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57)
아크 더 레전드-157화(157/875)
[157] SPACE 2. 영웅 VS 영웅(PART : 1) (4)“아크, 안 돼! 너는…… 너만은 내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다!”
-무리다. 이놈은 네가 생각하는 놈이 아니야. 그리고 나 역시 이제 더 이상 아크라는 이름에는 미련이 없다. 그저 많고 많은 연방군 유저 가운데 하나일 뿐. 기갑무장!
붉은학살자가 버둥거리는 아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순간 붉은학살자의 뒤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웅크리고 있는 갑옷 같은 물체가 나타났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움직여 붉은학살자의 몸을 감싸는 갑주.
라마족의 배틀슈트!
그러나 같은 라마족의 배틀슈트라도 아크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닿는 것만으로 베일 듯한 날카로운 뿔이 솟아있는 투구가 달린 붉은 배틀슈트!
-그래도 한때 나의 숙적이라고 생각했던 유저니 마지막 선물로 내가 왜 붉은학살자라고 불리는지 보여 주마. 나와라! 쿠산캬의 비술, 멸절의 화륜!
위이이이이잉-!
붉은학살자의 머리 위로 맹렬하게 회전하는 빛의 톱니바퀴가 떠올랐다.
맹렬히 회전하는 수십 개의 톱니바퀴!
붉은학살자가 아크와 금발 청년을 가리키자 빛의 톱니바퀴들이 두 방향으로 나뉘어져 폭풍을 일으키며 쏘아져 날아갔다. 톱니바퀴가 눈앞으로 날아들자 금발 청년이 황급히 권총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쿠콰콰콰콰콰콰-! 콰직!
톱니바퀴가 총신과 충돌하며 스파크를 일으키기를 잠시.
몇 개의 톱니바퀴가 중첩되자 권총이 산산이 분해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뒤이어 소름 끼치는 소음을 발하며 피부를 긁어 대는 10여 개의 톱니바퀴!
수많은 라마 전사들과 싸우며 이곳까지 온 금발 청년의 생명력은 이미 바닥까지 내려가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톱니바퀴가 더해지자 금발 청년은 순식간에 갈가리 찢기며 무너져 내렸다.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참혹한 시체!
그러나 금발 청년의 최후도 아크만큼 비참하지는 않았다.
다른 톱니바퀴들은 허둥대며 도망치던 아크의 뒤통수를 직격! 불똥을 튀기며 파고들자 하이드 헬멧을 쪼개졌고, 아크는 머리에 톱니바퀴가 박힌 비참한 몰골로 쓰러졌다.
최후의 최후까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크였다.
-……허탈하군.
붉은학살자의 입에서 씁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머리에 톱니바퀴가 박힌 채 쓰러져 있는 아크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뭐지? 왜 이런 놈이?
붉은학살자는 아크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뉴월드 시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은하연방에서 활동하는 라마족의 첩자로부터 아크가 벨타나의 영웅으로 매스컴에 노출되었던 영상을 받아 본 것이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붉은학살자와 싸우던 아크는 분명 그때 확인했던 얼굴이었다. 그러나 쪼개진 하이드 헬멧 속에서 나온 것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서, 설마 하이드 헬멧?
“카프레 검술 3식! 갤럭시 소드!”
뒤쪽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세운 붉은학살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그 눈동자에 숲 안쪽에서 수십 개의 푸른 검영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날아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붉은학살자가 황급히 왼팔을 들어 올렸다.
-이, 이런! 실드!
카카카카카-! 카카카카-!
수십 개의 검신이 실드를 긁어 대며 불길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붉은학살자는 엄청난 압력에 떠밀려 서너 걸음씩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10여 미터가량 밀려났을 때, 실드가 깨져 나가며 검영이 붉은학살자를 뒤덮었다.
-크앗! 열파熱波!
붉은학살자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올라왔다.
엄청난 열기! 발을 디디는 바닥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 기운에 밀려난 검영이 잘게 부서지며 흩어졌다.
-네놈은 누구냐?
“나?”
붉은학살자의 시선에 향한 숲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의 가슴에 박혔던 것과 같은 모양의 푸른 광선검을 든 사내. 그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아크다.”
* SPACE 3. 영웅 VS 영웅(PART : 2) (1)
병사의 전문분야에 따라 필요 장비품도 달라지는 법.
타투인의 은하연방 본부 병기고도 그에 맞춰 몇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었다.
소총과 장검, 방어가 주를 이루는 돌격병 섹션, 권총과 단검이 진열된 정찰병 섹션, 각종 통신 장비와 서포트 팩의 통신병 섹션 그리고…… 첩보원용 장비품을 섹션이 있었다.
하이드 헬멧
아이템 타입 : 헬멧 착용 제한 : 레벨 31(신체코팅 필수)
방어력 : 5 내구도 : 30/30
얼굴 전체를 감쌀 수 있는 풀 헬멧입니다. 겉보기는 보통 라이더용 헬멧처럼 보이지만 이 제품에는 특별한 성능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전면 유리에 특수 코팅이 되어 있어 상대가 투시나 적외선 스코프를 사용해도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탐지되지 않는 전파 교란 장치가 탑재되어 상대가 추적이나 정보 확인을 사용해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을 착용자가 임의로 설정해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뭔가 나쁜 짓을 하고 싶은 당신! 하지만 이름만은 숨기고 싶은 당신! 그런 비겁한 당신에게 하이드 헬멧은 최선의 선택입니다.
※범죄를 저지를 경우 카오틱 수치는 원래대로 적용됩니다.
《상대가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찾은 하이드 헬멧!
계획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네?”
슬레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아크 님이 되라니요?”
“말한 그대로입니다. 하이드 헬멧을 쓰고 슬레이 님이 제 이름과 얼굴을 쓰는 겁니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기회죠.”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후작에게 퀘스트를 받기는 했지만 우리는 아직 아타마스의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바로 전장에 투입되면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없겠죠. 슬레이 님도 경험이 많으니 잘 아시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뜻하지 않은 함정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1명은 적의 눈을 피해 주변 상황을 살펴야 퀘스트 완료에 필요한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역할을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했지만 슬레이와 그레온, 멜리나 님은 군복무 경험이 없고, 제 부하들은 NPC라 결국 제가 적임자라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그러나 붉은학살자는 아크를 지목했다.
아크가 빠져 버리면 아예 붉은학살자의 관심조차 끌 수 없었다. 그때 하이드 헬멧을 보고 감이 팍 왔다.
슬레이를 ‘아크-II’로 만들면 된다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왜 하필이면 접니까?”
“일부러 도전장을 보낼 정도니 붉은학살자는 저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벨타나에서 저와 싸워 봤던 라마족에게 얻은 자료겠죠. 그러니 제가 검과 총을 함께 사용하는 전사 계열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겁니다.”
이게 슬레이여야 하는 이유였다.
친위대원들은 NPC니 아예 논외. 멜리나는 여성 힐러니 생각할 것도 없고, 총기 전문인 그레온 역시 아크와는 아예 직업군이 다르니 위장해 봤자 금세 들통 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같은 전사인 슬레이가 적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속일 수 있을까요?”
“속을 겁니다. 슬레이 님을 저라고 믿게 만들 수 있는 단어가 있으니까.”
“단어?”
“루시퍼.”
“루시퍼? 뭡니까, 그게?”
“암호 같은 거라고 해 두죠. 어쨌든 정말 붉은학살자가 제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놈이라면 분명 그 단어에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게 나라는 증거가 될 테니까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슬레이는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이런 부탁을 할 사람은 슬레이 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죠? 이건 기회라고요. 그건 꼭 전장에서의 얘기만이 아닙니다. 슬레이 님에게도 기회라는 말입니다.”
“네? 제게도 기회라고요?”
“비행정에서 영웅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크가 쭈뼛거리는 슬레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자, 자, 슬레이 님, 제 얘기를 들어 보세요. 붉은학살자는 은하연방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라마족 영웅입니다. 그런 자가 도전장을 보내 왔으니 설사 전장이라도 가능한 한 1대1로 승부를 보려고 하겠죠. 다시 말해 슬레이 님이 저로 위장하면 라마족 영웅과 1대1로 승부할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놈을 쓰러뜨린다면…….”
“이, 이긴다면?”
슬레이가 침을 꼴깍 삼키며 되물었다.
아크는 그런 슬레이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타마스의 영웅 슬레이가 탄생하는 거죠.”
“아, 아타마스의 영웅!”
“파고스 화산에서 제가 하이드 헬멧을 쓰고 다녔던 거 기억하시죠? 그게 실은 유명세 때문이었습니다. 벨타나의 영웅으로 귀환해서 은하연방 TV에 하도 얼굴이 팔려서 맘 편하게 다닐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게다가 여자 유저들은 또 왜 그렇게 달라붙는지…….”
“여, 여자 유저!”
“저야 그런 쪽에 워낙 관심이 없어서 귀찮을 뿐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예를 들면 근처에 점찍어 둔 여자 유저가 있는 사람이라든가…….”
“컥! 흠, 흠. 아니, 뭐…….”
슬레이가 허둥거리며 에스퍼 섹션을 돌아다니는 멜리나를 곁눈질했다.
아크는 슬레이와 그레온이 얼마 전부터 자신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멜리나가 아크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사실 슬레이와 그레온이 이번 퀘스트에 참가하겠다고 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둘은 멜리나가 아크에게 부쩍 호감을 가지고 된 게 아크가 ‘벨타나의 영웅’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레벨과 실력이 비슷한―둘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크가 전쟁영웅이 됐으니 기회만 주어지면 자신들도 전쟁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뭐 그게 아니라도 술값으로 팔릴 운명이었지만.
어쨌든 아크의 사탕발림은 효과가 있었다. 여자 유저가 귀찮을 정도로 따라붙는다는 말이 직격탄이 됐으리라.
“후후후, 하겠습니다!”
슬레이가 아크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그리고 장밋빛 청춘을 꿈꾸던 젊은 유저는…….
* * *
아크의 눈길이 붉은학살자의 발치로 향했다.
머리에 톱니바퀴가 박힌 채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 있는 사내. 장밋빛 청춘을 꿈꾸던 젊은 유저의 허망한 말로였다.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슬레이가 이겨 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같은 전사 계열이라도 아크는 공격형인 파이터, 슬레이는 탱커인 가디언이다.
슬레이가 맥없이 당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붉은학살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 아크인 척하느라 주력 장비인 방패를 버리고 광선검 하나만을 들고 싸웠으니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슬레이의 결정적인 패인은 따로 있었다.
‘이 녀석, 강하다!’
은하연방까지 이름이 알려진 라마족의 영웅이다.
명성이란 거저 얻어지는 법이 없다. 그만한 명성을 얻은 유저라면 당연히 강하리라. 그러나 붉은학살자의 강함은 아크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건가?’
슬레이와의 대화로 붉은학살자는 그를 아크라고 확신했었다. 그리고 아크는 그렇게 확신하는 붉은학살자의 반응으로 그가 루시퍼라고 확신했다.
루시퍼라면 강한 게 당연하다.
슬레이가 일방적으로 쥐어 터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 본래 속성이 가디언이라 방어력과 체력이 빵빵해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으면서도 10분은 버텨 줬으니 맡은 임무는 완수한 셈이다.
‘이제 남은 건 내 몫이다!’
그때 아크를 바라보던 붉은학살자가 입을 열었다.
-……결국 속임수였다는 말인가?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나로서도 오히려 그 편이 이해하기 쉽지. 하지만 네가 진짜 아크라는 건 뭐로 증명하겠나?
“실력으로.”
아크가 계승자의 검을 움켜쥐었다.
순간 단봉 끝에서 푸른 광선이 솟아 나왔다.
“나도 한 가지만 묻지, 루시퍼. 네가 생각하는 궁극의 목표가 뭐지?”
아크의 질문에 붉은학살자가 움찔하며 눈매를 좁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입가에 호전적인 미소를 지으며 붉은 광선검을 들어 올렸다.
-궁금하다면 실력으로 알아내 봐라.
퉁-!
붉은학살자의 발밑이 움푹 꺼져 들어갔다.
동시에 붉은학살자의 몸이 탄환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그를 뒤따르듯 어둠 속에 잔상을 남기며 길게 늘어지던 붉은 섬광이 호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콰직! 콰지지지지지-!
검을 들어 올리자 격렬한 스파크와 함께 어깨가 떨어져 나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광선검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 공격 속도가 빠르지만 묵직한 철검처럼 상대를 압박하는 힘이 부족하다. 그러나 폭발적인 가속이 더해지자 그런 단점이 사라졌다.
“크윽!”
아크가 서너 걸음 물러났다.
-아직이다! 아직 네놈은 증명하지 못했다!
붉은학살자의 광선검이 폭발하듯 분산하며 아크를 추격해 왔다.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맹공!
첫 일격은 광선검의 단점을 보완하는 일격이었다면, 이어지는 검격은 광선검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연속공격이었다.
아마도 다른 유저의 공격이었다면 당했을 것이다.
느닷없이 이런 무지막지한 기습 공격을 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상대는 루시퍼. 아크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고 있었다.
덕분에 시작과 동시에 전투 모드 ON!
“그러니까 네놈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지 않아도…….”
아크가 스텝을 밟아 검격을 흘려 내며 붉은학살자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멍청한 놈, 죽고 싶어서…….
“기갑무장!”
아크의 입에서 폭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순간 등 뒤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웅크린 자세의 갑옷이 솟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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