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40)
아크 더 레전드-140화(140/875)
[140] SPACE 6 동굴 속의 공포 (2)아크가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했을 리가 없었다.
슬레이와 그레온의 말을 듣는 순간 아크는 대강 돌아가는 분위기를 눈치챘다.
게임을 하다보면 꼭 이런 녀석들이 있다. 파티에 여자가 들어오면 괜히 더 착한 척하는 사내놈들. 그런 녀석들의 목적을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저 뒤에서 지원사격만 해줘도 된다면 나야 좋지.’
사실 아크가 파티를 구하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게 이 부분이었다.
아크의 목적은 다른 유저와 달리 무라트 유적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와 밀란이 계속 전투에 참가해야한다면 정작 유적을 찾을 시간이 없다. 게다가 던전 안에는 아크 일행 이외에도 파티가 많아 사냥감도 적었다. 때문에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정작 제대로 살펴볼 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유적에 대해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
‘최소한 둘 중 1명은 전투에서 빠져야한다!’
아크가 밀란 몫의 전리품을 기꺼이 포기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적당한 구실을 붙여 밀란을 후방에 남겨 유적 수색을 맡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2명 모두 후방에 남아있어도 좋단다. 놈들의 목적이 뻔하니 적당히 분위기만 맞춰주면 설사 전투에 참가하지 않아도 파티에서 탈퇴 당할 걱정도 없었고, 전리품도 약속대로 나누어 받을 수 있다. 아크에게는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었다.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레벨에 비해 많이 약한 편이라 내내 걱정했었는데, 배려심이 많은 분들이라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릅니다. 염치없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 계속 파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로코나 님은 어떠세요?”
“저도 계속 사람이 바뀌는 것보다 그게 좋아요.”
멜리나가 귀엽게 혀를 빼물며 대답했다.
아마도 이게 슬레이와 그레온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이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멜리나의 대답에 두 사내가 반색하며 아크의 손을 움켜잡았다.
“찬성입니다! 우리 5명은 끝까지 함께 하는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제 저희가 확실하게 밀어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아크의 쾌적한 던전 탐험이 시작되었다.
타나토스가 나오면 슬레이와 그레온이 알아서 때려잡는다.
아크와 밀란은 전투가 어찌되든 그냥 뒤에서 대충 총 쏘는 시늉만 하며 주변을 탐색하면 그만. 그래도 전투가 끝나면 경험치가 들어오고, 전리품도 4분의 1이 딱딱 들어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파티지만…….’
불만스러운 부분이 두 가지 있었다.
“음, 이 자식! 보기보다 강하군. 하지만 나는 동료들의 방패! 설마 여기서 온 몸이 갈가리 찢긴다해도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없다! 덤벼라, 괴물아! 크윽!”
“슬레이! 저 자식, 감히 내 친구를! 받아라! 내 분노의 탄환을!”
“헛! 이, 이 빛은…… 오오! 온 몸의 세포가 되살아난다! 감사합니다, 멜리나 님! 나 슬레이, 목숨을 걸고 이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나는 멜리나 님의 방패일지니!”
“나는 멜리나 님의 탄환이다! 받아라! 연속사격!”
첫째는 바로 이것.
전투 때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펼쳐지는 오버액션!
멜리나는 둔한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속내를 알고 있는 아크는 남자로서 정말이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창피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어차피 남의 일이니 참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밀란이었다.
“휴, 그래도 이번에는 꽤 도움이 됐습니다.”
“지원사격은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치명타도 상당히 나오던데요?”
슬레이와 그레온의 이 말은 밀란을 향한 것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의 전투 스타일은 접근전, 현재 사용하는 총기도 접근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샷건이었다. 검은 물론이고 탄환이 방사형으로 퍼지는 샷건은 후방 지원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인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고작 레벨 20짜리 권총 페이드 스틸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명중률도 꽝.
탕—! 탕—! 탕—!
아크의 총성은 허무할 뿐이었다.
그러나 밀란은 벨타나에 있을 때부터 기관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트레져헌터라 원래 지원용 NPC였던 밀란은 장거리사격 명중률은 되려 아크보다 나았다. 아크가 주는 데미지는 전체의 2~3%밖에 되지 않았지만 밀란은 10%수준!
그러다 보니 아크의 입장이 말이 아니었다.
“대체 누가 덤인 건지…….”
이런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더 열 받는 건 밀란의 태도였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제가 형님으로 모시는 분입니다.”
‘그래도? 지금 그래도 라고 했나? 저 자식이 정말 오냐 오냐 해줬더니!’
파고스 산으로 올 때만해도 아크를 바라보는 밀란의 눈은 존경의 빛으로 반짝였었다.
그러나 발렌시아를 만나 창피를 당한-밀란이 한 짓이지만- 이후부터 어째 분위기가 달라졌다 싶더니, 파고스 산에서 자기가 지목한 장소를 죽어라 삽질하는 모습을 본 뒤로는 슬슬 맞먹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크보다 높은 평가를 받자…….
“형님,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뭐 그래도 어쨌든 제 형님 아닙니까? 음핫핫핫!”
아주 대놓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원래 NPC와 유저의 관계는 호감도에 따라 달라지는 법. 그리고 NPC의 호감도는 주위 유저들의 평가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크가 벨타나의 영웅이 되었을 때 친위대원들의 충성도가 쭉 올라갔던 것도, 그리고 슬레이와 그레온이 아크를 무시하자 밀란까지 건방지게 구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크는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역시 NPC는 무턱대고 잘해주면 안 돼. 때때로 빡 세게 굴려야 주인 무서운 줄 알지. 젠장, 두고 보자. 유적만 찾으면 날 잡아서 아주 제대로 굴려주마!’
그러나 지금은 무라트 유적이 먼저다.
아크는 울컥울컥 치미는 화를 꾹꾹 눌러 참아야했다.
그리고 NPC보다 못한 잉여유저 취급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탐사작업을 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아크는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봉착했다.
‘어라? 여기는……?’
주변을 살피던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멜리나를 돌아보았다.
“멜리나 님, 혹시 여기…… 아까 지나갔던 장소 아닙니까?”
“네? 그럼 지금까지 모르셨어요?”
“모르다니요?”
“지금 저희는 계속 같은 장소를 돌고 있는 거예요. 원래 파고스 산 던전은 입구가 9개 있지만 내부에서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단지 층이 다를 뿐이죠. 각각 3개씩 상, 중, 하로. 그 중 우리가 돌고 있는 곳은 가장 위쪽이에요. 여기는 넓지 않고 길이 둥글게 이어져 있죠.”
“그럼 아래층 던전은 다른 동굴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아란 님도 바닥에 뚫려있는 구멍 보신 적 있죠? 그 구멍도 아래층 던전과 연결되어 있어요. 굳이 나가지 않아도 그 구멍으로 내려가는 편이 빠르죠.”
“그런데 왜 계속 같은 장소만?”
“네? 아, 그건…….”
멜리나가 아크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그러자 뒤쪽에서 타나토스를 잡고 돌아오던 슬레이가 대답했다.
“실은 저희도 새로운 파티원이 들어오면 여기서 한 두 마리 잡으며 연계 플레이를 연습한 뒤에 바로 밑으로 내려갈 생각이었습니다. 이 아래의 중간층은 레벨 150대 이상의 타나토스가 나오지만 난이도가 높은 만큼 경쟁자도 적고 갈스톤도 더 많이 떨어집니다. 멜리나 님이 계시니 그레온과 저, 거기에 레벨 80이상의 파티원 1명이 추가되면 도전해볼 만 했겠죠.”
그런데 NPC보다 못한 유저가 들어왔다.
때문에 안전한 120레벨 전후의 몬스터만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의미였다.
‘젠장,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어!’
아크도 파고스 산의 던전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어디로 들어오든 던전을 모두 탐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던전이 몇 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까 지나갔던 장소로 다시 돌아왔으니 이 층은 탐색이 끝난 셈이야. 여기서 며칠을 더 보낸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인데…….’
정작 아크 때문에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한참 전에 근육통이 풀렸다. 슬레이와 그레온이 원했던 것처럼 80레벨 이상의 유저. 아니, 1대 1이라면 슬레이나 그레온과 붙어도 너끈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유적 탐사를 위해 이미 3시간동안 공짜 경험치와 전리품을 받아 챙겨왔다. 이제 와서 ‘사실 저는 셉니다! 그러니까 내려가죠!’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반감만 사게 될 게 뻔하다.
순간 아크의 머리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그리고 퍼뜩 고개를 들어올리며 멜리나를 바라보았다.
‘이 파티의 리더는 슬레이지만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멜리나! 그렇다면…….’
“저 잠시 화장실 좀. 어차피 저는 큰 도움이 안 되니 먼저 가고 계세요.”
“네, 근처에 있을 테니 다녀오세요.”
“다녀왔습니다.”
아크가 잠시 파티와 떨어졌다가 합류한 직후.
슬레이와 그레온이 한창 타나토스와 싸우던 그때 사건이 터졌다.
컹컹컹컹! 컹컹컹컹!
갑자기 던전 속에 개소리가 울려퍼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개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일행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뒤쪽의 모퉁이에서 뛰어나온 것은 놀랍게도 타나토스의 머리에 개의 몸을 가진 몬스터!
“뭐, 뭐야? 여기에 저런 몬스터도 있었나?”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안 돼! 멜리나 님이 위험하다!”
그레온이 황급히 몸을 돌리며 레일건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괴물개가 튀어나온 곳은 멜리나의 바로 뒤, 그레온이 채 조준을 하기도 전에 괴물개가 아가리를 쩍 벌리며 멜리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멜리나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찰나! 그녀를 향해 번개처럼 몸을 날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위험합니다!”
아크가 멜리나의 몸을 부둥켜안고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윽! 저렇게 부러운…… 아, 아니! 잘 했어요, 아란 님! 이제…… 어? 자, 잠깐! 거기는…….”
그대로 중간층으로 뚫려있는 구멍으로 떨어졌다.
컹컹컹컹! 컹컹컹컹!
괴물 개도 뒤를 따라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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