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41)
아크 더 레전드-141화(141/875)
[141] SPACE 6 동굴 속의 공포 (3)“꺄악!”
미끄럼틀처럼 길게 이어진 구멍을 따라 내려오기를 잠시.
둔탁한 충격과 함께 멜리나의 비명이 들려왔다.
……왜 비명을 질렀는지 모르겠다. 밑에 깔려있는 건 아크인데. 그러나 멜리나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크를 깔고 앉아 구멍을 올려다보며 당혹성을 터뜨렸다.
“크, 큰일이에요! 중간층으로 떨어졌어요!”
“그리고 저는 멜리나 님 밑에 깔려있습니다.”
“핫! 죄, 죄송해요!”
멜리나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비명을 터뜨리며 떠듬거렸다.
“아, 아란 님! 저, 저기…… 괴, 괴물 개가…….”
“물러나세요! 놈은 제가 막겠습니다!”
아크가 멜리나의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 앞에는 붉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다가오는 괴물이 있었다. 개의 몸에 타나토스의 머리가 달려있는 기괴한 생명체. 덕분에 멜리나는 공포에 질려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괴물 개의 엉덩이에서 맹렬하게 흔들리는 꼬리!
‘후후후, 귀여운 것!’
아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당연하다. 이 괴물 개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아크니까.
괴물 개는 파티원과 떨어졌을 때 타나토스의 시체로 소환한 헬 하운드인 것이다.
아크가 파티를 중간층으로 데려오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이것이었다.
‘슬레이와 그레온은 지금 멜리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거다. 그런 멜리나가 중간층으로 떨어져버렸으니 당연히…….’
“멜리나 님! 기다리세요! 저희가 갑니다!”
‘두 녀석도 따라 들어오겠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헬 하운드를 바라보았다.
‘됐어! 그만 가라. 다음에 해야할 일이 뭔지 알지?’
아크의 눈빛에 위협하듯 으르렁거리던 헬 하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으로 뛰어갔다.
위쪽에서 슬레이와 그레온, 밀란이 차례로 떨어져 내린 것은 그 직후였다.
“멜리나 님!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괴물 개는 어디 있습니까?”
“전 괜찮아요. 괴물 개는 도망갔어요. 그리고 떨어질 때도 아란 님이 잘 살펴주셔서…….”
멜리나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러자 슬레이가 한숨을 불어내며 천장의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그나저나 큰일이군요. 갑자기 중간층으로 떨어져버렸으니. 하필이면 피해도 꼭…….”
슬레이가 불만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흘기며 구시렁거렸다.
이제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식의 눈길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아란 님은 잘 못 없어요. 저를 구하려다가 그런 거잖아요. 제 잘못이에요!”
그때 멜리나가 나서자 슬레이가 화들짝 놀라며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잘못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약속했잖아요. 저희는 앞으로 쭉 같이 가기로 말입니다. 저는 단지 앞으로의 일이 걱정돼서 한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아란 님과 멜리나 님을 걱정한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설사 저희가 죽는 한이 있어도 멜리나 님과 아란 님만은 무사히 나갈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네, 저희만 믿으십시오!”
‘뭐 이런 거지.’
아크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하는 두 사내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저렇게 말해도 아마 아크 혼자 중간층에 떨어졌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모른 척 했으리라. 그러나 떨어진 게 멜리나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그냥 멜리나를 구멍으로 밀어버릴 수도 없는 일. 때문에 헬 하운드를 이용해 적당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결과는 보는 바대로. 아크의 의도대로 나머지 팀원이 제 발로 중간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할 문제는 하나 더 남아있었다.
‘이제 슬슬 돌아 올 때가 됐는데…….’
컹컹컹컹! 컹컹컹컹!
맞은 편 통로에서 개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슬레이와 그레온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행을 향해 달려오는 괴물 개, 헬 하운드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헬 하운드를 따라오는 거대한 그림자!
위층에서 나오는 놈들의 2배나 되는 몸집을 가진 타나토스였다.
“저, 저 망할 개자식이 타나토스를 끌고 오잖아?”
“맙소사! 레벨 150! 지금 우리 전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하지만 여긴 막다른 곳이야. 도망갈 곳이 없어!”
“크윽, 젠장! 그레온, 저 망할 개부터 처리해!”
투투퉁—! 투투퉁—!
그레온의 레일건이 연속적으로 빛을 뿜었다.
이번 헬 하운드는 레벨 120의 타나토스의 시체에서 불러낸 녀석이라 능력치가 제법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미 타나토스에게 쫓기며 몇 방 맞은 상태에서 레일건으로 저격당하니 두 세 방만이 검붉은 거품을 뿜어올리며 녹아 내렸다.
이제 문제는 뒤따라오던 타나토스!
헬 하운드가 죽자 타나토스의 눈동자가 아크 일행으로 향했다.
“젠장, 배틀슈트를 꺼내야하나?”
“안 돼. 중간층으로 떨어져버린 이상 아무리 조심해도 앞으로 몇 번이나 저런 놈들과 마주치게 될지 몰라. 1마리조차 상대하지 못하면 어차피 희망은 없어. 그러니 배틀슈트는 최후의 순간까지 아껴놔야 해. 일단 그냥 붙어본다! 멜리나 님, 밀란 님, 엄호해주세요!”
슬레이가 방패를 꺼내들고 달려가며 소리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크의 이름은 꺼내지도 않는다. 아예 전력으로 쳐주지도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부터는 좀 다를 거다!’
그때 타나토스의 발톱에 슬레이가 방패를 후려쳤다.
새삼스럽지만 레벨 100짜리와 150짜리는 전혀 다른 몬스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배나 커진 몸집만큼 파워도 100짜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상층에서 수백 번의 공격을 막으면서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던 방패가 일격에 우그러지며 튕겨 나갔다.
“슬레이! 빌어먹을, 연속사격!”
투투퉁—! 투투퉁—!
그레온의 레일건이 쉴새 없이 빛 줄기를 뿜었다.
덕분에 슬레이는 아슬아슬하게 타나토스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현재 파티에서 접근전이 가능한 것은 슬레이 1명. 그래도 지금까지는 널널하게 탱커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상대가 150레벨의 타나토스로 바뀌니 모든 공격을 혼자 받아내기는 역부족. 멜리나가 폭포수처럼 회복스킬을 쏟아 부어도 피가 빠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슬레이의 생명력이 30%까지 떨어졌을 때였다.
슬레이가 맥없이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틀렸어.”
‘……지금이다!’
아크가 튕기듯 타나토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휘청거리며 또 다시 일격을 당하려는 슬레이 앞을 가로막았다.
콰직—!
엄청난 충격에 뼈까지 시릴 정도였다.
“아, 아란 님?”
슬레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휘청거리며 물러난 아크는 짐짓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크윽, 전 괜찮습니다. 슬레이 님,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옆에서 보조를 맞출 테니 같이 싸우게 해주십시오. 이럴 때야말로 멜리나 님에게 슬레이 님의 진가를 보여줄 기회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남자의 의지를!”
“핫! 그, 그렇지! 알겠습니다!”
슬레이가 방패를 들고 힘차게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슬레이는 이미 승산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크의 말대로 마지막까지 멜리나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운을 되찾은 척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다시 전투를 시작하니 이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타나토스의 공세가 한결 약해진 것이다. 공격을 받아도 이전처럼 데미지가 무지막지하게 들어오지 않고, 반격을 가할 기회도 많아졌다. 그건 30%에서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 생명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멜리나의 회복 스킬이 갑자기 더 강해졌을 리가 없으니 받는 데미지가 줄어들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슬레이 님, 그레온 님, 지금입니다!”
“우오오오! 엑셀레이션 아이언!”
“슈퍼마그네틱 샷!”
우렁찬 외침과 함께 슬레이의 철퇴와 레일건 탄환이 폭사되었다.
순간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타나토스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꺄악! 해냈어요! 굉장해요!”
멜리나가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슬레이와 그레온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란 님, 잠시 얘기 좀…….”
슬레이가 멜리나의 눈치를 살피며 다가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올 게 왔구나.’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 전투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아크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아크가 혼자 도맡아 처리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번 전투에서 아크가 주력한 것은 타나토스의 공격 리듬을 끊는 것. 타나토스가 슬레이를 공격하는 순간 체중이 실린 다리나 관절을 공격해 힘이 집중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건 아크 정도의 체술을 익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라 멜리나나 밀란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전투 경험이 풍부한 슬레이와 그레온은 바로 눈치챘다.
동시에 밀려오는 배신감!
“지금까지 우리를 속여왔던 겁니까?”
“저는 처음부터 말했습니다. 근육통 때문에 한동안은 제대로 싸우기 힘들다고.”
“그딴 상태이상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해명하실 겁니까? 하필 이런 상황에 딱 맞춰서 회복된 건 아닐 거 아닙니까?”
“네, 던전에 들어와서 40분 정도 지나서 회복됐습니다.”
“40분…… 그럼 2시간 가까이 일부러 놀면서 공짜 경험치와 전리품을 받았다는…….”
슬레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때 아크가 한숨을 불어내며 입을 열었다.
“인정하죠. 일부러 속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두 분을 위해서였습니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두 분, 멜리나 님을 마음에 두고 계시죠?”
울컥한 표정으로 소리치려던 슬레이와 그레온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딱 보니 알겠더군요. 제가 굳이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두 분이 멜리나 님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제가 끼어서 같이 싸우는 것보다는 두 분이 모든 몬스터를 처리하는 게 아무래도 더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차피 지금까지는 두 분 만으로 충분했고 말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능하면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도 두 분의 힘만으로 타나토스를 쓰러뜨린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슬레이 님을 도울 때도 일부러 몸으로 놈의 공격을 받아낸 겁니다.”
사실은 그런 이유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크가 진행하고 있는 직업퀘스트의 조건 중 하나인 동료 구출하기!
아크는 자신이 참전하면 타나토스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여유가 있을 때 동료 구출하기 횟수를 하나라도 더 올려둘 생각으로 몸으로 받아낸 것이다.
물론 말한 것처럼 멜리나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야 슬레이와 그레온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
“비록 저도 두 분을 생각해서 한 일이지만, 3시간동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제게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은 두 분의 배려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저 역시 멜리나 님이 두 분께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요. 본의 아니게 중간층으로 떨어져 이제 저도 참전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저는 두 분의 보조 역할만 하겠습니다.”
“음…….”
“어차피 우리도 처음에는 중간층으로 들어올 생각이었으니…….”
슬레이와 그레온의 눈빛이 흔들렸다.
“두 분이 중간층으로 내려온 건 멜리나 님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멜리나 님도 내심 미안해하고 있을 겁니다. 이럴 때 두 분이 중간층의 타나토스를 상대로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호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이 말이 결정타였다.
“확실히…… 좋아, 그레온! 아란 님 말대로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도 몰라!”
“그래, 아란 님이 도와준다면 중간층도 문제없어!”
사실 슬레이와 그레온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여기서 아크를 내치면 그들 역시 중간층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아크가 지금처럼 계속 자신들을 돋보이는 역할만 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못 생긴데다가,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유저는 두 번 다시 만나기도 힘들리라!
“우리가 오해했습니다!”
“앞으로 쭉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슬레이와 그레온이 아크의 손을 굳게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이게 악몽의 시작이 될 줄은.
사실 이런 제안에는 아크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 이후로 아크는 약속대로 드러나지 않게, 오히려 슬레이와 그레온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겨우 버티는 것처럼 힘겹게 전투를 치러야했다. 그러다 보니 몇 번이나 위험에 처할 때가 있었지만…….
“아란 님, 위험합니다! 동료를 보호하는 것은 가디언의 몫! 크윽!”
그때마다 슬레이는 몸을 던져 지켜주었다.
굳이 동료 보호니 뭐니 떠들어대는 이유는 당연히 멜리나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그런 오버액션을 하다보니 당연히 전투를 치를 때마다 생명력과 마나가 바닥이 나버렸다. 그게 아크가 바라는 바였다. 아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유적 탐사. 상층에서는 아예 전투에 참전조차 하지 않았으니 주변을 조사할 시간이 차고 넘쳤지만, 중간층에서는 아크도 참전해야한다. 정작 주변을 조사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력과 정신력, 마나를 몽땅 써버리게 만들면 얘기가 다르지.’
전투를 치를 때마다 그만큼 오래 휴식을 취해야 한다.
어차피 생명력이나 마나는 저절로 회복되니 그동안 주변을 살펴본 시간이 충분한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전투할 때마다 일부러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파티원의 생명력과 마나를 바닥까지 긁게 만들어 놓았다. 다른 파티라면 불만이 나왔어도 진즉에 나왔겠지만.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전투가 어설퍼서…….”
“아니에요. 이것도 다 저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요. 힘든데도 애써주셔서 고마워요.”
멜리나는 나름 미안한 입장이니 이렇게 말하면 OK.
“들으셨죠? 로코나 님은 우리에게 미안해하고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힘들어도 굴하지 않고 싸운다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해요. 호감도는 팍팍 올라가고 있어요.”
“흐흐흐. 감사합니다.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멜리나에게 흑심을 품은 늑대 두 마리는 이렇게 말하면 OK.
한 번 전투를 치를 때마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져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크는 배후에서 파티를 조종하며 중간층을 수색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중간층에 들어온 지 2시간, 상층에 있었던 시간을 합하면 5시간이 넘어가자 슬레이들도 지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멜리나가 힘들어하자 눈치껏 정리해야할 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출구를 찾아보죠. 이제 이 파티로도 중간층에서 사냥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내일 다시 모여서 계속해요.”
그리고 출구를 찾아 나섰을 때였다.
컹컹컹컹! 컹컹컹컹!
괴물 개가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흔들리는 꼬리 뒤로 10여 마리의 타나토스를 데리고!
“헉! 이, 이런 젠장! 또 저 망할 개가! 안 돼! 잡히면 죽는다! 튀어!”
슬레이들이 비명을 터뜨리며 도망쳤다.
그런 상황은 몇 번이나 반복됐다. 출구를 찾아 나가려고만 하면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타나토스 떼를 끌고 나타나 일행을 더 깊은 던전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저주다! 이번 사냥은 저주받은 거야!”
슬레이와 그레온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괴물 개는 항상 아크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후후후, 벌써 나간다니, 어림도 없지.’
아크가 헐떡거리는 슬레이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타나토스 떼를 몰고 오는 괴물 개는 말할 것도 없이 헬 하운드였다.
아크는 틈틈이 헬 하운드를 소환해 파티를 원하는 장소-아직 수색해보지 못한 곳-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일단 목표가 생기면 끝장을 보는 아크! 실제로 뉴 월드를 할 때는 원하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 꼬박 이틀 밤을 샌 적도 있었다.
하물며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숙면을 취했던 아크다.
‘이런 식으로 고작 몇 시간씩 들어와서 이 넓은 던전을 언제 다 조사하라고? 미안하지만 아직 멀었어. 적어도 중간층을 한 바퀴 돌 때까지는 너희들도 같이 있어 줘야겠다.’
덕분에 죽어나는 건 슬레이들이었다.
던전 안이라 게임 종료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다.
“헉헉헉, 대체 뭐야? 저 헬 하운드. 우리를 말려 죽일 생각인가?”
몇 번이나 탈출이 좌절된 슬레이들이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헐떡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그나마 기운이 남아있을 때였다. 상층은 불과 2~3시간이면 돌 정도의 크기지만 중간층은 그 몇 배에 달하는 크기. 게다가 아직 중간층에 들어올 만한 파티는 많지 않아서 타나토스도 넘쳐났다. 그런 타나토스와 매번 너덜너덜해지는 전투를 치르며 중간층을 헤매고 돌아다닌 지 10시간이 지나자 슬레이들은 말이 없어졌고, 15시간이 넘어가자 좀비처럼 변해버렸다. 쌩쌩한 것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푹 잔 아크와 밀란뿐!
“더, 더는 못해.”
“안 돼! 텐트도 없단 말이야. 여기서 잠들면 죽어!”
그레온이 퀭한 얼굴로 털썩 주저앉아 슬레이가 멱살을 잡아 흔들며 소리쳤다.
텐트는 던전 같은 곳에서 안전하게 동면 가사상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주변에 실드를 쳐주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마을 바로 옆의 던전이라 굳이 텐트를 준비하지 않았던 것.
“나, 난…… 정말 더 못 버티겠어. 눈알이 빠질 것 같아. 차라리 죽을래.”
슬레이와 그레온은 아크를 만나기 전에 이미 15시간 이상 게임을 하고 있었다.
본래 둘의 하루 평균 게임 시간은 12시간 내외였지만 도중에 멜리나를 만나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15시간이 더 지났다. 합계 30시간!
계속 전투를 치르며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는 중도 포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기운을 내십시오! 여기서 쓰러지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물거품이 됩니다! 슬레이 님, 그레온 님, 남자로서 멜리나 님을 마지막까지 지켜야하지 않습니까? 졸리다는 이유로 멜리나 님까지 죽게 만들 생각입니까? 힘들고 괴로울수록 그걸 이겨내는 두 분의 의지가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남자!”
“으으…… 나, 남자로서…….”
아크의 격려(?)에 슬레이와 그레온은 좀비처럼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멜리나의 눈은 아크를 향해 있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면서 냉큼 파티에 들어와 좀 뻔뻔해 보였는데…… 먼저 말도 붙이지 않아서 불편하고…… 그런데 나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된 건데도 싫은 내색 한 번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나를 위해서 동료들을 격려하다니…… 그것도 슬레이 님이나 그레온 님처럼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래, 아란 님을 봐서라도 기운을 내야지.’
멜리나의 눈에 은은한 존경의 빛까지 담겼다.
그러나 전혀 다른 시선으로 아크를 바라보는 눈도 있었다.
‘나는 알아! 타나토스를 몰고 나타나는 괴물 개! 맞아, 여기로 오는 길에 형님이 주술로 만들어냈던 그 개와 비슷했어! 분명 그 개를 조종하고 있는 사람은 형님이야. 형님이 중간층에서 유적을 찾기 위해 파티를 붙잡아두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돌산에서도 꼬박 하루를 쉬지도 못하게 했었지. 그럼 이번에는 이 던전을 몽땅 뒤진 뒤에야 나갈 수 있는 거야?’
밀란만은 알고 있었다.
레벨 80대의 강자 슬레이와 그레온을 자살(?)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던전의 공포!
그것은 어두운 던전도, 레벨 150이 넘는 타나토스도, 타나토스를 몰고 나타나는 헬 하운드도 아니었다. 진정한 공포는 바로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아크!
‘으으, 무섭다! 형님은 역시 무서운 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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