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s Billionaire RAW novel - Chapter (27)
27화 담배빵과 선거 (1)
강북 연합을 떠난 강민은 오패산 기슭 주택가에 있는 주택 3층에 들어갔다.
이곳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남아 있던 라면은 어제 ‘강북 연합’으로 가져갔다.
‘다음에는 뭘 가져오지? 쌀을 가져올까?’
다음에 가져올 제품을 생각하다 보니 강민은 ‘세계선 이동’이 떠올랐다.
다음에 더 많은 물건을 가져와야 했는데 레벨 업을 못 시켜서였다.
‘포인트가 얼마나 있지?’
강민은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1. 이름 : 최강민.
2. 스킬(3/3)
– 언어(S)(LV. 1)
– 방패(D)(LV. 8)
– 건강한 신체(E+)(LV. 4)
* 이레귤러 정보
1. 권능
– 세계선 이동(SSS)(LV. 2)
– 무게 제한 : 50kg.
– 쿨타임 : 10분.
2. 보유 포인트 : 315.
다행이었다. 315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오크 주술사와 싸울 때 수류탄을 던져 좀비들을 죽이고 얻은 포인트였다.
오크 주술사 옆에 있던 좀비들 상당수가 근육 좀비들이어서 얻은 포인트도 예상외로 많았다.
‘다행이야. 이거면 세계선 이동을 레벨 업 할 수 있겠어.’
그런데 ‘세계선 이동’을 레벨 업 하고도 포인트가 남을 거 같았다.
‘뭘 레벨 업 하지?’
차분히 생각하고 싶었지만,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도 안 됐다. 스킬 목록을 살펴본 강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심했다.
* 세계선 이동(SSS)
– 3레벨 : 100kg (200포인트.)
* 건강한 신체(E+)
– 5레벨 : 모든 신체 활동 성장 속도 250% 상승. 자연 치유력 250% 상승 (100포인트.)
* 언어(S)
– 2레벨 : 2개의 언어 (10포인트.)
세 개 합쳐서 딱 310포인트였다.
강민은 이 세 개의 스킬을 모두 레벨 업 했다.
[‘세계선 이동’ 스킬을 레벨 업 하셨습니다. 3레벨이 되었습니다.>강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100kg을 가져올 수 있어!’
게다가 건강한 신체와 언어 스킬까지 레벨 업 했다. 알차게 포인트를 써서 그런지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새 11시 30분이 되자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본 세계’로 이동하시겠습니까? YES, NO>강민은 바로 YES 버튼을 눌렀다.
[본 세계로 이동을 시작합니다.>* * *
[본 세계로 이동을 완료하였습니다.> [다시 평행 세계로 갈 때, 이동했던 장소와 시간으로 돌아갑니다.>흐릿했던 앞 시야가 한순간 명확해졌다. 익숙한 장소, 익숙한 냄새가 들어왔다.
‘집에 왔구나.’
강민은 커다란 가방을 두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지폐가 가득했다.
‘42억인가? 달러도 좀 있고.’
이번에 은행 금고에 있는 돈 중 오만 원권은 모두 가져왔다. 금고에 남아 있는 건 1만 원권과 그 이하의 돈들이었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11시 30분이 막 지나고 있었다.
강민은 샤워하고 추리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팔봉에게 전화하니 마침 팔봉이 사무실에 있었다.
강민은 찾아가겠다고 말하고 사무실에 갔다.
– 쿵!
강민에 내려놓은 두 개의 가방을 보며 팔봉이 강민을 노려봤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아니겠지?”
강민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 맞을걸요.”
강민이 두 가방을 열었다. 오만 원권 현금이 그 안에 가득 있었다.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행복 대출 삼인방과 비서 서라까지 와- 입을 벌렸다.
“이게 얼마야?”
서라가 놀라 말하자 팔봉이 서라에 말했다.
“서라야, 문 잠가라.”
서라가 사무실 문을 잠그자 팔봉이 강민을 노려봤다. 강민은 갑자기 바뀐 팔봉의 분위기에 눈만 껌뻑거렸다.
“삼촌, 왜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 넌 지금 이 돈을 나한테 보여 주고 그런 말이 나오냐?”
“아니, 삼촌 그게…….”
분위기를 바꾸려 강민이 억지로 웃었지만, 팔봉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팔봉이 딱딱하게 물었다.
“이 정도 돈이면, 은행이라도 턴 거냐?”
“은행을 털었으면 벌써 뉴스에 나왔겠죠.”
팔봉이 탁자를 치며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꾹 참고 말했다.
“네가 가져온 돈, 다 합치면 자그마치 60억이 넘어. 귀금속까지 하면 거의 70억이지.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냐?”
팔봉의 목소리는 반쯤은 포기한 듯한 목소리였다.
강민은 뒷머리를 긁으며 생각했다.
‘이거 어떡하지? 삼촌한테 미안한데,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한다고 믿어 줄까?’
강민은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했다.
‘어차피 사실대로 말해도 못 믿을 거야. 평행 세계에서 가져왔다고 하면 누가 믿어? 나라도 안 믿겠다.’
강민은 진실을 살짝 바꿔 대답했다.
“삼촌, 누군가를 만나서 받았어요. 지금은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홍영에게 받았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 말에 팔봉이 눈을 빛냈다.
“그게 누군지는 아직 말하기 힘들겠지?”
“그분에게 허락을 맡아야 합니다.”
그제야 팔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팔봉은 뭔가를 한참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좋아. 네가 얘기를 했으니, 나도 들어줘야지. 이번에는 뭘 부탁하려고 온 거냐?”
팔봉의 말투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강민도 이 분위기를 유지하려 웃으며 말했다.
“헤헤, 부탁이라뇨.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죠. 삼촌, 저번 귀금속 수입 짭짤하지 않았어요?”
“안 그래도 그 때문에 너한테 연락하려 했다. 갈 때 판매 금액 가져가라.”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삼촌. 저 그런데, 대출은 잘되고 있나요?”
대부업이야말로 팔봉의 주사업이었다. 지금까지는 현금이 없어 조금밖에 못 했지만 강민에게 20억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채를 돌리고 있었다.
“그건 왜 묻지?”
강민이 눈을 빛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 판 좀 키우죠?”
“판?”
“네, 들어오면서 전단지 보니까. 이자 15%로 돈 빌려주시는 거 같은데, 제가 40억 투자 하겠습니다. 이자 10%만 받고 최대한 빨리 이 돈을 시장에 유통하도록 할 수 있나요? 될 수 있으면 시장 상인같이 어려운 사람 위주로요.”
40억이란 얘기에 삼인방과 서라마저도 입을 벌렸다.
하지만 팔봉은 아니었다.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강민에게 물었다.
“시장에 유통이라니? 뭘 하려는 거냐?”
“당연히 사업이죠. 저도 돈 좋아합니다. 10% 이자 중에 5%는 제가 가지고 5%는 삼촌이 가지세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말 돌리지 말고, 정확히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팔봉의 말에 강민이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이 돈이 시중에 퍼지는 것. 그리고 일부를 돈세탁해서 돌려받는 것을 원합니다.”
팔봉의 뺨이 실룩거렸다.
“설마, 이거 위조지폐냐?”
“아니요. 맹세코 이건 위조지폐가 아닙니다. 다만 출처를 밝힐 수 없을 뿐이죠.”
강민과 팔봉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둘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걸 본 삼인방이 팔봉에 말했다.
“형님, 이건 기회입니다. 그 정도 이자면 사람들이 엄청 몰릴 겁니다.”
“맞습니다. 경쟁에서 형님이 이길 거예요.”
“승낙하십시오, 형님.”
세 사람이 애원하자 팔봉이 눈을 감고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자는 7%로 하겠다. 그래야 금방 이 돈을 소모할 수 있다. 그리고 이자는 우리가 5%, 너는 2%다. 돈세탁해서 줄 수 있는 금액은 10%, 4억이 한계다.”
강민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고맙습니다, 삼촌.”
팔봉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너 때문에 수명이 줄어 드는 거 같아. 점심은?”
“헤헤, 안 먹었죠. 삼촌이 사 주실 거잖아요?”
팔봉은 그 말을 하며 가방에 손을 넣어 지폐 다발을 살폈다. 그러다 팔봉이 지폐 하나를 꺼내 강민에게 건넸다.
“오늘 점심 사 주는 대신, 내일 이거 은행에 가서 교환해 와.”
강민이 지폐를 받아 보니, 훼손된 지폐였다.
신사임당 얼굴에 담배빵이 나 있었고 가운데에는 조그마한 구멍까지 뚫려 있었다.
유통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는데 가지고 있기도 애매한 그런 돈이었다.
‘담배빵이잖아? 홍영 아저씨가 담배 피면서 한 건가? 아니면 그 전에도 있었던 건가? 애매하네.’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은행에서 바꾸면 됐다.
“알겠습니다. 그럼 삼촌! 다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점심을 먹고 난 뒤 오후가 되자 행복 대출 직원들은 무척이나 바빠졌다.
기존 전단지에 최고 이자 15%를 7%로 수정해 시장에 뿌렸다.
반응은 바로 왔다. 이곳저곳에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지방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렇게 강민이 맡긴 돈은 빠르게 전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 * *
행복 대출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강민은 잠시 마트에 들렸다가 집으로 향했다.
‘이제 판은 깔렸는데.’
인터넷을 검색해 본 결과 일련번호가 똑같은 지폐를 발견할 확률은 높지 않았다.
‘그나마 발견된 똑같은 일련번호도 위조지폐를 먼저 발견하고 찾아 보니 똑같은 번호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문제는 이게 위조지폐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렇다면 일련번호를 찾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었다. 찾는다고 해도 오래 걸릴 거 같았다.
‘방법이 없네. 어떻게든 똑같은 지폐를 찾아 경찰이나 은행에 신고를 해야 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똑같은 돈이 어디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하, 쉽지 않구나.’
강민은 뚜벅뚜벅 길을 거닐다. 집 근처 사거리에 도착했다.
이 사거리 2층에 강민이 다니는 헬스장이 있었다.
‘운동이나 하고 갈까?’
머리 아픈 데는 땀 흘리는 게 최고였다.
신호등이 켜지자 강민은 건널목을 건너 헬스장 건물 입구로 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강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 장민준이 있었다. ‘강철 주먹’을 쓰며 방패를 부숴 버린 그 장민준이었다.
강민은 그의 이름을 나중에 호철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방만호를 만난 적이 있던 강민은 장민준이 현실에 있는 정도로 이처럼 놀라지 않았다.
진짜 놀란 건 다른 거 때문이었다.
‘저거 1조장 아니야?’
장민준이 1조장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뭐… 뭐지?’
강민은 자신이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하지만 그 순간 두 사람은 이미 건물 위로 올라간 후였다.
강민은 잠시 망설이다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정말 1조장일까?’
만일 그게 사실이면 큰일이었다. 강북 연합을 구성하는 주축 중 한 명이 흑룡파와 연결 고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2층 헬스장을 지나 강민은 4층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은 4층에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 강북 복싱 체육관
그곳은 복싱 체육관이었다.
강민은 잠시 망설이다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땀 냄새가 확 풍겼다.
“어떻게 오셨나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강민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 복싱 좀 배워 보려고요.”
40대 초반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여기 앉으십시오.”
강민이 소파에 앉자 남자는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민준아, 오렌지 주스 2잔 좀 가져와라.”
“네, 관장님.”
강민이 눈을 빛냈다.
‘역시 장민준 그자가 맞았어.’
스타일이 조금 달라 혹시나 했는데 같은 사람이었다.
강민은 관장이 설명하는 것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1조장과 장민준을 살폈다.
“그럼… 어떻게 운동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한 달에 15만 원, 세 달이면 40만 원, 현금이면 35만 원으로 해 드립니다.”
강민은 바로 지갑을 꺼내 35만 원을 건넸다.
“여깄습니다. 혹시 바로 배워 볼 수 있을까요?”
돈을 보며 입이 벌어진 관장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원래 토요일은 개별 훈련이지만, 오늘 특별히 트레이닝시켜 드리겠습니다. 마침 옷도 운동복 입고 오셨네요. 야, 민준아!”
관장의 말에 줄넘기하고 있던 민준이 다가왔다.
“오늘 신입 회원분이시다. 줄넘기부터 기초 자세까지 가르쳐 드려라.”
민준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네, 관장님.”
“최강민 회원님, 저기 트로피 보이시죠? 이게 바로 이놈이 작년에 딴 겁니다. 아마추어 라이트급 챔피언이죠. 우리 체육관의 자랑입니다. 이놈한테 배우는 게 저보다 나을 겁니다.”
강민은 그제야 민준이 그렇게 강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민준이 강민을 향해 말했다.
“가시죠, 회원님.”
“네.”
강민은 처음 줄넘기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해 보는 거라 실수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능숙해졌다.
줄넘기만이 아니었다. 민준이 ‘잽’과 ‘스트레이트’를 가르쳐 줬는데 1시간쯤 지난 후에는 강민의 주먹에 제대로 힘이 실렸다.
모두 건강한 신체 덕분이었지만 그건 강민만이 아는 거였다.
“와, 진짜 말도 안 돼!”
민준이 입을 딱 벌리며 강민을 바라봤다. 강민은 숨을 헐떡였지만 금방 고르게 숨을 쉬었다.
“혹시 평소에 운동하셨어요?”
“아니요, 요 며칠 전부터 2층에 있는 헬스클럽 다니는 게 전부예요.”
“그럼 말이 안 되는데? 전문적으로 운동 한 게 없는데 이 정도라고요? 그럼 완전히 타고났다는 건데?”
평행 세계와 달리 민준은 쾌활한 성격 같았다. 게다가 그때 보였던 독기나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도 들지 않았다.
강민은 혼란스러워졌다. 방진호는 양 세계에서 모습이 똑같았지만, 장민준은 그게 아닌 거 같았다.
운동이 끝나자 민준이 1조장을 향해 외쳤다.
“형님, 이거 형님 기록 깨지겠는데요?”
“깨지긴 뭐가 깨져?”
“잘하면 이분 일주일 만에 링에 오를 수 있을 거 같아요. 형님 기록이 이주였잖아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1조장이 그 말을 하며 강민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백도진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손을 뻗어 당황했지만, 강민도 손을 뻗어 1조장과 악수를 했다. 1조장의 손은 굉장히 굵고 거칠었다.
그때 민준이 끼어들며 말했다.
“회원님, 이 형하고 친해지면 진짜 좋아요.”
“네?”
“이 형이 술 엄청 잘 쏘거든요. 게다가 형이 강북 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해요. 경찰에 아는 사람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다고요!”
민준의 말에 도진이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뭐가 쓸데없는 소리예요. 형은 툭하면 쓸데없는 소리래. 형, 그러지 말고 오늘 한잔 어때?”
민준이 술잔 잡는 손 모양을 하고 까닥거렸다. 그러자 도진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강민은 다른 것에 신경이 갔다. 강민이 도진에게 물었다.
“수사과? 형사님이신가요?”
대답은 민준이 했다.
“아뇨! 형사가 아니라 수사관님이신데, 도진이 형! 수사과가 하는 게 범인 증거 확보하고 선거 사범이나 위조지폐 같은 경제 사범 잡는 거 맞지?”
‘선거 사범과 위조지폐?’
순간 강민의 눈이 크게 떠졌다.
* * *
강남 논현동에 있는 고급 술집 ‘레드폭스’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2명의 중년 남자들이 여자 2명을 옆에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이고, 보좌관님. 오늘 보니 정말 노래 잘하십니다. 혹시 예전에 가수셨습니까?”
취기가 잔뜩 오른 보좌관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들켜 버렸네요. 대학 때 잠시 했었는데 그걸 알아맞히시다니요. 역시 이사님, 안목이 있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태양 에너지 산업의 최고 권위자가 되셨겠죠.”
이사, 김상철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하는 게 있겠습니까? 다 보좌관님이나 의원님같이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잘 이끌어 주셔서 지금 있는 거죠.”
김상철이 테이블을 보다가 보좌관 옆의 여자에게 말했다.
“미진아, 보좌관님 술잔에 술이 비었잖아?”
“어머, 언제 드셨데?”
미진이 얼른 보좌관 술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김상철이 말렸다.
“안 돼! 술잔을 못 채웠으니 벌주로 입술주를 대접해 드려라.”
“입술주요?”
미진이 잠시 얼굴을 찌푸리다가 얼른 활짝 폈다. 입술주는 술을 입으로 먹이는 거였다.
“이사님, 차라리 다른 건 안 돼요? 가슴으로 먹여 드릴 수도 있는데?”
“안 돼!”
미진이 잠시 망설이다 결국 입술에 술을 털어 넣고 보좌관의 입술에 술을 넣었다.
“오!”
“와!”
룸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술을 삼킨 보좌관은 얼굴을 붉힌 채 주머니에서 김상철이 건네준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 지폐가 가득했다.
“하하, 이게 입술주구나. 꿀맛이네! 이건 상이다!”
보좌관이 미진의 가슴에 지폐를 쑤셔 넣었다. 나머지 돈은 룸에 뿌리자 여자들이 서로 돈을 주워 담았다.
“하하. 입술주라니, 이사님 덕분에 새로운 걸 알았습니다.”
“이거 귀한 겁니다. 얘네들이 다른 건 다 해도 이상하게 입술은 안 주거든요. 다음에는 더 새로운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이사님, 기대합니다.”
확실히 김상철은 사람 기분 좋게 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어느새 보좌관은 김상철과 죽마고우라도 된 듯 행동했다.
“보좌관님, 힘내시라고 차 안에 비타민 박스 4개 넣었습니다. 3개는 의원님 드리고 하나는 보좌관님 쓰십시오.”
순간 보좌관의 눈이 빛났다. 비타민 박스 하나에 들어 있는 돈이 1억이었다.
‘이미 봉투까지 줬는데 또 준다고?’
보통 다 의원에게 넘기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김상철이 자신까지 챙겼다.
“이번에 의원님이 당선되면 태양광 지원금을 대폭 늘려 달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김상철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앞으로 보좌관님과 자주 만나야겠습니다.”
1시간 후 술자리가 끝났다. 원래는 2차를 가려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술이 너무 취해 바로 집으로 갔다.
미진은 그들이 타고 떠나는 차를 보며 거리에 침을 뱉었다.
“에잇, 퉤퉤. 만질 거면 가슴만 만지지 왜 입술주를 하고 지랄이야.”
투덜거린 미진는 바로 가게 안에 들어와 바로 가글을 했다.
그러자 룸에 같이 있었던 그녀의 동료, 혜지가 웃으며 물었다.
“왜? 네 입술은 민준 씨만 쓸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다른 건 다 돼도 입술만은 안 돼.”
“미친년, 입술이 뭐라고? 그나저나 너 민준 씨한테 술집 다닌다고 말 안 했지?”
미진이 쌍심지를 켜며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말해!”
“쯧쯧, 너 그러다 걸린다. 세상 좁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너나 잘하셔. 순진한 아저씨 하나 잡아서 등쳐 먹고 있잖아? 적당히 해라. 그러다 벌받는다.”
“더 받을 벌이 있으면 받아야지. 나 먼저 간다.”
혜지가 나가자 미진은 룸에서 팁으로 받은 오만 원권들을 모았다.
한 장 한 장 세니 딱 6장이었다.
“30만 원이야? 쪼잔하게. 더 쓰지, 이거면 민준이한테 소고기 한 번 사 주면 끝이잖아? 그런데 이거 뭐야?”
미진은 6장의 지폐 중 한 장을 뺐다.
“에이, 줄 거면 깨끗한 돈 주지. 누가 신사임당 얼굴에 담배빵을 한 거야?”
미진은 신사임당 얼굴이 그을리고 작게 구멍까지 난 지폐를 보며 고민했다.
“이거 가게에서 안 받으려나?”
받을 거 같기도 하나 안 받을 거 같기도 했다.
미진은 투덜거리며 오만 원권을 지갑에 넣었다.
“어쩔 수 없지. 이 돈으로 민준 씨 몸보신시켜 줘야 하는데, 귀찮아도 내일 은행에 가서 바꿔야겠어.”
그렇게 담배빵으로 얼굴을 잃어 버린 두 장의 신사임당이 다음날 은행에서 만나게 됐다.
바로 홍영이 지점장으로 일하는 은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