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s Billionaire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이세계 (2)
‘이곳이 똘망이가 태어난 곳이라고?’
강민은 정말로 깜짝 놀랐다. 이세계로 가면 좀비의 씨앗이 나온 곳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똘망이의 고향이 나와 버린 거였다.
– 싸아아악.
고블린 한 마리가 나오자 이곳저곳에서 고블린들이 나왔다. 그 수가 못해도 30마리는 넘어 보였다.
어떤 고블린은 독침을 입에 물고 있었고 어떤 고블린은 창을 들고 있었다.
제일 먼저 나온 고블린은 손에 하얀 창을 들고 있었는데 다른 고블린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다.
그 고블린이 똘망이를 보며 물었다.
“넌 누구냐?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거냐!”
고블린의 말에 똘망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몸을 잘게 떨 뿐이었다.
“왜 대답하지 않지?”
고블린의 말에 똘망이가 창을 꽉 쥐었다.
“대답할 가치가 없으니까.”
“뭐라고? 가치?”
“여긴 고블린의 숲. 고블린이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야.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날 선 똘망이의 대답에 고블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말하는 고블린은 오랜만이군. 네 말이 맞다. 이 숲은 고블린이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지. 평소라면 말이야.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자, 말해라. 넌 고블린들의 적이냐!”
“내가 적이냐고?”
똘망은 입꼬리를 올리며 창을 하늘로 올렸다. 순간 하늘에 올라간 창이 수십 개의 창으로 변하며 주위에 있는 고블린들의 앞에 떨어졌다.
– 헉.
– 내 독 피리가!
주위에 있던 고블린들의 무기가 박살 났다. 독침과 창이 모두 박살 나 버렸다.
아무도 공격을 막지 못했다. 유일하게 공격을 막은 건 덩치 큰 고블린뿐이었다.
– 탱!
덩치 큰 고블린의 흰 창과 똘망이의 검은 창이 부딪혔다. 하늘로 튕긴 검은 창을 향해 똘망이 손을 뻗자, 창이 똘망이의 손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너에 대한 답이 됐겠지?”
덩치 큰 고블린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실력자야. 조금 전, 마음만 먹었으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었을 거야.’
덩치 큰 고블린은 똘망이를 바라봤다. 처음 봤는데 어디서 꼭 본 고블린 같았다.
“난 모든 고블린을 통솔하는 갈카르족의 3왕자 율란 갈카르다. 자, 너는 누구지? 너 같은 실력자라면 분명 내가 들어 봤을 거야.”
율란의 목소리에는 제법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위압’이 발생하였습니다.>하지만 똘망이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바로 강민 때문이었다. 강민의 손짓 한 번에 위압이 사라졌다.
똘망은 크게 숨을 들이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치졸한 짓을 하는군. 나는 똘망이다.”
똘망은 사실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진짜 이름은 ‘토란 갈카르’. 하지만 똘망은 그 이름 대신 연인이었던 로지가 지어 준 이름을 말했다.
“똘망? 이상하군.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야. 이런 실력자면 내가 모를 리 없는데, 너, 무슨 족이지?”
“난 방랑자다.”
똘망이의 대답에 율란이 다가왔다. 똘망과 율란이 한 걸음 정도 사이를 두고 서로를 바라봤다. 율란은 똘망이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 똘망이가 올려다봐야 했다.
“방랑자라고? 믿을 수 없군. 네가 들고 있는 창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진다. 게다가 너, 이 정도 힘을 가졌는데? 방랑자라고? 이름도 그렇고 정체를 밝히기 싫은 건가?”
“내가 방랑자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율란이 똘망이의 눈을 바라봤다. 똘망이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거짓말은 아닌 거 같은데? 정말 방랑자라고?’
율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좋아, 믿어 주지.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다. 어떻게 이곳에 온 거지? 여기는 지금 고블린의 군대가 포위하고 있는 지역이야.”
“그건…….”
똘망이는 망설였다. 사실대로 최초의 게이트를 타고 이동했다고 말해도 믿을 리 없어서였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뒤에 있던 강민이 끼어들었다.
“내가 데려왔다.”
강민이 한 발자국 나서자 율란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강민에게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 때문이었다.
“넌… 넌 누구냐!”
“똘망이의 주인.”
“주인이라고? 이렇게 강한 고블린에게 주인이 있다고?”
율란이 똘망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말이 사실이냐?”
“맞아.”
율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넌 고블린의 자존심도 없느냐! 이런 힘을 가지고도 인간의 노예가 되다니!”
율란의 말에 똘망이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내가 파프니르에게 제물로 바쳐질 땐 가만있던 놈이, 감히 자존심을 말해!’
어릴 적 일이었지만 똘망은 또렷이 기억이 났다.
고블린 갈카르 왕에게는 7명의 왕자가 있었다. 그중 똘망이는 막내인 7왕자였다.
드래곤 파프니르가 고블린 왕국에 쳐들어왔을 때 그들은 막내인 똘망이를 제물로 바치고 파프니르의 화를 면했다.
똘망이는 들고 있는 창을 꽉 쥐었다.
“넌!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똘망이의 말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율란은 저도 모르게 하얀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였다.
– 삐이이이이익.
풀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율란을 비롯한 고블린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율란이 똘망이를 보며 말했다.
“좋다. 내 말이 네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면 사과하지. 네 말대로 저 인간이 주인이라면 그들의 첩자는 아니겠군. 가라. 이곳은 위험하다. 곧 ‘그것’들이 처들어올 거다.”
율란은 그 말을 하고 뒤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른 고블린들도 율란을 쫒아갔다.
강민은 그 모습을 보며 똘망이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가는 거지?”
똘망이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그것’들이 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라니…….”
순간 강민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이름을 지을 수 없는 존재들.
이세계의 생명들이 평행 세계로 이전할 수밖에 없게 만든 존재들.
“설마!”
강민은 강하게 바닥을 찼다. 강민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강민의 눈에 저 멀리 떼거리로 달려오는 회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그건 바로 타이탄의 왕이 끝까지 싸웠던 바로 그 ‘괴물’들이었다.
* * *
베아트리체는 리차드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러니까, 멋진 신사분의 이름은 리차드 머레이고, 미국이란 국가의 왕이란 말씀이시죠?”
“왕하고 개념은 다른데.”
“국가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면서요?”
리차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베아트리체가 손을 뻗어 리차드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럼 왕이지요. 정말 대단한 분이 방문하셨네요.”
리차드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베아트리체가 쓴 ‘매혹’ 때문이었다.
‘미국이라… 저쪽 세계에 있는 국가인가? 그런데 웜홀은 뭐지? 공간 이동 같은 건가?’
리차드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말했지만 베아트리체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하나만 어쭙겠습니다, 리차드 폐하.”
“무… 뭐든! 뭐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그 웜홀 이동이란 스킬이요? 지금 다시 쓸 수 있나요?”
베이트리체의 말에 리차드는 상태창을 열었다. 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게이트나 차원의 틈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고 나오네요.”
“그래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왜 여길까요? 왜 여기로 폐하가 오신 걸까요?”
리차드가 바보처럼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그냥 3군데 중 랜덤하게 오는 거 같았어요.”
“그 말은 누군가가 3군데를 정했다는 말이잖아요? 왜 여길까요?”
베아트리체가 부채를 펴서 천천히 부쳤다. 부채가 움직일 때마다 베아트리체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베아트리체가 ‘짝’ 하고 부채를 접고 일어섰다.
“괜찮습니다. 어쩌면 그걸 알 만한 사람이 있거든요.”
“네?”
“아! 사람이 아니라 나무인가? 리차드 폐하, 같이 가시죠. 신기한 걸 보여 드릴게요.”
베아트리체는 그 말을 하며 허공에 부채를 세로로 길게 그었다.
– 찌이이익.
허공이 찢어지며 그 안에 공간이 나타났다.
그걸 본 리차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건!’
분명했다. 자신이 연구했던 ‘차원의 틈’이었다.
물론 다른 점이 있었다. 차원의 틈은 내부가 검은색이었는데, 이건 붉은색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리차드는 바로 상태창을 열고 스킬을 써 봤다. 하지만 스킬은 발동되지 않았다.
‘차원의 틈이 아닌 건가?’
리차드가 고개를 갸웃한 사이 베아트리체가 안으로 들어갔다. 리차드도 얼른 베아트리체를 쫒아 들어갔다.
‘여긴 동굴이잖아?’
웜홀 같은 공간이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안쪽은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은 동굴이었다. 다만 이상했다. 식물의 뿌리가 가득 뻗어 있었다.
‘뭔가 기분 나쁜데?’
리차드는 저 멀리 보이는 베아트리체를 향해 달려갔다.
“베아트리체 님, 여기는 어디…….”
그때였다. 리차드는 동굴 끝에 있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를 보았다.
나무의 뿌리에는 묘한 무늬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눈’ 같았다.
리차드의 눈과 나무 뿌리에 난 ‘눈’이 부딪혔다.
그 순간 동굴이 흔들렸다. 동굴이 무너질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수도 없이 이곳에 온 베아트리체도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은 처음 봤을 정도였다.
‘뭐야? 왜 이래?’
베아트리체가 사라한을 보며 의아해할 때 동굴에 사라한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 리차드!]* * *
회색의 괴물들. 그놈들의 모습은 기괴했다.
온몸에 울퉁불퉁한 혹이 나 있었다. 눈은 따로 보이지 않았는데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 속 저그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SF영화의 괴물과도 비슷해 보여.’
크기는 작은 건 강아지만 한 것부터 큰 것은 수십 미터가 넘는 것도 있었다.
지금 그런 괴물들과 수많은 고블린이 부딪치고 있었다.
괴물들의 수도 많았지만 고블린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못해도 5만은 넘어 보였다.
‘고블린도 잘 싸우네. 하지만… 힘들어 보여. 결정적으로 강자가 없잖아?’
몇몇 특출난 고블린들이 보였지만 ‘그것’들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 꾸웩!
5미터가 넘는 회색 괴물이 리더로 보이는 근육질 고블린을 잡아 삼켜 버렸다.
리더가 죽자 그 근처에 있던 고블린들이 모조리 도망갔다.
강민이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똘망이가 올라와 옆에 있었다. 똘망이는 입을 꽉 다물고 전투를 바라봤다.
“똘망아, 왜 다 도망가는 거야?”
“주인님, 고블린은 결속력이 매우 약합니다. 자신들을 이끄는 리더가 죽으면 모두 도망갑니다.”
똘망이의 말대로였다. 리더가 죽은 곳은 전열이 완전히 흩어졌다.
그곳으로 ‘그것’들이 몰려들어 고블린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러다 전멸하겠는데?’
고블린들이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고블린 진영에서 한 명의 고블린이 나왔다.
일반 고블린보다 머리 하나는 큰 고블린, 조금전 강민이 만났던 바로 그 고블린, 율란 칼가르였다.
율란이 손에 하얀 창을 들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 끼악.
– 헉.
확실히 율란의 무력은 일반 고블린들과 차원이 달랐다. 하얀 창이 지나가는 곳마다 ‘그것’들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똘망이가 중얼거렸다.
“갈카르의 창.”
“갈카르의 창? 저기 흰 창이 그거야? 엄청난 창인데?”
똘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 왕가의 창이니까요. 최초로 고블린을 통일한 갈카르가 쓰던 창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응? 갈카르의 창? 그러고 보니 똘망이 네 진짜 이름이…….”
강민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똘망의 성이 ‘갈카르’였다.
“설마? 저 고블린, 네 가족이야?”
똘망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에게 가족은 없습니다. 오직 주인님만 있을 뿐입니다.”
강민은 안타까웠다. 똘망이의 사정은 알고 있었지만 ‘피’는 진하고 또 진했다. 그건 뿌리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갈카르의 창을 든 고블린 덕에 전황이 바뀌었다. 하지만 혼자 싸우다 보니 어느새 그는 홀로 적진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바보같이! 주위를 봐야지!”
그걸 본 똘망이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전장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갈카르의 창을 든 고블린, 율란은 자신이 실수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율란이 다시 고블린들에게 돌아왔을때 그는 커디란 상처를 입고 쓰러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똘망이가 피가 나오록 입술을 깨물었다.
강민이 말했다.
“똘망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닙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똘망이의 눈은 전장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하아, 좋아. 그럼 똘망아, 이건 명령이야. 가서 네 동족을 구해.”
순간 똘망이가 멈칫했다. 똘망이는 창을 꽉 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주인님! 명령을 받아 움직이겠습니다.”
똘망이가 괴물을 향해 창을 던졌다.
– 쉬잉!
창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더니 괴물의 머리를 뚫고 바깥으로 나왔다.
* * *
바닥에 쓰러진 율란은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검은 창 하나가 날아와 괴물을 꿰뚫었다.
‘누구지? 누가 이런 힘을?’
자신이 갈카르의 창으로 찔러도 상대가 안 된 괴물을 단숨에 뚫어 버린 거였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율란의 앞에 눈가를 하얀색으로 동그랗게 색칠한 고블린이 나타났다.
“넌!”
그였다. 조금 전 숲에서 만났던 그 방랑자 고블린이었다.
방랑자 고블린은 하늘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날아갔던 창이 방랑자의 손으로 돌아왔다.
방랑자는 창을 들고 적들과 싸웠다. 방랑자는 능숙했다. 자신처럼 적들에게 말려들지 않고 자신이 유리하게 싸웠다.
– 푹!
그렇게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방랑자는 창만 잘 쓰는 게 아니었다.
‘맙소사, 마법이라니. 주술사도 아닌데 고블린이 마법을 쓰다니.’
방랑자는 마법과 창을 자유자재로 쓰며 ‘그것’들을 학살했다.
그 모습에 도망가던 고블린들이 멈칫했다. 이대로 가면 고블린들이 전력을 가다듬고 싸워 볼 만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 쿵!
최악의 적이 나타났다. ‘그것’들 중에 가장 거대한 놈이 나타난 거였다.
모든 고블린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건 율란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멀리서 볼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서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으악! 도망가!”
“살려 줘!”
모든 고블린이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고블린도 있었다. 바로 방랑자였다.
“죽어!”
방랑자는 손에 들고 있는 검은 창으로 거대한 ‘그것’을 치고 또 쳤다.
– 챙! 챙!
하지만 그 창은 ‘그것’의 피부 가죽을 뚫지 못했다. 다행히 마법은 통했지만 ‘그것’이 앞으로 나서는 것만 막을 뿐이었다.
그걸 본 율란은 이를 악물었다.
‘한낱 방랑자 고블린조차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율란은 일어섰다. 상처 난 배에서 피가 쏟아졌다. 인정해야 했다. 자신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지금은 방랑자만이 희망이야. 모든 것을 방랑자에게 걸어야 해.’
율란은 방랑자에게 다가가 자신이 들고 있던 갈카르의 창을 건넸다.
“방랑자, 이걸 써라.”
똘망은 갈카르의 창을 보며 흠칫했다.
“이건 갈카르의 창이 아닌가?”
“응? 그걸 방랑자인 네가 어떻게 알지?”
똘망은 아차하다 둘러댔다.
“세상을 떠돌다 보면 알게 되는 게 많지.”
“그런가? 부탁이다. 이 창을 들고 싸워다오. 이 창이면 저놈의 가죽도 뚫을 수 있다.”
율란의 말에 똘망이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순간에도 수많은 고블린이 죽고 있었다.
고블린을 생각하면 당연히 잡아야 하지만 똘망은 자신을 버린 ‘왕가’를 떠올리니 절대 잡고 싶지 않았다.
“부탁이다. 제발! 고블린을 구해다오! 제발!”
형, 율란이 무릎을 꿇었다. 똘망이는 이를 악물었다. 똘망은 율란이 건네는 하얀 백색의 창을 잡았다.
그때였다.
– 찌이이이익.
갈카르의 창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얀 창에 검은 금이 가며 그곳에서 엄청난 밝기의 빛이 흘러 나왔다.
똘망이가 놀라 창을 던지려 했지만 창은 똘망이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걸 본 율란이 깜짝 놀랐다.
‘이건!’
처음에는 뭔가 잘못된 줄만 알았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어릴적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였다. 그건 고블린 왕족에게 내려오는 전설이었다.
– 고블린이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늘에서 진정한 왕이 나타난다.
– 왕의 손에서 갈카르의 창은 진정한 모습을 보이며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 황금의 창이 나타나면 모든 고블린이 그 앞에 무릎을 꿇으리.
금이 간 갈카르의 창에서 하얀 조각들이 떨어졌다. 그 안에 황금색 창이 나타났다.
창에는 수많은 마법 문양과 황금 드래곤이 조각되어 있었다.
“맙소사, 황금의 창이야! 전설의 황금의 창이라고!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데, 황금의 창을 깨울 사람은 왕족뿐인데?”
그때 율란은 똘망이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낯설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아버지가 몰래 낳은 형제인가? 아니야, 아버지는 우리가 전부라고 하셨는데. 그럼 말이 안 돼. 형제들은 내가 모두 알고 있는데…….’
순간 율란이 멈칫했다.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일하게 모르는 형제가 한 명 있었다.
‘일곱째? 설마 드래곤에게 제물로 바쳐진 막내가 살아 있었던 거야?’
율란은 똘망이를 바라봤다. 황금의 창을 든 똘망이의 눈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똘망이가 황금 창을 들어 올리자 그 빛이 일대를 밝혔다.
그 빛을 받은 고블린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의 눈이 모두 황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도망가던 고블린이 멈춰 뒤돌아섰고, 상처 입고 쓰러진 고블린이 일어섰다.
똘망이가 모든 고블린을 향해 소리쳤다.
“싸워라!”
진정한 고블린의 왕이 명령했다.
그 순간 5만 명의 고블린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들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