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01)
아크 더 레전드-201화(201/875)
[201] SPACE 1 아크의 24시간 (1)‘이거 참…….’
이명룡이 머리를 긁적였다.
뜬금 없지만 여기서 잠시 이명룡이라는 사내의 약력을 소개하자면, 그는 한때 경찰청 제 1기동대장으로 근무하며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굵직한 폭력사건을 해결하고 받은 훈장만 수십 개. 심심할 때는 훈장으로 도미노 놀이를 한다고 알려진 레전드 급의 형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직 경찰 고위 간부와 마찰이 생겨 사이버 수사팀으로 좌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명룡은 타고난 재능과 근면성실-이명룡의 주장이다-으로 사이버 수사팀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암약하던 여러 불법조직을 소탕!
현재는 사이버 수사팀장을 맡게 된 경찰청의 기린아-이명룡의 주장이다-였다.
그러나 그의 상관 조영환의 의견은 달랐다.
“이 사고뭉치 녀석!”
출근하자마자 이명룡을 불러들인 조영환이 대뜸 소리쳤다.
“아, 뭡니까? 아침 댓바람부터 사람 얼굴 보자마자. 요즘 형수님하고 안 좋아요? 그거 안 좋습니다. 집에서 짜증나는 일 있다고 부하 직원 불러다가 갈구면 요즘은 징계사유라고요.”
“까는 소리하지 말고. 너 요즘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무슨 짓을 하냐니요?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 정말 이럴래?”
“그러니까 뭔데요? 제가 무슨 점쟁이입니까? 머리 몸통 다 자르고 꼬랑지만 얘기하면 제가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뭔지 알아야 이러던지 저러던지 할 거 아닙니까?”
이명룡이 어린애처럼 입술을 내밀고 툴툴거렸다.
조영환은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이명룡을 바라보다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국정원의 호출이다.”
“국정원의 호출? 저를? 왜요?”
“그걸 모르니까 이러는 거 아냐! 너, 정말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어? 있으면 지금이라도 털어 놔봐. 국정원에서 경찰을 지명해서 호출하는 게 어디 흔한 일이냐? 나도 뭔가 알아야 대처를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없다니까요.”
“그럼 왜 갑자기 국정원에서 널 호출하는데?”
“그야 나도 모르죠.”
이명룡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짚이는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는 한 달 전, 오랜만에 만난 선배 권화랑에게 한 가지 의뢰를 받았다.
신도시 건설 예정지였던 택산 지구의 땅값 폭락. 권화랑은 이 사건의 배후에 현직 정치인이나 재벌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내고 현직 경찰인 이명룡에게 수사를 의뢰했었다. 이에 이명룡은 몇 몇 동료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파악하는 와중에 국정원의 호출을 받은 것이다.
이게 우연일 리가 없었다. 국정원이 권력자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조직으로 전락한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이번 호출은 분명 그 일과 관련이 있으리라.
‘민간인에게는 건달, 현직 경찰에게는 상급 기관의 압력이라 이건가? 뭔가 구린 구석이 있긴 있는 모양이군. 어디 뭐라고 짖어대는지 한 번 들어보지.’
이명룡은 국정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내원에게 용건을 설명하자 한 사내가 나왔다.
“중앙 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장 이명룡 경위 님이십니까? 저는 국정원 정보과장 보좌인 강호철입니다. 경위 님께 용건이 있는 사람은 문지훈 과장님이십니다. 그런데 과장님은 방금 전에 긴급 회의에 소집되셨습니다. 몇 시간 걸릴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란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하는 일이 좀 그렇다보니…….”
말과는 달리 강호철의 얼굴에서 미안해하는 기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국정원은 국가 안전 보장에 관련된 업무를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검경과는 별도의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중앙행정기관이다. 때문에 국정원 직원은 엘리트 의식이 강해 경찰을 하부 조직 정도로 깔아보는 경향이 있었다.
‘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이런 식의 대우가 달가울 리는 없었다.
이명룡이 불쾌한 표정을 떠올리자 강호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국정원 방문은 처음이십니까?”
“네.”
“그럼 제가 시설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어차피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시간도 많고,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시려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두는 편이 좋을 테니까요. 이것도 문 과장님의 지시입니다.”
“한동안 이곳에서 지낸다고요? 제가 말입니까?”
“자세한 사항은 문 과장님이 설명해 줄 겁니다. 일단 따라오시죠.”
‘이 새끼들, 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지?’
그러나 이명룡은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고민한다고 당장 뭔가 답이 나올 문제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풀어 가는 성격도 못 된다. 일단 문 과장이라는 놈을 만나본다. 그리고 수틀리면 국정원이든 뭐든 그냥 확 들이받아버리는 거다. 그게 이명룡다운 방식이다.
이명룡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그런데 태권도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수련하십니까?”
“네, 뭐…….”
“그럼 체육 시설에 관심이 많으시겠군요.”
“네, 뭐…….”
“잘 됐네요. 문 과장님에게 경위 님을 안내해드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솔직히 관공서야 다 거기가 거기 아닙니까? 여기는 식당입니다. 일주일에 세 번은 고기 반찬이 나오죠. 여기는 숙소입니다. 침대 쿠션이 괜찮지 않습니까? 남자끼리 돌아다니며 이딴 말을 하기도 우습지 않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체육관이 낫겠죠.”
이명룡도 난생 처음 관공서에 와본 사람처럼 직원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딴 곳에서 그딴 말이나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체육관이라면 그도 관심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가 모인다는 국정원.
그 역시 무술을 하는 사람이라 국정원 직원의 무술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체육관에 도착한 이명룡은 실망스러웠다. 경찰청의 몇 배나 되는 크기에 최신 설비까지 갖춰져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은 탓인지 운동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눈치를 살피던 강호철이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한 번 가볍게 뛰어보시겠습니까?”
“네?”
“실은 문 과장님에게 경위 님의 이력을 대강 들어봤습니다. 지금은 사이버 수사팀장으로 재직하고 계시지만 그 전까지는 제 1기동타격대장으로 근무하셨다고요. 그때는 날고 뛰는 전국구 건달들도 경위 님 앞에서는 설설 기었다면서요? 그런 분을 만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나름 무술을 배운 사람이라 명성이 자자한 분에게 한 번 제대로 가르침을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시간도 남으니 한 번. 어떻습니까?”
“아니, 뭐 그렇게 대단할 건 없지만…….”
이명룡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말과 달리 어깨가 들썩였다.
사실 이명룡은 세 끼 밥보다 대련을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심지어 경찰이 된 이유도 ‘범죄자라면 마음껏 팰 수 있어서’라는 말을 공공연히 떠들어댈 정도. 그러나 엉뚱하게 사이버 수사팀으로 발령 나는 바람에 지난 1년 동안 가상현실 게임만 해야했다. 뭐 가상현실 게임에서도 싸움은 지긋지긋하게 할 수 있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역시 실전과는 다르지!’
하물며 상대는 국내 최고 엘리트라는 국정원 직원이다.
입장 상 먼저 얘기를 꺼내지는 못했지만 이런 요청이라면 언제든 땡큐!
“가벼운 대련 정도라면 괜찮겠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10여 분 후.
체육관 중앙에 도복으로 갈아입은 현직 사이버 수사팀장과 국정원 직원이 마주서게 되었다.
“자, 그럼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움직인 것은 강호철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카로운 앞차기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그 발차기 한 번으로 이명룡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역시랄까, 기본기가 탄탄하게 잡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위협적인 느낌은 없었다.
강호철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서로의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한 대련. 실전이 아니기에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힘을 조절하기에 실전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명룡이나 강호철 수준의 고수라면 상대의 역량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상당한 실력이군. 제대로 붙으면 어지간한 건달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겠어. 아무리 가벼운 대련이라도 방심하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도 있겠는데?’
갑자기 상황이 일변한 건 그 다음이었다.
이명룡이 강호철의 정권을 막으며 품으로 파고 들어갈 때였다.
강호철이 내뻗은 팔을 꺾으며 팔꿈치로 그의 관자놀이를 내리찍는 게 아닌가?
팔꿈치 공격은 격투기 시합에서도 금지시킬 정도로 위험한 공격. 하물며 태권도, 그것도 품새를 겨루는 대련에서 팔꿈치를 사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생각도 못했던 공격에 황급히 상체를 빼고 서너 걸음 물러나 관자놀이로 손을 가져갔다.
팔꿈치가 스친 부위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이런! 죄, 죄송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건 태권도 품새 겨루기였죠? 국정원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경찰이 배우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아무래도 특수임무가 많다보니 국정원의 태권도는 경찰에서 배우는 것보다 좀 과격한 편이죠. 그게 버릇이 돼서 다급해지자 팔꿈치가 나가버렸습니다.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만…….”
“다행입니다. 하지만 대련은 그만 하는 편이 좋겠군요. 말씀 드렸다시피 제가 배우는 무술이 좀 과격해서 말입니다. 주의는 하겠지만 만약 또 실수라도 저질러서 정말 크게 다치시기라도 하면 제가 문책을 받게 됩니다.”
‘아하! 그런 거였군.’
순간 이명룡의 머릿속에 ‘!’가 떠올랐다.
기껏 호출해놓고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한 것, 그리고 강호철의 뜬금없는 대련 신청.
관자놀이가 팅팅 부어오르니 그를 호출한 문지훈이라는 놈의 꿍꿍이가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였다. 아마도 문지훈이 이명룡을 국정원으로 불러들인 이유는 그가 거물 정치인이나 재벌의 뒤를 캐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평범한 경찰이었다면 국정원으로 호출하는 것만으로도 겁을 집어먹고 물러날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이명룡이다.
국정원 정보과장이라니 그도 이명룡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아봤으리라.
경찰서에 소문이 자자한 꼴통 형사, 건달은 말할 것도 없고 수틀리면 경찰서장도 일단 들이받고 보는 게 이명룡이라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말 몇 마디에 물러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만나기 전에 이명룡의 기를 꺾어둘 작정으로 대련을 제안한 것이리라.
‘경찰이나 국정원이나 생각하는 건 거기서 거기라는 건가?’
사실 이건 이명룡도 종종 써먹던 방식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신참 형사가 들어오면 이명룡이 나서서 이런 식으로 군기를 잡았다.
그걸 강호철이 똑같이 이명룡에게 써먹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이명룡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때 체육관 2층의 구석에서 같은 미소를 떠올리는 남자가 있었다.
“예상대로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사내는 문지훈.
이명룡의 머릿속에서 나온 추측은 거의 정답에 가까웠다.
사실과 다른 점은 단 하나, 문지훈이 그를 국정원으로 불러들인 이유였다.
문지훈이 이명룡을 불러들인 이유는 얼마 전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이명룡을 특별 고문으로 편입시키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정원 정보과장 문지훈이 직접 팀을 편성해 진행 중인 임무에 일개 경찰을 고문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이건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문지훈에게는 굴욕이었다.
그러나 이명룡의 편입은 이미 결정된 사항.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가령 예를 들면 대련 중에 부주의로 부상을 입어 한 두 달 휴직을 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던가.’
그리고 강호철은 그런 사고(?)를 일으킬만한 실력이 있었다.
문지훈의 보좌라고 소개했지만 그의 실제 직책은 국정원 현장 요원의 격투기 사범. 이명룡도 제법 무술 좀 한다고 들었지만 일개 경찰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대련 중의 사고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명룡이 겁을 집어먹고 물러나 버리면 곤란한 것이다.
‘뭐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 그런 놈이라면 루시퍼 헌팅에 들어와도 잔뜩 기가 죽어서 멋대로 설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보아하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군. 이명룡이라는 놈도 몸뚱이 하나 믿고 꽤나 설치는 모양인데, 그런 놈들은 내가 잘 알지. 일단 한 방 먹여놓고 슬슬 자존심을 건드리면…….’
“대련 중에 이런 사고는 흔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에 겁먹으면 경찰 짓도 못하죠.”
“계속하시겠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어허, 정말 크게 다칠지도 모르는데…….”
“저만 그런 건 아니죠. 대련이니 그 정도는 서로 이해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명룡이 팔과 다리를 흔들어 몸을 풀며 대답했다.
‘당연히 이렇게 나오시겠지.’
문지훈이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러나 문지훈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아예 계급장 떼어놓고 실전으로 갑시다. 그게 서로 거치적거릴 게 없어서 좋지 않겠습니까? 혹시 다치더라도 뒷말이 나올 일도 없고 말이죠.”
그의 이름은 이명룡.
대한민국 경찰 중 최고이자 최악의 독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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