슬리는 건 일도 아니지.’
“강민이? 맙소사,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하늘이 도왔어!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냐?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이것 좀 놓고 얘기하자.”
상철의 말에 강민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는 변하지 않았구나. 하긴 이 정도는 돼야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나를 위로하는 ‘척’하고 뒤로는 우리 집을 털 수 있는 거지.’
강민은 결심했다.
‘널 결코 쉽게 죽이지 않겠다.’
“오해라고? 김상철! 네가 우리 집안에 한 짓이 있는데 그런 소리를 해?”
김상철은 아차 싶었다.
‘이놈이 어떻게 그걸 안 거지?’
김상철은 이를 악물었다.
‘안 돼. 여기서 인정하면 끝이야. 어떡하든 버티면 돼. 버티면 경비병이 도착할 거야. 그럼 이놈도 끝이야.’
김상철은 강민을 보며 호통을 쳤다.
“김상철이라니! 이놈,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됐지만 그게 무슨 말이냐! 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김상철의 입에서 ‘아버지’란 단어가 나오는 순간 강민의 눈이 뒤집혔다.
“끄아!”
김상철의 오른팔이 뒤로 꺾였다. 구조상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인 거였다.
“네놈이 감히 아버지를 입에 담아!”
강민이 다시 움직였다. 김상철의 왼 무릎 아래가 앞으로 꺾였다.
“컥!”
참을 수 없는 통증에 김상철의 눈이 뒤집혔다.
“꼼짝 마!”
시청에서 나온 경비원들이 강민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하지만 강민이 주위를 방패로 감싸 버리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탕! 탕!
총을 쏴 봤지만, 방패에 모조리 튕겨 나갔다.
강민은 비명을 지르며 부들부들 몸을 떠는 김상철의 멱살을 잡고 시청을 향해 다가갔다.
앞에 바리케이드가 있었지만, 강민이 손짓하자 방패가 날아가 모든 걸 부숴 버렸다.
– 쾅!
그 모습에 경비들이 몸을 떨었다.
“괴… 괴물!”
“우리가 상대할 상대가 아니야. 능력자 부대를 불러! 빨리!”
경비들이 능력자들을 부르는 동안 강민은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강민은 멍하니 서 있는 태진을 발견했다.
“오호라, 너 여깄었구나?”
강민은 김상철을 팔봉에게 던졌다.
“삼촌, 부탁해요.”
“걱정 마라. 다시는 사지를 쓸 수 없게 만들어 놓으마.”
고개를 끄덕인 강민은 태진에게 다가갔다. 단번에 갈 수 있었지만, 강민은 일부러 여유롭게 갔다.
“오… 오지 마!”
강민을 본 태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태진은 바로 엘프로 변신해 도망치려 했다.
– 쿵!
하지만 그건 시작하자마자 막혔다. 거대한 방패가 앞을 막았다.
다른 곳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 쿵! 쿵!
어디로 가려 해도 방패가 앞을 가로막았다.
태진은 몸을 떨며 말했다.
“살… 살려만 주십시오. 그럼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걸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 진도… 진도를 바치겠습니다.”
강민은 태진에게 다가와 물었다.
“진도는 관심 없어. 네 아버지와 네 형은 어딨지?”
강민의 질문에 태진은 고민에 빠졌다.
‘설마? 아버지와 형에게 원한이 있는 건가? 그럼 기회가 있을지도!’
태진은 이게 자신이 살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그놈들은! 제가, 제가 죽였습니다. 그놈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입니다.”
태진의 말에 강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 집안은 한 놈도 정상이 없구나.’
아버지와 형을 죽어 마땅한 놈이라 말하고 직접 죽였다고 했다. 강민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거였다.
“그래? 그놈들이 죽었다라……. 그럼 구룡 그룹에서 남은 놈은 네놈 하나네?”
“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에 태진이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아닌가? 설마? 권 씨를 모조리 죽이려는 건가?‘
태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안 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사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래! 원하는 게 없는 인간은 없어! 진도가 관심 없다면…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야 해! 뭐가 좋을까?’
순간 무언가가 떠오른 태진은 얼굴을 치켜들며 말했다.
“제가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 미국 정부가 있습니다. 그들과 얼마 전 연결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 * *
강민이 관심을 가지자 태진이 얼른 말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아십니까? 좀비가 왜 나타났는지 아십니까?”
순간 강민이 멈칫했다. 이건 강민은 물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던 일이었다.
“그걸 네가 안다고?”
“미국과 같이 연구 중입니다.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태진의 말에 강민이 씩 웃었다.
“연구 중이라. 그럼 그걸 연구하는 연구원은 따로 있겠네? 네가 직접 연구하지는 않을 테니까.”
강민의 말에 태진의 눈이 흔들렸다.
‘틀렸어. 이놈은 나를 죽일 거야!’
태진이 이를 악물었다. 마침 시청으로 몰려든 능력자 부대가 보였다. 태진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죽여! 모두 공격해!”
태진의 말에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능력자 부대가 모두 공격했다.
하늘에서 얼음이 떨어지고 땅이 꺼졌다. 온몸이 근육으로 변한 사람이 방패를 뛰어넘어 주먹으로 강민을 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혼란’ 정신 공격을 받았습니다.> [‘유혹’ 정신 공격을 받았습니다.>수많은 정신 공격이 이뤄졌다. 하지만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모든 정신 공격이 무효화됩니다.>강민은 이미 모든 정신 공격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
달려든 근육 인간이 나가떨어졌다. 땅이 꺼졌지만, 강민은 방패 위에 유유히 서 있었다.
공격은 10분 동안 일어났지만, 그 어떤 것도 강민에게 통하지 않았다.
“괴… 괴물.”
태진의 말이 사방에 퍼졌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모든 이들의 마음이 태진과 같았다.
강민은 태진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 살…….”
강민은 태진의 말을 듣지 않았다.
– 싹둑.
강민의 손짓에 방패가 움직여 태진의 목을 잘랐다.
[‘포식(A)’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교체하시겠습니까? YES, NO>강민은 선택하는 대신 팔봉에게 다가갔다. 팔봉 옆에 있는 김상철은 사지가 모두 뒤틀린 채 기절해 있었다.
“삼촌, 준비됐죠?”
팔봉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민은 상태창을 열었다.
[‘박 팔봉’을 기사로 임명하시겠습니까? YES, NO>강민이 YES 버튼을 누르자 팔봉의 몸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팔봉을 기사로 임명한 강민은 바로 스킬을 이전했다.
“삼촌, 기분이 어때요?”
‘포식’ 스킬까지 이전받은 팔봉은 눈을 빛냈다.
“이게 기사가 된 느낌이군. 낯설지만 나쁘지 않아.”
팔봉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뒤 주위를 돌아봤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민처럼 강한 인간을 처음 봐서였다.
게다가 지금 태진이 죽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이끌어온 리더가 죽자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버렸다.
“강민아, 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
“순차적으로 영지로 데려가죠.”
“안 간다고 하면?”
강민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김상철을 보며 미소 지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놔둘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기 힘들 겁니다.”
팔봉이 김상철을 발로 툭툭 치며 물었다.
“이놈을 이용할 거냐?”
“네, 조금 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다만 삼촌 도움이 좀 필요해요.”
고개를 갸웃하는 팔봉에게 강민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거 괜찮구나.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의미도 될 수 있고 말이야.”
* * *
강민은 자신의 ‘계획’을 팔봉이 준비하는 동안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가 이 안에 있다고 했지?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게 되었어.’
강민의 마음이 급해졌다.
‘이 세상이 망한 이유. 그리고 좀비가 왜 생겼는지를 연구하고 있다니!’
강민은 안내도에 따라가서 ‘구룡 연구소’라 쓰여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 수많은 연구원이 공포에 질린 체 강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는 칼을 들고 있었고 누구는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누구는 화학 약품으로 보이는 약품을 들고 있었다.
‘이 사람들도 다 봤나 보네. 하긴 그 난리가 났었으니까.’
사이렌이 울리고 총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 메아리쳤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강민은 연구원들을 바라보다 한 사람에게서 멈췄다.
‘한 교수님!’
그곳에 빗자루를 들고 있는 한만호가 있었다.
강민은 한만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다른 연구원들이 한만호 앞을 막아섰다.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이런 말 해도 안심 안 되겠지만, 전 당신들을 헤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한만호가 뒤에서 말했다.
“처음에는 다 그렇게 말했어!”
강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민이가 저를 보냈는데도요? 삼촌 찾아 달라고.”
순간 한만호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민이가? 거짓말!”
강민은 핸드폰을 꺼내 아민과 찍은 영상을 보여 줬다. 그곳에 아민과 아민의 아버지 주상민이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건 한 달 전 찍은 모습이에요.”
한만호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딜 속이려고! 이… 이건 옛날 모습이잖아! 세상이 망하기 전! 요즘 이런 곳이 어딨어!”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정말 한 달 전에 찍은 거예요.”
영상 속에는 아민과 주상민이 경복궁을 거닐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속이려면 잘하던지. 너무 허접하잖아? 경복궁에 저런 건물이 어딨어? 게다가 단둘이 있잖아? 이런 일에 누나가…….”
말을 하던 만호가 흠칫했다.
“휴, 이건 말씀 안 드리려 했는데, 이미 말씀해 버리셨네요. 사실 이런 말씀드리기 유감입니다만… 영상에 아민이와 아버님만 나와 있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순간 한만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건 누나의 죽음을 뜻했다.
“거… 거… 거짓말!”
“아민의 어머님은 주유소에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다가… 그만.”
“그만!”
한만호는 강민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얼굴을 바라봤다. 강민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이라고?’
한만호는 바보가 아니었다. 한순간에 태진을 죽이고 이곳의 모든 무력을 초토화한 사람이 굳이 자신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 리가 없었다.
‘정말 아민이가 보낸 사람이라고? 그리고 누나가… 누나가 죽었다고?’
저도 모르게 한만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 구룡! 구룡 연구소! 들리시나요?
통신기에서 영어로 된 음성이 들렸다.
– 응?
그런데 그 목소리가 강민은 아주 익숙했다.
‘설마?’
강민은 바로 통신기로 다가갔다. 연구원들이 막을 막으려 했지만, 한만호가 말했다.
“막지 마. 그분이… 그분이 통신할 수 있게 도와드려.”
“소장님!”
“어서!”
만호의 말에 연구원들은 통신 장비를 만지더니 헤드셋을 강민의 머리에 씌웠다.
강민은 헤드셋에 달린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했다.
“여보… 세요?”
강민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평행 세계에서 절대 들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서였다.
– 어? 처음 뵙는 목소리네요. 새로운 연구원이신가요?
강민이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말했다.
“아닙니다.”
– 그럼? 누구시죠?
“저는…….”
강민은 어떻게 자신을 설명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의 영주 최강민이라고 합니다.”
– 대한민국의 영주라고요?
“네, 대한민국의 상당 부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강민은 자신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당당하게 나서기로 했다.
강민의 대답에 잠시 상대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시 음성이 들린 건 5분가량이 흐른 뒤였다.
– 혹… 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만 묻겠습니다. 아, 저를 소개 안 했네요. 저는 미 육군 사령부에 있는 사라 하틀리라고 합니다.
강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살아 있었어! 정말, 사라가 살아 있었다고!’
강민은 당장이라도 사라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사라는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었다.
아무리 강민이라도 태평양을 건너려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다.
“사라 하틀리 양, 뭐가 궁금하지요?”
– 그게…….
그때였다.
갑자기 사라가 있는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치익. 치익.
통신 장비가 잠시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 들리십니까?
통신 장비에서는 사라가 아닌 중년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네, 잘 들립니다. 그런데 조금 전 사라 하틀리 양이 아니군요.”
– 네, 미스터 최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사라에게 맡길 수 없는 사인이라 판단되어 제가 직접 연결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아까 영주라고 하셨는데, 그럼 한국은 어떻게 된 겁니까?
중년 남자의 말에 강민이 물었다.
“조금 전 사라 하틀리 양은 예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거 같네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 아, 이런 큰 실례를 했네요.
상대방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 전, 미국의 대통령 리차드 머레이입니다.
순간 강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리차드 머레리라고? 맙소사, 이 사람! 샹그릴라의 대표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