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13)
아크 더 레전드-113화(113/875)
[113] SPACE 5 저주VS저주 (2)아크의 예상은 적중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계단 위에서도 네 마리의 서퍼러가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아크를 발견하고 몸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퍼퍼퍼펑—!
불길과 함께 코앞까지 다가왔던 서퍼러가 튕기듯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샷건의 공격력이라면 집탄사격으로 한 방에 40%이상의 데미지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두 놈 잡아봐야 의미가 없어. 지금은 놈들을 뚫고 연구실까지 가는 게 급선무다. 탄환을 아껴야해. 샷건은 재장전 시간이 많아 걸린다. 급할 때 탄환이 떨어지면 끝장이야!’
그때 난간을 타고 내려온 서퍼러가 손톱을 휘둘렀다.
‘일일이 피할 시간도 없다!’
“마인드 실드!”
아크는 방어막을 펼쳐 몸으로 공격을 받아내고 놈의 복부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이어 또 다시 불길이 뿜어지며 서퍼러가 수 미터나 날아갔다. 아크는 서퍼러가 떨어져 나간 난간 위로 뛰어올라 위쪽 난간을 잡고 철봉을 하듯이 뛰어올라갔다.
“우어어어어—!”
40층 복도로 올라오자 괴성을 들려왔다.
동시에 좌우의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서퍼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크는 놈들의 숫자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 복도!’
머릿속에는 제이에게 들은 40층. 아니, 연구실까지의 루트만 그려지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달리자 총성이 울리며 벽과 바닥에서 불똥이 튀어 올랐다. 맞은 편 통로를 막고 기이하게 길어진 팔로 소총을 들고 쏴대는 괴물들, 아마도 40층의 경비병이 변이 된 서퍼러들이리라. 그러나 아크는 멈추지 않았다. 멈춘다 한들 좁은 복도에서 탄환을 피할 수도 없었고, 뒤에서도 10여 마리로 불어난 서퍼러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멈추면 죽는다!’
“실드!”
아크가 팔을 들어올리자 손목에서 푸른 방패가 펼쳐졌다.
접근전으로 전환한 이후로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뷰라드의 실드였다.
아크는 뷰라드의 실드로 치명타가 터지는 머리와 가슴 부근을 보호하며 빗발치는 탄환 속을 돌진했다. 쩡쩡 소리가 울리며 실드 표면에서 불똥이 튀어 오르기를 잠시, 고작 레벨 10짜리 실드라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실드가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그리고 또 다시 몇 초가 지나자 따라붙은 서퍼러들의 배후 공격에 250대로 만들어졌던 마인드 실드까지 깨져나갔다. 순간 생명력이 엄청난 속도로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금이다!’
“젠장, 이거나 처먹어라!”
아크가 욕설을 퍼부으며 가슴에서 흔들리는 수류탄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안전핀을 뽑고 바닥에 떨어뜨리며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몸을 날렸다.
콰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바짝 뒤쫓아오던 서퍼러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아크 역시 무사하지는 않았다. 좁은 복도를 타고 퍼지는 폭풍이 등을 후려치자 생명력이 단숨에 10%나 깎여나가며 튕겨져 날아갔다. 그러나 그게 아크의 의도였다. 폭풍이 등을 때리는 순간, 아크는 그 폭풍에 몸을 싣고 바닥을 구르며 기관총을 난사하는 서퍼러의 가랑이 사이를 빠져나갔다. 물론 그냥은 안 지나간다.
퍼퍼퍼펑—!
스치는 순간 놈의 사타구니에 한 방!
놈은 사타구니가 너덜너덜해진 채로 솟아올라 천장에 대가리를 박았다.
이어 아크가 튕기듯 몸을 일으키자 기관총을 난사하던 서퍼러들이 빙글 몸을 돌려 세웠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뒤쫓아오던 서퍼러들이 놈들과 충돌했다.
“나이스!”
아크가 볼링핀처럼 와르르 넘어지는 서퍼러를 돌아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모퉁이를 돌아서자 맞은 편에 굳게 닫혀있는 금속 문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가 갇혀있었던 연구실! 아크는 지체 없이 문 옆이 단말기에 대고 보안카드를 긁었다. 그러자 단말기의 화면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안카드 확인.
관리자 권한 인증 중…….
“이런 빌어먹을! 486컴퓨터냐? 그딴 건 바로바로 하라고!”
아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을 때였다.
충돌했던 서퍼러들이 한 덩어리처럼 뭉쳐 모퉁이를 돌아왔다.
“젠장! 정말 마지막까지…….”
아크가 양손으로 문을 등진 채 몸을 돌리며 파이어 이글을 들어올렸다.
거의 동시에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아크가 뒤로 몸을 날리듯이 연구실로 뛰어들어가며 방아쇠를 당기자 폭음과 함께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서퍼러가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뒤쪽의 서퍼러들이 기관총을 들어올리는 순간!
아크가 벌떡 일어나 파이어 이글의 개머리판으로 문 앞의 스위치를 내리찍었다.
푸슈—!
-도어 잠금 장치 작동 확인. 잠겼습니다.
“헉헉헉, 헉헉헉헉!”
아크가 문에 등을 기댄 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문 너머에서 서퍼러가 긁어대는 소리와 총성이 울렸지만 이제 그딴 것들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아크가 들어온 곳은 A급 보안장치로 보호되는 연구실. 초합금 강판을 몇 겹이나 겹쳐 만든 문은 설사 C-6나 RPG를 난사해도 끄덕 없는 것이다.
……라고, 제이가 설명했었다.
‘아슬아슬했군.’
숨을 가다듬으며 확인해보니 생명력이 30%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마인드 실드와 뷰라드의 실드를 동원하고도 잠깐 사이에 70%의 생명력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새삼 다구리의 무서움을 절감할 수 있었다. 실드조차 없는 상태에서 방금 전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지금쯤 배를 까뒤집은 채 서퍼러들에게 먹히고 있으리라.
‘어쨌든 이제 안심이다. 아직 관리 시스템까지 거리가 있지만 숨을 돌릴 수는 있어.’
한숨 돌린 아크가 님프에 대고 입을 열었다.
“휴, 제이 님, 방금 전에 연구실에 도착했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님프에서 제이가 반색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렌족의 은신처를 나올 전에 아크는 제이와 인식코드를 교환해 님프를 통신상태로 연결시켜두었다. 이미 39층과 40층의 구조에 대한 설명은 대강 들었지만 혹시 모를 변수가 생겼을 때 곧바로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굉장하십니다!
기대하지 않았다니, 그럼 죽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어쨌든 거기까지 갔으면 이제 90%는 성공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반대쪽 문으로 나가면 관리 시스템이 있는 제어실까지는 금방 입니다. 평소 제어실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관리 시스템과 보안장치도 모두 자동으로 운행되죠. 그러니 서퍼러도 그 지역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드린 보안카드만 있으면 만사 OK란 말이죠. 제가 드린.
심지어 은근히 생색까지 낸다.
‘뭐 제이의 보안카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어쨌든 제이는 제어실 쪽은 서퍼러가 거의 없을 거라고 했지만 무턱대고 머리를 들이밀 수는 없지. 여기서는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야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해. 이제 남은 회복 앰플도 2개 밖에 없으니 일단 이곳에서 생명력을 모두 회복하고 움직여야겠다.’
아크는 파이어 이글을 재장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 각종 모니터와 패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연구실은 파티션에 의해 몇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 구획마다 서너 명씩, 대략 열 대여섯 구의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서퍼러를 막기 위해 연구실을 폐쇄했을 때 갇혀서 굶어죽었다던 연구원들이리라.
아크가 뭔가 주워먹을 게 없나 싶어 연구실을 기웃거릴 때였다.
‘어라? 그런데 저건 뭐야?’
연구실의 중심, 원형공간에 커다란 바위가 세워져있었다.
대략 3미터 크기의 계란처럼 생긴 타원형 바위였다. 얼음이나 크리스털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불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바위 속에는 뭔가 검은 물체가 들어있었다. 그런 바위의 표면에는 연구설비로 보이는 각종 기계장치가 복잡하게 붙어있었다.
“저건 뭐죠?”
-저거라니요? 뭐 말입니까?
“연구실 중앙에 있는 계란처럼 생긴 바위요.”
-계란처럼 생긴 바위? 아아, 그거.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자바란 님이 어떤 암상인에게 구입한 겁니다. 듣자니 어떤 혹성에 떨어진 운석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보다시피 형태도 그렇고, 바위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결정적으로 바위 표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겁니다. 일단 평범한 운석은 아니라 연구실에 옮겨놓고 성분 검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만지지 마세요. 그거 비싼 겁니다.
‘표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위로 다가갔다.
정면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몇 걸음 다가가자 빛의 각도가 바뀌며 매끈한 바위 표면에 명암이 떠올랐다. 바위 표면에 문자가 양각(陽刻)되어 있었던 것이다. 눈매를 좁히며 별 생각 없이 문자를 바라보던 아크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 설마 이 문자는……?’
아크는 바위에 새겨져있는 문자와 같은 문자를 본 적이 있었다.
기묘한 도형으로 이루어진 문자는 벨타나의 지하에 숨겨져 있던 피라미드. 그리고 트레져헌터 밀란이 구해온 석판에 새겨져있는 것과 같은 형태였다. 바로 무라트 문자!
‘틀림없어. 이건 분명 무라트 문자다! 그렇다면?’
아크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손끝으로 문자를 더듬어 내려갔을 때였다.
자동번역 기능이 작동되며 님프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주인 오시리스의 종.
파멸의 날이 여러 달 지나고…… 종족의 부활을 꿈꾸며 위대한 신들의 유산을 찾아 여행을 떠났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잠든다. 그대여, 무라트의 의지를 계승하는 자라면 가장 순수한 빛으로 나의 잠을 깨워 뜻을 받들라. 그게 아니라면 나의 영면을 방해하지 말라.
그대가 헛된 욕심에 사로잡힌 자라면 오시리스의 저주가 있으리라.
‘무라트다! 정말 무라트였어!’
아크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세차게 뛰었다.
무라트와 관련된 석판을 찾아온 밀란의 제의도 뒤로 미루고 찾아온 자렘이다.
그런데 자렘에서 또 다른 무라트의 유물을 찾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병기고에서 샷건과 RPG를 찾았을 때 뭔가 조짐이 괜찮다 싶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대박이 터진 것이다.
‘게다가 이건 밀란이 찾은 석판과는 수준이 달라. 글귀에 적혀있는 대로라면 이 속에는 무라트 족이 남긴 뭔가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어. 그런 유물이 그냥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니. 이건 완전히 가져가라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이런 걸 그냥 놔둘 아크가 아니었다.
아니, 지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얻을 기회가 없었다.
‘지금은 제어탑이 통째로 서퍼러에게 점령당해 던전처럼 변해버린 덕분에 여기서 뭘 주워먹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제어탑의 모든 것은 본래 주인인 자렘의 영주 자바란의 소유물이 된다. 아니, 그 전에 연구실까지 들어올 수도 없을 거야. 그러니 지금뿐이다. 지금이 아니면 이 운석 속에 있는 물건을 얻을 기회는 없어!’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운석은 병기고에서 찾은 샷건이나 RPG와는 다르다.
그리고 현재 연구실에 있는 사람은 아크. 만약 제어탑을 되찾은 뒤에 운석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면 아크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운석을 깨부수고 내용물을 챙겨갈 생각이지만, 그러니까 의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정황이 뻔하면 자칫 자렘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 자바란에게 잡혀 내용물을 토해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는 못하지. 뭐든 뒤가 깨끗해야해.’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거 완전히 박살나있는데요? 원래 그런 건가요?”
-부서졌다고요? 그럴 리가? 내가 연구실을 탈출할 때만해도 멀쩡했는데? 그 뒤로도 연구실은 폐쇄된 상태여서 서퍼러들도 들어오지 못했을 텐데 어째서?
“그야 나도 모르죠.”
-젠장, 알아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아크가 생각해낸 방법이 이것, 이름하여 ‘난 몰라요. 원래 그랬어요.’ 작전!
아크가 그렇게 말하면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제이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이를 증인으로 세우면 훗날 문제가 생겨도 당당하게(?)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철두철미함이야말로 아크의 진가!
‘자, 그럼 이제 어디 먹어볼까나?’
아크가 히죽 웃으며 파이어 이글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알리바이 공작에 몰두한 나머지 아크는 정작 중요한 문제를 잊고 있었다.
바로 운석 표면에 새겨진 글귀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있는 ‘저주’라는 단어. 그리고 피라미드에서도 아이템에 눈이 멀어 무턱대고 달려들다가 함정에 빠져 한참을 헤맸던 과거를.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가 그 기억을 떠올린 것은 방아쇠를 당긴 직후였다.
“집탄사격!”
철컥, 철컥, 철컥, 퍼퍼펑—!
파이어 이글이 어마어마한 불길을 뿜어냈다.
서퍼러들을 한 방에 수 미터씩 튕겨 내는 샷건으로 날린 집탄사격!
아크는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버티지 못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탄연이 흩어지고 드러난 운석은 작은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뭐야? 아무리 단단해도 어떻게 흠집 하나…….”
그때 갑자기 운석이 붉게 달아오르며 머릿속에서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허가 없이 영면을 방해하는 자! 오시리스의 저주를 받으리라!
“저, 저주?”
아크가 움찔하며 물러났을 때였다.
뒤이어……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운석에서 수십 줄기의 빛이 뿜어지더니 주위에 흐릿한 물체가 떠올랐다. 주먹만한 원형 물체, 이어 구체에서 길다란 다리가 솟아나오며 만들어진 것은 거미! 바로 서퍼러가 죽을 때 배 속에서 기어 나왔던, 좀비 바이러스를 옮기는 거미였다.
“거, 거미? 어째서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리며 뒷걸음질쳤다.
순간 빛과 함께 나타난 거미 떼가 우르르 몰려와 순식간에 아크를 뒤덮었다.
-데미지 7!
-데미지 12!
-데미지 9…….
눈앞에 시뻘건 메시지가 좌르르 올라갔다.
데미지는 잘해야 10. 그러나 10여 마리가 한꺼번에 달라붙어 물어 뜯어대니 가랑비에 옷 젓듯 잠깐 사이에 300이 넘는 생명력이 깎여나갔다.
39층에서부터 연구실까지, 수십 마리의 서퍼러를 뚫고 돌진하느라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아크는 생명력이 30%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 사이에 잠시 휴식을 취해 생명력을 회복했지만 아직 50%남짓, 이런 속도로 생명력이 깎여나가면 채 1분도 버티지 못하리라.
왜 거미가 나타났는지를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 이런 젠장! 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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