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23)
아크 더 레전드-123화(123/875)
[123] SPACE 8 그 놈, 이 놈, 저 놈. (3)아크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력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저택이 조각조각 분해되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택만이 아니었다. 저택에 있던 모든 물품, 심지어 큐리오의 주머니에 있던 골드까지 몽땅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땡그랑.
멍하니 지켜보는 큐리오의 앞에 10실버짜리 동전이 툭 떨어졌다.
“어때? 이제 개과천선해서 옛날처럼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팍팍 들지 않냐? 게다가 아무리 힘들어도 한 달에 10실버는 연금으로 꼬박꼬박 나오니 수백 년을 살아도 굶어죽을 걱정도 없잖아. 어떠냐? 소환수의 노후걱정까지 해주는 이 주인님의 배려가? 고맙지?”
“…….”
큐리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넋 나간 표정으로 10실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영주님, 이렇게 됐으니 이제 방탕한 생활은 그만두고 열심히 살아요!”
“네, 우리도 있는 힘껏 도와드릴 게요.”
“…….”
큐리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넋 나간 표정으로 10실버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네…… 뭐랄까…… 훈훈한 장면입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푸푸가 적당히 마무리지었다.
‘나 참, 정말 쪽 팔려서…….’
아크가 그런 푸푸를 힐끔거리며 내심 한숨을 불어냈다.
그래도 명색이 전설의 게이머. 뉴 월드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아크다.
그런데 잠시 방치한 사이에 소환수라는 놈이 저택에 숨어 계집질이나 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장면이 방송으로 나갔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유유상종, 그 밥에 그 나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등등, 그런 영상을 본 사람들이 주인인 아크의 사생활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설마 퓨리탈도 이러고 있지는 않겠지?’
아크는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소환수를 떠올렸다.
퓨리탈은 처음 소환할 때는 해골밖에 없는 상태에서 나중에는 본 드래곤의 영혼까지 흡수해 최강의 언데드인 데스 로드가 된 소환수였다. 그 역시 큐리오처럼 벼락출세한 소환수였지만 퓨리탈과 큐리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퓨리탈은 생전에 기사였던 언데드.
여전히 기사시절의 기억이 남아있어 주인인 아크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것은 물론, 근검절약-뼈 밖에 없으니까-이 뼈다귀에 배어있는 소환수였다.
‘그래, 퓨리탈이라면 큐리오로 깎인 점수를 벌충할 수 있을 거야!’
“지니, 다음 목적지는 언데드의 도시 오벨리움이다!”
그리고 오벨리움에 도착해 유령들에게 물어 퓨리탈을 찾아갔을 때였다.
딱딱딱딱, 딱딱딱딱!
스켈레톤 한 마리가 어두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이빨을 딱딱거렸다.
암울한 포스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이 스켈레톤이 바로 퓨리탈, 마스터 코드의 힘 덕분에 아크는 큐리오의 통역이 없어도 퓨리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훗, 그래. 내가 그렇지 뭐. 어차피 나는 스켈레톤이니까. 뼈밖에 없으니까. 주인에게 버림받는 것도 당연해. 후후후, 주인 없는 기사는 쓰레기야. 그러니까 나는 쓰레기인 거지. 이렇게 살아서 뭐하지? 그냥 콱 죽어버릴까? 아, 난 언데드지. 후후후, 그래, 난 쓰레기 언데드야.]……이런 내용이었다.
이에 오벨리움의 주인인 유령 국왕의 말에 따르면.
[자네에게 소환되지 않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부터네. 퓨리탈은 지금까지 저 구석에서 계속 저 말만 반복하게 있다네. 의사-언데드에게도 의사가 있었다!-에게 보였더니 마음의 상처로 인한 우울증과 자폐증, 기타 등등의 문제 때문이라고 하더군. 자네도 알지 않나? 저 친구가 저렇게 보여도 유리처럼 섬세한 마음을 가진 사내란 걸.]유리처럼 섬세한 마음을 가진 언데드라니…….
그것도 모자라 우울증과 자폐증에 걸린 언데드라니…….
뭐랄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 아크 님?”
“아, 아직! 아직 한 마리가 더 있습니다! 지니, 동방민족의 성으로!”
아크는 폭풍과 함께 스탄달의 중심, 동방민족의 성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어머? 아크 님?”
단숨에 성안으로 들어서자 맞은 편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단결 같은 검은 머리칼에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 한때 암살집단이었다가 스탄달에 정착해 동방민족으로 이름을 바꾼 다크브라더의 수장 이사벨이었다.
그 외에도 이사벨은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가진 NPC였는데, 아크의 라이벌이자 7인의 영웅 중 한 사람인 샴바라라는 유저의 와이프라는 것이다. 아니, 특이한 것은 이사벨이라기보다는 NPC와 정식 혼인 계약까지 해버린 샴바라겠지만. 어쨌든 아크는 다른 소환수와 달리 딱히 거주지가 없는 마지막 소환수를 이사벨에게 맡겨두고 있었다.
“엄청 오랜만이네요. 어떻게 지냈어요?”
“저…… 샴바라는?”
“잠시 외출했어요. 샴바라 님 만나러 오신 거예요?”
“아닙니다.”
아크가 뒤쪽에서 지켜보는 푸푸와 카멜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오늘은 잠시 버닝혼을 만나러 들렀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죠?”
“저와 함께 있어요. 버닝혼!”
이사벨의 목소리에 반응하듯이 허리에 감겨있던 푸른 뱀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 뱀이 바로 아크의 마지막 소환수 버닝혼!
사실 이 녀석은 다른 소환수와 달리 알 때부터 아크가 직접 품어서 낳은(?) 뱀이었다.
아니, 뱀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아라모네라는 유계의 생물이라는 게 밝혀졌고, 이후 쑥쑥 성장해서 비행 드래곤인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 소환수였다. 때문에 아크를 부모로 생각하며 누구보다 잘 따르던 버닝혼이라면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라고 생각했지만…….
쇅쇅? 쇅쇅? 쇅쇅쇅! 쇅쇅쇅!
멀뚱멀뚱 바라보던 버닝혼이 와락 이사벨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이미 큐리오나 퓨리탈의 탈선(?)을 목격한 아크는 버닝혼의 반응에 슬쩍 불안해졌다.
그러나 역시 버닝혼은 다른 소환수들과 뭔가 달랐다.
“이런, 왜 그러는 거야? 잘 봐. 네 아빠잖아. 계속 기다려왔던 아빠.”
이사벨의 말에 버닝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아크를 바라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펄쩍 뛰어 아크를 휘감았다.
아크처럼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푸푸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며 떠들어댔다.
“아아,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설핏 보면 그냥 뱀이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장면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버닝혼이라고 불리는 저 뱀과 아크 님의, 부자의 연으로 맺어진 유저와 NPC의 관계를 말입니다! 이거야말로 혈연을 뛰어넘는 뜨거운 우정으로 맺어진 주인과 소환수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죠!”
“뭐 그렇죠.”
아크가 애교를 떨어대는 버닝혼의 머리를 슬슬 문지르며 대답했다.
뭐랄까, 이제야 조금이나마 체면이 서는 기분이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아크는 내친 김에 제대로 품을 잡기 위해 작정하고 입을 열었다.
“이미 여러 번 방송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지만 버닝혼은 마지막 진화를 할 때 전설의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지니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버닝혼을 타고 날아다니는 기분은 다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죠.”
“오오!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아! 아크 님, 자, 잠깐만 지금 버닝혼은…….”
이사벨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버닝혼, 팬저드라군으로 변신!”
그러나 이미 아크는 버닝혼을 내려놓고 힘차게 소리친 뒤였다.
그리고…… 버닝혼이 변신했다…… 이따만하게…… 애드벌룬처럼 빵빵한 공으로…….
“너무 귀여워서 제가 볼 때마다 먹을 걸 주다보니…….”
이사벨이 얼굴을 붉히며 웅얼거렸다.
“아, 아크 님. 저게 팬저드라군인가요? 어째 듣던 거와는 많이 다른데요?”
“아니! 맞습니다! 팬저드라군! 맞다고요! 버닝혼, 날아라!”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팬저드라군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창공을 가리키며 소리쳤을 때였다.
팅—! 팅—! 팅—! 팅—!
버닝혼이 공처럼 팅팅 튀어 오르며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돌아보지마! 달려! 이대로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달리는 거야!’
그러나 그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정원을 가로지른 버닝혼은 곧 성벽에 걸려 제자리에서 팅팅 튀어 오를 뿐이었다.
“호호호, 어때요? 귀엽지 않아요?”
이사벨이 할 말을 잃고 바라보는 푸푸와 카멜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다가 눈을 깜빡이더니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아! 여보!”
퀭해 졌던 푸푸와 카멜이 번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사벨의 남편이라면 NPC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7인의 영웅 중 한 사람, 샴바라! 카멜, 카메라 돌려! 이렇게 된 이상 샴바라라도 취재한다!”
푸푸가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커먼 복면을 쓴 채 걸어오는 샴바라를 향해 달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샴바라 님. 저희는 아크 님과 함께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아프리칸 TV의 푸푸와 카멜입니다. 잠시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요?”
“아크라고?”
샴바라가 걸음을 멈추고 슬쩍 벽에 붙어 팅팅 거리는 버닝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푸푸와 카멜을 바라보며 말했다.
“꺼져.”
SPACE 9 길었던 퀘스트를 마치고……. (1)
“아크…….”
청년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팅! 팅! 팅! 팅!
청년의 시선이 향해있는 모니터 속에서는 한 사내가 애드벌룬처럼 변한 뱀을 타고 팅팅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로 버닝혼을 타고 있는 아크였다.
아크와 세 소환수의 감격(?)적인 상봉 장면은 실시간으로 인터넷 TV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송은 지금, 청년이 재활훈련을 받는 병원에서도 볼 수 있었다.
“뭐야 저게?”
“전설의 게이머라더니…….”
모니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실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설의 게이머라고 불리는 아크. 확실히 그런 타이틀을 생각하면 방금 전의 방송은 맥 빠지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청년은 알고 있었다.
‘저게 아크다!’
청년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
언제나 나사가 몇 개 빠진 것 같은 어수룩한 모습에 무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아크가 그조차 도달하지 못한 자리에 올라있었다. 어수룩함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어수룩함 뒤에 숨겨져 있는 그 ‘무엇’ 때문이었다.
청년이 아크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는 아크를 넘어설 수 없었다. 대체 왜?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아크를 넘어설 수 없었던 걸까? 그동안 당연한 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위에 서왔던 자신이 왜 유난히 아크만은 넘어설 수 없었던 걸까?
‘대체 왜? 내가 뭐가 부족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로 병실에 누워있을 때도 청년은 수백, 수천 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의 능력도 게임 캐릭터처럼 수치화 시킬 수 있다면 그가 아크보다 몇 배는 더 높은데도 결과는 반대로 나와있는 것이다.
물론 물어볼 기회는 있었다.
지금이라도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아크와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아크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남자의 오기라도 해도 좋고,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다. 만약 현실에서 아크를 만날 날이 있다면 적어도 자신의 두 발로 당당하게 서있을 때, 적어도 그와 같은 눈높이에서 말할 수 있을 때다.
그리고 청년은 그런 방식으로는 아크를 만나도 결코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아크에게 자신이 갖지 못한 재능이 있다면, 그 재능이 빛을 발하는 것은 가상현실 게임 속이다. 그게 청년이 갤럭시안이라는 게임을 시작한 하나뿐인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해있었다.
아크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범죄를 저질러 가게된 하난 혹성!
그곳에서 청년은 또 하나의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바로 붉은 학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라마족 유저였다.
‘오늘까지 다섯 번째…….’
하난 혹성에서 청년이 붉은 학살자를 만난 횟수다.
그리고 결과는 참패. 물론 게임 속에서의 승패는 그렇게까지 연연할 문제가 아니다.
레벨이나 장비품, 갤럭시안의 경우는 배틀슈트의 유무로도 전투가 완전히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갤럭시안을 하며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해보았다.
‘하지만 붉은 학살자는 다른 유저와는 다르다.’
그와 대치했을 때, 붉은 학살자는 단 한번도 배틀슈트를 입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스킬도 가장 기본적인 것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년은 붉은 학살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단순한 레벨 차이가 아니다. 그 역시 게이머로 나름 높은 경지까지 올랐던 사람이라 첫 번째 전투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강하다! 강한 놈이야! 이건 캐릭터가 아니라 유저의 힘이다!’
그러나 청년이 붉은 학살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몇 번째인가 붉은 학살자와 마주쳐 또 다시 허망하게 당했을 때, 근처에 있던 연방군의 통역기를 통해 붉은 학살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허접한 놈들만 상대해야하는 거지? 아크는 아직인가?]그때부터 청년의 목표는 붉은 학살자가 되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왜 아크와 싸우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처럼 아크를 만나고 싶어하는 유저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 취급받은 것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마치 너 따위는 아크를 만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그 순간 청년은 붉은 학살자가 아크를 만나기 위해서 넘어야할 첫 번째 관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었다. 붉은 학살자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하난 혹성 전장에 미래는 없다. 그 역시 아크가 있는 이스타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쓰러뜨린다. 내 손으로. 그리고 아크를 만나겠다!’
“헉헉헉, 하겠어!”
청년이 어금니를 깨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미 재활훈련을 1시간이나 받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지만 쉴 시간은 없다.
강해져야한다. 캐릭터만이 아니라 유저, 자신부터 강해져야한다.
그렇게 청년이 이를 갈아붙이며 재활훈련을 받을 때…….
“아드님이 근래 들어 부쩍 의욕이 넘칩니다.”
“가상현실 게임을 다시 하게 해달라고 했을 때는 걱정스러웠는데 기우였나 보군요.”
밖에서 기다리는 의사와 아버지가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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