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01)
아크 더 레전드-101화(101/875)
[101] SPACE 1 내 이름은 아란! (1)탁탁탁, 탁탁탁.
어둠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울렸다.
상체를 숙인 채 무너진 벽 사이를 잰걸음으로 이동하는 그들은 중갑 아머를 걸치고 양손으로 돌격소총을 받쳐든 병사들이었다. 일체의 불필요한 동작이 없는, 훈련 교본에 나와있는 것처럼 신속하게 100여 미터를 이동한 병사들은 두꺼운 격벽 뒤에 모여들었다.
“B팀, 작전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적의 동태는?
님프에서 노이즈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적외선 스코프를 장착한 금발 병사가 격벽 너머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좋아. 바로 작업을 개시해라. 늦어도 10분 안에는 작업을 마치고 합류하도록.
“알겠습니다.”
금발 병사가 짧게 대답하며 옆의 동료에게 눈짓을 보냈다.
눈짓을 받은 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대원들의 3~4배나 되는 가방을 풀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위쪽의 모니터에 손바닥을 올려놓자 가방의 네 모퉁이에서 꼬챙이 같은 게 솟아 나와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며 기계부품으로 가득 찬 가방의 상부가 개방되었다.
“10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래, 잠시 수고 좀 해줘.”
금발 병사가 격벽에 등을 기대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구겨진 담배를 꺼내 물다가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렸다.
“어이, 신참. 자네도 한 대 줄까?”
“아니,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좋지만 이제 긴장 좀 풀어. 보는 내가 다 뒷목이 뻣뻣해지는 느낌이 든 단 말이야. 내가 말했지? 이런 곳에서는 긴장을 푸는 것도 기술이야. 조심성이 많은 건 좋지만 계속 그렇게 긴장하고 있으면 정적 필요할 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그러니 쉴 수 있을 때 쉬어둬. 잠시 후에는 입에 거품을 물때까지 뛰어다녀야 할 테니까.”
“네.”
풀(Full)헬멧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대답과는 달리 사내는 여전히 격벽 너머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적외선 스코프가 없어도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모여있는 적의 존재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빌딩 주변에 개미 떼처럼 모여 우글거리는 그림자들, 그들이 바로 금발 병사의 말한 것처럼 곧 입에 거품을 물때까지 싸워야하는 적이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사내의 입에서 복잡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원래 세상일이란 이변의 연속이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세워도 예측하지 못한 일은 항상 일어나는 법이고, 그런 이변은 대체로 좋지 않은 상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그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도 지금 상황을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재수가 없다고 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운이 좋아서든 나빠서든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그에게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 어차피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 임무고 뭐고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자. 일단 버티면서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어. 그러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저곳을 돌파해야해!’
사내가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였다.
문득 어둠 저편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빛은? 헉! 서, 설마……?’
사내가 그 빛의 정체를 알아채기까지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빛과 함께 긴 연기를 뿜어내며 일직선으로 쏘아져 날아오는 유선형의 물체! 그 물체를 목격하는 순간 사내는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리는 금발 병사를 찍어누르며 고함을 터뜨렸다.
“위, 위험해! 로켓이다!”
콰콰콰콰쾅!
고막을 뒤흔드는 폭음이 울린 것은 그 직후였다.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격벽 윗부분이 엄청난 열기에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금발 병사의 얼굴에 다급함이 번졌다.
“빌어먹을, 들킨 건가?”
-B팀! 무슨 일인가? 상황을 보고하라!
“놈들에게 발각된 모양입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젠장, 할 수 없지. 곧 이동할 테니 잠시만 버티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금발 병사가 힘차게 대답하며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세울 때였다.
총을 들어올리기도 전에 반쯤 녹아 내린 격벽 너머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확 솟아올라왔다.
“헉!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쪽에도 나타났습니다! 근처에 몇 놈이 숨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크윽, 쏴라! 본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어!”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금발 병사가 비명 같은 목소리로 소리치며 격벽 위의 놈에게 탄환을 뿜어냈다.
그러나 놈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놈은 마치 야생동물처럼 빗발치는 탄환을 피하며 격벽 위를 달리다가 금발 병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소름끼치는 악취를 뿜어내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금발 병사의 목덜미에 박히려는 찰나!
콰직—!
묵직한 울림과 함께 놈이 옆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놈이 날아간 자리로 풀 헬멧을 쓴 사내가 다가오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시, 신참! 헉, 위험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들어올리던 금발 병사가 비명을 터뜨렸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신참 병사의 뒤로 세 개의 그림자가 불쑥 솟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금발 병사의 반응으로 상황을 알아챈 사내가 와락 몸을 돌렸지만 놈들의 움직임은 그보다 몇 배는 빨랐다. 채 대응할 새도 없이 놈들이 사내를 뒤덮었다.
그리고 사내와 한덩이가 되어 반대편으로 굴러갔다.
“이런 빌어먹을! 신참! 대답해! 신참! 아…….”
벌떡 몸을 일으킨 금발 병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짖었을 때였다.
철컥, 철컥, 철컥, 퍼퍼펑—!
폭음이 울리며 사내를 찍어누르던 놈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머리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린 놈이 사지를 펄떡거리며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시퍼런 섬광과 함께 뿜어진 충격파에 나머지 두 마리가 좌우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 중심에서 신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번들거리는 검은 빛을 뿜어내는 아머. 아니, 아머라기보다는 곤충의 갑각처럼 보이는 갑옷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검은 갑옷의 정체는 오직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우주 개척시대의 병기, 배틀슈트였다. 그리고 이 배틀슈트를 입고 있는 사내는 바로…….
굳어있던 금발 병사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란…… 이 자식, 놀랐잖아!”
*****
“에? 뭐, 뭐야?”
아크는 혼란스러웠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도무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게 지금부터 아크가 하려는 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그게 좋은 쪽일지 나쁜 쪽 일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아니야. 그렇게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래, 지금까지는 좋았잖아.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았다고. 운이 꽤 따라주고 있다는 증거야. 자, 진정하고 기억을 떠올려보자. 생각해보면 지금 상황을 이해할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아크는 당혹감을 가라앉히고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때는 바야흐로 3시간 전.
“찾았다! 찾았어! 드디어 찾았다고!”
아크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파닥거리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나베실에서 나온 지 장장 열흘, 북부 호수 근방 100킬로미터 범위 안이라는, 막상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이없기 짝이 없는 단서 하나만 가지고 죽어라 찾아 헤매던 자렘을 찾아낸 것도 모자라 아예 잠입까지 해버렸다.
“어쩐지 실종이니 금역이니 하는 말을 들을 때 느낌이 팍 오더라니!”
처음 바쿰의 얘기를 들을 때부터 뭔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한방에 자렘까지 들어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뭐 그 과정에서 안드로이드 가재 떼에게 다구리 당해 죽을 뻔했지만! 자렘에 들어오게 된 것도 찾아냈다기보다는 휩쓸려 들어온 덕분이지만! 심지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거대한 프로펠러에 빨려 들어가 다진 고기가 될 뻔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지난 열흘의 수색작업은 삽질이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지만!
결과가 좋으니 만사 OK!
아크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남자였다.
“게다가 그렇게 꼼꼼히 수색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자렌족도 찾아내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열흘의 수색작업도 의미가 없지는 않아. 음, 음, 그래, 그런 거야. 당연하지.”
덤으로 자기 합리화에도 철저한 남자였다.
“어쨌든 이제야 대강 전후 사정이 이해되는군.”
아크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님프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사실 아크는 방금 전까지도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호수 밑바닥에서 느닷없이 안드로이드 가재의 습격을 받고,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느닷없이 검은 구멍에 빨려 들어가고, 느닷없이 거대 프로펠러에 갈릴 뻔했다.
그렇게 몽땅 느닷없이 벌어지는 일을 무슨 재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님프 화면에 떠올라있는 자렘을 보는 순간 모든 의문이 저절로 풀렸다.
파이프 틈새로 밀어 넣은 와이어 카메라와 연결된 님프의 화면에는 거대한 도시, 자렘의 전경이 떠올라있었다. 자렘은 마치 캡슐처럼 푸른 구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투명한 푸른 구체 너머로 보이는 것은 구름! 자렘은 구름 속에 파묻혀 있는 공중도시였던 것이다.
“그래, 내가 순간이동 해온 거대한 물탱크.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든다 싶었는데, 이제 알겠어. 그 물탱크는 급수시설이다. 내가 빨려 들어온 검은 구멍은 북부 호수의 물을 공중도시인 자렘의 급수시설로 이동시키기 위한 일종의 파이프였던 거야. 나를 공격했던 안드로이드 가재는 그 수원지를 지키기 위한 파수꾼이었겠지.”
문어들이 실종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수원지를 지키기 위해 배치된 안드로이드 가재가 먹물을 찍찍 뿜어대는 문어를 그냥 둘 리가 없었던 것. 아마도 들어오는 족족 때려잡았으리라. 그렇게 만들어진 문어들의 시체는 물을 빨아들이는 검은 구멍을 통해 자렘의 물탱크로 이동, 그리고 정수기의 필터-아크가 목격했던 프로펠러-에 의해 말끔하게 갈려 미네랄 풍부한 식수가 되었겠지.
뭐랄까…… 알고 나니 더욱 무시무시한 금역의 비밀이었다.
“이로서 바쿰에게 받은 퀘스트는 정리된 셈인가?”
뭐 결말이 찜찜하다는 게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이미 죽은 문어를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이게 실종된 문어들의 최후입니다’라며 미네랄 워터를 떠다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바쿰도 문어들을 구해와 달라고 한 적은 없고, 보상도 선금으로 땡겨 받았으니 문어들의 문제는 이쯤에서 정리하는 편이 나았다.
“뭣보다…….”
아크는 퀘스트 정보창을 열어보았다.
-《자렘 잠입》퀘스트의 목표가 변경되었습니다.
마틴 후작에게 비밀스러운 임무를 받은 당신은 긴 탐사 끝에 무국적 이동도시 자렘에 잠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당신의 임무는 이제 서야 출발선에 섰다해도 과언이 아니고, 진짜 위험은 이제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임무는 자렘의 GPS정보를 연방군에게 송출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렘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도시라 한 번 방문했던 것만으로는 정확한 GPS정보를 습득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자렘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GPS정보를 송출해 주어야합니다. 그러나 이미 설명 들었다시피 현재 자렘은 연방정부의 감시로부터 숨기 위해 몇 겹이나 되는 실드를 가동시켜 전파 송수신도 차단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자렘에서 외부로 GPS정보를 송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자렘 중앙제어탑의 통신용 안테나와 접속하는 방법뿐입니다.
※난이도: A
+서브 퀘스트: 《첩보원 카라》
당신은 마틴 후작으로부터 《자렘 잠입》과 연관된 별도의 임무를 받았습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마틴 후작이 개인적으로 자렘에 잠입시켰던 카라라는 첩보원을 찾아 물건을 전해주는 일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자렘에 잠입해있던 첩보원인 카라를 찾으면 임무를 완료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찾을 수 있다면 말이죠.
와이어 카메라로 자렘을 확인하자 퀘스트도 갱신되었다.
“정보창에 적혀있는 것처럼 진짜 위험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자렘의 중앙제어탑이라면 아마도 심장부. 그런 곳에 숨어 들어가 통신용 안테나와 접속하는 게 쉬울 리가 없지. 게다가 이곳은 경비병과 주민, 모든 사람이 적이다.”
내 목숨 하나 챙기기도 벅찬 상황!
이럴 때 언제까지나 문어들의 생사에 연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 그럼 지금부터 내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잠시 생각하던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당연히 쇼핑이지.”
퀘스트를 받을 때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자렘은 널리고 널린 평범한 도시가 아니었다.
자렘은 은하계 곳곳에서 암약하는 밀수꾼들이 몰려드는 거대한 밀수시장!
그리고 밀수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렘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은 면세품! 물론 약간의 수수료가 붙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정식 수입된 물건보다는 쌀 수밖에 없었다. 정품보다 비싼 밀수품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밀수품 중에는 아예 수입이 금지된 물건도 있었다.
은하연방은 물론 아슐라트, 심지어 라마족의 밀수품까지 거래되는 것이다. 오직 자렘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소성 넘치는 아이템이니 웃돈을 붙여 팔아먹을 수 있으리라. 다른 사람도 아닌 아크가 그런 아이템을 쇼핑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넘길 리가 없지 않은가.
“마틴 후작은 자렘이 라마족에게 붙기 전에 연방군을 동원해 검거할 생각이야. 결국 퀘스트를 완료하면 자렘은 사실상 폐업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밀수품을 쇼핑할 기회는 퀘스트를 시작하기 전, 지금뿐이다. 게다가 마침 총알도 풍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