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46)
아크 더 레전드-146화(146/875)
[146] SPACE 8 해가 지고 해가 뜨는 땅 (2)“그럴 수도 있지만…… 저들의 얘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소?”
“듣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때 용의자(?) 속에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우주해적과 한패가 숨어들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배선반을 폭파시켜 실드를 해제하는 것. 저희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되어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장면이 님프에 녹화되어 있으니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연구소 앞에 모여있는 놈들은 내부에 잠입한 한패가 실드를 해제시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 실드가 해제됐으니 곧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당장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전멸하게 될 겁니다.”
“하! 웃기는군. 네놈이 뭔데?”
“나는 다만…….”
사내가 한숨을 불어내며 말을 이으려할 때였다.
뒤에서 또 다른 사내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내가 모시는 형님의 이름은 아크! 벨타나의 영웅이시다!”
‘하여간 이 녀석은…….’
아크가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쭐대는 표정으로 아크를 소개(?)한 사내는 바로 밀란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밀란은 파고스 산에 온 뒤부터 은근히 아크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밀란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방금 전, 발렌시아를 쓰러뜨렸을 때부터였다.
“형님이 기갑소대장이었던 발렌시아를……!”
사실 발렌시아는 밀란에게도 이가 갈리는 존재였다.
아크보다 벨타나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긴 만큼 기갑소대에게 받은 설움도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낱 죄수에 불과했던 밀란에게 정예군. 그것도 최정예인 기갑소대장 발렌시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때문에 같은 죄수였던 아크 역시 발렌시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발렌시아가 맞아죽었다.
바로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는 아크에게!
“형님은 강하다! 강했던 거야! 벨타나의 영웅이란 칭호는 운이 아니었어!”
-밀란이 은근한 존경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호감도 +100》
-밀란이 당신을 형님으로 모시게 된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호감도 +100》
그와 함께 떠오르는 메시지!
밀란이 우쭐대며 아크를 소개한 게 이 때문이었다.
발렌시아를 쓰러뜨리는 순간, 아크는 밀란에게 자랑하고 싶은 형님이 된 것이다.
어쨌든 밀란의 폭탄선언(?)에 개척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아크? 아크라고?”
“벨타나의 영웅이라면 얼마 전에 연방 TV에서 나오던?”
“죄수 신분으로 강제 징용된 상황에서도 불리한 벨타나 혹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맞아! 저 얼굴, 듣고 보니 기억나! 분명히 연방 TV에서 본 그 얼굴이야!”
그러나 이들보다 더 큰 충격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슬레이와 그레온, 멜리나였다.
아크를 바라보는 그 세 명의 눈은 이따만 해져 있었다. 배선반이 폭파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달려오느라 아직 이들에게는 진짜 이름조차 말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벨타나의 영웅 아크?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이전 얼굴과 아란이라는 이름은……?”
“죄송합니다. 실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조금 전에 제가 쓰러뜨린 녀석과 만났습니다. 그 녀석의 이름은 발렌시아. 제가 벨타나에 있을 때부터 알던 녀석인데,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는 것처럼 보여서 잠시 지켜볼 생각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아크가 적당히 상황을 조합해 그럴 듯한 답변을 해주었다.
뭐 어쨌든 발렌시아 때문에 하이드 헬멧을 쓰게 된 건 사실이니까.
“죄송합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속인 셈이 돼버렸군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니에요. 저는 이해해요. 큰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슬레이가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뭔가 쏟아 내려할 때였다. 멜리나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대답했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슬레이와 그레온을 돌아보았다.
“두 분도 그렇게 속 좁은 분들이 아니에요. 그렇죠?”
“……아, 물론이죠. 당연히 이해하죠.”
슬레이가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얼른 말을 바뀌었다.
그러는 사이 뒤에서 얼굴에 문신이 새겨진 유저가 아크에게 다가왔다.
“저는 시엔이라고 합니다. 복장이 똑 같아서 그런 게 아닌가 했는데, 역시 같은 사람이었군요. 저는 오래 전에부터 아웃랜드에서 생활해서 벨타나의 영웅이나 아크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아크 님이 전장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만은 알겠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와 제 파티원들은 아크 님을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쿠마입니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페이스리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개척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 숫자가 절반을 넘어가자 나머지 개척자들도 자연히 아크를 지휘관을 인정했다.
그때 방벽 주변에 모여있던 개척자들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모든 개척자의 눈이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실드가 없어졌으니 이제 연구소는 더 이상 안전한 장소가 아닙니다. 이제 놈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장애물은 연구소 둘레에 쳐진 방벽. 하지만 고작 1미터도 되지 않는 방벽으로는 놈들의 난입을 막을 수도 없고, 그마저 RPG공격 몇 방이면 무너질 겁니다. 뒤이어 난전으로 돌입하면 승산이 없겠죠.”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네, 이곳에서는.”
“그 말은……?”
“우리가 버텨야하는 시간은 하루. 장소를 옮기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아크가 고개를 들어 파고스 산 정상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폭발 직후, 이곳으로 뛰어오는 동안 아크는 한시도 쉬지 않고 대처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파고스 산에 구멍을 뚫으며 돌아다닐 때 본 정상의 100여 미터 넓이의 분지(盆地)였다. 파고스는 본래 휴화산, 때문에 정상은 한라산의 백록담처럼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분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파고스 산은 분지로 되어 있습니다.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형태라 둘레에 암석들이 솟아있죠. 분지 안에 들어가면 이 암석을 성벽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산 자체가 성벽이 되는 셈이니 RPG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고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총격전이 벌어지면 지형효과 보너스가 적용될 겁니다.”
“언제 그런 지형조사까지…….”
“전장에서는 어디를 가든 지형조사는 기본입니다.”
유적을 찾기 위해 죽어라 삽질을 하며 돌아다녔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정을 알리 없는 개척자들의 눈에는 새삼 은은한 감탄의 빛이 번졌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바이엔이 펄쩍 뛰며 소리쳤다.
“뭐, 뭐야? 연구소를 버리겠다고? 웃기지마! 이 자식들, 이 연구소를 만드는데 얼마가 들었는지 알기나 해? 못 가! 네놈들은 죽을 때까지 이 연구소를 지켜야한단 말이다!”
“하! 이제야 본심이 나오는군.”
“애초에 우리를 연구소로 받아들인 이유도 그거였겠지.”
“그런 주제에 이용요금까지 뜯어내려고 했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안 나오는군.”
“이용요금을 내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며? 그래서 나가겠다는데 뭔 말이 많아?”
“그, 그건…… 안 돼! 가지마! 연구소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 파멸이야!”
바이엔이 울먹거리며 소리쳤지만 개척자들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시엔이 아크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놈들이 연구소로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놈들의 추격을 받으며 정상까지 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비전투원도 많고.”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아크가 바이엔의 호위병에게 물었다.
“혹시 연구소에 이동수단으로 삼을만한 게 있습니까?”
“산악용 랜드 크루저가 3대 있습니다.”
“래, 랜드 크루저? 안 돼! 그건 라이오스 사의 사유재산이야!”
“1대에 최대 20명까지 탑승할 수 있습니다.”
이제 호위병조차 바이엔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연구소 직원과 마을 상인들 같은 비전투원과 산악 이동이 어려운 중장갑의 개척자들을 탑승시켜 주십시오. 저와 같은 라이트 아머를 입은 개척자들은 도보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잠시 말을 멈춘 아크가 씨익 웃으며 방벽 너머로 다가오는 넝마들을 바라보았다.
* * *
“때가 됐군.”
펄쩍펄쩍 뛰며 연구소로 전진하는 개구리(?)들의 뒤.
검은 로브의 사내가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연구소를 바라보았다.
실드가 해제되기 직전, 연구소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는 폭발이 일어났다. 그는 그 빛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세크리파이스. 자신의 몸을 폭탄으로 바꿔 적을 섬멸하는, 오직 신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다시 말해 잠입했던 형제는 죽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아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형제가 위대한 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게 바로 신을 섬기는 진정한 자세다. 가라, 신도들이여! 형제의 희생에 보답하라! 위대한 신의 의지를 행할 영광의 순간이 도래했도다!”
펄쩍펄쩍! 투투투투! 펄쩍펄쩍! 투투투투!
그의 명령에 케로족들이 총을 난사하며 연구소로 뛰어갔다.
그러자 연구소에서도 탄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먼저 반격을 시작한 건 연구소 주위에 설치된 터렛이었다. 사정거리가 긴 터렛은 상당히 까다로운 방어시설이었지만 그것도 실드의 보호를 받을 때의 얘기다.
푸슝! 푸슝! 푸슝! 콰콰콰콰콰!
서너 발의 RPG가 직격하자 터렛은 순식간에 잡템-기계부품-으로 변해버렸다.
단숨에 터렛을 처리한 케로족은 거침없이 연구소로 몰려들었다.
그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사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뭔가……?’
반응이 느껴지지 않는다.
케로족이 방벽을 넘고 있는데도 적이 저항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케로족이 총을 난사하며 진군하고 있어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주의를 기울여보니 연구소에서 반격을 가해왔던 것도 터렛뿐이었다. 마치 1명도 없는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하던 사내가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잠깐! 안 돼! 멈춰라!”
사내가 비명처럼 소리치는 순간!
콰쾅! 콰쾅! 콰쾅! 콰쾅! 콰콰콰콰콰콰!
케로족이 뛰어넘던 방벽을 따라 엄청난 불기둥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방벽을 뛰어넘던 300여 마리의 케로족이 한순간에 잿가루로 변해버렸다. 불길 반대편에서 3대의 랜드 크루저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빠져나온 것은 그때였다.
“소, 속았다! 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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