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2)
아크 더 레전드-12화(12/875)
[12] SPACE 4. 문어의 꿈 (3)-오오! 이, 이럴 수가!
부룸이 덜덜 떨리는 눈으로 10골드를 바라보았다.
문어들이 파이프 200미터를 닦아 받는 보수는 아크보다 적어서 고작 20쿠퍼.
10골드면 무려 5천 킬로미터 닦아야 벌 수 있는 돈이다.
그런 엄청난 거금을 보자 처음에는 이런저런 걱정을 하던 부룸도 눈이 돌아갔다.
-이런 식을 돈을 벌 수 있을 줄이야. 그, 그럼 더 많은 개척자를 유치해서…….
“그건 곤란합니다.”
아크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지금 이 유료 사냥터의 상품성은 단 하나, 사냥감이 넘쳐난다는 것뿐입니다. 유저들의 사냥 속도와 우주 벌레의 증식 속도를 비교하면 지금처럼 20명이 딱 적당합니다. 그 이상의 유저가 몰려 사냥감이 적어지면 메리트가 떨어질 겁니다. 또한 유저 숫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보안 유지도 힘들어집니다.”
과식하면 탈난다.
사업에는 욕심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인내심이 요구될 때도 있는 것이다.
“이건 장기적인 사업입니다. 당장은 20명이라도 계속해서 고객이 물갈이 될 테니 수입은 꾸준하게 들어오게 됩니다. 만약 이 상태에서 수입을 더 늘리고 싶다면 고객이 물갈이 되는 속도를 올리는 방법뿐입니다.”
-고객이 물갈이 되는 속도를 올린다고? 어떻게 말인가?
“고객의 레벨 업을 더 빠르게 해 주는 겁니다.”
-더 빠르게?
“저런 거죠.”
아크가 사냥터를 가리켰다.
“헉헉, 생명력이 얼마 안 남았어요. 잠시 쉬죠.”
마침 한참 미친 듯이 사냥하던 유저들이 헐떡거리며 물러났다.
레벨 7 이상의 유저들이 5인 파티를 맺으니 한 번에 서너 마리의 우주 벌레와 싸웠다. 그러다 보니 사냥감이 부족한 1~5구역의 유저와 달리 생명력이 부족해져 휴식을 취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아크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이 빨리 레벨 10을 찍고 나가 줘야 다른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것이다.
아크가 잽싸게 쉬고 있는 유저들에게 다가갔다.
“비싼 이용료를 물고 들어왔으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레벨 업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생명력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럼 회복 서비스를 받으시죠.”
아크가 슬쩍 눈짓하자 문어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1명에 서너 마리씩 달라붙자 생명력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어? 생명력이 회복된다!”
“후후후, 이건 유료 사냥터를 이용하는 고객 분들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물론 이것도 공짜는 아니었다.
한 번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우주 벌레 가죽이나 고기 하나씩! 공짜가 아니라는 말에 고개를 젓는 유저도 있었지만 금세 생명력을 회복하고 레벨을 올리는 사람들을 본 유저들은 결국 잡템을 주고 서비스를 받았다.
기껏 잡템 20개를 모아 퀘스트를 보고해도 20실버. 차라리 1실버를 포기하고 경험치를 올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 자, 서둘러 사냥하세요. 50실버나 내고 들어온 사냥터잖아요. 1분이라도 빨리 레벨 10을 달성해 마음껏 사냥하고 값비싼 전리품을 챙길 수 있는 개척지로 떠나야 하지 않습니까?”
아크는 그런 유저들을 열심히 응원해 주었다.
그런 만큼 이용객은 더 빨리 물갈이 되며 아크의 주머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 바로 아크와 문어의 수입 분배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미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확실하게 못 박아 둔 바가 있었다.
“이곳을 승무원들에게 알리지 않는 보상 그리고 유료 사냥터의 사업 계획을 짠 보상으로 제가 원하는 것은 이곳의 이용료 수입 전부입니다.”
두둥-!
아크의 말에 문어들의 눈알이 일제히 이따만 해졌다.
-그, 그건 우주 벌레를 몽땅 압수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나?
-우리들은? 우리들의 미래는 어쩌고?
“단, 그건 제가 R-14를 떠나기 전까지만입니다.”
아크가 자갈치 시장처럼 소란스러운 문어들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저 역시 다른 이용객처럼 어느 정도 경험을 쌓으면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물론 그 전에 유료 사냥터를 운영하는 노하우를 모두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자렌족은 그 이후로 몇 달은 꾸준히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수입이 짭짤해도 아크는 R-14에서 언제까지나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곳은 초보존이라 일단 개척지로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때문에 R-14에 있는 동안 모든 수입을 독식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문어들 역시 아크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니, 8개나 되는 다리를 들어 올리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사실 아크에게 약점을 잡힌 그들은 아크가 더 많은 걸 요구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R-14를 떠나겠다고 못 박으며 그동안의 수입만 받겠단다. 유료 사냥터의 사업성을 생각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게 수입을 독식하니 하루 만에 10골드가 모였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개량형 합금 단검 따위는 몇 자루라도 살 수 있지만…….’
아크는 조바심치는 마음을 억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파이프 청소를 시작한 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야. 초심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다. 돈이 조금 생겼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 어차피 유료 사냥터가 있으니 이제 레벨 업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파이프 청소만으로 단검을 살 돈을 모으겠다. 지금까지 적립된 마일리지 횟수는 283번. 단검을 살 때까지 약 100번, 이제 이틀도 안 남았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아크는 주머니가 두둑해진 이후로도 파이프를 박박 기며 걸레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의 자아 수련은 뜻하지 않았던 일로 중단되었다.
-아크, 잠시 나와 보게.
걸레질 삼매경에 빠져 마일리지 적립을 300회 채웠을 때였다. 님프의 호출을 받아 나가 보니 젝슨이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늘부로 그만둬 줘야겠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혹시 유료 사냥터가 들켰나 싶어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일전에 말했듯이 이쪽 일은 거의 공짜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자렌족 때문에 예산이 잘 안 나와. 그런데 자네가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적지 않은 마일리지가 쌓이니 위에서 쓸데없는 지출이라고 불평을 하지 뭔가? 나 참, 그래 봤자 얼마나 된다고…… 어쨌든 그런 이유로 정리 해고하라는 메시지가 날아왔어. 미안하네.”
‘설마 반복 퀘스트에 끝이 있을 줄이야.’
일단 걱정했던 문제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이로써 목표했던 ‘파이프만 닦아 단검을 사는 것’은 끝내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빨리 파이프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막상 본의 아니게 일이 이렇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아크의 착각이었다.
“여기 있네. 지금까지 자네가 일해 준 보수 1골드 55실버.”
“네? 1골드 55실버요?”
“그래, 자네가 40쿠퍼에 계약했을 때 쌓은 마일리지 200회 80실버. 그리고 작업반장이 된 뒤로 100회를 더 쌓았으니 60실버. 거기에 마일리지 보너스가 회당 5쿠퍼. 1골드 55실버지.”
‘맞아! 그러고 보니 이건 단검을 잃어버린 사람이 재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퀘스트였지? 그러니 단검값이 모이기 전에 끝날 리가 없었던 거야. 마일리지 보너스를 계산에 두지 않고 있었는데 자칫하면 괜히 시간만 버릴 뻔했다.’
결국 아크는 목표를 이룬 것이다.
이제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굳이 퀘스트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자렌족과 많이 친해져서요. 종종 이곳에 와도 될까요?”
“물론이지. 자네라면 언제나 환영이네.”
자렌의 확답을 받은 아크가 돈을 챙겨 들고 잽싸게 상점으로 가려 할 때였다.
“잠시 기다리게.”
젝슨이 아크를 불러 세웠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인사는 상부의 지시 때문만이 아니네. 나 역시 자네가 그만둬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거였어.”
“네? 그게 무슨……?”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이런 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일을 했겠지만 자네도 처음부터 배관 시설 정비나 할 생각으로 우주에 나온 것은 아닐 걸세. 나 역시 그랬지. 30년 전에 처음 우주에 나왔을 때는 나 역시 우주 개척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네. 하지만 우주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었어. 개척자가 되는 건 누구나 가능하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 결국 나는 도중에 꿈을 포기하고 도망치듯 이런 곳에 눌러앉았지만 자네는 아직 젊어. 그래, 고작 파이프나 청소하며 지내기에는 너무 젊지.”
젝슨이 그윽한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자네를 무시했던 것은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네. 하지만 그동안 지켜봐 온 자네는 분명 나와 다른 사람이야. 우주는 무섭지. 끝없는 우주와 개척지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위험이 수도 없이 존재한다네. 젊은 개척자의 의지를 한순간에 꺾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이런 고된 작업을 이렇게까지 오래 그리고 성실하게 해 온 자네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네. 그런 자네의 성공을 기원하며 비록 약소하지만 작은 선물을 준비했네.”
젝슨이 들고 있던 공구함을 건네주었다.
젝슨의 공구함
아이템 타입 : 스킬 보조
R-14의 내부 시설 관리부장 젝슨이 사용하던 공구함입니다. 시설 정비에 유용한 공구가 들어 있어 간단한 구조의 장비품은 자체 수리가 가능합니다. 단, 수리를 할 때는 장비품의 부품과 같은 우주 자원이 필요합니다.
《시설 정비 스킬의 속도와 성공률을 20% 상승》
※일반 등급 아이템 수리 가능(자원 필요)
“이건 내가 쓰던 공구네. 낡았지만 길을 잘 들여 놨으니 쓰기 편할 거야. 그리고 이건 개척지에 있는 내 오랜 친구에게 자네에 대해 몇 자 적어 둔 편지네. 개척지에서 기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토리라는 친구인데, 내 편지를 보여 주면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줄 거네.”
님프에서 정보창이 떠올랐다.
《7구역 관리자 젝슨의 추천서》
당신은 우주정거장에서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공기 순환 파이프 청소 작업을 끈기 있게 해 왔습니다.
7구역 관리자 젝슨은 그런 당신의 인내심을 높이 평가하며 토리라는 친구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건네주었습니다. 젝슨의 오래된 친구 토리에게 추천서를 보여 주면 당신에게 도움을 줄 거라고 합니다. 잽싸게 찾아가 봅시다.
※난이도 : –
-퀘스트 아이템 ‘젝슨의 추천서’를 받았습니다.
이런 건 또 거절하는 아크가 아니다.
“감사합니다.”
아크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반복 퀘스트에 이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젝슨에게 받은 보상의 가치는 둘째 문제다.
그만둔 게 아니다. 퀘스트 반복 300번! 무려 30킬로미터의 파이프를 닦아 반복 퀘스트의 끝을 보고 만 것이다.
해냈다는 감격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무엇보다 큰 보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하나!’
“단검!”
차킹-!
아크의 말에 가방 위로 단검이 솟아올랐다.
파이프 닦기 알바를 300번 반복해서 구입한 ‘개량형 합금 단검’! 아크는 단검을 움켜쥐고 유료 사냥터로 뛰어들었다.
“간다! 레벨 업이다!”
아크는 자유이용권 유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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