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93)
아크 더 레전드-193화(193/875)
[193] SPACE 7 현상금 (2) [한심하군.]마치 고대 신전 같은 분위기의 건물.
넓은 홀에 로브를 입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절을 하듯 바닥에 엎드려있었다.
그들의 머리가 향한 곳은 중심에 자리잡은 단상. 그 단상 위에서 검은 형체가 일렁거렸다. 그러자 로브를 입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스며들어왔다.
[내가 지난 10여 년 간 이 계획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잘 알 것이다. 위대한 신의 존재를 이 성계에 영접하기 위해 마련한 게이트는 4개. 그러나 하나는 채 발동조차 못해보고 파괴되었고, 다른 3개 역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파괴되었다.]“면목이 없습니다.”
[면목이 없다…….]잠잠하던 검은 형체가 확 퍼지듯이 확대되었다.
[그런 말 한 마디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음성이 아닌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고함 소리. 일갈이 터지자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머리를 감싸쥐고 신음을 흘리며 떠듬거렸다.
“부, 부디 용서를!”
“이번 실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벌충하겠습니다!”
“게이트 역시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멍청한 놈들, 게이트가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거라면 내가 10년이나 공을 들였겠는가? 수백 년 간 위대한 신의 재림을 방해해온 이 성계의 포스가 약해지기는 시기를 기다리기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성계의 포스가 다시 약해지는 시기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기에 나는 너무 쇠약해졌다.]“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강제로라도 시기를 앞당기는 수밖에 없겠지.]“강제로?”
[포스의 균형을 우리 손으로 무너뜨리는 것이다.]“그건 본단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본단이 만들어지고 수십 년에 걸친 노력에도 아직 포스의 근원지를 알아내지는 못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이번에 잠시 약해졌던 포스가 다시 활성화될 때 내 감각에 마침내 몇 군데 의심되는 성좌가 감지되었다. 이제부터 본단은 총력을 기울여 그 성좌의 조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지.]“무엇입니까?”
[이번에 게이트를 파괴한 자들. 놈들을 방치한다면 다시 게이트를 만들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에게 세 번의 기회는 없다. 아마도 다음 시도마저 실패로 돌아간다면 한계에 달한 내 몸은 조각조각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원대한 본단의 염원과 함께. 그러니 계획을 진행하기 전에 방해가 될만한 존재는 확실하게 정리해 두어야한다. 펜릴!]“명령하십시오. 대공!”
한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그러자 단상 앞에서 또 다른 검은 형체 네 개가 떠올랐다.
[이들은 나의 권속. 붕괴되는 게이트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신의 파편이다. 이들을 네게 붙여줄 테니 우리를 방해한 자들을 찾아라. 그리고…… 죽여라! 놈들이 노멀이라면 몸을 찢고, 개척자라면 영혼을 찢어라! 영혼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질 때까지! 너는 이제부터 오직 그 목적 하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이다.]“명령대로 수행하겠습니다!”
사내가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몸을 조아리고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위대한 신의 뜻을 위해서!”
* * *
“건방진 놈이로군.”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낱 개척자가 감히 은하연방의 최고 귀족을 오라 가라 하다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후작님께 잘 보인 이유는 이럴 때 써먹기 위해서니까요.”
“내 기억에는 네가 딱히 잘 보이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아직까지는 이라…….”
중년인이 묘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뭐 일단은 그런 걸로 해두지. 어차피 나도 앵무새처럼 같은 소리만 지저귀는 의원들의 목소리에 질려 바람 좀 쇠고 싶던 참이니까. 기왕 노닥거릴 거라면 너와 어울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정치인은 영웅과 어울리면 주가가 오르는 직업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중년인은 마틴 후작.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청년은 바로 아크였다.
“좀 전에는 한낱 개척자가 건방지다느니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게 그렇다는 말이지. 적어도 연방군 내에서는 네 이름이 나보다 더 잘 알려져 있을 거다. 병사들에게는 거의 인기스타 수준이지. 봐라, 지금도 네게 사인이라도 한 장 받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병사들이 널려있지 않나?”
사실 아크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벨타나와 아타마스에서 영웅 칭호를 받았지만, 벨타나에서는 발렌시아와 얽혀 투옥되었다가 이스타나로 귀환하자마자 홍보 행사에 끌려 다녔다. 아타마스에서도 전투가 끝나자마자 돌아와 전후에 연방군과 만날 기회는 없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다지 실감하지는 못했지만 막상 연방군을 만나보니 아크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인기를 실감한 것은 고속정을 따라 이스타나 궤도의 수비대 본부에 들어섰을 때였다.
“통신으로 인사드린 보난 소위입니다!”
실버스타를 호위해온 고속정에서 보난이라고 소개했던 장교가 달려나왔다.
그리고 상기된 표정으로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아크 님의 명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 행동이 무례했다면 사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12궤도 수비대 본부에 방문해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볼티어 중령 님과 마틴 후작님에게는 연락을 보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바로 시정조치 하겠습니다!”
UFO를 타고 이스타나 궤도에 불쑥 나타난 사람이다.
다른 개척자였다면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고압적인 태도로 조사를 진행했으리라.
그러나 보난은 마치 귀빈을 영접하는 태도로 아크를 대했다.
그건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죄송한데 악수 좀 해주시겠습니까?”
“제 군복 안깃에 사인을 해주시면 자자손손 가보로 물려주겠습니다!”
실버스타에서 내리자마자 병사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내게도 사인 하나 해주겠나? 내 딸도 군인인데 자네 팬이라네.”
심지어 백발이 성성한 12수비대장까지 사인지를 내밀 정도!
아크는 얼마 전 게임특종에서 발표한 유저 순위 베스트 50에도 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게임특종이 은하계 전체의 통계를 내기 위해 은하연방과 라마족, 아슐라트의 유저가 모두 모이는 우주 개척지에서의 인지도를 기준으로 삼은 탓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물론 붉은학살자조차 순위에 들어있지 않은 것. 그러나 은하연방, 특히 군부로 범위를 좁혀놓으면 아크의 인지도는 어떤 유저도 범접하기 어려운 넘사벽!
그런 소동은 마틴 후작이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었다.
그러나 아직도 몇 몇 병사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사인지를 들고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마틴 후작이 그런 병사들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군.”
“왠지 빈정거리는 말로 들리는데요?”
“아니, 진심이네. 매번 날 놀라게 해주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마틴 후작이 격납고에 세워져 있는 은색 우주선 실버스타를 돌아보았다.
“이게 네가 타고 왔다는 UFO인 모양이군. 3등급 프리킷함처럼 보이는데…… 오랫동안 군부에 몸 담아온 나도 처음 보는 형태야. 아마라에서 찾았다고 했나?”
“네.”
아크가 끄덕이자 마틴 후작이 실소를 터뜨렸다.
“연락이 두절됐다고 해서 죽었나 했더니 UFO를 타고 나타나질 않나, 게다가 3등급 프리킷함씩이나 되는 물건을 주웠다니, 나라도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주운 건 우 주선만이 아니라고 했지? 네가 말한 게 저 녀석이겠지?”
마틴 후작의 눈이 아크의 뒤쪽으로 향했다.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불안하게 눈알을 굴려대는 햄스터.
“이름이 토리라고 했나?”
“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문제는?”
“그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슈우우우우—!
그때 격납고 안으로 1기의 고속정이 날아 들어왔다. 날개에 새겨진 연방정부의 마크를 확인한 마틴 후작이 빙긋 웃으며 끄덕였다.
“때마침 오는군. 실무자가.”
그 사이에 격납고에 착륙한 고속정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1명은 아크에게 《추격대를 구출하라》퀘스트를 맡겼던 중앙정부의 내사과장 볼티어 중령. 그리고 볼티어의 뒤를 따라 내리는 긴 머리의 여자장교는 이리나였다.
* * *
‘무사히 돌아와 있었구나.’
아크가 이리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나라카를 탈출할 때였다.
그때 이리나가 타고 있던 비행정은 케로족의 총격에 맞아 연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볼티어와 함께 온 걸 보니 무사히 돌아온 모양이다.
여기서 잠시 설명하자면 페어리로 부활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레벨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등록된 페어리와 사망장소의 거리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개척자가 사망했다는 정보가 페어리에 전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혹성이라면 잘해야 몇 시간이 더 늘어날 뿐이다.
그러나 이스타나에 등록해두고 하르마돈 성좌처럼 수십 만 광년이나 떨어진 혹성에서 죽어버리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사망 정보가 페어리에 접수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만 일주일. 거기에 레벨에 따라 올라가는 부활 시간까지 합하면 열흘은 걸리리라.
이게 서비스를 시작한지 4달이 넘었음에도 아직 레벨 200대의 유저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였다. 갤럭시안의 사망 페널티는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어쨌든 아크가 이스타나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여드레. 그런 아크보다 먼저 돌아와 있다는 것은 그녀가 무사히 아마라를 탈출했다는 뜻이었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흠, 흠.”
헛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움찔 고개를 돌리자 볼티어가 피식 웃었다.
“내 부하직원의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을 생각이십니까?”
“네? 아니…….”
“마음은 이해하지만 일단 안건부터 해결하죠.”
볼티어가 아크와 이리나를 번갈아 보며 놀리듯이 말했다.
덕분에 괜히 무안해진 아크는 얼굴을 붉혔지만 이리나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크 님. 일단 제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쳐주신 것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아크 님의 활약은 이리나 소위를 통해 전해들었습니다. 덕분에 이리나 소위와 카멜 상사, 하진 하사 등, 5명은 일주일 전에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아, 네…….”
“남은 문제는 저 친구의 처우뿐이군요.”
볼티어의 눈이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토리에게 향했다.
“자료를 확인해보니 저 친구는 아크 님이 강제 징용되었던 사건의 공범으로 2년형을 받았던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따라서 현재는 엄연히 탈옥수의 신분이죠.”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자의에 의한 탈옥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이리나 소위가 탈주범들을 추격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것. 그런 부분은 확실히 정상참작이 될 겁니다. 하지만 형량이 아직 70%이상 남아있는 상태라 집형 유예를 받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방식이라면?”
“현재 토리 이외의 탈옥수들, 그러니까 캐츠족들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라에서 사라진 뒤로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죠. 그러니 저희 쪽에서 그들을 잡기 위해 토리를 정보원으로 계속 이용해야한다고 요청하면 놈들을 잡을 때까지 재 수감을 미룰 수 있겠죠. 그리고 놈들이 잡히면 그 공로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캐츠족이 잡히든, 잡히지 않든 재 수감될 일은 없다는 말이죠. 단!”
말을 멈춘 볼티어가 이리나를 돌아보았다.
“이건 탈옥수 체포 임무를 맡은 이리나 소위가 처리해주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볼티어의 말에 아크의 얼굴이 흐려졌다.
결국 볼티어의 말에 의하면 이번 사안은 편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실무자인 이리나. 상관인 볼티어나 마틴 후작이 인정해도 실무자인 이리나가 거부하면 성사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리나가 누구인가?
어떤 상황이라도 한번 정해진 규칙은 칼 같이 지키는 여자! 그런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아크는 그런 이리나가 이런 식의 편법을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리나가 아크와 토리를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불어내며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죠.”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아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볼티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마틴 후작에게 돌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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