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236)
아크 더 레전드-236화(236/875)
[236] SPACE 4 Are U Ready? (2)설명만 들으면 사진에 찍혀있는 그녀(?)는 대한민국 상위 1%. 아니, 0.0001%로 속하는 절세 미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현우는 그녀의 미모에는 관심이 없었어.
일단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날 뿐만 아니라, 그녀와 현우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루어 질 수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녀의 성별이 여자라는 것도 방금 전에야 알았다. 사진 속의 그녀는 태아 4개월, 아직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오지도 않은 현우의 여동생-예정-이었다.
“너무 속보이지 않아요?”
“내가 뭘?”
“얼마 전까지는 다리가 튼튼한 게 힘 좀 쓰겠다는 둥, 눈빛이 부리부리한 게 장군감이라는 둥 했잖아요. 그런데 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튼튼한 다리가 쭉 뻗은 다리로 변하고, 부리부리한 눈빛이 호수 같은 눈망울로 변하는 건 대체 무슨 조화인데요?”
“오묘한 조화지.”
“으이그, 말이나 못하면.”
“흥! 이 미모도 몰라보는 놈과는 할 말 없어. 후후후! 정말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힌단 말이야. 어떻게 이런 미인이 내 딸이 되었을까? 하긴 우리 박소미 여사님의 딸도 되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예쁘니 일단 나오기만 하면 미스 코리아쯤은 일도 아닐 거야. 그럼 20년 쯤 지나면 권씨 가문에서 미스 코리아가 나오는 건가?”
사진을 볼에 문지르며 히죽거리던 권화랑이 움찔하며 당혹성을 터뜨렸다.
“으윽! 가만? 그럼 결혼을 시켜야하는 거잖아? 아, 안 돼! 이런 금쪽 같은 내 새끼를 딴 놈에게 빼앗긴다니! 게다가 그 놈이 천하의 불한당 같은 놈이면? 아, 안 돼! 그래, 혹시라도 사내놈이 접근하면 경찰 선배, 후배를 몽땅 동원해서 철저하게 뒷조사를 하고…….”
“이혼 소송을 준비하면 되겠죠.”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 사람은 박소미.
현우의 어머니이자 권화랑의 아내, 그리고 장래 미스 코리아가 될 재목(?)의 어머니였다.
박소미의 말에 권화랑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 무슨 소리요? 이, 이혼 소송이라니?”
“내 딸을 딸의 남자 친구에게 경찰을 붙여 뒷조사를 시키는 아빠 밑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런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기저귀 가는 법부터 배우는 게 순서 아니에요?”
권화랑을 쏘아붙인 어머니가 현우를 돌아보며 한숨을 불어냈다.
“어쩌면 좋니? 네 아버지.”
“글쎄요. 어쩌면 좋을까요, 이 팔불출을?”
현우가 풀 죽은 권화랑을 향해 씨익 웃어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몸이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배가 꽤 불러온 것처럼 보이는데?”
“보기보다 불편하지 않다. 의사 선생님도 별 문제 없다고 하더구나. 네 아빠도 잘 보살펴 주고. 딸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엄마에게는 좋은 남편 아니니, 네 아빠가.”
확실히 그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런 어머니의 옆에서 ‘난 딸에게도 좋은 아빠야. 기저귀 가는 법도 배워뒀다고.’라고 구시렁거리면서도 얼른 가방을 받아드는 권화랑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남자로 태어난 게 과연 잘한 일인가 싶다. 아마도 동생은 저 모습을 보고 여자로 태어나기로 한 게 분명하다.
딱한 눈길로 권화랑을 바라보던 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볼 일은 다 끝난 거예요?”
“그래, 네 얼굴도 오랜만에 보니 가는 길에 밥이나 먹자구나.”
“아니. 전 잠시 들러볼 데가 있어요.”
“뭐? 어디?”
“그럴 일이 있어요. 오늘은 시간이 좀 비니까 이따 저녁 때 갈게요. 식사는 그때 해요. 제가 소고기라도 사 가지고 갈게요. 어머니 소고기 좋아하잖아요.”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요즘 내내 바쁘다고 했잖니. 그런데 오늘은 병원에 올 수 있다고 해서 쉬는 날인지 알았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니?”
“그런 건 아닐 거요.”
그때 권화랑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이 녀석이 바쁜 건 일 때문만은 아니거든.”
“무슨 말이에요?”
“후후후! 다 안다. 너 요즘 여자 만난다며?”
“에? 그게 무슨……?”
“자식이, 의뭉스럽기는. 철웅이가 다 불었거든? 얼마 전에 철웅이들과 같이 만났다며? 결혼 얘기 할 때는 질색팔색 뛰더니만. 그나저나 막상 생각해보니 은근 열 받네. 여자친구가 생기면 먼저 부모님에게 인사시켜야하는 거 아니냐?”
“아직 그런 사이 아니에요.”
“만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는 말이구나.”
현우의 대답에 어머니가 반색하며 끼어 들었다.
“누구니? 뭐 하는 사람인데? 나이는? 만난 지 얼마나 됐고?”
“아직 그런 말을 할 단계도 아니라니까요.”
“그럴 리가 있냐? 같이 지방까지 놀러가서 철웅이 패거리를 만났다면서?”
“그건 갑자기 약속이 겹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예요. 어쨌든 그 얘기는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알고 먼저 돌아가 계세요. 저녁 때 들릴 게요.”
현우가 대충 얼버무리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얼마 전 갱생단 형님들과 같이 만난 여자라면 이리나, 조민선이다.
그녀에 대해 권화랑이나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딱히 숨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어차피 갱생단에게 소개하면 권화랑이 알게 될 것은 짐작하고 있었고, 때가 되면 당연히 부모님에게도 인사를 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택산 지구에 다녀온 뒤로 그녀와의 관계가 좀 묘하게 되었다.
-미안해요.
그녀가 보낸 문자는 이 한 마디.
그 뒤로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때 전화를 해보는 거였는데.’
그때 현우가 바로 전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고 뭔가 말하기 힘든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고, 둘째는 어차피 2차 조사단에 참가하면 그녀를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단장을 맡은 호크가 2차 조사단의 집결지로 지정한 장소는 이그라시아 성좌의 투란.
1차 조사단이 파견되었던 하르마돈 성좌와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는 성좌였다. 이에 대해 마틴 후작은 이미 1차 조사단은 은하 3국의 비밀부대에게 노출된 상태라 2차 조사단은 당분간 선발대와 접촉을 피하고 별도의 임무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현실의 조민선에 이어 갤럭시안에서 이리나와의 재회도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전화를 하기에도 뭐하다.
‘이제 어쩌지?’
그때 권화랑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가 충격(?)의 임신을 한지 4개월 째.
성별 검사를 위해 조만간 병원에 가야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전화였다.
때는 바야흐로 투란으로 출발하기 전에 한창 남은 잡무를 정리하고 있을 무렵. 그리고 투란은 아마라나 라쿤카보다는 가깝지만 그래도 15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때문에 오늘 병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오는 길에 퍼뜩 떠올랐다.
‘그래, 이거다!’
현우는 병원에서 조민선을 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처음 들었던 날, 중환자 실에 앉아있는 그녀를 본 적이 있는 것이다. 그때 이미 조민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현우는 간호사를 통해 그녀와 환자가 모자관계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하루에 한 번은 병실을 찾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바 있었다.
현우가 할 일이 있다고 한 게 그것이었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투란에 도착하면 정신 없이 바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그 전에 직접 조민선을 만나 속 시원하게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물론 다짜고짜 병실로 들이닥치는 건 곤란하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우연을 가장해서.
현우는 그런 생각으로 부모님을 먼저 보내고 조민선을 봤던 병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봤지만 조민선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왔다 간 건 아니겠지?’
“비켜주시겠어요?”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화들짝 놀란 현우가 얼른 옆으로 물러나 고개를 돌리다가 딱딱하게 굳었다.
현우의 뒤로 다가온 여자, 조민선이었다.
“현우 씨?”
* * *
‘정말 되는 일도 없지!’
현우의 입에서 한숨이 푹푹 흘러나왔다.
조민선은 정말이지 타이밍이 귀신같은 여자였다.
일전에는 갱생단 형님들과 약속을 잡자마자 연락을 해오더니, 이번에는 하필이면 현우가 병실을 훔쳐보고 있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딱 맞춰 등장해주신 것이다.
덕분에 현우는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민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죠.”
그렇게 휴게실로 자리를 옮기고 10여 분.
조민선은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변명을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사실대로 털어 놓아야하나?’
현우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기는 어떻게 아셨죠?”
“네?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허둥거리던 현우가 한숨을 불어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숨겨서 죄송합니다. 숨길 생각은 아니었어요. 어쩌다 보니 얘기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민선 씨 어머니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걸 알게 된지는 꽤 됐습니다. 어머니가 이 병원을 다니거든요. 일전에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왔을 때 우연히 민선 씨가 저 병실에 있는 걸 본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가 혹시나 해서 와 본 겁니다. 아,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아픈 게 아닙니다. 얼마 전에 임신을 하셔서…….”
“임신이요?”
“네, 임신이요.”
현우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실은 제 친아버지는 몇 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도 그 사고로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하시다가 퇴원하고 1년 전쯤 지금의 아버지와 재혼해서 얼마 전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병원생활을 꽤 길게 하셔서 검진을 자주 받는 편이에요.”
“현우 씨 친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네? 어떻게?”
“자서전을 봤거든요.”
이어지는 대답에 현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사실 현우가 갤럭시안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유의 90%는 그 자서전 때문이었다. 자서전은 현우가 글로벌엑서스의 이사로 취임할 때, 하명우가 뉴 월드의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며 반 강제로 진행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자서전의 다른 이름은 자뻑!
자서전이라는 원래 ‘난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책 내용은 대부분 주인공-아크-이 잘난 척 하는 내용이 될 수밖에 없었고, 현우는 잘난 척의 아이콘이 되어 당시 네티즌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아야했다.
현우에게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흑역사!
그걸 조민선이 봤다니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제야 알겠군요.”
그때 조민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게 관심을 보였던 게 그래서였던 건가요?”
“네? 그래서라니요? 뭐가 말입니까?”
“우연히 알게 된 여자가 예전의 자기처럼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다. 이미 성공한 현우 씨 입장에서는 동정심이 생길 만도 했겠죠.”
“무슨 말입니까, 그게? 그럼 내가 동정심 때문에 민선 씨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겁니까?”
“이해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농담하지 마십시오!”
현우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뭐가 그럴 수 있으니까 입니까! 동정심? 장난하십니까? 나도 혼자 어머니를 간병해봐서 압니다! 그게 동정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 아니, 동정 받기 싫은 일이라는 것! 나 역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민선 씨에게 동정심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민선 씨 말대로 저는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심정을 아니까요! 하지만 저는 동정심과 연애감정을 혼동할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그만하세요.”
“아니, 좀 더 말해야겠습니다.”
현우가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까 민선 씨 어머니 일을 알고 있었지만 말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죠? 솔직히 말하면 이런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확실하게 말하죠. 제가 민선 씨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난민 돕기 파티장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입니다. 그리고 이스타나로 돌아와서 다시 봤을 때는 이미 좋아하고 있었다고요!”
현우의 말에 뭔가 말하려던 조민선이 움찔하며 굳었다.
처음에는 당황, 이어 잠시 눈을 깜빡이던 그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씩씩거리며 바라보던 현우의 얼굴이 붉어진 건 그 다음이었다. 현우는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기 전까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부지불식 간에 자기가 고백을 해버렸다는 사실을.
‘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뒤늦게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현우는 부끄러움을 떨쳐내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예 꺼내지 않았다면 모를까, 꺼낸 이상 적당히 얼버무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설사 차이더라도 오해를 받은 채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현우는 이미 한 번 그런 실수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밝히기를 두려워해 머뭇거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한 채 잃어버린 경험.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 민선 씨를 좋아합니다!”
이어지는 폭탄선언! 아니, 폭탄고백!
그러나 현우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자기도 모르게 해버린 고백만이 아니었다.
지금 현우와 조민선이 있는 곳이 휴게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만원으로 차있는 휴게실. 조민선이 난감해하는 모습에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현우가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처음 고함을 지를 때부터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이 왁 웃음을 터뜨리며 웅성거렸다.
“오오! 분위기 좋은데?”
“저렇게 고함을 질러댈 정도로 좋으면 할 수 없지.”
“어이, 아가씨. 그렇게 좋다는데 어지간하면 좀 받아주지 그래. 시끄러운 것도 시끄러운 거지만 이대로 계속 보고 있다가는 손발이 오그라들어 죽어버리겠어.”
“음, 참 좋을 때다. 후끈후끈 하구만.”
“어…… 그게…….”
“이리 와요!”
조민선이 와락 현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