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197)
아크 더 레전드-197화(197/875)
[197] SPACE 8 그 남자 (3)아크가 미간을 찡그리며 쿠라칸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레피드가 아크를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됐다. 네가 나설 것까지도 없어. 금방 처리하고 돌아오지.”
레피드가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사무실 밖의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쿠라칸과 10여 미터 거리를 두고 마주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하지.”
“그래야지. 후후후, 이번에야말로…….”
탕—! 탕—! 탕—!
쿠라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울렸다.
‘뭐, 뭐야 저 속도는?’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크는 레피드라는 유저에게 관심이 있었다. 때문에 주의 깊게 보고 있었는데도 그가 총을 뽑아드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속사! 게다가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도 상상을 초월해서 3발을 쐈는데도 총성이 한 발처럼 들릴 정도였다.
갤럭시안의 총기에는 기본적으로 ‘발사속도’라는 옵션이 붙어있다.
그러나 그건 스나이퍼 라이플이나 RPG처럼 데미지가 높은 무기, 혹은 기관총처럼 연사형 총기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리볼버 같은 권총은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가 곧 발사속도.
그러나 데미지와 장전수가 적고, 격발 시 반동이 커서 명중률도 낮은 탓에 실제로 권총을 사용하는 유저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레피드의 속사는 그런 단점을 보완하고도 남는 수준. 거기에 놀라운 명중률의 사격솜씨까지 갖추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 쿠라칸이라는 놈은 이미 몇 번 레피드에게 당한 모양인데…… 레벨도 높지 않아 보이는 저 권총 하나로 기관총을 사용하는 쿠라칸과 상대해서 쓰러뜨렸다는 건가? 대체 왜 권총만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하군. 하지만…….’
핑—! 핑—! 핑—!
“후후후, 이제 네 패턴은 다 파악했다!”
쿠라칸이 실드로 얼굴을 가린 자세로 히죽거렸다.
그리고 기관총을 들어올리는 순간, 또 다시 총성이 울리며 기관총의 총구가 튕겨져 올라갔다. 레피드가 기관총을 맞춰 총구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저런 식으로 총격을 막는 방법도 있었군.’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솜씨!
그 뒤의 총격전은 레피드의 일방적인 우세로 진행되었다.
레피드는 그 뒤로도 놀라운 속사와 명중률을 선보이며 탄환을 뿜어냈고, 그때마다 쿠라칸의 급소에서 피가 솟구쳤다. 연속적으로 어깨에 탄환을 박아 넣어 실드가 장착된 팔이 축 늘어지면 다음은 여지없는 헤드샷! 반면 쿠라칸의 탄환은 매번 엉뚱한 곳을 향해 날아가기 일쑤였다. 발사 직전에 레피드가 기관총을 맞춰 번번이 총구 방향을 틀어버렸기 때문이다.
“역시 굉장하다!”
“대체 움직이면서 어떻게 저렇게 맞추는 거지?”
그때마다 어느새 모여든 구경꾼들에게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아크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대체 왜 저러는 거지?’
확실히 총격전은 레피드의 우세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의 눈에는 그 장면이 불안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실력 차이는 명백했다. 번번이 탄환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쿠라칸. 그러나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람은 오히려 레피드였다.
‘그러고 보니 저 놈이 나타나기 전에도 나에게 소리치다가 쓰러질 뻔 한 적이 있었어. 그때는 그냥 흥분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확실하다. 역시 레피드는 지금 어딘가 몸이 안 좋은 거야. 감기 같은 것에 걸린 거겠지. 그럼에도 저 정도로 싸우는 건 놀랍지만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어. 이런 상태로 총격전이 진행되면…….’
“헉헉헉! 헉!”
그때 갑자기 레피드가 무릎을 꿇었다.
쿠라칸의 총에 맞아서가 아니었다. 그냥 힘을 잃고 주저앉은 것이다. 레피드는 입술을 악물며 몇 번이나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덜덜 떨리는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켜보던 아크가 한 걸음 내딛으며 소리쳤다.
“잠깐! 쿠라칸, 기다려!”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동시에 총성이 울리며 레피드의 몸에서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맥없이 쓰러진 레피드가 아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크! 나는…… 나는 너를…….”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
그때 또 다시 수십 발의 탄환이 레피드의 몸을 관통했다.
레피드가 쓰러지기 전까지 거의 일방적으로 진행된 총격전이었다. 때문에 수십 발의 탄환을 맞았음에도 아직 레피드는 생명력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탄환에 관통하는 순간 레피드는 간신히 유지되던 뭔가가 끊어진 듯 머리가 맥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뒤이은 탄환 세례!
마침내 레피드의 생명력이 0이 되어버렸다.
“해, 해냈다!”
쿠라칸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얼른 다가와 레피드의 시체에 발을 올려놓고 셀카 한 방!
“크하하하하! 권총 하나 들고 설치는 놈이 언제까지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원래 싸움이란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이 승자! 이로서 이 몸의 자서전에 들어갈 또 하나의 전리품이 생겼군. 이제 아크라는 놈만 때려잡으면 이 따위 섹터는 더 볼 일도 없어. 어이, 네놈들! 내 실력을 똑똑히 봤겠지? 이제 이 녀석은 내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 그 방귀 좀 뀐다는 아크 자식을 불러와! 이 녀석처럼 요절을 내줄 테니까!”
쿠라칸이 레피드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빠직!
순간 아크의 머리에서 뭔가가 뚝 끊어졌다.
이유는 모른다.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크가 쿠라칸을 노려보며 다가갔다.
“내가 아크다.”
“뭐? 네놈이 아크라고?”
“그래, 결투를 신청할 생각이라면, 기쁘게 받아주지.”
“자, 잠깐 기다려! 먼저 회복 좀 하고!”
쿠라칸이 얼른 회복앰플을 꺼내 마시며 소리쳤다.
아크는 기다려 주었다. 쿠라칸이 생명력과 정신력을 만땅으로 회복할 때까지. 그러는 사이 아크는 멜린과 헤겔에게 그동안 쿠라칸이 20여 번이나 결투를 신청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바퀴벌레보다 끈질긴 놈이야. 그 때문에 레피드도 지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네. 괜히 자네까지 귀찮아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군.”
“어이! 됐다! 시작하자! 작살을 내주마!”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쿠라칸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레피드처럼 적당히 봐주는 사람이 아니다.”
검 자루에서 푸른 섬광이 솟아올랐다.
* * *
“어떤가?”
“심신이 극도로 약해진 상태입니다. 어제 들렀을 때 고용인이 요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는 것 같다고 해서 제가 주의를 주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소용없었던 모양이군요. 그리고 근래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져 감기가 갑자기 악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괜찮겠지?”
“일단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아시다시피 아드님의 경우는 일반인과는 사정이 달라서 말입니다. 흔한 감기 하나라도 상황이 갑자기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니 항상 조심하라고 말씀드린 건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도 알았으면 좋겠네.”
“참 답답하군요.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알고 있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시켰는지. 어쨌든 필요한 조치는 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환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휴식입니다.”
“고맙네.”
“환자가 깨어나면 한 번 봐야하니 그때 불러주십시오.”
의사는 그 말을 끝으로 병실을 나갔다.
“빌어먹을!”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유한필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그는 요 며칠 사업 문제로 해외에 나가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전 비서로부터 급보를 받았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유한필은 모든 일정을 미루고 곧바로 귀국해 아들을 찾았다.
그러나 아들은 그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집을 관리하는 고용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유한필이 출장을 떠난 이후부터 아들은 갤럭시안의 캡슐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식사를 갖다 놓으면 비웠고, 가끔씩 확인하면 잠도 자는 것 같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단다.
그런데 오늘 오후.
아침에 들여놓은 식사조차 비우지 않아 고용인이 확인해보자 아들이 캡슐 속에서 의식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잘못이다. 역시 말렸어야했어.”
유한필의 입에서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멀쩡했던 아들이 이 지경이 된 게 바로 망할 가상현실 게임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의 끈질긴 설득에 유한필은 결국 허락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갤럭시안을 시작한 이후에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일이 터졌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1년 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식물인간이 되었던 악몽!
같은 악몽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김 비서!”
유한필이 와락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비서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 가서 그 캡슐인지 뭔지를 부셔버려!”
“도, 도련님의 갤럭시안 캡슐 말입니까?”
“그래, 빌어먹을 캡슐! 당장…….”
불길을 뿜어내듯이 소리치던 유한필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손에 느껴지는 온기.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아들이 유한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아들이 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 * *
“흠.”
아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님프를 바라보았다.
-S-20 임시 상거래 규칙 10개조.
-S-20 임시 던전 이용 규칙 10개조.
“정말 그 자식 정체가 뭐지?”
멜린의 님프로 다운받은 레피드의 임시 규칙.
새삼스럽지만 은하연방 소속이라도 섹터의 운영은 모두 관리자에게 일임된다.
형법에 관련된 사항-카오틱의 처리문제 같은- 것은 은하연방의 법에 따라야하지만 민법-세금이나 기타 운영-은 관리자가 자체적으로 규칙을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때문에 아크 역시 나름 S-20의 규칙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레피드가 만든 규칙은 놀랍게도 아크가 생각하던 것과 거의 똑 같았다.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아크가 그 규칙을 적용시키지 않았던 것은 당시는 규칙이 필요할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때맞춰 레피드가 규칙을 적용시켜 준 것이다. 그것도 세부적인 사항은 아크가 구상하던 규칙보다 더 치밀하게 만들어서.
비록 게임이지만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게 아크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범위는 더욱 좁아지리라.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한 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크도 1명 떠오르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아니, 레피드를 보자마자 그 사람을 떠올렸다. ‘그’와 조금 다른 인상이기는 했지만 같은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스캔해 캐릭터를 만들어도 게임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70%이상의 싱크로율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는 지금 게임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는 뉴 월드를 하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들었다. 그런 ‘그’가 다시 가상현실 게임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설사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해도 레피드만 한 실력을 갖추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드르렁. 드르렁.
그때 밑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쭈? 자? 하, 아주 팔자가 늘어졌군. 정신 좀 차리게 해줄까?”
아크가 광선검으로 깔고 앉은 의자(?)를 푹 찔렀다.
“꽥—!”
터져 나오는 비명!
그와 함께 아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 생명력 회복됐다. 일어나. 다시 시작해야지.”
“크윽, 아직 입니까? 이제 제발 좀 봐주십시오! 이만하면 됐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네 장점이 인내와 끈기라며? 그리고 실제로 지난 일주일 동안 레피드를 잠도 못 자게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너는 고작 12시간도 되지 않아 앓은 소리를 하면 어쩌자는 거야?”
“하, 하지만…….”
“뭐 네가 덤비지 않으면 나야 편하지. 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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