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 Chapter 213
#212화
“우리 길드로 옮겨라. 내가 책임지고 태경이 너, 스타 헌터로 만들어 줄게.”
나는 눈을 깜빡였다.
“스타…… 헌터요?”
“그래, 스타 헌터.”
원명훈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시대가 변했어. 사람들은 헌터에 열광하고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우리의 능력을 선망하지. 태경이 너도 알잖아?”
“그건 그렇죠.”
“형이 초등학생일 때 주위 애들 꿈이 뭐였는지 알아? 대통령, 우주 비행사. 그런데 요즘은? 애고 어른이고 전부 헌터야.”
부와 명예.
대부분의 사람들은 헌터라는 직업을 저 두 개의 단어로 이해한다.
그들은 대격변이 종결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연간 수백 명의 헌터가 게이트에서 죽어 나간다는 사실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넌 대중들이 원하는 모든 걸 갖췄어. 외모, 화제성,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캐릭터.”
원명훈의 낯빛이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열기 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대중들은 금방 달아오르고 그보다 훨씬 더 빨리 식어.”
“형.”
“이 기회를 놓치면 태경이 너는 반짝스타도 못 돼.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지금부터라도 전문적으로 관리받고 TV 출연하면서 이미지 메이킹 들어가면…….”
“잠깐, 잠깐만요. 형.”
“어? 응. 그래.”
원명훈이 잠깐 입을 다물고 나는 턱을 긁적였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이참에 확실히 해 두는 게 좋겠지.
“영입 제의는 안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최 팀장님께도 그렇게 말씀하셨었고.”
“그랬지. 그런데 태경아, 이거 진짜 좋은 기회야.”
“어, 죄송한데 저 길드 옮길 생각 없어요.”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리던 원명훈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나이 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럼 길드 옮기는 일은 없었던 일로 하자. 그 대신 연예 기획사 정도는 괜찮지? 요즘은 뭐 흔한 일이니까.”
“기획사요?”
“응. 내가 대주주로 있는 기획사가 하나 있거든.”
길드 이중 계약은 위법이지만 이외의 사회 활동은 문제없다.
그의 말처럼 어지간한 상위 헌터들이 연예 기획사나 매니지먼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이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뇨, 기획사도 필요 없어요.”
“뭐?”
“저는 지금으로도 충분한데요.”
“……충분하다고?”
“네.”
원명훈이 얼굴을 찌푸렸다.
“태경아. 지금 형이 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나 본데.”
“이 기회를 놓치면 스타가 될 수 없다고요? 괜찮아요. 그런 걸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고.”
“알지. 아는데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고정 TV 프로그램, 굵직한 광고 몇 개만 찍어도 수십, 아니 수백억이 굴러 들어와. 형 보면 모르겠어?”
원명훈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로서는 이름과 가격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명품들로 치장한 모습이었다.
문득 과거에 봤던 인터넷 기사가 생각났다.
‘A급 헌터 원명훈. 청담동 소재 수백억 상당의 빌딩 매입.’
하염없이 동경하고 부러워했던 그 뉴스 기사의 주인공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인터뷰 보니까 꽤 바쁘게 살았던데. 이제는 좀 누릴 때도 됐잖아. 꿈이 건물주라며?”
“그렇긴 하죠.”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인 것엔 변함없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향해 원명훈이 씩 웃는다.
“그럼 길드 활동보다는 연예 기획사 들어가는 게 빠르지. 위험한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랑 싸울 일도 없어. 시원한 스튜디오에서 몇 시간만 수고하면 돼. 아, 풀 메이크업 하면 좀 답답하긴 하겠다. 하하.”
“아, 그래요?”
“그렇지. 카메라 앞에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멘트 치는 것만 좀 익숙해지면 돼.”
“그럼 아무래도 게이트가 낫겠네요. 제가 몸 쓰는 타입이라 답답한 건 별로라서.”
“……응?”
“또 제가 평소에 욕도 자주 하거든요. 방송 심의에 안 맞아요. 괜히 관심 끌어 봤자 지금처럼 가족들만 고생이고.”
“태, 태경아.”
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를 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건물주 그거, 굳이 방송이나 광고 없어도 충분히 될 수 있잖아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게 무슨 소리야? A급 헌터 수입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강남 땅값이 얼마나 비싼데.”
“강남이요?”
“그래. 지금 거기 평당 시세가 얼마인지나 알고…….”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강남은 무슨. 그냥 집 근처에 하나 사면 되죠.”
“어?”
“3층짜리 동네 상가만 있어도 건물주는 맞잖아요. 저는 강남은 생각도 안 해 봤는데.”
“……동네 상가?”
“네. 가까워서 들르기도 좋고, 월세도 따박따박 나올 거고. 엄마가 일 관둬서 심심하다고 하시면 분식집이라도 차려 드리죠, 뭐.”
“분식집이라고?”
말이 이어질수록 원명훈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기만 한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형?”
“…….”
“명훈이 형. 괜찮으세요?”
입술을 달싹거리던 원명훈이 파르르 떨리는 숨을 토해 냈다.
“태경아.”
“네, 형.”
“너는, 너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냐?”
“제 인터뷰 보셨잖아요. 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F급이었어요. 그때처럼 미친 듯이 일하지 않아도 수십 배는 더 버는데 뭐가 문제겠어요?”
빚도 없고, 집도 되찾았다.
사람들의 관심? 유명세? 무림과 현실에서 이미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실에서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얼마나 피곤하고 기분 나쁜 일인지도 깨달았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삶이 더 행복을 줄 것인지도.
“그러니까 이 정도면 충분해요. 안 그래도 최 팀장님이 광고 제의 들어온 거 잔뜩 보여 주셨는데, 너무 많아서 몇 개만 골라서 찍고 다시 길드에 집중하려고요.”
굳이 연예계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돈은 충분히 벌 수 있다.
내 말이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침묵하던 원명훈이 마침내 입술을 뗐다.
“그렇구나. 알았다.”
“제가 거절해서 기분 상하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원명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인은 볼 것도 없이 최 팀장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약속한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형, 저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 바쁜가 보네.”
“오늘 등급 재측정 받으라고 협회에서 연락이 와서요. 오늘 형 번호 받았으니까 조만간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럼 다음에 보자. 만나서 반가웠다.”
“다음에는 같이 코인 노래방 가요. 형 노래 연습해 올게요.”
“코인 노래방? 그거 좋지.”
내 18번인 ‘쫄보’의 원곡 라이브를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뛴다. 진호 형도 끼워 달라고 부탁해 볼까?
“그럼 이만 갈게요. 약속하신 거 잊지 마세요.”
나는 흐릿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원명훈을 뒤로하고 카페를 나섰다.
갓길에 주차해 놓은 검은 세단이 빵, 하고 클랙슨을 울렸다.
* * *
“손님. 잔 치워 드릴까요?”
알바생의 질문에도 원명훈은 묵묵부답이었다. 텅 빈 커피잔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혹시 나 누군지 몰라요?”
“네?”
“원명훈. 못 들어 봤습니까?”
“알죠. 그, 유명한 노래도 몇 곡 내셨잖아요.”
알바생이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방금 전에 검색해 봤어요. 생각보다 훨씬 유명한 분이시던데요. 어릴 때 TV에서 몇 번 본 게 전부라 기억이 잘 안 나서…….”
“검색이라.”
모래알처럼 건조한 목소리에 알바생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
눈치만 보던 알바생이 카운터로 조용히 돌아간 지 얼마나 됐을까, 이윽고 매장 안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선율에 원명훈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10년 전 발매한 자신의 음악이다. 모두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저 새끼가 누굴 놀리나…….”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는 음악 소리에 파묻혔고, 원명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머릿속은 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태경, 불과 몇 달 전까지 F급 게이트를 전전하던 하루살이 헌터.
그러나 이제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존재.
“코인 노래방은 씨발…… 운 좋아서 반짝한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원명훈은 낮게 뇌까리며 선글라스를 썼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옷차림에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 * *
“축하합니다. 진태경 씨.”
반백의 장년인, 부천 헌터 협회장이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카드를 건넨다.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의 카드는 온통 은빛으로 번쩍거렸다.
플래티넘(Platinum). 즉 백금으로 만들어진 이 카드는 모든 사람이 꿈에서라도 갖기 원하는 물건이다.
‘그만큼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갖게 됐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일까.
찰칵, 찰칵. 퍼퍼펑!
수많은 카메라가 터트리는 플래시 세례 앞에서 헌터 협회장이 내민 카드를 건네받고도 나는 그저 덤덤했다.
‘절정 고수니까 A급 헌터 정도야, 뭐.’
그래도 기분은 상당히 좋다.
카메라를 향해 씩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내게 협회장이 로봇 같은 말투로 물었다.
“그래요, 진태경 씨. 지금 기분이 어때요?”
당연히 끝내주지.
내가 막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띠링.
– 업적, [A급 헌터]를 달성하셨습니다.
– 업적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 레벨 업!
– 보너스 포인트 20을 획득하셨습니다!
–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오메. 시벌.”
“……!”
“……!”
“……아.”
맞다. 여기 카메라 있었지.
당황한 얼굴로 굳어 버린 협회장 아저씨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방송국 사람들. 그리고 현자 타임이 온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최 팀장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좆 됐네.’
이 정도면 역대급 방송 사고다.
나는 목이 바짝 타들어 가는 것을 느끼며 협회장에게 속삭였다.
“이거 편집되죠? 꼭 해 주셔야 됩니다.”
“편집? 진태경 씨, 제정신이야?”
협회장이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장 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표정이다.
“편집은 개뿔이. 이거 생방송이야. 그, 뭐야. 아이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예?”
“정면에 모니터 안 보여? 지금 5만 명이 넘게 보고 있다고.”
“…….”
염병, 진짜네.
사람이며 기계가 하도 많아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단상 아래에 설치된 대여섯 개의 모니터에 나와 협회장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화면 옆의 채팅창은 미친 듯한 화력으로 폭발 직전이다.
“어, 이거 어떻게 하죠?”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당장 사과해야지!”
협회장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쏘아붙이던 그때, 가장 앞에 있던 카메라 감독이 입을 벙긋거렸다.
– 반응 좋은데요?
“응?”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난리가 난 채팅창을 바라봤다. 불과 몇 초 만에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채팅이 주르륵 올라갔지만 뛰어난 동체 시력은 사소한 내용 하나까지 모두 잡아낼 수 있었다.
ㅋㅋㅋㅋㅋ
ㅋㅋㅋ태경좌 미쳤냐곸ㅋㅋㅋㅋ
태경좌ㄴㄴ 시벌좌임ㅋㅋㅋㅋㅋ
역대급 소감이다ㅋㅋㅋㅋ 보통은 종교나 가족으로 시작해서 민식이 창수 혜림이도 고마워. 뭐 이렇게 끝나지 않냐 ㅋㅋㅋㅋㅋ
시벌좌는 그런 거 없다. 슬리퍼 끌고 출근하는 길에 오우거 때려잡을 때부터 알아봤음ㅋㅋ
??? : 오메, 시벌.
협회장 표정 봐라ㅋㅋㅋㅋㅋㅋ아재 넋 나감.
태경아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걍 너 하고 싶은 거 해라ㅋㅋㅋ나한테 패드립 쳐도 웃고 넘어갈 듯.
ㄴ너희 부모님 만수무강.
? 뭐야 이 새끼.
난장판이지만 하나는 알겠다.
뜻하지 않게 내 버린 방송 사고가 대박이 났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