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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화 종장(終章) (3)
담현, 백하준, 팽무아.
수색대의 인원은 그 셋이 전부다.
조촐하다고 하면 조촐할 수 있는 숫자다.
그러나 단순히 세 명이라는 인원수로만 판단하기에는 너무 실상을 간과한 것이다.
전 무림이 이들을 돕기로 결정했다.
중원 어디에 가도 무림맹, 사도련에 한발 걸친 문파는 존재한다.
산길이나 강물을 이용해도 녹림도와 수적들이 있다.
그들의 지원을 약속받은 이상 수색대가 갈 수 없는 곳은 없었다.
게다가 그 인원 구성은 어떠한가.
하준은 마기공을 얻은 뒤 절대고수에 준하는 신위를 가지게 되었다.
팽무아 역시 팽가의 도희(刀姬)라 불리는 초절정 고수이다.
담현은 청림의 차기 대서고주이자 수많은 도술을 섭렵한 기재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꿍쳐 둔 보패 여럿이 남아 있었다.
이들이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억지에 가까운 요청으로 수색대에 참여한 팽무아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다른 둘과 달리 와룡분지 내부에 갇혀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나흘 조금 넘게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었는데, 사실 바깥에서는 세상이 멸망하니 마느니 하는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이들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을 뻔했다.
와룡분지에 갇혀 있던 다른 이들처럼, 팽무아 역시 바깥의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잘했어, 팽무아!’
주먹을 꾹 움켜 쥐는 팽무아.
다만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대체 왜 이강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걸까.
살아 있다면 적어도 연통이라도 보냈을 것이다.
너무 멀리 가서 그럴 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이강이 죽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급해졌다.
“수색은 내가 지휘한다. 불만 있는 놈은 미리 빠져.”
담현은 갑작스럽게 그리 말했다.
태도가 당당하다 못해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너희들보다는 내가 더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을 거다. 괜히 참견한다고 틱틱대 봤자 서로 귀찮아지는 거야. 미리 말했다?”
사실, 담현으로서는 제법 친절하게 군 것이다.
왜 불만 있는 놈은 빠지라는 것인지 설명까지 해 주지 않았나.
하준은 그걸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팽무아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왜 저래?’
괴팍하다 듣긴 했지만 말투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문제는 하준이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팽무아가 알기로는 하준 역시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 정도로 담현이 믿을 만한 사람인 것일까.
‘……그래, 믿어야겠지.’
담현과 함께 지내본 적이 거의 없는 팽무아지만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았다.
“좋아. 일단 이강이 갔을 위치부터 찾아보자고.”
여타 할 반발이 없자, 담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강의 위치를 찾는 방법은 별것 없었다.
빛의 기둥이 터져 나온 곳, 그곳에 이강이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게 가장 적절했다.
그리고 빛의 기둥을 목격한 이는 중원 어디든 널려 있었다.
이미 대강 파악이 된 부분일 텐데, 담현은 직접 행동했다.
하남의 민가를 찾아다니며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빛기둥이요? 봤지요.”
“어디서 봤는데요.”
“저짝에 산등성이 너머로 솟구쳤지요.”
낮잠을 즐기고 있던 듯한 청년은 입가의 침을 닦으며 그리 말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뒤쪽으로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저쯤 되겠네요.”
“아니, 정확히 어디서 봤냐는 말입니다.”
담현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어디서. 산 어디서요.”
청년은 어리둥절하다가 칼을 차고 있는 담현의 동행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두 번째 봉우리 보이죠. 딱 저기 꼭대기에서 솟구쳤습니다.”
“여기 집에서 본 것 맞아요?”
“예, 딱 지금 서 있는 여기서 봤지요.”
“굵기는? 저 벼락 맞은 나무랑 바위쯤 걸쳤나?”
“정확히도 아시네, 맞습니다.”
“고마워요.”
담현은 은자 한 냥을 건넸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한 청년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돌아갔다.
“흐음, 한 군데만 더 돌까?”
“언제까지 돌 거예요. 벌써 세 번째인데.”
팽무아가 결국 그리 말했다.
하늘로 솟은 빛기둥이야 목격자만 하남에서 일만 명이 넘는다.
진작 방향은 파악되었는데 담현은 오늘만 세 군데를 돌아 그 위치를 탐색했다.
당장 하루빨리 출발하고 싶은데 왜 자꾸 지체하는지 팽무아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담현은 팽무아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말했다.
“불만 없기로 하지 않았나?”
팽무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를 종이에 끄적이던 담현이 결심한 듯 말했다.
“뭐 그렇긴 해. 이제 슬슬 출발해도 되겠군.”
그제야 팽무아의 얼굴도 밝아졌다.
빛기둥이 목격된 곳은 서남쪽, 천축국이 있는 방향이었다.
먼 거리지만 말을 타고 열심히 달려가면 된다.
하지만 담현의 입에서 나온 말에 팽무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시 남만 좀 들렀다 가지, 우리가 싸웠던 곳 말이야.”
들렀다 간다고?
남만이 뉘 집 앞마당도 아니고 잠시 들르기는 뭘 잠시 들른다는 말인가.
지금 농담하냐는 듯 눈을 흘겼지만 아무래도 담현은 진심인 듯했다.
담현은 정말 남만으로 출발했다.
배를 타고 한참을 돌아가야 할 여정이었다.
“우웁!”
팽무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 입을 막았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 체질이었다.
장강수로채의 도움을 받은 이들은 남만까지 뱃길로 빠르게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말을 타고 달려오니 멀미가 가시지를 않았다.
“지저분하니까 토하지 마라. 하려면 저 멀리 가서 해.”
담현의 한마디에 팽무아는 그만 도를 움켜쥐고 말았다.
하준이 지그시 어깨를 잡지 않았다면 한 대거리 벌였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으려던 팽무아는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참상 때문이었다.
“박살이 났군.”
이곳은 참사교의 본단.
강호무림과 참사교가 마지막으로 결전을 벌인 곳이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사람끼리 싸운 것이 아니라 거인들이 싸운 듯한 흔적이었다.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절벽의 틈 사이에 지어진 건물이 있었다.
벽에 큼지막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저 안에서 담현은 용을 타고 싸웠다고 한다.
“난 이곳에 서서 빛기둥을 봤어.”
담현은 그렇게 말하고 서남쪽을 돌아보았다.
“직경은…… 이 정도. 어이 백하준.”
담현은 하준을 불러서 빛기둥을 목격한 일을 다시 한번 되짚었다.
또 시작이군 싶어서 팽무아는 쪼그려 앉았다.
저것으로 대체 뭘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빛기둥이 나타난 정확한 방향을 맞추기 위해서라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짓이다.
이미 방향은 충분히 파악한 뒤였다.
이제는 진짜 한마디 해야 하나 싶었을 때.
“이제는 운남으로 가 볼까.”
담현의 한마디가 끝내 팽무아의 인내심을 바닥냈다.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라고요. 만약 이강 걔가 부상이라도 입었으면 어떡하려고요. 하루빨리 찾아야죠.”
“그러고 있잖아 지금.”
“계속 방향만 찾다가 시간 낭비하려면 저는 따로 가겠어요.”
“방향은 진작 찾았어. 정확한 위치를 알아낸 거고. 운남은 방향을 찾으러 가는 것도 아니야.”
“그럼요?”
담현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얼굴을 확 굳혔다.
화를 내던 팽무아도 움찔 굳었다.
담현의 눈빛이 불길한 적의를 내뿜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설명하지. 납득이 가면 다음부터는 입 다물고 따라라. 그러기 싫으면 바로 꺼지고.”
“그러죠.”
다만 팽무아가 기죽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도 마주 으르렁대자, 담현이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자, 봐.”
담현은 짐에서 두루마리 같은 것을 꺼내 땅에 펼쳤다.
하준과 팽무아는 물론이고 따라온 장강수로채의 수적들까지 붙었다.
“지도…… 네요.”
그것은 지도였다.
중원과 새외, 심지어는 해안선과 섬들까지 표기된 세밀한 지도.
계영왕을 통해 빌려온 귀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담현이 갑작스럽게 말했다.
“이강이 있는 곳, 아니 빛기둥이 솟은 곳은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한 지점을 짚은 것이다.
그곳은 바다 위였다.
“네?”
팽무아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방향은 엇비슷해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남에서부터 거의 이만 리는 떨어진 거리 같은데.
“여기 섬이 모여 있는 군도(群島)가 보이지. 이 섬 중 하나가 분명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귀 아프다! 다 방법이 있어!”
그때, 타고 온 배의 선장 한 명이 감탄했다.
“설마 항해술을 배우셨습니까? 거리를 계산하신 거군요. 이야…….”
담현이 반갑다는 듯 반응했다.
“뭐 비슷한 겁니다. 그래서 정확한 목격담을 수집했던 거고.”
“그러면, 이 거리는…….”
“대략 이 지점부터 일만육천오백 리 정도가 나오더군요. 근데 그러면 해안선을 넘어간 거리니까…… 바다 한복판이 아니라면 담파국 너머의 이 군도라는 게 합리적이죠.”
“키야! 명석하십니다. 대단하셔요.”
둘은 서로 죽이 맞아 주거니 받거니 대화했다.
팽무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빛기둥을 본 방향만으로 이강과의 거리를 어떻게 알죠?”
“그게 말입니다. 항해할 때 해안과 배 사이의 거리를 파악할 때 쓰기도 하는 기술인데. 삼각측량이라는 것을 응용한 것으로 …….”
선장은 수적이었지만 아주 똑똑했다.
그리고 팽무아는 선장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담현이 의미 없는 짓을 벌인 게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운남에는 또 왜…….”
마지막으로 남은 궁금증은 그것이었지만, 담현은 가볍게도 답했다.
“이렇게 먼 곳까지 그냥 말 타고 갈 거냐? 거기 사람들은 말도 안 통할 텐데 무슨 수로 탐문하고 다니게?”
“…….”
이강이 그렇게 멀리 있을 줄은 몰랐다.
“가는 길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면 어째야겠어.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지.”
“그 사람이 운남에 있나요……?”
“아니, 적어도 운남을 지나가겠지. 담파국 너머까지 교역을 나가는 상단은 중원에 몇 개 없어. 운남을 뒤지면 찾을 수 있을 거고.”
팽무아는 스스로가 어리석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팽구인과 팽구휘를 무식하다 구박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이강이라면, 그리고 중원으로 돌아오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적어도 서찰이라도 보냈을 거다. 아마 남쪽까지 무역을 나온 상단을 통해 전했을 거고. 그것도 알아보면 좋겠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냥 입 좀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해. 칼 쓸 일이 많지는 않을 테니.”
담현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비로소 팽무아는 모든 것을 납득했다.
적어도 이강을 찾을 때까지는 얌전히 그를 따르기로.
그들은 운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담파국 너머로 교역을 떠나는 상단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때마침 그 상단이 교역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기였다.
일행은 남만에서 운남까지 쉬지 않고 말을 타고 달려왔다.
몸에서는 퀴퀴한 땀 냄새가 났고, 흙먼지가 전신에 뽀얗게 달라붙었다.
그 상태로 상단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나온 상인의 반응은 간단했다.
“뭐야? 이 거지 같은 놈들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무례한 언사 아닌가.
게다가 상단원이라고 나온 놈은 빡빡 민 머리에 흉터가 가득해서 산적 같았다.
하기사,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저 남쪽까지 갈 상인들이라면 보통 험한 이들이 아닐 터다.
그는 정말 담파국까지 다녀왔는지 담배를 빼 물고 있었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좀 합시다.”
담현은 제 나름대로 예의를 차려 대답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반응이었다.
사내가 담배 연기를 담현의 얼굴에 내뿜은 것이다.
“꺼져. 두들겨 맞기 싫으면.”
그러곤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담현은 잠시 침묵했다.
큭큭 웃던 팽무아가 찔끔하며 대답했다.
“……아, 예!”
“칼 쓸 때가 왔다.”
“좋죠.”
그리고 팽무아는 단숨에 대문을 걷어찼다.
걸어 둔 빗장이 부러지고 대문이 활짝 열렸다.
“뭐, 뭐야 이 새끼들!”
안에는 상단이라기보다는 산적패들 같은 상인들이 우르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익숙하다는 듯 일제히 칼을 빼 들었다.
팽무아와 하준은 기세도 좋게 진입했다.
처음에는 욕설을 뱉으며 대항하던 그들이 굴복할 때까지는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상단주는 긴장한 자세로 탁상에 앉았고, 조금 전 담현에게 연기를 뿜었던 이는 무릎을 꿇고 한쪽 벽면에서 벌을 서고 있었다.
“그래,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단 말이지.”
“그 빛기둥이 솟은 것은 그쪽이 맞습니다. 섬 쪽에 있는 것도 많구요. 저희는 해안에 있는 도시까지는 가지만 섬까지는 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늘에 섬 같은 것이 날아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신기한 일이죠. 처음에는 헛소리인 줄 알았는데 목격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상단주는 그렇게 협조적일 수 없었다.
단순히 무력에 굴복한 것만이 아니라, 담현과 그 일행이 강호 전체를 등에 업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담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청안검선, 그 이야기도 못 들었단 말이지.”
“예에…… 사람 하나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곳이 보통 넓은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이강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다.
“일단 직접 가 볼 테니, 상단행에 데려가 주면 고맙겠군.”
“아니지요, 무림맹에서 오신 영웅들이 합류해 주시면 저희야 감사한 일입니다.”
무림맹에 협조하는 것은 상단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여태까지 가장 얌전히 있었던 하준이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는 마치 범처럼 날랜 움직임으로 상단원 한 명의 멱살을 잡아 들었다.
“어어, 아악!”
상단원은 몸이 들린 채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하준의 돌발행동에 당황했다.
“이거!”
하준은 상단원의 목걸이를 알아본 것이다.
“이거 어디서 났지?”
주황빛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있었다.
하준에게는 헷갈릴 리 없는 물건이다.
이강이 어릴 적부터 늘 차고 다녔던 비휴의 눈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