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0)
아크 더 레전드-10화(10/875)
[10] SPACE 3. 다시 처음으로 (3)파이프를 기어 다니다 보면 가끔 이런 부상을 입을 때도 있었다.
파이프 청소도 반복 퀘스트라 마일리지로 적립할 수 있다.
마일리지로 적립했을 때 보너스가 붙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편이 이득이었다. 그러나 가끔 이런 예기치 못했던 부상을 입게 되니, 방심했다가 5시간의 경험치와 마일리지를 날려 먹었던 아크는 그때그때 보상을 받아 왔다.
그러나 문어들과 친해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런, 조심하지 않고…….
자렌족이 다가와 피가 배어나는 아크의 손에 자신의 문어 다리를 척 올려놓았다. 그리고 흡판으로 상처를 빨아 대자 상처가 사라지며 파상풍이 치료되었다.
문어 주제에 치료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원래 문어는 자기 몸보다 몇 배나 작은 구멍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동물. 문어를 닮은 자렌족도 좁은 파이프 속을 아무런 제약 없이 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파상풍도 알아서 치료하고 좁은 배관도 자유롭게 다닌다.
이러쿵저러쿵해도 자렌족은 결국 파이프 청소에 최적화된 신체 조건을 가진 종족이었다. 은하연방에서 괜히 자렌족을 이런 곳에 처박아 두는 게 아닌 것이다.
뭐랄까…… 역시 불쌍한 문어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문어들 걱정이나 하고 있을 때는 아니지.’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끝도 없이 이어진 파이프를 바라보았다. 이틀 동안 완료한 퀘스트는 70번. 단검을 사려면 아직 300번 이상이나 해야 한다.
앞으로도 최소 보름은 이 짓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뷰라드에게 처음 이 퀘스트를 소개받았을 때는 아크처럼 단검을 깨 먹은 유저를 위한 제작사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끝없이 이어진 파이프를 보고 있노라면 ‘후후후. 멍청한 자식, 어디 한번 당해 봐라.’라는 제작자의 악의 넘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정부를 협박해 날 갤럭시안에 불러들인 루시퍼는 착착 레벨을 올리고 있을 텐데, 그걸 막겠다는 나는 앞으로도 보름은 파이프를 기어 다니며 걸레질이나 해야 한다니…….’
정말이지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뉴월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초반에 실수를 해서 보름이 넘도록 레벨 업은 포기하고 쥐만 때려잡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전투 기술이라도 익혔다. 그런데 지금은 전투는커녕 나날이 걸레질 솜씨만 늘어 갈 뿐이다.
‘차라리 그냥 현질을 해 버릴까?’
때때로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이제 오픈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갤럭시안의 인기를 증명하듯 이미 경매 사이트에는 골드가 거래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도 뉴월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빈곤한 처지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부자다!
시세가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해도 1골드 50실버를 못 살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만은 안 돼!’
게임은 돈을 버는 곳이지 쓰는 곳이 아니다.
그게 아크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게임관이었다.
현질로 골드를 산다는 것은 스스로 그런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짓,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크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시작한 게임에서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무턱대고 멀리 돌아갈 정도로 융통성 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아크가 주머니에 자물쇠를 채워 버린 이유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신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아크가 뉴월드에서 최강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남들보다 잘나서도, 운이 따라서도 아니었다.
절실함 때문이었다.
보름 가까이 쥐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아크에게는 그런 절실함이 없다.
배부르고 등 따스해지니 절실함이 나올 리가 없었다.
‘골드를 사서 이곳을 벗어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그때의 절실함을 되찾을 수 없다. 내가 가진 돈은 갤럭시안에서 얻은 게 전부다. 벌지 못하면 굶어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갤럭시안의 아크로 다시 태어날 수 없어. 그래, 이건 그저 돈을 모으기 위한 일이 아니야. 배부르고 등 따스한 아크가 아닌, 헝그리 정신을 가진 갤럭시안의 아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다!’
가상현실 게임은 유저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게 아크가 뉴월드의 최강자가 되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철저한 정신 무장으로 그 깨달음을 되새기기 위한 과정이라면 보름의 시간도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었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헝그리 정신!’
그런 생각의 변화는 곧바로 행동으로 나타났다.
사실 자렌족은 파이프 청소에 최적의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맡은 구역은 언제나 청소를 하다 만 느낌이었다. 당연하다. 말이 청소지 그냥 걸레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것뿐이니까.
이러니 사람 아니, 외계인 취급도 못 받는 것이다.
‘뭐, 거의 무임 노동이니 근로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그러나 아크는 달랐다.
이제 40쿠퍼의 보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크에게 이미 파이프 청소는 자아 수련의 일환이다.
그리고 자아 수련을 하기에 파이프 속은 오히려 최적의 환경이었다.
아마도 밖에서 레벨이 쭉쭉 올라가는 유저들을 보고 있었다면 아무리 아크라도 조급함을 억누르기 힘들었으리라.
그러나 파이프 속에는 아크와 근로 의욕을 잃은 문어들밖에 없다. 주위의 번잡스러움에 휘둘리지 않고 정신 상태를 바로잡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파이프 구석구석, 단 한 점의 얼룩도 용납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풀어진 나사도 용납하지 않았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슥삭슥삭!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슥삭슥삭!
좁은 파이프 속을 기어 다니다 보니 숨이 턱턱 막혔지만, 다른 유저들이 열나게 레벨을 올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조바심이 났지만, 한번 마음먹은 아크는 잡념을 털어 버리고 쉴 새 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 치기를 반복했다.
마치 그것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렇게 집념 어린 걸레질을 계속해 나흘이 되었을 때였다.
뽀득뽀득, 뽀득뽀득…… 번쩍!
혼신의 힘으로 닦아 낸 파이프가 빛나는 순간!
갑자기 님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스킬(직업 공통☆)을 익혔습니다.
시설 정비(유저, 패시브) : 당신은 오랜 시간 정신을 집중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시설 정비 실력을 몸에 익혔습니다. 이런 종류의 노동 스킬은 전투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 퀘스트에 도움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걸레질은 묵은 때, 찌든 때, 기름때를 가리지 않고 완벽하게 닦아 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고, 나사나 너트를 조이는 방법에도 익숙해져 시설 정비 속도가 30% 상승했습니다.
《시설 정비 속도가 30% 상승했습니다. 이제 보다 복잡한 설비도 정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비를 끝난 곳이 다시 오염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 잦은 재정비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스, 스킬?”
아크가 놀란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갤럭시안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관련 스킬이 만들어지는 거야!”
같은 스킬이라도 ‘시설 정비’는 전투로 익혔던 ‘우주 전투 감각’과는 의미가 달랐다. ‘우주 전투 감각’은 누구라도 전투만 하면 얻어지는 스킬. 그러나 ‘시설 정비’는 오랫동안 그 일을 해야 얻어지는 스킬이었다.
이는 뉴월드처럼 갤럭시안도 유저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스킬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뜻이었다.
이건 설명서에 나와 있지 않았던 부분!
그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파이프 속에서 닷새나 보낸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노력의 보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스킬 덕분에 청소 속도가 올라가니 퀘스트 완료 시간도 단축되었다. 덕분에 하루에 30번이 한계였던 퀘스트를 40번이나 하게 됐을 때였다.
“흠, 제법이군. 처음에는 며칠이나 버틸까 싶었는데 닷새나 버티다니. 게다가 그동안 쭉 지켜보니 저 쓸모없는 문어들처럼 설렁설렁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작업 속도는 두 배나 빨라. 이만하면 아예 청소반장을 시켜도 되겠어.”
아크가 200번째 퀘스트를 보고하러 오자 젝슨이 기특하다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동시에 님프에서 정보창이 떠올랐다.
-젝슨에게 《작업반장》 칭호를 받았습니다.
7구역 관리자 젝슨에게 청소 실력을 인정받아 청소반장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당신은 R-14의 공기 순환 파이프에서 일하는 자렌족을 관리 감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위와 함께 급료도 올라 관련 퀘스트의 보상이 60쿠퍼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칭호 효과 : 작업반장(민첩 +3)》
‘칭호!’
아크의 눈이 번쩍 떠졌다.
레벨 1에 민첩을 3이나 올려 주는 칭호를 받은 것이다.
‘게, 게다가 보수가 40쿠퍼에서 60쿠퍼로 껑충 뛰었다!’
무려 50%나 되는 임금 상승에 아크가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60쿠퍼…… 60원이다.
파이프 속에서의 자아 수련 닷새!
그 시간은 아크는 이전처럼 아니, 더 쪼잔한 인간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 SPACE 4. 문어의 꿈 (1)
“분명 이 근처인 것 같은데…….”
아크가 복잡하게 연결된 파이프를 훑었다.
작업반장으로 임명되고 하루가 지났다. 덕분에 임금 인상과 함께 노동 의욕이 더욱 샘솟은 아크는 잠마저 파이프 속에서 잘 정도였다. 그러자 거슬리는 게 생겼다. 때때로 파이프가 진동하며 울려오는 정체불명의 괴음이었다.
“아, 그거 말인가? 신경 쓰지 말게. R-14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시설이라 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이가 심해. 때문에 내벽과 외벽 사이의 파이프가 온도 변화에 따라 뒤틀릴 때 그런 소음이 발생하기도 한다네.”
처음 이 문제를 상의했을 때 젝슨이 이렇게 설명했다.
때문에 그냥 무시해 왔지만 파이프 속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그 소음이 항상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끼익끼익하며 쇠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지만, 어떨 때는 쿵쿵거리는, 마치 누군가 파이프를 두들겨 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이프가 뒤틀리는 소리처럼 들리지는 않아.’
무시하려고 할수록 더 신경 쓰이는 괴음.
결국 아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잠시 시간을 내서 진상 규명에 나섰다.
파이프가 울리는 소리만으로 방향을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파이프는 R-14 전체에 혈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꺾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곳에서 소리만으로 진원지를 찾아가기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그러나 그게 오히려 아크의 오기를 발동시켰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리는 것 같아서 자기 전에 잠깐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이제 오기로라도 그냥 포기할 수 없다.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크도 일주일 넘게 이곳에서 생활한 사람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에 의지해 파이프를 박박 기어 다니자 확실히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가 이제 바로 앞에서 들리는 것처럼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분명 이 근처야!’
“어라? 저건……?”
파이프를 기던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랜턴이 비추는 맞은편 파이프 속에서 뭔가 꼼지락거리는 물체를 발견한 것이다.
파이프가 꺾어지는 부분에서 머리통만 내놓고 있었지만 아크는 한눈에 그 물체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이제 눈에 익어 버린 꼼지락, 바로 자렌족 문어였다.
“어이! 거기 너!”
아크가 소리쳐 부르자 문어가 움찔했다. 그리고 모퉁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아크를 보더니 기겁했다.
-힉! 바, 바, 반장님이 어떻게 여기에?
“뭘 그렇게 놀라? 이런 곳에 처박혀서 농땡이 피우고 있었던 거야?”
-아, 아닙니다! 농땡이라니요? 저는…….
“뭐 그건 됐고. 너도 방금 전에 울리던 소리 들었지?”
-소, 소리요? 아니,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요?
“못 들었다고?”
지금까지 아크가 작업하던 곳이라면 못 들었을 수도 있다.
아크도 청소에 집중하다 보면 종종 잊어버릴 때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 소리를 좇아 한참을 기어온 지금은 다르다.
방금 전에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던 것이다. 귀머거리가 아닌 다음에야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아크와 대화를 나누는 문어는 귀머거리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문어…….’
처음 아크를 봤을 때부터 무지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심지어 피부색이 얼룩덜룩하게―문어들은 감정에 따라 피부색이 변한다― 변할 정도! 수상한 눈길로 총천연색을 뽐내는 문어를 바라보던 아크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뭘 숨기고 있지?”
-수, 수, 숨기다니요!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문어의 피부가 격렬하게 얼룩덜룩해지며 소리쳤다.
이쯤 되면 의심해 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랄까,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물러날 아크가 아니었다.
“그래? 그럼 비켜 봐.”
-왜, 왜요?
“난 지금 파이프를 울리는 소리가 뭔지 알아보는 중이야. 방금 전에 들은 소리는 분명 이 근처에서 울렸거든. 그러니 주변을 돌아봐야지.”
-그, 그런 소리 못 들었다니까요!
“난 들었다니까.”
아크가 안절부절못하는 문어를 밀어내고 기어 들어갔다.
아니, 기어 들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손이 미끄러지며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문어의 뒤쪽은 마치 미끄럼틀처럼 경사가 져 있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아크가 황급히 팔을 뻗었지만 이미 몸은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철퍽!
“윽! 이게 뭐야? 진흙? 어째서 이런 곳에……?”
아크는 얼굴에 묻은 진흙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마에 부착된 작업용 랜턴의 빛이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을 비춘 것은 그때였다.
“이, 이게 다 뭐야?”
아크가 떨어진 곳은 랜턴의 빛으로는 크기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넓이의 공간이었다.
우주정거장인 R-14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우주 벌레들이었다. 두툼한 진흙이 깔려 있는 공간에 엄청난 숫자의 우주 벌레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차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에 모여 뭔가 바쁘게 꼼지락거리는 문어들도 보였다.
“이, 이게 대체?”
그 목소리에 문어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으엑? 바, 반장? 반장이 어떻게 여기에……?
-큰일이다! 들켰다! 들켰어!
-크윽! 이제 끝장이야!
뭐라 말하기도 전에 문어 다리로 문어 대가리를 부여잡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크가 정신없이 꾸물거리는 문어들에게 뭔가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모두 진정해라!
고함 소리와 함께 문어 1마리가 기어 나왔다.
이리 봐도 문어. 저리 봐도 문어. 모두 똑같은 문어들이었지만, 아크는 그 문어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다.
항상 담배꽁초를 꼬나물고 푸념을 늘어놓던 문어.
담배의 영향인지 그는 다른 문어에 비해 주름이 몇 배는 더 많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
아마도 이름이 부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아크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룸은 잠시 그런 아크를 마주 보다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아크, 미안하게 됐군.
“네?”
-하지만 이건 자네 탓이야. 자네가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았어도…….
복잡한 표정―색깔―을 짓던 부룸이 할 수 없다는 듯 문어 다리를 말아 쥐며 소리쳤다.
-모두 이 인간을 포위하라!
부룸의 명령에 수십 마리의 문어들이 몰려와 에워쌌다.
느닷없이 해산물들에게 둘러싸인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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