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27)
아크 더 레전드-227화(227/875)
[227] SPACE 1 블랙호크 (2)‘라는 말을 들었지만…….’
눈앞의 사내를 보자 절로 입술이 일그러졌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한 방 먹게 될 줄은 몰랐군.’
아크가 노려보는 금발 사내는 레피드!
새삼스럽지만 아크는 레피드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아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S-20을 몰라보게 성장시켜 놓은 유저. 실제로 그와 대화를 나눈 시간은 채 10분도 되지 않았지만 잊을 리가 없었다.
“아는 사람인가?”
“아니요.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틴 후작에게 한 이 대답도 거짓은 아니었다.
분명 만난 적은 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왜 아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 직후에 레피드가 쿠라칸과의 결투에서 죽어버리는 바람에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레피드는 아크를 만나겠다며 열흘 넘게 S-20의 관리사무소 옆을 떠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쿠라칸에게 죽고 나서는 아크가 돌아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2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찾아오지 않았다. 때문에 레피드가 왜 아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그 답이 이거였던 건가?’
아크의 시선이 쥬벨 후작에게 향했다.
이번 조사단에 참가할 개척자의 추천권은 군부파와 내정파가 각각 10명 씩.
한정된 인원만 참가시킬 수 있으니 인선에 신중을 기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임무의 성격상 실력도 실력이지만 믿을 수 있는 개척자를 선택해야만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응접실에 모여있는 유저들은 어떤 식으로든 귀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크와 마틴 후작의 관계처럼.
그건 레피드와 쥬벨 후작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리라.
‘이 조사단에 추천될 정도라면 하루 이틀 된 관계는 아니겠지. 둘은 S-20에 나타나기 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쥬벨이 수작을 부리기 직전에 그와 관계가 있는 레피드가 S-20을 찾아와 열흘이나 뭉개고 앉아있었다. 이게 우연일 리가 없지.’
여기까지 생각하면 답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놈이 S-20에 뭉개고 앉아 있었던 이유는 날 기다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쥬벨과 라이오스사가 S-20을 집어삼키는데 필요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였던 거야. 그만한 사격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쿠라칸과의 결투에서 진 이유도 그것이다.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은 핑계. 내가 캐묻기 시작하면 곤란해지겠지. 그런 놈에게 경험치 손실도 없는 결투는 S-20을 빠져나가는데 좋은 구실이었던 거야. 어쩐지 라이오스사가 S-20의 내부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싶었는데, 그게 저 놈 때문이었어. 빌어먹을,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아크는 레피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레피드는 아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S-20을 몰라보게 성장시켜 놓았던 유저다.
그것도 아크가 계획하고 있던 S-20의 발전 청사진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지기는 했지만 결투에서 보여준 사격술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때문에 아크는 레피드가 다시 찾아오면 잘 구슬려 스카우트를 해볼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레피드의 정체는 쥬벨의 첩자였던 것이다.
배신감! 그리고 분노!
‘그러니까 네가 날 가지고 놀았다 이거지? 좋아, 좋다고. 섹터에서 만났을 때 내가 뉴 월드의 아크와 같은 사람인지 물었었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지, 아니면 대충 둘러대기 위해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알게 해주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아크라는 인간을 적으로 삼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아크가 어금니를 깨물며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피드라고 불러주십시오.”
레피드가 뻔뻔스럽게 지껄이며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아크는 그 손을 맞잡고 흔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딱히 그쪽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레피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번 어깨를 으쓱거리고 손을 내렸을 뿐이다.
그러자 쥬벨이 마틴 후작을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후작님은 기르는 개에게 최소한의 예절도 가르치지 않은 모양이군요.”
“저는 개 같은 것은 키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키운다고 하더라도 언제 목을 물어뜯을지도 모르는 상대와 정답게 악수를 하라고 가르치고 싶지는 않군요.”
“언제 목을 물어뜯을지도 모르는 상대…… 입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건 약속할 수 없겠군요.”
대답이 들려온 곳은 쥬벨 후작의 등뒤였다.
동시에 한 사내가 아크와 레피드, 마틴과 쥬벨 후작이 모여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너…… 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사각 턱의 사내!
놀랍게도 그 사내는…….
“……누구였지?”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사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렌시아다.”
“아, 그래. 발렌시아! 워낙 존재감이 없는 엑스트라라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나타날 때 이름부터 말해. 후후후, 난 아크에게 한 번 개박살이 난 적이 있는 발렌시아다. 이렇게 말이야. 그래야 단번에 알아봐 줄 거 아니야.”
아크는 정말이지 때려주고 싶은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히죽거렸다.
그러자 레피드가 슬쩍 고개를 돌려 발렌시아를 바라보았다. 너 정말 쟤한테 맞았냐? 라고 묻는 듯한 눈빛. 덕분에 발렌시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건방진 새끼.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하, 나한테 개박살 난 적이 있는 주제에 큰소리치는 너와 널 개박살 낸 적이 있음에도 친절하게 웃음으로 맞이해 주는 나. 어느 쪽이 건방을 떨고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붙어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지게 될 거다.”
“싸움에 진 놈들은 항상 그렇게 얘기하지.”
아크가 가소롭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태연해 보이는 표정과 달리 속내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레피드의 등장만으로도 이미 아크의 머릿속은 충분히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거기에 발렌시아까지 더해진 것이다.
-발렌시아는 벨타나의 기갑 1소대장이었다.
계급장 좀 높다고 나를 무지하게 갈궈댔었다. 하지만 이자까지 쳐서 갚아줬다.
그러니까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녀석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3짜리 이력이 아크가 기억하는 발렌시아의 전부였다.
그러나 섹터가 되기 전의 파고스 화산에서 우연치 않게 재회해 거기에 2줄이 추가되었다.
-한 번 더 붙어서 박살냈다.
그러니까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녀석이다.
5줄로 늘어났지만 결론은 여전히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발렌시아도 그렇게 편하게 생각해줄 리는 없다. 분명 네거티브 한 기운을 줄줄 뿜어내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으리라. 신경 쓰이는 부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하르마돈 성좌에서 나타난 마법진을 만든 놈들은 파고스 화산을 습격했던 후드의 남자와 케로족이었다. 그리고 발렌시아는 그때 놈들과 한패였던 남자와 함께 있었어. 단순히 잠시 용병으로 고용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놈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크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배후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놈!
그런 놈이 조사단 멤버에 끼어있는 것이다. 거기에 쥬벨 후작의 첩자 레피드까지. 아크는 시작도 하기 전에 골치 아픈 폭탄을 2개나 떠 안은 기분이었다.
‘젠장, 왜 많고 많은 유저 중에 하필이면 발렌시아가…….’
아크가 답답한 한숨을 불어내고 있을 때였다.
마틴 후작이 미간을 찡그리며 쥬벨을 돌아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발렌시아는 연방군을 불명예 제대한 자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조사단의 참가 자격은 민간 에이전트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발렌시아는 후작님 말씀대로 이제 연방군이 아니죠. 뭐 저 아크라는 자와 사사로운 원한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제가 추천하지 못할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쥬벨이었군.’
아크는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발렌시아가 조사단에 끼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새삼스럽지만 S-20의 사건으로 아크는 쥬벨에게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런 아크가 군부파의 유저로 조사단에 참가하게 됐으니 꽤나 신경이 쓰였으리라. 때문에 쥬벨은 아크를 확실하게 마크해 줄 참가자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 역할로 선택된 유저가 발렌시아!
말하자면 발렌시아는 대(對) 아크용 참가자인 셈이다.
“아무래도 친하게 지낼만한 사이는 아닌 것 같으니 소개는 이 정도로 하죠. 더 할 말이 없으시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번 조사,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쥬벨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레피드와 발렌시아를 데리고 한쪽에 모여있는 개척자들에게 걸어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마틴 후작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귀찮아지겠군.”
“뭐 딱히 달라진 것도 없죠.”
아크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내정파 개척자는 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적이라면 확실하게 적의를 불태울 수 있는 계기가 있는 편이 좋죠. 기왕이면 패주고 싶은 놈과 싸우는 게 더 의욕이 생길 테니.”
“자신이 있다는 말이군.”
“적어도 저 놈들에게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그럼 됐다.”
마틴 후작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물론 아크의 주의해야하는 상대는 레피드와 발렌시아만이 아니었다.
아크가 속한 군부파와 경쟁관계에 있는 내정파 유저들. 지금 쥬벨 주위에 모여있는 유저 모두가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 역시 혼자가 아니었다. 레피드와 발렌시아에게는 내정파 유저들이 있듯이 아크에게는 군부파 유저들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쥬벨 일당과 거리를 두고 모여있었다.
“소개하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마틴 후작이 군부파 유저들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유저들 사이에서 작은 체구에 콧수염을 기른, 마치 슈퍼마리오처럼 생긴 사내가 쪼르르 달려나왔다. 그리고 동그란 눈으로 아크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아크 님이시죠? 벨타나와 아타마스 전장에서 영웅 칭호를 받은.”
“저를 아십니까?”
“물론이죠. 아까 마틴 후작님이 한 번 말했잖아요. 뭐 그전에 알아봤지만 말입니다. 연방 TV에서 그렇게 줄기차게 방송해댔는데 모를 리가 없지 않잖아요. 저만이 아니라 여기 모여있는 유저들 중에서 아크 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새삼스럽지만 아크는 유명인이었다.
게다가 들어오자마자 응접실 중앙에서 쥬벨 후작과 신경전을 벌였다.
레피드와 발렌시아에게 신경 쓰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 덕에 아크는 본의 아니게 응접실에 모여있는 유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래, 내가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군.”
마틴 후작이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마리오(?)가 아크에게 좀 더 바짝 다가오며 말했다.
“아크 님은 모르는 사람도 있죠? 마틴 후작님에게 들었겠지만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배를 탄 거나 다름없어요. 저쪽에 모여있는 녀석들과는 달리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될 사이라는 뜻이죠. 그러나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마리오가 아크의 팔을 잡아 끌 때였다.
“어이, 네가 가봐!”
“제, 제가요?”
“그럼 내가 가리? 이래봬도 난 18위까지 올랐던 몸이라고. 그런 내가 그딴 질문이나 하면 체면이 뭐가 되냐? 이런 일은 당연히 막내인 네가 해야지.”
“하, 하지만…….”
“시끄러! 잔말말고 까라면 까!”
3명의 사내들이 숙덕이더니 한 사내의 등을 떠밀었다.
무슨 소란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떠밀려 나온 사내가 흠칫 놀라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나 두 사내가 뒤에서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울상을 지으며 아크에게 다가왔다.
“저…… 저기…… 질문이 있는데요…….”
“네? 뭡니까?”
“저기…… 혹시…… 그러니까…… 뉴 월드의 아크와 같은 분인가요?”
‘하아, 결국 또 이 질문이군.’
이제 지긋지긋하다 못해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다.
똑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상대방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백이면 백 실망한 표정을 짓거나,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면전에서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아닙니다. 저는 그 아크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저, 정말? 정말이죠?”
“네, 제가 알기로는 말씀하신 아크는 갤럭시안을 시작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던데요?”
“압니다! 네, 저도 들었어요! 역시 아니었어! 감사합니다!”
“네? 감사하다니요?”
“아, 아닙니다. 형님들! 아니랍니다!”
사내가 환하게 밝아진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뛰어가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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