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03)
아크 더 레전드-103화(103/875)
[103] SPACE 1 내 이름은 아란! (3)게다가 놈들이 방금 전의 몬스터처럼 빠르다면 도망치기도 힘들었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놈을 쓰러뜨리자마자 도망치는 건데…… 이 상태로 저놈들과 붙으면 배틀슈트를 입어도 승산이 없어. 다른 방법이 없다. 도망치는 수밖에 없어. 배틀슈트를 입고 마인드 실드를 발동시키면 뒤에서 공격받아도 서너 방은 버틸 수 있을 거야. 그 전에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 맨홀 속으로 도망쳐보는 수밖에 없어.’
아크가 그런 생각으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을 때였다.
파파파파! 파파파파!
놈들이 양쪽 벽에 붙어 엄청난 속도로 골목을 가로질러 아크의 뒤로 돌아갔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놈들이 골목을 막아버린 것이다.
‘맙소사! 길이 막혔다! 이대로는…….’
아크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몬스터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엎드려!”
정체불명의 고함이 골목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둠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섬광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섬광의 정체는 로켓, 중화기병이 사용하는 RPG에서 발사된 로켓이었다. 대체 어디서? 누가? 그딴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이미 전장을 경험해본 아크는 RPG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배틀슈트를 입고 있어도 직격 당하면 단숨에 생명력을 50%이상 증발시키는, 개인 화기로는 최강을 자랑하는 병기. 이런 좁은 골목에서 RPG의 폭발에 휘말리면 생명력이 30%밖에 남지 않은 아크는 순식간에 잿가루로 변해버리리라.
“빌어먹을! 대체 뭐냐고!”
아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막다른 골목으로 내달렸다.
쿠콰콰콰콰콰콰!
거리를 통째로 뒤흔드는 폭발이 일어난 것은 그 직후였다.
그와 함께 뿜어진 충격파에 떠밀린 아크는 종잇장처럼 날아가 벽에 헤딩!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간당간당한 생명력이 10%나 더 내려가 버렸다.
그러나 머리를 쥐어 잡고 비명이나 질러댈 때가 아니었다.
“대, 대체 누가…….”
아크가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폭연 속에서 방금 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A팀, B팀, 지금이다. 돌격해서 쉴 틈을 주지말고 몰아붙여라!”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RPG 공격에 이어 소나기처럼 쏟아 부어지는 탄환 세례! 압도적인 화력에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던 몬스터들은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상대는 서퍼러다. C팀, 확실하게 마무리해라!”
푸화아아아아아—!
쓰러진 몬스터들을 향해 화염이 뿜어졌다.
불길에 휩싸인 몬스터들은 비명을 터뜨리며 발버둥쳤지만 곧 움직임이 멈추고 시커먼 연기를 뿜어올리며 한줌 재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내들이 뿌연 폭연을 뚫고 다가왔다.
번들거리는 중갑 아머에 돌격소총과 수류탄 따위의 무기가 주렁주렁 붙어있었다. 그리고 몇 몇은 RPG나 화염 방사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아크가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소총을 받쳐든 경계자세로 주위를 둘러보던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클리어! 확인된 적은 모두 소멸했습니다!”
“어이, 살아있나?”
그때 한 사내가 아크에게 다가왔다.
RPG를 둘러매고 있는 은발의 중년인이었다.
“다, 당신들은 대체……?”
“자렘 소속의 특수기동대, 피닉스네. 이 몸은 대장 카베른이지.”
덥수룩한 턱수염의 중년인, 카베른이 아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총성이 들려서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운이 좋군. 이런 곳에서 우리를 만나다니. 뭐 조금만 늦었어도 구출되는 게 아니라 저놈처럼 처리되는 쪽이 되었겠지만. 이런 오염지역에 얼쩡거리면서 용케 아직 서퍼러가 되지 않았군.”
“오염지역? 서퍼러? 무슨 말입니까?”
“뭐야? 자네는 아직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건가?”
카베른의 반문에 아크는 아차 싶었다.
경황이 없어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아크는 은하연방의 첩자로 자렘에 잠입해있는 중이다.
골목에서 시체를 뜯어먹는 몬스터도 위험하지만, 자렘의 경비대 역시 아크에게는 경계해야할 대상인 것이다. 첩자라는 게 발각되면 방금 전 몬스터를 순삭시킨 무지막지한 화력이 아크에게 퍼부어지게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아니, 그게…….”
아크가 머리를 굴리며 변명거리를 찾을 때였다.
“하긴 대피하지 못하고 계속 이곳에 갇혀있었다면 자세한 정황을 모를 수도 있겠군.”
카베른은 자잘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한 성격인 모양이다.
“네, 그겁니다. 실은 제가 은둔형 외톨이라서 말이죠. 한동안 집에 처박혀 있다가 나오니 이렇게 되어 있지 뭡니까?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여기저기 숨어 다니면서 어찌어찌 버텨왔는데 조금 전에는 놈들에게 포위되어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군요. 감사합니다.”
“뭘 새삼스럽게…….”
카베른이 멋쩍은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NPC의 비위를 맞추는데는 도가 튼 아크다. 일단 적당히 상황을 꾸며 의심을 피한 아크는 그렇지 않아도 피닉스라는 이름은 귀가 따갑게 들어봤다는 둥, 그런 피닉스 부대의 도움을 받아 가문의 영광이라는 둥, 갖은 사탕발림으로 카베른과 병사들을 띄워 주었다.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에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좀 전에 말했던 서퍼러라는 게 대체 뭡니까?”
“음, 자네를 습격했던 괴물처럼 변한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네.”
“사람? 그 괴물들이 모두 사람이었다는 말입니까? 사람이 대체 왜 그런……?”
“아직 우리도 정확하게 몰라.”
카베른이 턱수염을 긁적거리며 한숨을 불어냈다.
“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도 얼마 되지 않네. 그때, 그러니까 한 달 전쯤 중앙제어탑이 있는 지역에서 갑자기 그런 괴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어. 안전지역으로 대피한 연구원은 이게 질병의 일종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서퍼러(Sufferer), 환자라고 부르는 게 그 때문이지. 어쨌든 이게 보통 귀찮은 놈들이 아니야. 최초의 발병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서퍼러로 변하면 신체능력이 엄청나게 강해질 뿐만 아니라, 죽은 뒤에도 거미처럼 생긴 놈들이 기어 나와 주변의 시체를 감염시키지. 덕분에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가 지금은 자렘의 3분의 2가 오염되었네. 다행히 지금은 어찌어찌 오염지역을 격리시켜 확산은 막았지만 그걸로 원인조차 모르는 상황을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지…….”
카베른이 중얼거렸을 때였다.
아크의 님프가 진동하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님프에 신규 몬스터 데이터가 등록되었습니다.
-서퍼러
종류: 변이 생명체 위험도: A 전투력: B~C
서퍼러는 자렘에서 발생한 원인 불명의 바이오해저드에 의해 변이 된 생명체입니다.
현재까지 입수한 정보로는 아직 서퍼러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밝혀진 부분은 서퍼러가 정체불명의 병원체에 감염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망 시 체내에서 거미 같은 생명체를 만들어내 다른 사람, 심지어 시체까지 2차 감염을 일으켜 서퍼러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생명체는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은하계에서는 1급 위험 생명체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몬스터를 많이 상대할수록 더 많은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야 서퍼러의 정보가 님프에 업데이트 된 것이다.
굳이 몰라도 되는 흔해빠진 몬스터를 만났을 때는 바로 바로 정보를 출력해주더니, 정작 정보가 필요한 몬스터는 일이 다 끝나고 NPC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등록된다. 처음 아웃랜드에 들어섰을 때는 꽤 그럴 듯해 보였는데 의외로 쓸모 없는 기능이었다.
‘시체까지 감염시켜 서퍼러로 만든다고? 이건 완전히 좀비잖아?’
그러나 닮은 것은 시체라는 것뿐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는 좀비라면 뉴 월드에서도 지겹도록 때려잡아 보았다. 그런 좀비들의 특징은 대체로 느리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서퍼러는 아크보다도 움직임이 빨랐다. 뭐 이종격투기전을 벌여 쓰러뜨리기는 했지만, 돌려 말하면 그렇게까지 해야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였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강화판 좀비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퍼뜩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서퍼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게 한 달 전이라고? 그러고 보니 자렘이 은하연방과 교류를 끊은 것도 한 달 전이라고 했잖아? 그럼 자렘이 은하연방과 교류를 끊은 이유가 서퍼러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잖아? 카베른은 자렘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중앙제어탑도 오염지역이라고 했어. 만약 서퍼러가 발생할 때 이미 자렘의 실드가 모두 발동되고 있는 상태였다면? 그리고 그 상태로 서퍼러가 증식해 중앙제어탑에 접근하지 못하게 됐다면…….’
모든 실드가 발동되면 자렘은 외부와 완벽하게 격리된다.
원인을 모르는 은하연방은 자렘이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고 의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아크의 추리는 뒤이은 카베른의 말에 의해 사실로 증명되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자렘의 실드가 발동된 상태로 중앙제어탑이 서퍼러에게 장악 당했다는 거야.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은하연방이나 아슐라트에 구조요청을 보내기는커녕, 언제 안전지대까지 감염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도 도망칠 방법조차 없지.”
‘맙소사! 그럼 결국…….’
아크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크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자렘의 급수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러나 급수시설은 호수의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일방통행용 공간 게이트. 입구는 될 수 있어도 출구는 될 수 없는 곳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아크 역시 자렘에 갇혀버렸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탈출할 방법은 있었다.
아크는 여전히 나베실의 페어리가 마지막 등록지점이니 죽으면 그곳에서 부활하게 되리라. 그러나 그 대가로 지난 열흘동안 올린 15레벨 분의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지불해야하리라. 당연히 아크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뭐, 뭔가 방법이 없는 겁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들어와 있는 거네.”
“네?”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언제 안전지대까지 감염될지 장담할 수 없어. 그리고 남은 병력으로 오염지대의 서퍼러를 모두 처리하기도 무리지.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중앙제어탑의 관리시스템을 탈환해 구조요청을 보내거나 실드를 해제하는 수밖에.”
“그럼……?”
“우리가 그 임무를 맡은 특공대네. 뭐 우리밖에 없었다고 해야겠지만.”
카베른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아크가 튕기듯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카베른 대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인지는 짐작은 되지만…… 미안하네. 우리는 더 이상 자네를 보호해줄 수가 없네. 여기까지 오는데도 이미 하루가 지났어. 자렘이 폐쇄된 지 한 달이 넘어 안전지대의 비상식량도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자네 하나를 위해 안전지대까지 왕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야.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자네를 구하는 것보다 1분이라도 먼저 관리시스템을 탈환하는 게 중요하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임무를 완수할 생각이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 은신처가 있다니 그때까지 자네는 그곳에 숨어서 기다리는 게 어떤가? 필요하다면 약간의 보급품을 나눠주겠네.”
“그런 부탁이 아닙니다.”
“그런 부탁이 아니라고? 그럼 뭔가?”
“저도 카베른 대장님 부대와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뭐, 뭐라고? 동행하겠다니? 자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아니,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평소부터 자렘에서 명성이 자자한 피닉스 부대를 흠모해마지 않아 왔습니다. 뭐 이미 눈치챘겠지만 저는 여러분이 카베른 대장님과 피닉스 부대원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진심 백퍼! 맹렬히 감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카베른 대장님이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제 신변을 걱정해주시는 거겠죠. 크윽, 존경하는 카베른 대장님이 제 걱정을 해주시다니 또 다시 가슴이 벅차 오르는군요.”
“아, 아니, 뭐 벅차기까지…….”
“대장님!”
아크가 와락 카베른의 손을 움켜쥐었다.
“저는 항상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쩌면 제가 오염지역에 남게 된 것도 이때를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잠시나마 제가 존경하는 피닉스 부대의 일원이 되어 역사에 남을만한 전투를 함께 할 수 있다면 목숨 따위는 아깝지 않습니다. 결코! 결코 짐이 되지 않겠습니다! 부디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존경하는 카베른 대장님과 피닉스 대원들의 동료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탁드립니다!”
아크가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눈빛으로 카베른을 바라보았다.
물론! 순도 100%짜리 뻥이었다.
자렘에 피닉스인지 뭔지 하는 부대가 있다는 것도 방금 전에 알았다.
뭐 따지고 보면 생명의 은인들이니 고마운 생각은 들었지만 존경심이 우러날 정도의 시간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존경심 운운하며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여대는 이유는 하나!
‘어떻게든 이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는 게 최선이야!’
이게 카베른의 말을 들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어쨌든 상황을 보면 자렘은 은하연방과 의도적으로 연결을 끊은 게 아니야. 서퍼러에게 중앙제어탑을 빼앗겨 실드나 통신망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 것뿐이다. 하지만 자렘에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나와 상관없어. 내게 주어진 임무는 중앙제어탑의 안테나와 접속해 마틴 후작에게 자렘의 GPS정보를 보내는 것. 자렘이 은하연방과 무슨 이유로 연결을 끊었든 내가 해야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피닉스의 임무는 자렘의 관리 시스템 탈환.
문제는 피닉스가 임무를 실패하거나 혹은 성공해도 곤란해진다는 부분이었다.
일단 실패할 경우를 보자면, 관리 시스템을 탈환하지 못하게 되어 자렘은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될 테니 아크 역시 탈출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성공해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피닉스가 관리 시스템을 탈환하면 당연히 실드를 해제하고 은하연방이나 아슐라트에 구조 요청을 보내리라. 또한 출입도 가능해져 아크 역시 자렘을 나갈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아니, 자렘의 NPC들에게는 분명 해피엔딩이겠지만…….
‘나에게는 최악의 배드엔딩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