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
아크 더 레전드-2화(2/875)
[2] SPACE 1. 그 이름 아크 (1)‘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현우는 간만에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현우가 로비에서 마주친 청년처럼 어수룩한 복장으로 굴지의 게임사 글로벌엑서스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게 벌써 4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중역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부사장실로 갈 수 있는 고문이사가 되어 있었다.
백수나 다름없던 신세에서 4년 만에 대기업 고문이사!
이 벼락출세의 뒤에는 글로벌엑서스의 대표 가상현실게임 뉴월드의 존재가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뉴월드의 끝판 왕이었던 루시퍼를 무찌른 대가로 손에 넣은 ‘마스터 코드’라는 아티팩트 덕분이었다.
마스터 코드는 뉴월드 제작 당시 메인 디렉터였던 박우성과 유나가 만든 일종의 관리 프로그램으로 게임 세계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저에게 문자 그대로 창조주의 힘을 부여하는 아티팩트였다.
그 마스터 코드가 현우의 뉴월드 캐릭터 아크에게 흡수되어 찰싹 달라붙어 버린 것이다.
그런 아티팩트를 어떻게 일개 유저였던 현우가 얻게 되었는가? 그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요목조목 설명하자면 석 달 열흘로도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으니 그렇게 받아들이자.
뭐 정 궁금하면 매일 하루 세끼를 김밥으로 때우며 1원짜리 하나에도 벌벌 떨던 생계형 게이머 현우가, 뉴월드 최고의 유저가 되기까지 겪었던 파란만장한 성공기를 담은 현우의 자서전 ‘아크’를 읽어 보든가.
‘뭐 어쨌든…….’
그때부터 현우의 인생은 180도로 달라졌다.
애초에 현우가 뉴월드를 시작한 이유는 다른 게이머와 달랐다.
뉴월드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두 가지.
첫째는 글로벌엑서스에 취직하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당시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마스터 코드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이루게 해 주었다.
게임사 입장에서 뉴월드의 모든 것을 떡 주무르듯 할 수 있는 마스터 코드의 힘을 가진 현우를 방치할 수 없었다.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현우를 관리할 필요가 있었고, 궁리 끝에 내놓은 결론이 고문이사라는 직함이었다.
S대나 K대를 졸업해도 문턱을 넘기 힘들다는 글로벌엑서스에, 무려 고문이사라는 직함으로 들어앉게 된 것이다.
-게임 하나로 인생 역전!
이게 현우의 이름 뒤에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였다.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4년 전에 비하면 더 바랄 게 없는 상황이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게 세상의 법칙.
현우가 글로벌엑서스의 고문이사가 되기 위해 잃어야 했던 것은 바로 아크였다.
아크라는 캐릭터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마스터 코드를 집어삼킨 아크는 여전히 뉴월드에서 유일무이, 최강을 넘어 신의 자리에 군림하고 있었다.
신!
그렇다, 이미 뉴월드에서 아크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게임 세계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신의 힘! 게이머를 자처한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힘을 가져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가져 보고 싶은 것과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생각해 보라.
신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레벨을 ‘만땅’으로 만드는 것도 한순간, 전설의 무구를 찾는 것도 한순간이다. 아니, 레벨이나 장비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헉! 트랩이 작동했다!”
“모,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크윽,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자, 모두 각오를 굳혀라!”
게임 속에서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Del.”
-Good job! 일격에 수만의 몬스터가 전멸했습니다!
현우의 말 한마디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Del 키 한 방으로 수만의 몬스터를 전멸시키는 것, 그게 마스터 코드의 힘이다.
무슨 레벨과 장비가 필요하겠는가?
설사 뉴월드의 끝판 왕이었던 루시퍼가 되살아나도 마찬가지다. ‘박살’이라는 말 한마디면 전설의 대마왕이라도 박살!
현우에게 더 이상 뉴월드는 게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현우가 뉴월드에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뉴월드도 게임인 이상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뉴월드의 메인 디렉터였던 박우성은 현재 일명 ‘루시퍼 사건(아크의 자서전 참조)’이라고 불리는 사건의 주범으로 입건되어 있었다.
때문에 글로벌엑서스는 새로운 작업 팀을 구성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 왔는데,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박우성이 빠진 프로그래머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확장 팩을 업데이트할 때마다 심각한 버그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던 것이다.
초보마을에서 갑자기 대마왕이 출현하거나, 아예 사냥감이 증발해 버리는 등의 버그. 현우가 글로벌엑서스의 고문이사로서 맡은 업무는 바로 그 버그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대가리를 들이미는 대마왕을 없애는 것도, 허허벌판에 사냥감을 리젠 시키는 것도, 마스터 코드를 가진 현우의 말 한마디면 말끔하게 처리되는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폼 나는 일이지만…….’
이제 새로운 던전을 탐험하는 설렘도, 강적을 만날 때 느껴지던 짜릿한 긴장감도 없다.
치트로 무적 상태가 된 게이머는 그 게임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듯, 신으로서의 지난 1년은 그토록 불타오르던 뉴월드에 대한 열정을 식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신이 돼 버린 아크는 더 이상 게임 캐릭터가 아닌 것이다.
아크를 키우며 1쿠퍼에 웃고 울었던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때때로 허탈감이 느껴지지만 현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배부른 소리지.’
4년 전에 원하던 모든 것을 얻었다.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리라.
이때까지만 해도 현우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그가 찾아가는 부사장실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 그들이 현우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 * *
‘……뭐지?’
현우는 놀란 표정을 떠올렸다.
부사장실에 들어서자 네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중 셋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머리가 벗겨진, 마치 어딘가의 교감 선생처럼 생긴 중년인은 현우를 호출한 부사장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30대 남자는 기획실장 하명우다.
문제는 나머지 1명.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사람은 박우성!’
뉴월드의 진짜 창조주!
루시퍼 사건으로 입건된 천재 게임 디렉터 박우성이다.
현우가 듣기로는 사건이 사건인지라 형량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아 출소, 심지어 글로벌엑서스 부사장실에 떡하니 앉아 있을 수 있는 걸까?
현우가 잠시 머뭇거리자 부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김 이사, 어서 오게.”
부사장이 중년 사내를 돌아보며 소개했다.
“이 친구가 김현우, 당시 아크라는 아이디로 활동했던 게이머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문지훈이라고 합니다.”
“네, 김현우입니다.”
현우는 얼떨결에 인사하고 부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부사장이 무거운 한숨을 불어 내며 덧붙였다.
“정부에서 나온 분이네.”
“정부? 정부에서 무슨 일로……?”
“일단 앉게. 자세한 설명은 문 과장님이 해 주실 거네.”
현우가 맞은편에 앉자 문지훈이라는 사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방적으로 몸을 더듬어 대는 듯한 눈빛, 공무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태도였다.
이런 식의 태도는 썩 달갑지 않지만 그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문지훈의 심각한 표정이다.
눈치 100단의 현우다.
정부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직감했지만 역시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문지훈은 시작부터 부담스러운 말을 꺼내 들었다.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저는 현재 국가비상대책위의 실무과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도 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대외비對外秘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국가 보안법에 의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비상대책위? 국가 보안법?’
뉴스에서밖에 들어 보지 못한 단어였다.
현우는 예상 밖의 단어에 당황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은 문지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뉴스에서조차 들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어제 오후 4시경, 국내의 모 원자력발전소가 테러리스트에게 점거당했습니다.”
“에? 에에? 워, 원자력발전소가 테러리스트에게 점거당했다고요?”
“그렇습니다.”
“하, 하지만 그런 뉴스는 듣지 못…….”
떠듬거리던 현우가 움찔하며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위조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발견되어 가동 중단됐다는 원전이……?”
“눈치가 빠르시군요.”
문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짐작하실 겁니다. 현재 그 자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은 원전 관리 요원들과 제가 소속되어 있는 비상대책위원회 그리고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여러분을 포함해도 채 100명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 두죠.”
현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원전이 어떤 곳인가? 원자력, 그러니까 핵이다.
만의 하나라도 원전에 문제가 생긴다면 핵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은 데미지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 위험천만한 곳이 테러리스트에게 점거당하다니, 문지훈의 말대로 국가비상사태였다. 그러나 현우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었다.
왜 그 얘기를 현우 앞에서 떠들어 대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그런 얘기를 왜 저에게?”
“현우 씨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다.
확실히 현우는 일반인과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뉴월드라는 가상현실 게임에 한정된 힘이다. 현실의 현우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도움이라니요?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저는 그런 일에 관련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그냥 게이머입니다. 집에 틀어박혀서 게임이나 하는 사람이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다면서 왜……?”
“많이 당혹스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합니다. 저 역시 이런 상황이 당혹스러우니까요. 그러나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우리는 현우 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저는 그저…….”
“게이머죠.”
문지훈이 현우의 눈빛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게이머는 아니죠. 뉴월드라는 게임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거의 신과 같은 능력을 얻게 된 전설의 게이머. 제가 현우 씨를 찾아온 이유가 그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현우의 질문에 문지훈이 잠시 말을 멈추고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비흡연자인 부사장의 불편한 눈길을 무시한 채 매연을 뿜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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