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63)
아크 더 레전드-163화(163/875)
[163] SPACE 5. 그 남자 (2)“아버지!”
현우가 벌컥 병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한참 게임에 열중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 캡슐에서 나왔을 때였다.
-부재 중 전화 : 3, 문자 메시지 : 1
습관처럼 확인한 핸드폰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어? 어머니한테 온 거잖아? 세 통이나? 무슨 일이 있나? 헉!”
별생각 없이 문자를 확인하던 현우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싸움이 나서 아빠가 좀 다치셨다. 확인하는 대로 병원으로 와라. 많이 다친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때부터 현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에서 뛰어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달리는 내내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연결되지 않은 탓에 불안감을 더욱 커졌다. 그때도 그랬다. 4년 전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긴 투병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때도 이런 문자 메시지로 사고 소식이 전해졌고,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었다.
‘만약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제발! 제발 별일이 아니기를!’
현우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병원에 뛰어 들어갔다.
“여기 박소미와 권화랑이라는 분 어느 병실에 계십니까?”
“1132호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병실을 찾아 문을 열었을 때였다.
“어라? 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권화랑이 놀란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으로 오는 내내 걱정했던 것과 달리 권화랑은 멀쩡한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 있었지만 아무리 심각하게 생각해도 생명에 지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현우는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히며 권화랑에게 다가갔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놀라? 왜?”
“왜긴 왜예요? 아버지가 다치셨다는 연락을 받아서죠!”
“아, 엄마가 연락했나 보구나. 나 참, 너에게까지 연락할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권화랑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결혼하니 좋긴 좋구나. 다쳤다는 말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들도 있고.”
“지금 농담이 나와요? 대체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예요?”
“전화? 그러고 보니 네 엄마가 탈의실에 가지고 들어간 모양이구나. 알잖아. 우리 핸드폰 하나밖에 없는 거.”
“어머니요? 어머니는 또 왜요?”
“오늘이 네 엄마 정기검진일이거든. 병실도 그래서 빌린 거다. 네 엄마도 이제 나이가 있지 않냐? 노산에 임신 초기라 이래저래 검사받을 게 많아서 병실을 빌렸다.”
“그러니까 일단 두 분한테는 아무 일도 없는 거죠?”
“없다니까.”
현우는 그제야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마는 왜 다치신 거고요?”
“별일 아니다. 주차장에서 잠시 시비가 붙었을 뿐이야.”
“시비? 설마 맞았다는 말이에요?”
“이 자식이 상상하는 것 하고는. 이 몸이 어디 가서 맞을 사람이냐? 몸싸움하다가 살짝 부딪친 거야. 내 이마와 그 녀석의 코가. 아주 살짝.”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마와 코가 부딪히는 장면을 상상하자 곧바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 설마 박치기를 한 거예요?”
“어라? 그게 이름도 있었냐? 난 또 내가 처음 개발한 기술인 줄 알았지. 아쉽군. 멋진 기술 명을 생각해 놨는데.”
“맙소사! 지금 농담이 나와요?”
“못할 건 또 뭐냐?”
“아버지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맨손으로 곰도 때려잡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이마에 반창고를 붙여야 할 정도라면 그 사람은 코가 뭉개졌을 거 아니에요. 아버지가 무슨 질풍노도 시기의 불량 청소년입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고를 친 거예요? 이제 어쩔 거예요? 그쪽에서 고소라도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런 사고를 치신 거냐고요?”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권화랑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 엄마가 그 자식들이 먼저 시비 거는 장면을 핸드폰으로 찍어 놨거든.”
박소미가 핸드폰을 들고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애초에 박소미는 권화랑이 사내들에게 당하리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걱정했던 것은 오히려 그 반대.
권화랑이 울컥해서 사내들을 전치 18주쯤 만들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폰카로 찍고 있었던 것!
“이런 게 부부 사이의 신뢰라고 할 수 있지.”
그걸 신뢰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도 엄청 강해지셨네요.”
현우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일단 피해자를 만나 봐야겠어요. 여기 주차장에서 시비가 있었다면 그 사람들도 이 병원에 있겠죠?”
“글쎄 그럴 필요 없다니까. 엄마가 찍은 영상이 아니라도 놈들이 고소할 일은 없어. 설마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일을 벌였겠냐? 나름대로 견적이 나오니까 그런 거야. 그런 놈들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절대 고소하지 못해.”
“그런 놈들?”
현우가 미간을 좁히며 되묻자 권화랑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냥 시비가 붙은 게 아니군요. 그렇죠?”
“아니, 그게…….”
“아버지.”
현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눈알을 굴리던 권화랑이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그래, 놈들과 얘기를 나눠 본 건 아니지만 누가 보낸 놈들인지는 대강 짐작이 간다. 아마도 내가 알아보고 있는 놈들 가운데 누군가가 보낸 놈들이겠지.”
“아버지가 알아보던 사람들이라니요?”
“택산 지구의 부동산 실소유주들 말이다.”
“아, 아버지가 그걸 왜?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네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나서지도 않았어.”
“아버지가 나설 일이 아니라니까요.”
“그건 내가 할 소리다.”
권화랑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그동안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택산 지구의 부동산 폭락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비리가 얽혀있어. 그건 오늘 일만으로도 알 수 있지. 뒤가 켕기니까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는 거다. 내 아들 녀석의 재산이 그런 빌어먹을 자식들 때문에 몽땅 날아갈 판인데 모르는 척하라는 게 말이 되냐?”
“하지만…….”
현우가 답답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었다.
택산 지구의 부동산 폭락, 그 생각만 하면 현우 역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속이 쓰렸다. 그럼에도 현우가 잠자코 있는 것은 권화랑의 말처럼 속사정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루시퍼가 대한민국 정부를 협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그 발전소가 자리 잡은 곳이 택산 지구 옆이고, 그 때문에 신도시 개발에 편승해 한몫 챙기려던 ‘정재계 유명 인사’라는 자들이 급하게 부동산을 처분하며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사실 처음 상황을 알았을 때 현우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지금 루시퍼의 위협에 맞서 싸우는 사람은 현우와 몇몇 유명 게이머들이다. 그러나 비상대책 위원회라는 자들은 정작 그들에게는 국가보안법 운운하며 원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부동산으로 서민의 피나 빨아 먹으려는 놈들에게는 정보를 낱낱이 알려 준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비상대책위원회인지 뭔지를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그리고 증거가 있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들에게 다시 땅을 사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들이 다시 땅을 산다고 해도 현우의 땅이 팔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정재계 인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만 더 꼬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택산 지구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건 원전이 폭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원전이 폭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생기면 가격은 다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겠지. 아니, 이전보다 더 많이 올라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원전 폭발을 막는 방법은 루시퍼와의 승부를 이기는 것! 즉 이기면 대박, 지면 쪽박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현우는 얼마 전까지 이 승부에 자신이 없었다.
루시퍼와의 승부는 둘째 치고 놈이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루시퍼를 찾았다. 그리고 정면 승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한 번 이기기까지 했다.
덕분에 현우는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한 번 이긴 상대다. 두 번 이기지 못할 것도 없어. 루시퍼 자식, 택산 지구 근방의 원전을 볼모로 잡은 게 나를 자극하기 위해서라면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해 주마. 택산 지구의 부동산이 루시퍼와의 승부에 건 판돈이라면 두 배, 세 배로 뻥튀기해서 돌려받아 주겠어! 그리고 덤으로 비열하게 부동산을 매각한 놈들이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이게 현우 나름의 복수방법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권화랑이 끼어들어 위험한 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을 권화랑에게 모두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택산 지구의 부동산 문제가 루시퍼 때문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우의 추측. 확실하다는 증거는 없는 것이다.
아니, 그게 진짜 루시퍼의 짓이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이유일 뿐. 그것과 정재계 인사라는 놈들이 부동산을 팔아먹고 먹튀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권화랑을 말릴 이유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현우는 비장의 결국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생각은 알겠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거기에 정재계 인사들의 비리가 얽혀 있다면 너무 위험해요. 오늘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잖아요. 뭐, 아버지 혼자라면 나도 크게 걱정하지 않겠지만, 어머니는요? 어머니는 지금 임신 초기라고요. 만의 하나라도 내 동생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나도 그게 걱정이다.”
권화랑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았지.”
“방법이라니요?”
“나다. 인마!”
빠악-!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 섬뜩한 기억이 떠오르게 만드는 목소리, 그리고 뒤통수에서부터 대뇌와 소뇌를 관통하는 저릿저릿한 손맛(?)! 무엇보다 신장이 180이나 되는 건장한 남자의 뒤통수를 거리낌 없이 후려갈길 수 있는 담력(?)!
현우가 기억하는 한 그런 사람은 1명뿐이었다.
“며, 명룡이 형?”
“그래도 알아보기는 하는구나. 싸가지없는 놈. 기껏 이 몸의 독문무공을 아낌없이 전수해 사람으로 만들어 놨더니 대기업 이사 됐다고 코빼기도 안 비쳐?”
바짝 치켜 올라간 눈매의 30대 사내의 이름은 이명룡.
현직 경찰청의 사이버 수사팀장으로 한때 현우에게 태권도를 지도했던 남자였다.
그의 철학은 ‘사람이든 쇠든 패면 팰수록 강해진다.’
이명룡은 그런 자신의 철학을 현우를 통해 증명하기 위해 밤낮 없이 두들겨 패 몇 번이나 기절시켰던 뜨거운 교육열(?)을 가진, 이가 갈릴 정도로 존경스러운 스승이었다.
“며, 명룡이 형이 여기는 어떻게?”
“내가 불렀다.”
대답한 것은 권화랑이었다.
그러자 이명룡이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권화랑의 이마에 붙어 있는 반창고를 보더니 키득거리며 말했다.
“큭큭큭. 정말 가관이오. 형님도 이제 완전히 할배가 다 됐나 보오. 동네 양아치들에게 얻어맞고 다니다니. 경찰청의 마징가라는 이름이 울겠습니다.”
“마징가는 누가 마징가야? 그리고 이건 맞은 게 아니라고 했잖아! 박치기라는 새로운 필살기의 부작용이야.”
“그게 그거지. 싸움이란 원래 나는 안 다치고 상대는 피떡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오? 아니, 뭐 됐소. 상황은 아까 전화로 대강 들었고. 내게 원하는 게 뭐요?”
“네가 얼굴마담이 되어 줘야겠다.”
“얼굴마담? 성전환 수술이라도 받으란 말입니까? 그건 형님 부탁이라도 싫은데요.”
“자식이 간만에 만나서 헛소리는.”
권화랑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화로 설명한 것처럼 나는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 하지만 역시 내가 전면에 나서는 건 너무 위험해. 음, 나는 이제 가장이니까.”
“뭘 그리 우쭐거리면서 말합니까?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장가간 것처럼.”
“너는 못 갔잖아.”
“시비 걸려고 불렀소? 나 그냥 가?”
“네가 자꾸 떽떽거리니까 그러지. 어쨌든 하던 말을 계속하자면, 난 이제 가장이라 위험한 일에는 나서기가 힘들다는 말이야. 놈들이 일부러 병원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일종의 경고야.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고, 계속 파고들면 나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겠지.”
“뭐 그런 놈들이 자주 써 먹는 방법이지.”
“그래, 그래서 네가 얼굴마담이 되어 달라는 말이다. 이번 일로 겁을 집어먹은 나는 손을 떼고 우연히 이 사건을 알게 된 후배 경찰이 뒤를 캐는 것으로 하자는 말이지.”
“아하!”
이명룡이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가족이 있는 형님은 은근슬쩍 뒤로 빠질 테니, 홀몸이라 칼침을 맞든 경찰청에서 잘리든 울어 줄 사람 하나 없는 내가 형님 대신 총알받이가 돼라?”
“왜, 싫으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이명룡이 버럭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권화랑을 바라보다가 히죽 웃었다.
“적성에도 안 맞는 일을 맡아서 요즘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아쇼? 그런 건수가 있으면 얼른얼른 가져왔어야 하는 거 아니오? 오케이, 접수. 이 건수, 내가 맡겠소.”
현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가장 감당하기 힘든 남자가 출현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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