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21)
아크 더 레전드-121화(121/875)
[121] SPACE 8 그 놈, 이 놈, 저 놈. (1)“좌천입니까?”
“아니, 그게 말이야…….”
중년 사내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표정과 몸짓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리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미안하게 됐네.”
“됐습니다. 소령 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만 사령관의 지시를 어기고 중앙정부로 올 마음을 먹었을 때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벨타나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현재 라마족과 하난 혹성의 최대 격전지인 하난 혹성으로의 발령을 신청했다. 대체로 모든 일에 무관심한 그녀였지만 그녀 역시 유저. 그리고 이러니 저리니 해도 유저는 언제나 경험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령이 차일피일 미뤄지기를 보름 여…….
갑자기 그녀가 소속되어 있는 내사 과정의 연락을 받고 찾아와 보니 엉뚱한 임무가 주어졌다. 그 순간 이리나는 대강의 상황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하만 사령관이겠지.’
벨타나 전투가 끝난 이후, 당시 연방군 사령관이던 하만은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그가 걱정하던 대로 아크가 전쟁영웅으로 공표 되자 매스컴은 연방군을 일개 죄수보다 못한 존재로 비하하기 시작했고, 그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연방군은 모든 책임을 하만 사령관의 무능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이리나 탓이 아니었다.
그때 하만의 결정에 반발하기는 했지만 딱히 그녀가 한 일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크 본인. 라마족과의 전투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유저들의 관심을 끌어 결국 NPC들까지 움직이는, 기발하다고 해야할지 영악하다고 해야할지 모를 방법으로 스스로 전쟁영웅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하만은 그녀가 반발했던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은하연방 역시 그녀가 상부의 결정에 반발했던 사실을 잊지 않았다.
‘세상은 어디나 똑 같군. 힘있는 자가 정의. 그래도 게임 속에서만큼은 도리에 맞는, 적어도 납득할 수 있는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랬는데…….’
그렇다고 그녀가 뭔가 대단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게임 속이 아닌,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심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작은 쉼터가 필요했을 뿐이다.
비정한 아버지의 눈이 닿지 않는 그녀만의 작은 쉼터가…….
“알 수가 없군.”
그때 내사과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니, 자네 역시 연방군이 돌아가는 사정은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들었겠지만 자네는 곧 중위 진급을 앞두고 있었네. 하지만 이번 일로 진급은 미뤄지겠지. 지금까지 자네는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어.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보였던 적도 없고. 그런데 이번에는 왜 하만 사령관을 화나게 하면서까지 반발했는지 모르겠군. 그 아크라는 남자가 자네에게 그렇게까지 특별한 사람이었나?”
“특별하다고요?”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내가 아는 소위는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어.”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이리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막상 생각해보니 내사과장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녀는 모든 일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설사 그게 불법적인 방식이라도 상관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진력이 나서 도망치듯이 갤럭시안을 시작했다. 결벽증 환자처럼 규정에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벨타나에서 있었던 일은 불합리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반발했다. 이 부분까지는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내사과장도 이 부분에 대해 묻는 게 아니었다.
‘그때 나는 분명 화가 나 있었어. 왜지? 그때 하만 사령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분명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의를 제기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어. 그런데 좌천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무턱대고 하만 사령관을 찾아가 따졌다. 대체 왜 그랬지? 뭐가 나를 그렇게 화나게 만들었던 거지? 내사과장의 말처럼 그 대상이 파티장에서 본, 아크라는 남자였기 때문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지.’
잠시 생각하던 이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군요.”
“어이, 어이, 그런 성의 없는 대답이 어디 있어?”
“성의하고는 상관없습니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요.”
“다른 사람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내사과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할 수 없다는 듯 이리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상황이 찜찜하게 돌아가게 됐지만 조금만 참게. 상부 분위기가 좀 나아지면 내가 어떻게든 손을 써볼 테니. 자네가 이번 임무를 잘 처리하면 바로 올려서 중위 계급장을 달아주지. 어쩌다보니 좌천 같은 방식으로 떠맡기게 됐지만 이번 임무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야. 자칫하면 간신히 회복된 은하연방의 위신이 다시 곤두박질 칠 수도 있는 일이니 만큼 매스컴에 알려지기 전에 처리해야만해. 무슨 말인지 알겠나? 좌천이라도 자네 능력을 인정하니까 맡길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네.”
“알겠습니다.”
“이건 현지에서 보내온 자료네.”
내사과장이 파일을 건네주며 말했다.
-궤도감옥 스탈라, 집탄 탈주 사건에 대한 보고서.
파일 겉면에 적혀있는, 그리고 그녀에게 등록된 새 퀘스트의 제목이었다.
* * *
“여기도 오랜만이군.”
아크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광장의 분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있는 도로 바닥에는 예쁘게 치장된 포석이 깔려있고, 그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 사이에는 수많은 인파가 와글거리고 있었다.
로브를 입은 남녀는 벤치에 앉아 햇빛을 쬐며 한가롭게 마법책을 읽고, 근처에 좌판을 깔고 있는 상인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가며 명품 백-가방-을 만들고 있었다. 육중한 갑옷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는 상급 던전에 함께 갈 파티원을 모으겠다며 소리를 꽥꽥 질러대다가 유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근처 건물 위에서 울어대는 닭까지.
“이런 아날로그스러운 부분이 좋단 말이지, 뉴 월드는.”
분수대의 벤치에 앉아 둘러보던 아크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곳은 24세기 우주개척시대가 아니었다. 그보다 10여 세기 과거…… 라기보다는 그냥 다른 세계. 총과 미사일의 세계가 아닌 검과 마법의 세계, 뉴 월드였다.
그리고 이곳은 슈덴베르크 왕국의 수도 셀리브리드!
느닷없이 아크가 왜 뉴 월드에 들어와 있는가?
그건 며칠 전의 일이었다.
“알고 계십니까?”
잠시 글로벌엑서스에 들렸을 때.
기획팀장인 하명우가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네? 뭘요?”
“요즘 뉴 월드의 접속자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 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거기서 왜 그런 대답이 나오는 겁니까? 바빠서 이만이 아니잖아요!”
“아니, 정말 바쁜데…….”
참고로 말하자면 이때 갤럭시안의 아크는 막 자렘에 도착했을 때였다.
급수시설의 파이프 속에서 밤이 될 때를 기다리던 중이라 솔직히 급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알고 있었다. 하명우가 이런 식으로 앓는 소리부터 할 때는 뭔가 귀찮은 일을 떠맡기로 할 때다. 아니나 다를까, 하명우는 아크를 잡아 앉혀놓고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뭐 접속자수가 줄어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확장팩을 출시할 때마다 번번이 갖은 버그로 에러가 속출하고, 개발 속도는 너무 느려 터져서 새로운 컨텐츠는 유저의 레벨 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하지만 기획팀이 총동원되어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원인은 유저들의 관심이 식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접속자수가 줄었으면 당연히 관심이 식은 탓이지.
그게 20명이나 되는 기획팀원이 총동원 돼서 조사해야할 일이냐? 혹시 뉴 월드의 접속자수가 떨어지는 원인이 그런 덜떨어진 기획팀 때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냐?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아크가 처음 뉴 월드와 연을 맺게 된 것은 글로벌엑서스의 입사시험에 지원해서였는데, 그때 시험을 주관했던 사람이 하명우였다. 그래서인지 글로벌엑서스의 고문이사까지 된 지금도 아크는 여전히 하명우가 어렵게 느껴졌다.
어쨌든 하명우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기획팀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새로운 기획 안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대세로 떠오르는 인터넷 방송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겁니다. 하지만 뭐 게임 시스템이니 뭐니 하는 건 판타지 게임이 넘치는 지금 새삼 홍보할 것도 없죠. 그래서 유저들을 상대로 앙케이트 조사를 해본 결과, 바로 아크. 뉴 월드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아크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게 유저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방송사와 함께 기획했습니다. 이름하여 ‘아크, 그때 그 전설’ 총 3부작!”
‘뭐가 새로운 기획 안이냐?’
아크가 짜증스러운 눈으로 하명우를 바라보았다.
아크가 처음 글로벌엑서스의 고문이사로 취임할 당시, 유저들의 관심이 폭발하자 하명우는 ‘아크, 나는 유저다’, ‘아크, 인간시대’, ‘아크, 오 마이 레전드’, ‘아크, 어디가?’등등, 이미 아크를 내세워 사골처럼 우려먹은 경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로운 기획 안이랍시고 내놓은 게 또 아크 시리즈…… 게다가 ‘아크, 그때 그 전설’?
마치 은퇴한 연예인 취급이다.
그러나 아크는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
일개 게이머인 아크가 글로벌엑서스의 고문이사로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뉴 월드의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마스터 코드의 힘과, 또 하나는 얼굴 마담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역시 아크에게는 주요업무의 하나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시간을 내보죠.”
아크는 일단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나 갤럭시안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 미루다가 어제서야 자렘의 일을 정리했다.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시간 날 때 정리해버리자!’
아크가 뉴 월드에 들어와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는 좀 짜증났는데 그래도 막상 들어와 보니 좋군. 갤럭시안에서 서퍼러니 뭐니, 하드코어적인 것만 보다가 아기자기한 중세 도시에 들어와 있으니 왠지 정화되는 느낌이야. 그나저나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크가 시간을 확인하며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아크 님이시죠?”
주변을 기웃거리던 두 사람이 다가왔다.
모두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맨 앞의 여자는 마이크를 들고 있었고 뒤의 남자는 커다란 마법영사기-동영상을 촬영용 아이템 50골드(메모리 크리스털 별매)-를 들고 있었다.
“네, 제가 아크입니다.”
“반가워요. 저는 아프리칸 TV의 푸푸, 이쪽은 카멜이에요.”
“아, 본 적 있어요. 가상현실게임 전문 캐스터죠?”
“알아보시네요. 하지만 저보다는 아크 님이 훨씬 유명하잖아요. 뉴 월드 최강 게이이자 글로벌엑서스의 고문이사. 그야말로 유저들의 로망이죠.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직접 보기는 처음이네요. 이번 기획은 3부작이니 그동안 잘 부탁드려요.”
빨강머리 소녀 모습의 푸푸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로브를 입고 수줍은 듯이 웃는 모습을 보니 왠지 로코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 뭘 하면 되죠?”
“하명우 팀장님에게 얘기 들었다시피 이번 기획은 아크 님이 주가 되는 프로지만, 사실 아크 님과 관련된 방송은 이전에도 많았잖아요. 하지만 정작 아크 님이 최강 게이머가 되는데 도움을 준 NPC나 유저들의 얘기는 나온 적이 없죠. 그래서 이번에는 아크 님의 주변 사람들 얘기로 꾸며 볼까해요.”
“주변 사람들이라……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건지…….”
“뭐 여러 사람이 있겠죠. 예를 들면 루시퍼와 최종전쟁을 할 때 아크 님을 도와준 7인의 영웅이라든지, 오래 전부터 아크 님과 함께 했던 대상인 시드나 지금은 드워프 연맹의 관리를 맡고 있는 북실이, 울먹이, 삽질이, 그리고 정의남과 갱생단, 아크 님의 영지에 살고 있는 묘족이나 너구리족 같은 수인족도 있고요.”
‘막상 하나 하나 열거해 놓으니 많기도 하구나.’
푸푸의 말을 들고 있으니 새삼 뉴 월드에서 참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푸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역시 유저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아크 님의 소환수예요.”
“소환수?”
“네, 아크 님이 전설이 되기까지 긴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동료. 그런데도 그동안 한번도 방송에 나온 적이 없잖아요. 뉴 월드는 NPC들도 각자 나름의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최강 영웅이라고 불리는 아크 님의 소환수는 평상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앙케이트 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오던 질문이 바로 그거예요.”
“소환수라…….”
아크가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아크도 그 녀석들을 못 본지 꽤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뉴 월드에는 자주 들어왔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버그를 처리하는 일이라 굳이 소환수를 불러낼 필요가 없었다. 아니, 업무 때문이 아니어도 마스터 코드를 가지고 있는 아크는 뉴 월드에서 신과 같은 존재. 레벨 999,999의 대마왕이라도 ‘Del’ 한 방에 날릴 수 있으니 굳이 번거롭게 소환수를 불러낼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아크도 거의 1년 가까이 소환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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